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론의 아이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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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라
작품등록일 :
2016.10.26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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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2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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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2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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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달빛 속의 살인자 (7)

DUMMY

스스로 시야를 가린 채 문이 멀뚱히 서있었으므로 아낙은 사양 않고 그 거대한 앞발로 문의 머리를 내리쳤다. 문을 통째로 짜부로 만들어버릴 만한 위력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낙의 앞발은 문이 아닌 바닥을 내리치는데 그쳤다. 앞발이 닿기 전, 문이 잽싸게 뒤로 성큼 물러나 아낙의 공격을 피한 것이었다.


“......?”


거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나나니는 문의 그 한순간의 움직임에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빠르다. 그리고 가볍다. 그럴 수가? 오른팔이 완전히 마비됐는데 뭘까 저 날랜 움직임은?


문을 놓친 아낙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급히 문의 행방을 찾았다. 카일과 나나니도 문이 어디로 갔는지 파악하는데 우선 주력했다. 문은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홀로 서있었다. 유노와 카일에게 당한 탓에 완전무장은 이제 빛을 바래 너덜너덜해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약화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여유가 있었다. 유노와 겨루면서 잃었던 여유를 완전히 되찾은 듯했다.


문은 오른팔을 머리 위치까지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손을 몇 번 펴보고, 어깨를 돌리며 오른팔이 멀쩡히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다.


아. 마지막으로, 잠시 잊고 있었다는 냥 문은 오른팔에 박힌 나나나의 송곳을 왼팔로 꺼냈다. 피가 줄줄 터져 나왔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송곳을 바닥에 던진 다음, 우지끈. 발로 밟아 박살을 냈다.


문의 그 태연한 일련의 동작들을 지켜보며, 나나니는 믿을 수가 없어 입만 뻐끔였다.


“어떻게......? 분명 마취가......?”


그러고 보니 두 손이 허전하군.


문은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두 박도가 없었다. 문은 고개를 들어 아낙이 있는 곳을 보았다. 아낙의 발치에 문의 두 박도가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오른 박도는 오른팔이 마취되면서 놓쳤고, 왼 박도는 왼손으로 얼굴을 가릴 때 바닥에 남겨놓았었다. 저것부터 찾아야겠군. 문은 지체 없이 움직였다. 아낙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듯 망설임 없이 아낙이 멀쩡히 서있는 위치로 돌진했다.


그 움직임이 지금까지 사활을 걸고 싸워온 사람의 것 같지 않았다. 이제 새롭게 전장에 뛰어든 것 같았다. 단순 힘을 넘어 온몸에서 활기가 넘쳤다.


문은 단숨에 아낙의 턱밑까지 파고들었다. 아낙은 소리 없이 울부짖으며 양 앞발을 마구잡이로 휘둘러댔다. 아무리 기운을 찾은 문이라도 아낙의 맹공까지 무시하고 두 박도를 집어들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문도 양손을 움직여 아낙의 폭격을 받아냈다.


쿵! 쿵! 쿠웅!


덩치에서 비교도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파워에서 문은 조금도 아낙에게 밀리지 않았다. 아니, 얼마 지나지 않아 오히려 압도하는 양상을 띠었다. 일일이 아낙의 공격을 받아내면서 반격까지 가해 조금씩 조금씩, 아낙을 뒤로 밀어내고 있었다. 아낙이 네스토 능력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었다면 금방 제압당했을지도 몰랐다. 나나니는 급히 카일에게 말했다.


“카일님. 박도를. 하나씩.”


“너...... 괜찮겠어?”


왼팔 부러졌잖아? 그러나 카일은 질문을 끝마치지 못했다. 왼팔을 덜렁이면서도, 나나니가 땅을 박차고 나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카일도 바로 뒤따랐다. 확실히 박도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문의 전투력은 차이가 있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문이 급속도로 상태를 회복한 만큼, 박도라도 뺏어놓아야 했다.


아낙이 두들겨 맞아가며 벌어준 틈이었다. 문이 눈치 채고 대응을 하기 전, 카일과 나나니는 온몸을 던져 바닥에 뒹굴고 있는 두 박도를 하나씩 품에 안았다. 이것들이? 아낙과 겨루고 있던 문은 두 애송이의 겁 없는 행동에 두 눈을 치켜떴다. 문은 아낙을 내버려두고 나나니에게 달려들었다. 문의 오른발이 나나니의 얼굴에 작렬하면서 강화된 나나니의 안경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큭......!”


얼굴이 순식간에 피범벅이 됐음에도 박도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나니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나나니가 박도를 놓지 않자 문은 마구 나나니의 몸뚱이를 밟아댔다. 나나니는 최대한 몸을 웅크리는 것으로 스스로를 보호했지만, 그 와중에 삐죽하고 박도의 칼자루가 팔 틈 사이로 삐져나오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칼자루를 본 문은 밟는 것을 멈추고 오른손으로는 칼자루를 쥐고 왼손으로는 나나니를 제압해 억지로 박도를 빼냈다. 쿨럭. 스쳐지나간 칼날에 검상까지 입은 나나니는 결국 피를 토하고 말았다.


여유가 있었다면 문은 아마 그대로 나나니의 목을 날려버렸을 것이다. 그나마 바짝 뒤따라온 아낙이 나나니의 목숨을 살렸다. 나나니에게서 박도를 빼앗는 데만 집중하고 있던 문은 훤히 드러난 등짝에 아낙의 묵직한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충격에 밀린 문의 몸은 잠시 공중에 붕 떴다. 그러나 제비를 도는 것으로 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손쉽게 바닥에 착지했다. 힐끗 뒤돌아보는 그의 눈빛으로 볼 때 어떠한 충격도 받은 것 같지 않았다.


완전무장 때문에?


하지만 그 완전무장도 지금 완전한 상태가 아닐 텐데?


카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요술을 부렸기에 저렇게 급속도로 회복할 수 있었던 거지? 회복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전투 전의 풀 컨디션으로 돌아간 것 같은데? 아니, 어떤 의미로는 오히려 그때보다 더 세 보이는데?


한편, 박도 하나를 되찾은 문의 시선은 자연스레 다른 박도 하나를 안고 있는 카일에게로 옮겨졌다. 그것만으로도 카일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문은 바로 뛰었다. 아낙 쪽은 보지도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질세라 아낙이 따라와 문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문은 가차 없이 박도를 휘둘렀다. 박투할 때와는 위력이 달랐다. 주먹을 주고받을 때는 아낙을 살짝 압도하는 정도였지만, 박도를 쥔 지금은 무 썰 듯 아낙을 조각조각 내버렸다. 아낙은 허무할 정도로 무력하게 동강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문은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생각됐던 아낙의 토막들이 어느 틈엔가 물 스며들 듯 바닥으로 스며든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문의 양 발목을 단단히 붙잡고 늘어졌다. 짜증이 난 문은 땅바닥에 닥치는 대로 칼질을 해댔지만, 좀 전과는 달리 아낙의 형체가 불분명했기에 떨쳐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자르고 잘라도 액체처럼 부서진 지면 사이를 흐르고 다니며 문을 부여잡고 놓치지 않았다. 놓치긴커녕 갈수록 문을 중심으로 농도 짙게 모여 갔다. 노랗고 앙칼진 아낙의 눈이 마치 문의 그림자처럼 문의 발밑에 딱 붙어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먹이를 노리고 입을 크게 벌린 채 수면 위를 뛰어오르는 상어처럼 아낙은 온몸을 입처럼 크게 벌려 문을 산채로 집어삼켜버렸다. 마라가 루리아에게 사용했던 바로 그 기술이었다. 문을 삼켜버린 아낙은 그대로 다시 땅속으로 숨어들어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징그러운 노란 눈이 달려 있는, 끈적끈적해 보이는 검은 웅덩이 말고는 아무 것도 자리에 남지 않았다.


마라의 무의식에 연결된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루리아도 아낙을 통제하는데 점점 능숙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아낙이 할 수 있는 기술을 뽑아내 사용할 수 있게 하는데 이르고 있었다. 아는 것이라곤 자신이 직접 당한 것 하나 밖에 모르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루리아는 자신이 있었다.


아낙의 안은 아예 다른 차원의 공간 같았어. 거기선 못나와.


지나치게 오래 유지된 긴장상태 때문에 오른손이 덜덜덜 떨리고 있었지만, 자각도 못하고 루리아는 내심 중얼거렸다. 용기를 북돋기 위해서라도 주문 외듯 쉴 새 없이 뭔가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됐다.


거기선 나올 수 없어. 가둬놓을 수 있어. 가둬놓을 수 있어......!


그리고 루리아의 바람대로,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아낙이 잠잠했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잠잠했다. 전투자세를 풀지 못하고 있던 카일도, 누운 채 신음하고 있던 나나니도 은근슬쩍 다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번엔...... 정말 끝난 걸까?


쩍.


쩌억


쩌어어억.


아낙의 위에 길게, 가늘게 금이 갔다.


깔끔하게 두 동강이 난 바위처럼 아낙이 좌우로 크게 열렸다. 그 사이로 문이 유유히 걸어 나왔다. 직후 머리를 쪼개버릴 것만 같은 엄청난 두통이 루리아를 엄습했다. 마라의 무의식과의 연결이 한계에 도달한 것인지, 아니면 문이 아낙의 내부마저 찢어버린 것이 영향을 미친 것인지 루리아도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루리아는 반강제로 마라와의 연결을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카일 혼자였다. 카일은 각오를 굳힐 시간조차 가지지 못했다. 문을 다시 보고 눈 한 번 껌뻑이기 무섭게 문이 눈앞에 있었다. 반사적으로 대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문과 일합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균형이 무너져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문은 귀찮다는 듯 왼 주먹으로 카일의 얼굴을 후려쳐 간단하게 날려버리고, 카일이 떨어트린 박도를 마저 주었다. 이것으로 박도 두 개를 모두 되찾은 문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가늘게 떨고 있는 루리아를 보았다. 아낙도 없고 시력도 찾지 못한 루리아는 문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안......!”


카일은 기어서라도 문의 발목을 잡으려 했지만, 이를 예상했다는 듯 문이 먼저 발을 놀려 카일의 얼굴을 날려버렸다. 이것으로 방해는 없었다. 문은 루리아를 향해 뛰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에게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지만 성공이었다. 이것으로 임무완수였다.


주홍성녀의 죽음은 어느 정도의 파장을 가지고 올까?


이 모그리드에? 왕국 스콜헬름에? 그리고 키론과 키론의 아이들에게?


문은 답을 구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로선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관심도 없었다. 그는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채앵!


일검이면 됐다. 박도 한 번 휘두르면 루리아의 목숨은 끝이었다. 그의 임무도 끝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그 직전까지, 최후의 비기까지 발휘해가며 루리아의 목전에 도달했는데,


또?


문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아무리 그라도 이 정도 되니 감정의 동요가 없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분노가 샘솟을 지경이었다.


어디선가 번개 같이 나타나 루리아의 앞을 가로막고 문의 박도를 대신 받은 남자는 검사였다. 통상적인 모그리드식 검보다 길고 두꺼운 장도를 들고 있었다. 길게 땋은 갈색머리를 하고 있었고 작은 두 눈은 둥근 안경을 쓰고 있어 더 작아보였다. 선한 이상의 소유자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매우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박도를 밀어내는 남자의 장도에서 느껴지는 힘을 가늠한 문의 얼굴은 더더욱 굳어갔다. 만만치 않군. 이 자식.


그럴 만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을 가로막은 남자는 다름 아닌 세겜 성 성주 고핫이었던 것이다.






문도 바로 물러서진 않았다. 환검으로 고핫을 현혹하면서 그 뒤에 있는 루리아를 노리려 했다. 그러나 고핫이 그렇게 두지 않았다. 고핫은 느리게, 그러나 굳건하게 장도를 휘두르며 문의 검영들을 하나씩 무력화시켰다. 검식이 워낙 부드러우면서도 자연스러워 문조차도 흠을 발견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본래 서있던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인 채 검만 주고받고 말았다.


유검술. 그것도 고수. 쉽사리 뚫을 수 없음을 예감한 문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섰다. 고핫은 뒤쫓지 않았다. 그의 일은 루리아를 지키는 것이었으니 당연한 노릇이었다.


짧게 몇 수 주고받은 것이었지만, 문의 실력을 파악한 것은 고핫도 마찬가지였다. 좀 전의 교전이 어찌나 아슬아슬했는지 등줄기에 식은땀이 줄줄 흐를 지경이었다. 고핫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누굽니까...... 당신?”


“........”


“모그리드인이 아닌 것 같은데, 누굽니까? 감히 공주마마를.......”


“.......”


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필사적으로 계산 중이었다. 어째서 세겜 성의 성주가 벌써 여기에? 아까 쓰러진 네스토 말로는 20분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했는데...... 겨우 10분 정도 흘렀을 뿐인데?


혼자 달려온 것인가? 죽일 듯 고핫을 노려보며 문은 생각했다. 부하들을 내버려두고 혼자서 전속력으로 달려온 것인가? 그렇다면 이렇게 빨리 도착할 수 있었던 것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되지만...... 어쨌든,


혼자라면.


저 자 혼자라면.


죽이는데 얼마나 걸릴까?


방금 실력으로 보건데, 1분? 2분 좀 안 걸리려나?


여기서 문은 깊게 숨을 한 번 내쉬었다. 자, 그렇다면 자신의 몸은?


아낙 안에 갇히면서 예상 외로 시간을 소요한 탓에 제한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3분 정도?


충분하려나?


저 자 혼자라면......?


“저 혼자라면,”


불현 듯 내뱉은 고핫의 한마디가 문의 생각의 흐름을 끊었다. 문은 새삼 고핫과 눈을 맞췄다. 고핫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


“안 될 겁니다.”


무슨 의미지?


감히 날 이길 수 있다는 오만한 발언인가? 그러나 문은 고핫의 말을 제대로 곱씹어보지 못했다.


마술을 익힌 문은 느낄 수 있었다.


동굴 공간 가득, 강력한 성염의 파동이 일고 있었다. 일반적인 성염의 흐름이 아니었다. 마술이었다. 누군가가, 매우 뛰어난 마술사가 이 동굴 공간 가득 강력한 마술을 발휘하고 있었다.


“저 혼자가 아니거든요.”


고핫의 말이 떨어지기만 기다렸다는 듯 그의 주위로 불쑥불쑥, 난데없이 인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둘이 아니었다. 수십에 달했다. 개중엔 군복을 입은 자도 있었고, 평범한 모그리드식 복장을 한자도 있었다.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자도 있었고, 어려보이는 자도 있었다. 한 가지 공통점은, 전원 티쿤이었다. 그리고 맨 앞에서 그들을 이끌고 있는 것은 붉은 모그리드 복장을 한, 허리까지 오는 긴 검은 머리의 녹색 눈의 미녀였다. 우라하 셈 카블라. 이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이곳에 있게 한 것을 가능케 한 마술사였다.


순간이동......!


으드득. 마침내 문도 참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휴우. 고핫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옆에 나란히 선 우라하에게 말을 걸었다.


“딱 맞춰서 오셨군요.”


“이 정도 많은 사람들을 매개물도 없이 한꺼번에 순간이동 시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어쨌든 감사합니다. 조금만 늦어졌으면 위기였을지도 몰라요.”


“그런 거 같네요.”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문을 훑어보며 우라하가 중얼거렸다.


“굉장한 환술가네요. 저런 환술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에요.”


“환술이라뇨......?”


“아. 마술사가 아니라면 아무래도 파악하기 힘들겠네요.”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우라하가 설명했다.


“저 사람, 스스로에게 환술을 걸었어요.”


“스스로에게 환술을 걸었다고요? 어째서......?”


“강화술이에요. 일종의.”


문을 자세히 살피며 우라하가 말을 이었다.


“단 한순간에 파워 업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본인이 받은 데미지 및 모든 상태이상을 무효화할 수 있죠. 다만 제한시간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랬다.


그것이 문의 최후의 비기였다. 그것이 문이 광포화된 유노에게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이유였다. 스스로에게 환술을 걸음으로써, 문은 유노에게 받은 피해는 물론이고 나나니의 마취마저 무시해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우라하가 언급한 것과 같이 존재하는 제한시간.


5분. 문에게 주어진 시간은 5분 정도였다. 그런데 벌써 그중 2분 정도를 써버리고 말았다. 남은 시간은 3분. 3분 후며 한꺼번에 몰려올 것이다. 누적된 데미지도. 떨어진 성염의 부재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나니가 걸어놓은 오른팔의 마취도.


3분.


3분이면 충분할까?


3분 안에 여기 있는 인원들을 다 죽이고 루리아까지 죽일 수 있을까?


“제한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경거망동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문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우라하가 큰 소리로 위협을 가했다.


“여기 있는 모두가 티쿤이에요. 잘 훈련된 군인들만 있는 게 아니라, 절반 가까이가 네스토입니다.”


“.......”


“공주 마마께 접근할 수 없습니다. 우리 카블라 일족이 허용치 않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물러서는 편이 좋을 겁니다......!”


“......!”


문은 우라하도 자신과의 전면전은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을 눈치 챘다. 설사 어떻게 루리아를 지키는데 성공하더라도, 제한시간을 넘어 자신을 쓰러트리더라도 막상 싸움이 벌어지면 상당한 희생을 감당해야 함을 알고 있는 듯했다.


3분.


남은 시간 3분.


아무리 생각해도 3분은 무리였다. 고핫 혼자만으로도 1분 이상 끌 수 있었다. 거기에 마술사 우라하가 있었고, 그 외 사람들도 전부 훈련받은 전사였다. 거기다 우라하의 말대로라면 다수의 네스토가 포함돼 있었다. 3분은 무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0급인 자신이 여기서 물러난다는 것,


문은 눈살을 찌푸렸다. 날카로운 통증이 그의 관자놀이를 꿰뚫고 지나갔다. 이유 없이 오른팔이 움찔움찔해오는 것도 느껴졌다. 그가 고민하는 사이에도 제한시간은 줄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그의 상태는 환술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무리였다.


문은 느리게 두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인정해야 했다. 실패였다.


0급인 그가, 아직 졸업도 못한 키론의 아이 하나 잡는데 실패하고만 것이다.


인정할 것을 인정 하고나자 그 뒤는 쉬웠다.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문은 오른 박도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스며들어오는 달빛을 받아 도신이 반짝였다. 문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눈치 챈 우라하가 외쳤다.


“조심해요! 환술을......!”


그러나 우라하가 말을 끝내기도 전, 달빛보다도 새하얀 빛이 동굴에 있는 모두의 동공 속으로 급습하듯 스며들었다. 순간 시야를 잃은 사람들은 당황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몇 초 후, 갑자기 피로가 닥친 것처럼 불편해진 두 눈을 깜빡이며 급히 주위를 살핀 사람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문이 보이지 않았다.


예고 없이 찾아왔다 흔적 없이 부서지는 달빛처럼, 홀연히 자취를 감춰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작가의말

널 구한 사람 나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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