키론의 아이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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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라
작품등록일 :
2016.10.26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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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2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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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0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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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달빛 속의 살인자 (4)

DUMMY

“이게 무슨 짓......!”


큰 충격에 몸이 뒤로 밀리려는 것을 바로 잡으며 부르짖던 잇대는 또 말을 끝내지 못했다. 올린 양팔 틈으로 유노의 두 눈을 본 것이었다. 초점이 없었다. 흐리멍덩했다. 아무 것도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유노......!”


“무슨 짓입니까, 유노님......!”


기겁한 카일과 나나니가 서둘러 달려왔다. 그러나 두 사람도 유노의 표정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유노의 표정은 그야말로 넋이 나가있었다. 큰 충격을 받기라도 한 사람처럼, 정신이 완전히 나가 있었다. 나나니는 이것이 무슨 현상인지 바로 알아보았다.


“환술......!”


“뭐? 유노 자식. 그럼......!”


어느새 환술에 걸린 거지? 그런 거 따지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카일과 나나니는 어떻게든 유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유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으로 두 사람을 한꺼번에 뿌리쳤다. 그리고 잇대에게 달려들었다. 유노는 오직 잇대 한 사람만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유노의 두 다리와 두 손이 사정없이 잇대를 두들겼다.


“이런 제길! 유노 씨......!”


어떻게 이런 힘이...... 잇대는 가능하면 버티면서 유노를 제압하려 했지만, 유노가 가하는 데미지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으므로 그럴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잇대는 일단 [수호] 능력을 유노에게 거는 것으로 받는 충격을 없앴다. 유노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 잇대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무조건적으로 잇대만 공격하도록 환술이 걸린 듯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니 어쩔 수 없었다. 잇대는 유노를 제압하려 했다.


그리고 그 사이,


석벽에 박혀 있던 문이 천천히 벽에서부터 몸을 빼냈다.


생각보다 받은 충격이 엄청났다. 그조차도 한동안 성염 운용을 하면서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어야 할 정도로. 하지만 환술은 제대로 들어 먹혔다. 노렸던 대로 유노가 신나게 날뛰고 있었다.


[수호] 능력 때문에 자신이 직접 잇대를 공격할 수 없다면, 제3자를 조종해 잇대를 공격하게 시키면 그만.


유노의 반짝이는 눈빛을 봤을 때 문은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키론의 광견. 그 호전성과 도발성. 어떻게든 자신을 쓰러트리고야 말겠다는 그 필살의 일념에서, 문은 무의식의 틈을 보았다. 환술을 걸기에 너무나도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리고 광견이 날뛰고 있는 지금이야 말로 최고의 기회.


문은 뛰었다.


루리아를 향해서가 아니었다. 잇대를 향해서였다. 임무를 수행하는데 귀찮은 녀석부터 처리. 그는 이참에 잇대를 죽일 작정이었다.


그리고 유노를 막느라 정신이 없었던 세 남자도 그새 회복하고 다시 악귀처럼 달려오는 문을 눈치 챘다.


“0급부터!”


“알고 있어!”


카일과 나나니는 유노를 잡는 것을 그만두고 달려오는 문부터 나란히 맞이했다. 잇대는 능력으로 어떻게든 유노에게서 버틸 수 있는 만큼, 문만 마크한다면 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듯했다. 하다못해 시간이라도 좀 끌어야 했다. 유노가 환술에 걸리는 상황 따위 생각도 해본 적 없었기 때문에 다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당장 떠오르는 게 없었던 것이다.


귀찮긴 하지만, 카일과 나나니를 먼저 밟아버리고 잇대를 공격하는 옵션도 문에게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그러면 기습의 의미가 퇴색되지. 문은 흐름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카일과 나나니를 노리고 두 박도를 휘두르는 척 하면서,


“......!”


“환검!”


페이크를 넣었다. 잠깐의 흔들림으로 수십 개에 달하는 것처럼 늘어난 검영으로 카일과 나나니의 시선을 뺏은 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두 사람 사이를 통과했다. 통상적인 경우라면 이처럼 적에게 등을 훤히 노출하는 것은 위험한 행위이지만, 완전무장을 하고 있는 문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카일과 나나니의 힘으로는 문의 완전무장을 공략할 수 없는 만큼 더더욱 그랬다.


문은 순식간에 잇대 앞에 도달했다. 공교롭게도 유노도 잇대를 공격하기 위해 점프해 날아오고 있었다. 1초. 그 찰나 동안 잇대는 엄청난 딜레마와 마주해야 했다. 누구에게 [수호]를 걸 것인가? 누구의 데미지를 무효화할 것인가? 유노의 두 손. 아니면 문의 두 박도. 선택해야 했다.


상식적으로 당연히 문의 검격을 무효화해야 했다. 상식적으로.


그런데 잇대는 살짝 망설이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도 놀랐다. 자신이 없었다. 유노의 타격을 받아낸 이후 자신이 멀쩡할 것이란 자신이 잇대에게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환술에 걸렸다고는 하지만 유노가 뭔가 이상했다. 환술의 부가효과인가? 파워도 스피드도 좀 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증폭된 것 같았다.


그렇지만 고민은 말 그대로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문의 검격을 온몸으로 받았다간 100% 죽음이었다. 잇대는 바로 유노에게 걸어놓았던 [수호] 능력을 문에게로 옮겼다. 문의 두 박도가 먼저 잇대의 상체를 난도질 했다. 잇대는 무사했다. 그 와중에 잇대는 돌려주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유노에겐 미안하지만, 충격을 입혀서라도 어떻게든 유노를 제압해야 할 것 같았다.


퍼버벅!


그러나 잇대는 유노에게 돌려주기를 시전하지 못했다. 그전에 유노의 두 손이 허공을 가득 메우더니 인정사정없이 잇대를 난타한 것이다. 잇대는 데미지를 미처 다 흡수하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가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뒤에서 무력하게 서있는 루리아와 부딪히지 않고 그 옆으로 비껴나갔다는 정도였다.


길이 뚫렸다. 루리아에게로 가는 길이 뚫렸다.


문은 뛰려했다. 그런데 바로 뛰지 못하고 순간 흠칫했다. 유노에게서 받은 돌려주기의 데미지가 체내에 여전히 남아있었던 것이다. 남아있던 충격이 문의 무릎과 발목을 붙들면서, 문은 잠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멈춰서있어야 했다.


유노는 쌩쌩했다. 잇대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도 만족하지 못한 것인지, 바로 다시 점프해 계속 잇대를 공격하려 했다. 그렇지만 유노도 문과 마찬가지로 행동을 이어가지 못했다. 잇대에게만 집중하다 보니 뒤를 훤히 비워두고 있던 것. 그것이 이유였다.


“잠시 좀 쉬고 계십시오.”


그림자 이동술로 유노의 등 뒤로 접근한 나나니는 지체 없이 송곳으로 유노의 목, 등, 팔, 다리 구석구석을 찔렀다. 그러자 탄력 넘치던 유노의 몸이 통나무처럼 딱딱하게 굳더니, 그대로 픽 하고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 아저씨에겐 마취가 안 통하지. 문이 머뭇거리고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였지만, 나나니는 자신의 힘으로는 문에게 데미지를 안길 수 없는 현실을 인정했다. 그래서 그냥 오른 다리를 뻗어 문의 가슴을 뻥 찼다. 최대한 뒤로 밀어내기 위함이었다.


의외로 문은 힘없이 밀렸다. 그는 여전히 저릿저릿하게 올라하는 체내의 충격을 다스리기 위해 온힘을 다하고 있었다.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조금만 더 회복하면 카일이나 나나니쯤은 언제든지 잡아낼 수 있다.


곡성처럼 흐느끼는 듯한 울음소리가 귓전을 때린 것은 그때였다.


섬뜩한 예감에 문은 잘 움직이지도 않는 두 다리를 채찍질해 최대한 뒤로 이동했다. 기다렸다는 듯 그물망 같은 촘촘한 음파가 문이 서있던 자리를 크게 휩쓸고 지나갔다. 돌바닥은 삽시간에 먼지로 변해 화려하게 공중에 일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모래더미 위에 회오리바람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을 것이다.


후. 회심의 한 수가 무위로 돌아간 카일은 한숨을 쉬었다. 나나니는 조금 놀라서 카일을 돌아보았다.


“카일님. 방금 그건......?”


“장송곡이라고.......”


카일이 쓰게 웃었다.


“이거라면 저 무장을 벗겨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피해버렸네.”


“예. 피했습니다. 0급이 억지로 피했어요.”


나나니가 말을 받았다.


“맞습니다. 효과가 있을 겁니다. 저 정도로 예리하고 촘촘한 검기라면 아무리 단단한 외피라도 벗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 진작 사용하지 않으셨습니까?”


“컨트롤이 안 돼.”


휴. 카일이 또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은 다들 어느 정도 안전지대 안에 있는 것 같아서 쓸 수 있었던 거야. 한곳에 집중시킬 수가 없어. 소리가 사방팔방 흩어져버려서 주위를 무차별적으로 휩쓸어버린단 말이야. 위험해.”


“......확실히.”


그제야 나나니도 주위를 돌아보았다. 문만 보고 있어서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먼지로 변한 것은 문이 서있던 자리만이 아니었다. 카일을 기점으로 주변이 초토화 돼있었다. 동굴 안은 어느새 뿌연 먼지로 가득했다.


“그렇지만 방금 기술로 완전무장을 벗길 수만 있다면,”


자신도 꽤 위험할 뻔 했지만, 상관하지 않고 나나니가 말을 이었다.


“제 마취술로 문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그럼 또 전황이 달라집니다. 카일님. 그 기술, 몇 번 더 쓰실 수 있습니까?”


“아마도 한 번.”


카일이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미안. 성염이 한계야. 쥐어짜내면 한 번 정도 더 쓸 순 있을 거야.”


“한 번.......”


그렇다면 신중해야겠군...... 입맛을 다시며 나나니는 송곳을 치켜들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져갔다. 어떻게 문을 끌어들여 어떤 타이밍에 카일의 장송곡에 휩쓸리게 만들어야 할지 설계하느라 바빴던 것이다. 완벽하게 맞물리지 않아도 좋았다.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아 문의 완전무장에 하나라도 흠집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자신이 할 수 있다. 자신의 송곳이 뚫을 수 있을 것이다.......


카일은 카일대로 마음을 다잡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문이 꼼짝도 하지 않고 서있기만 했으므로, 카일은 은근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날아간 잇대는 정신을 잃은 것인지 (죽은 것은 아니길 카일은 간절히 바랐다) 땅에 얼굴을 묻고 축 늘어져 있었다. 루리아도 보였다. 보이지 않는 두 눈을 감은 채, 역장 위에서 무언가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게 보였다. 마라를 치료라도 하고 있나? 고운 이마가 땀범벅이었다. 그 옆에는 역장 위에 동동 떠있는 마라가 있었다. 큰 검상을 당한 사람답지 않게 너무 평안해보여서 마치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유노가 있었다. 딱딱하게 굳어 꼼짝없이 바닥에 붙어있었다. 문득 문득 경련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나니의 마취술 때문에 힘을 쓰지 못하는 듯했다.


카일은 세 번째로 한숨을 쉬었다. 문이 아직 움직임을 재개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절망적이어도 이렇게 절망적일 수가 없었다. 그나마 잇대의 [수호] 능력으로 시간을 끌고 있었던 것인데 그 잇대가 무너져버렸다. 그 와중에 큰 전력이었던 유노도 어쩔 수 없이 무력화시켜야 했다. 루리아는 능력조차 발휘할 수 없었고, 마라의 기적적인 소생도 기대해볼 수 없었다.


그런데 큰 타격을 받은 줄 알았던 적은 여전히 건재했다. 남은 건 자신과 나나니뿐이었다. 그나마 나나니의 공격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유일한 희망은 자신에게, 자신의 대검에, 자신의 기술에 달려있었다. 그나마 그 기회란 것도 딱 한 번 밖에 없었다.


차원이 다른 강자를 상대로 불완전한 기술을 단 한 번에 성공시켜야 한다. 아니면 몰살의 운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죽음? 카일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키론의 아이가 된 이후 이렇게까지 죽음과 가깝게 느껴졌던 적이 있던가? 레지스탕스의 몰락 이후 참 거칠게 살아왔다 자부했는데, 지난 7년 동안 정말 공부하고 훈련하고 미션 수행하면서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봤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간 참 많이 보호받으며 자라왔던 거구나. 억센 잡초라고 스스로를 여겼는데 알고 보니 온실 속의 화초에 불과했어.


그래. 이게 세상이지. 잔인하고 가차 없고. 기다려주지도 참아주지도 않는. 능력이 부족하면 도태되고 약하면 잡아먹히는. 그리고 난 이제 겨우 그런 세상에 첫 발을 내딛었을 뿐이지.


“난 여기서 죽을 수 없어.”


당당히 고개를 들고 문을 똑바로 쳐다보며 카일이 선언했다. 무거운 대검을 일자로 들어 올려 전투자세를 갖췄다. 절망적인 상황이고 감당 못할 만큼 강한 적이고 알게 뭐냐. 0급인지 뭔지 알게 뭐냐고. 내가 앞으로 싸워나갈 상대는 스콜헬름 정보부 정도가 아니야. 스콜헬름 왕국 전체다.


루리아를 돕기 위해 왔다. 같이 죽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살아나간다. 루리아도, 자신도.


지금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카일에겐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아있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수그러들지 않는 투지와 각오. 카일의 기개는 그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 누구에게라도 감탄을 불러일으킬만한 것이었다. 다만 안타까운 사실은, 누구도 카일의 그런 멋진 모습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바로 옆에 서있던 나나니조차.


이상했다.


나나니가 이상했다. 카일은 뒤늦게 눈치 챘다. 문에게 온 신경을 집중한 채 전략을 짜내는데 골몰했던 나나니가, 아까부터 자꾸 흘금 흘금 뒤를 곁눈질 하고 있었다. 적을 앞에다 세워두고 오히려 아무 것도 없는 뒤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더욱이 나나니였다. 아무리 상황이 악화돼도 냉정하게 정세를 판단하고 적합한 오더를 내려오던 나나니였다. 기묘할 정도로 침착함을 유지하던 나나니가 갑자기 안절부절못하고 자꾸 뒤를 보고 있었다. 참다못한 카일이 한마디 했다.


“왜 그래, 나나니. 앞에 집중해야지.”


“예, 카일님.”


나나니가 냉큼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계속해서 자꾸 뒤로 향하려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 뭔가...... 예감이.......”


“.......?”


“아까부터 뒤에 심상찮은 기운이 풍겨 와서...... 안심하고 앞만 보고 있을 수가 없네요.”


“기운......?”


카일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로선 당장 느껴지는 게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나니의 말을 듣고 보니, 왠지 뒤통수가 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마치 뒤에 매우 위험한 무언가가 몰래 숨어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무슨 말인진 알겠어, 나나니. 그렇지만 0급을 앞에 두고 뒤를 본다는 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야?”


“저만 느끼고 있는 게 아닙니다, 카일님. 저자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저자가 공격해오지 않는 건,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뭐?”


“경계하고 있습니다. 우리 뒤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카일은 새삼 문 쪽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새 먼지가 어느 정도 갠 덕에 보다 똑똑히 문이 보였다. 그의 얼굴은 하얀 갑주로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표정까지 읽을 순 없었지만, 섬뜩하게 빛나는 두 눈만은 확실히 보였다.


그 두 눈은 카일과 나나니의 뒤편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뒤편을 보고 있었다. 나나니의 말마따나, 두 사람의 뒤편을 경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둘의 뒤에 있는 것 중에 딱히 문이 경계할만한 것이.......?


순간 카일은 얼어붙었다. 뒤로 돌리려고 했던 목 근육이 뻣뻣하게 경직되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카일도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엄청난 기운이, 엄청나게 난폭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기운이 폭발할 듯 그의 뒤편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카일은 난생 처음 경험하는 힘이었다.


아니, 아닌가......?


분명 이렇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으스스하고 끔찍한 힘을 접해보는 것은 처음. 그런데 뭔가 익숙한데......?


천천히, 문을 앞에 두고도 카일은 천천히, 완전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뻣뻣한 목을 억지로 움직이느라 안간힘을 써야 했다. 미칠 듯이 뛰고 있는 자신의 심장소리가 두 귀에 생생히 전달됐다.


그리고, 카일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뭐야 이거?


왜 몸이 안 움직여지는 거야?


한창 재미있었는데...... 왜 움직일 수 없는 거야?


최고였는데...... 잡생각도 없고, 몸은 날아갈 듯 가볍고. 컨디션 최고였다고. 누구와도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단 말이야.


왜 막는 거야? 누가 막는 거야? 왜 또 방해야? 누가 자꾸 방해하는 거야?


아. 카일이다. 그리고 나나니다.


두 사람은 아직 놀고 있네. 누구랑 놀고 있는 거지? 하얀 가면. 강해 보인다. 많이 강해 보인다. 완전 재미있어 보여.


치사하네. 나만 빼놓고 놀고 있네. 다들 재미있게 놀고 있네. 그런데 왜 난.......


왜 난.......?


왜 움직이지 못하는 거지?


왜 즐길 수 없는 거지?


왜 놀 수 없는 거야?


나두.......


삐걱 삐걱 삐걱.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유노가, 전신이 마취돼 널브러져 있던 유노가, 움직이고 있었다. 멀쩡하게 일어나고 있진 못했지만, 부자연스럽게 그지없는 움직이었지만, 어떻게든 두 팔과 두 다리를 사용해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삐걱 삐걱 삐걱.


아우라 덕이었다. 유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던 아우라 덕이었다. 진득한, 청록색의 아우라였다. 불길한 늪과 같은 색이었다. 그 강렬한 아우라가 유노의 전신을 덮다 못해 아예 유노를 가려버렸다. 청록색의 아우라 속에서 유노는 이제 흐릿한 윤곽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두 가지만은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게 보였다. 불을 뿜고 있는 것처럼 빛나고 있는 둥그런 두 눈. 그리고 입이 귀에 걸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크게 머금고 있는 함박웃음 덕에 드러난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


[우히히]


유노의 이 사이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장난기 넘치는 어린아이의 웃음소리 같았다. 순수했다. 순수하게 폭력적이었다. 살의조차 없었다. 그저 상대와 대적해 부딪히고, 치고, 찢고, 깨지고....... 그저 싸우고 싶어 하는, 그리고 거기서 파생돼 나오는 쾌락을 탐닉하고 싶어하는 마음뿐이었다.


완벽했다.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광기였다. 싸움에 대한 열망 외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완벽한 상태였다.


......나두 놀래!


[우히히]


유노는 웃었다. 눈앞에 재미있어 보이는 장난감이 세 개. 왠지 낯이 익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언제부턴가 머릿속 가득 본인의 웃음소리 외에는 울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의말

크릉이의 뒤를 이은 우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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