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론의 아이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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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라
작품등록일 :
2016.10.26 01:50
최근연재일 :
2020.07.22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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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15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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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모략가 (4)

DUMMY

요압이 군부장관으로 임명된 후, 첫 공식 군부회의가 열렸다.


무려 일주일이나 지난 후였다. 요압이 지토가 의식을 회복할 때까지 계속 회의를 뒤로 미루고 있었던 탓이었다. 원하던 권력을 손이 쥔만큼 바로 거침없이 휘두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던 모두에게 의외였다. 특히 아브넬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이제 모그리드 최고의 용사 자리에 오른 것이나 진배없는 지토를 견제할 것이라고 보았던 사람들 (요압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의외였다. 요압이 군부를 계속 움켜쥔 채로 가기 위해선 루리아와 지토를 계속 견제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겼던 탓이었다.


그러나 요압의 선택은 달랐다. 아브넬 암살로 루리아, 그리고 지토와 큰 갈등을 자초한 요압이었지만, 그는 화합의 길을 택했다. 근거는 충분했다.


“지토는 정치적으로 우리의 위협이 될 수가 없어.”


우려를 표하는 노이어에게 요압이 딱 잘라 말했다.


“본인이 정치 쪽에 관심이 없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직선적인 성격이라 타고나길 정치 쪽에 젬병이야. 모그리드 출신이 아니라는 한계도 뚜렷하고, 공주 마마 외에는 정치적 기반도 없지. 비탈 장군과 아브넬 장군을 쓰러트린 것 때문에 꺼림칙하게 여길 자들은 넘쳐나고. 또 전투에서는 용맹무쌍하지만 조직을 이끌며 전쟁에 임하는 사령관 스타일도 아니야. 군부라는 조직 체계 자체를 번거롭게 여길 거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안고 가는 게 이득이면 이득이지 손해는 없어.”


“장군. 그렇지만.......”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면 거절하지 못할 거야. 그리고 지토 성격에 먼저 뒤돌아설 위인도 아니지. 노이어. 난 지토를 우리 군부의 상징으로 삼을 거야. 모그리드 최강의 용사로 말이야. 내가 그리는 군부를 위해 지토는 꼭 필요해. 그러니까 우린 지금부터 지토를 존중하고,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줄 필요가 있어.”


물론 실권은 주지 않고. 요압이 마지막에 스치듯이 덧붙였다. 하지만 노이어는 아비새를 신경 쓰느라 요압의 마지막 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지토를 모그리드 최강의 용사로 내세운다. 거기에 아비새가 꿈틀하고 반응했다. 아무래도 아비새는 그 사실이 못내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이었다. 아브넬이 죽고 남은 모그리드인 중 최강자라 할 만한 아비새 입장에선 아무리 지토라도 이방인이 모그리드의 최강자 자리를 꿰차는 것이 마땅치가 않았다.


그렇게 첫 군부 회의가 열렸다. 먹고 씻은 지토도 멀쩡한 모습으로 참석했다. 십이신장들과 기브온인들, 성주들도 전원 참석했다. 지토 휘하의 네스토 부대 부장들도 참석할 자격이 주어졌다. 지토는 간만에 트린, 토케, 라이와 인사를 나누었다. 무뚝뚝한 트린은 태연한 척 괜찮냐고 인사를 건넸지만, 지토가 무사히 일어난 것이 꽤 기뻐보였다.


요압이 가장 상석에 앉았고 그 오른편은 아비새가 앉았다. 왼편은 지토를 위해 준비돼 있었다. 지토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전에도 루리아가 없는 회의에서 가장 상석은 당연히 요압의 차지였다. 그런데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제는 보는 느낌이 달랐다. 전에는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으로, 암묵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공식적이었다. 요압은 이제 공식적으로 모그리드의 2인자 자리를 차지한 것이었다.


군부 회의였다. 그러나 요압이 준비한 회의는 회의라기보다는 잔치에 가까웠다. 술과 음식이 잔뜩 준비돼 있었다. 요압 딴에는 일종의 화합의 장으로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요압을 내켜하지 않는 사람들은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플랑데가 가장 그랬다. 입을 꾹 다물고 음식에도 술에도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아비새한테 지면서 요압의 명을 따르기로 약속한 터라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스르엘은 무표정이었다. 그는 요압이 구상하고 있는 새 군부란 게 뭔지 한 번 들어나 보자는 심정이었다. 요압을 만나자마자 거세게 따질 생각이었던 지토도,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바로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고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첫 군부회의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모두가 자리에 앉고 조용해지자, 요압이 말문을 열었다.


“부족한 사람이 군대 장관이란 중책을 맡았습니다. 위급한 시기에 해야 할 일이 많고,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은 더 많습니다. 모두 잘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부족한 줄 알았으면 안 했으면 그만 아닙니까?”


플랑데가 궁시렁댔다. 요압은 반응하지 않았다. 아비새는 플랑데 쪽을 노려보았다. 플랑데는 더는 떠들진 않았지만, 삐죽 튀어나온 입은 들어갈 줄을 몰랐다.


“우리는 이제 내전을 완전 종식시키기 위해, 수도 모그리드로 진격할 것입니다. 그에 관한 준비를 의논할 것입니다. 또한 이미 시작된 스콜헬름과의 전쟁을 어떻게 매듭지을 것인지도 논의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 몇 가지 여러분들에게 확실하게 말해두고 싶으신 것이 있습니다.”


요압의 말에 안 그래도 조용했던 회의장이 한층 더 조용하고 엄숙해졌다. 모두가 요압이 드디어 누누이 말해온 새 군부 라는 것을 설명하려 한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었다. 요압이 구상하는 새 군부는 중요했다. 어쩌면 내전 이상으로 중요했다. 새로운 모그리드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떠맡을 수밖에 없는, 최고 권력의 통치기구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먼저, 군부는 더 이상 내정에 간섭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압의 선언에 가장 빨리 반응한 사람은 아볼로였다. 기브온인들 사이에 조용히 앉아 있던 아볼로는 요압의 그 선언이 떨어지자마자 고개를 둘려 뚫어질 듯한 눈빛으로 요압을 바라보았다. 요압도 아볼로와 눈을 맞추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예전에는 군부의 인사들이 내정에 간섭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본인들의 의견을 개진하는 정도가 아니라 필요하면 무력을 사용해 국가의 정책을 밀어붙이곤 했습니다. 우리 모그리드에서는 이러한 군부를 통한 통치가 당연시 돼왔지만, 새로운 군부는 이러한 기조를 단연코 거부할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국방력을 키워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을 상대로 나라를 지키는 것일 뿐이며 그 이외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저는 군대 장관으로서 대신들의 국정 운영에 협조할 것이지만, 국방 이외의 다른 정치적인 목적으로 군을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노골적으로 아볼로를 바라보며 요압이 말했다.


“내전 종식 후, 스콜헬름과의 평화 협정과 같은 일은 전적으로 외교를 담당하는 이들에게 맡길 것이며 군부는 그 과정과 결정에 일절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마께서 내리는 결정만을 받들 것입니다.”


스콜헬름의 제후국으로 들어가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군부가 못 나서게 미리 선을 쳐두는군. 아볼로가 재빨리 생각했다. 본인은 군대 장관으로서 국정 운영에 참여하겠지만 다른 군부 인사들은 그러지 못하게 다 막았어. 다른 군인들의 정치적 입지와 입김을 크게 줄이겠다는 거지. 결국 다른 군부 인사들에 비해 군대 장관의 입지와 중요도만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거야.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다른 부서들이 더 이상 군부 눈치 안 보고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겠다는 것이니까. 사실 내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은 군대 장관으로서의 요압의 권력도 크게 줄이겠다는 발언이었다. 제대로 지켜지기만 한다면, 걱정했던 것처럼 모그리드가 요압 천하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요압은 어디까지나 군에만 집중하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회의에 참석한 다른 모그리드 전사들은 혼란에 빠진 듯 웅성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군을 통해 출세한 사람들이었고, 군을 통해 모그리드의 정점에 오른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얻은 무력으로 그들은 무엇이든 맘대로 할 수 있었다. 그들에겐 결정권이 있었다. 왜냐하면 모그리드에선 힘이 곧 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압의 말대로 더 이상 내정에 관여할 수 없다면, 그들의 역할과 힘이 앞으로 크게 축소될 것이 뻔했다.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웅성임에 아랑곳하지 않고, 요압이 폭탄선언을 계속했다.


“두 번째. 새 군부는 전투민족이라는 낡은 이념에 얽매이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들 교육에서 군사 교육을 제외합니다. 공직에 오르는데 어느 정도의 무력을 요구하던 관습도 폐지합니다. 일반 백성들에게 시행하던 지속적인 군 훈련도 모두 중단합니다. 새 군부는 철저히, 군인이 되고 싶고 그에 걸맞은 재능이 있는 자들만 받을 것이며 더 이상 군 복무를 의무로 백성들에게 짊어지우지 않을 것입니다. 강함은 군부 내에서 대접받을 것이지만, 군부 밖에서까지 더 이상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뭐요?!”


플랑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는 어지간히 화가 났는지 콧김을 씩씩 내뿜고 있었다. 플랑데만큼은 아니지만 불만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불만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안이 벙벙해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스르엘은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요압의 말에 충격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말해줄까, 플랑데 장군?”


이번에는 요압이 플랑데에게 관심을 주었다.


“앞으로 군은 더 이상 의무가 아니게 될 거야. 힘은 무조건적인 미덕이 아니게 될 거고. 모그리드는 앞으로 티쿤이 아니더라도, 다른 재능이 충분하다면 대접받을 수 있는 나라가 될 거야. 그리고 새 군부는 그런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데 앞장 설 것이고.”


“아니! 장군! 지금 군대 장관이 돼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들만 늘어놓고 있습니까?”


마지못해 존대를 하며 플랑데가 외쳤다.


“정치에 손 떼는 건 나도 찬성합니다! 그 골치 아픈 거 애초에 좋아하지도 않았으니까! 근데 전투민족의 이념을 버린다구요? 우리의 정체성을 내다 버리겠다구요? 그렇게 해서! 이 군부를 얼마나 더 약화시킬 생각입니까? 군대 장관이라는 양반이 군의 힘을 강력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약화시키는 데만 주력하겠다니 이게 대체 무슨.......!”


“왜 새 군부가 약해질 것이라 생각하나?


요압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왜 우리가 약해지지? 말해보게, 플랑데 장군.”


“아니! 그렇지 않습니까! 군이 의무가 아니면 군에 들어오려는 백성들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훈련 안시키면 자발적으로 훈련할 애들은 몇이나 되구요! 그렇게 군인이 되겠다는 사람 수가 줄어들면 당연히 뽑히는 인재도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우리도 약해지는 거 아닙니까! 저 밖의 도시국가들처럼!”


“착각하고 있군, 장군.”


요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시국가들은 약하지 않아. 그리고 우리가 이미 겪어 알고 있지만, 스콜헬름 왕국은 터무니없이 강하지. 우리처럼 백성들을 들들 볶지 않아도 말이야. 덧붙여 말하자면, 단순 무력은 분명 우리가 몇 도시국가들보다 위일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국력으로 비교하면 비교 자체가 부끄러운 수준이야. 그 이유는 하나야. 그게 뭔지 알겠나?”


“......뭡니까 그게?”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을 너무 비효율적으로 활용해서야.”


요압이 플랑데에게 앉으라는 제스처를 주었다. 흥분이 조금 가라앉은 플랑데는, 눈치를 좀 살피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요압은 만족한 것 같았다.


“자네 말대로 우리에게 인재 풀은 한정돼 있어.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전사를 만드는데 쏟아 부었지. 개개인의 다른 재능 따윈 염두에 두지도 않고, 힘이 약하면 쓸모없다고 다 내쳤어. 그렇게 해서 우린 뛰어난 전사들을 수도 없이 배출했고, 그중에도 특히 십이신장이라는 자랑할 만한 존재들이 항상 있어 왔지. 하지만 그 결과가 어땠나? 살기 어려워졌어. 갈수록 살기 어려워졌지. 힘 외엔 아무 것도 없었어. 그 힘을 쓸 데도 없는데 말이야.”


“.......”


“국가의 모든 잠재력이 전투력에 쏠리는 것은 낭비야. 우린 우리의 전투력을 유지할 거야. 나도 약한 군부를 만들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다만 효율적으로 할 거야. 모그리드 최고의 무재들만 선별해, 엘리트로 교육시켜 소수의 정예를 구성할 거야. 난 자네와 생각이 달라. 난 오히려 전보다 더 막강한 전투력을 보유한 군부를 꿈꾸고 있어.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지금의 시스템과 체계가 혁신적으로 변해야만 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스르엘의 질문이었다. 플랑데가 더 뭐라 말하기 전, 선수를 쳐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이스르엘은 진심으로 궁금해보였다.


“현 군부의 정책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오랜 전통이자 민족의 정체성이었기에, 쉽게 그만둘 수도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장군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전부 밝힐 순 없지만, 대략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일단 12신장을 중심으로 군부를 꾸리는 것은 동일할 것입니다.”


다시 온 좌중을 향해 요압이 말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12신장 직에는 체계가 없었습니다. 가장 강한 12명의 모그리드인 전사라는 기조아래 한데 모였지만, 제1신장이 군대 장관이 되고 제2신장이 재니서리들을 관리한다는 것 외에는 어떠한 룰도 없었습니다. 서열도 없었고, 정해진 보직도 없었고, 십이신장으로 임명 받는 것도 제멋대로. 하는 일도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더욱이 가장 강한 12명의 전사가 수도에 한데 모여 필요가 있지 않은 이상 다른 일은 하지 않으니 인원 배치가 효율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전 이것부터 바꿀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12신장마다 보직을 정할 것이고, 서열을 정할 것입니다.”


이스르엘의 물음에 요압이 계속 답했다. 답은 회의장에 참석 중인 모두를 향한 것이었지만.


“서열은 당연 1신장이 가장 위며, 순서대로 갈 것입니다. 가장 낮은 서열은 12신장입니다. 이에 따라 맡은 보직도 다를 것입니다. 1신장은 계속해서 군대장관. 2신장은 계속해서 재니서리 부대장 및 상아궁 호위. 그리고.......”


제3신장은 중앙군의 장.


제4신장은 수도방위장.


제5신장은 모그리드의 최전방인 남부 국경 사령관.


제6신장은 정보부장.


제7신장은 헌병대장.


제8신장은 보급부대장.


제9신장은 치안부대장.


제10신장은 카블라 왕가 혈통의 세겜 성주.


제11신장은 동해안 수군 제독.


제12신장은 예비군 대장.


“십이신장들은 보직에 따라 수도에 머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지방에서 국경을 지키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군부에서 가장 높은 열두 명의 장군인 만큼 당연히 모그리드 제일의 무력을 자랑하는 전사들 가운데 뽑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무력이 최우선적인 조건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알맞은 위치에서 주어진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선택받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무력으로는 다른 후보들에게 떨어진다고 해도 업무 적인 부분에서 훨씬 탁월하다면, 그 사람이 십이신장으로 선택될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 십이신장직은 철저히 군부의 검증을 거친 인사들에게만 주어질 것이며, 십이신장직을 걸고 결투를 하는 등의 행위는 절대 허용되지 않을 것입니다. 새 군부의 십이신장들은 단순히 모그리드에서 가장 강한 전사들이 아니라 군부의 뼈대로서 이 나라의 국방력을 지탱하는 기둥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십이신장직은 자격만 된다면 출신과 성별, 노소를 막론하고 주어질 것입니다. 무력을 포함한 능력 위주로 말입니다.......”


요압의 말이 이어질수록 불만이 있는 사람이든 의문이 있는 사람이든 점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놀라울 정도로 무질서했음에도 강자우선법칙이라는 절대법칙 하에 어떻게든 돌아가고 있던 모그리드의 군부에 제대로 된 체계가 잡혀가고 있었다. 요압이 제시하는 새 군부는 요압의 말마따나 효율적이었을 뿐 아니라 훨씬 세련됐고, 또 응집돼 있었다. 개개인의 힘과 특성에 힘입은 군부가 아니었다. 요압의 군부는 철저한 조직체였다. 그리고 그 조직은 아브넬의 절대적인 무력과 카리스마 위에 세워져있던 전 군부와는 또 다른 힘, 그리고 매력을 내뿜었다. 아브넬과 같은 절대자가 없음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굳건함이 느껴졌다.


요압이 장담했다.


“군부는 약화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정치적 영향력이 줄고, 사회적 영향력이 준다고 해서 우린 약화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본연의 자리에서, 역사상 모그리드의 그 어떤 군부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강력한 힘을 구축할 것입니다. 개인의 힘을 통해서가 아닌 확립된 시스템을 통해서 말입니다. 나라를 갉아먹는 적자생존의 무한 경쟁 대신 이 시스템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우수한 군인들을 공급해줄 것입니다. 나의 목표는 스콜헬름 왕국조차 뛰어넘는 강력한 군부를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 세대에서 뿐 아니라 다음 세대, 그리고 그 다음 세대까지 영원히. 그리고 이를 위해, 여러분들의 협조를 구하는 바입니다.”


저 괴물 같은 스콜헬름의 3군조차 뛰어넘는 강력한 군대!


요압의 어투는 담담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가 말하는 내용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가장 강한 반감을 드러냈던 플랑데마저도 살짝 흥분한 감을 숨길 수 없을 정도였다. 어차피 그 자리에 모인 모두는 전사였고, 강함을 전부로 살아온 자들이었다. 주어진 특권들을 좀 잃는다 해도 어떤가. 그것이 그들이 더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면.


지토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동의했다. 100% 동의했다. 모그리드 출신이 아닌 만큼 요압의 혁신을 받아들이기 더 쉬웠다. 지토 역시, 요압이 제시하는 방향성에 완벽하게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의가 끝났다. 모그리드로 진격할 대략적인 날짜를 잡았고, 루리아의 최종 승인만 얻으면 됐다. 남은 십이신장이라 해봤자 시므리와 고멜라 두 사람 뿐. 삼마와 입다 라는 변수가 있긴 하지만, 승리는 누가 봐도 그들의 것이었기에 루리아 진영에는 여유가 있었다.


모두가 자리를 떠나고 회의장 안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요압과 지토였다. 독대였다. 지토의 요청 하에 이뤄진 일이었다. 두 사람 앞에는 뜨거운 차가 한잔씩 놓여있었다. 요압이 좋아하는 차였다. 지토는 손도 대지 않았다.


“내가 사과하길 기대하나?”


찻잔을 입에 가져가며 요압이 물었다.


“아브넬 장군님의 일로? 아브넬 장군님을 죽인 것 때문에?”


“아브넬은 그렇게 죽을 사람이 아니었어. 그건 나도 알고 너도 알아.”


지토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리고 아브넬 만의 문제는 아니야. 넌 그렇게 루리아를 배신해서는 안 됐어. 네 행위는 명백한 불충이고 불복종이야. 네가 잘못한 거야, 요압.”


“그래. 내가 잘못했지.”


요압이 인정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어쩔 수 없었어. 나의 꿈, 새로운 모그리드의 군부를 이루기 위해서는 말이야. 아브넬 장군님이 계속 남아있었다면 군부 장관 자리는 계속 장군님의 차지였어. 그렇다면 내가 하고자 하는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힘들었을 거야.”


“그랬겠지.”


지토도 인정했다.


“그리고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이 난 맘에 들어. 그대로 이뤄질 수만 있다면.”


“이룰 거야.”


요압이 단호히 말했다.


“방해 세력들이 있겠지. 한순간에 지난 몇 백 년간의 통치 방식을 뒤집어엎는 일이니까. 일반 백성들조차 받아들이기 힘들어할지 몰라. 시간이 걸릴 거야. 그렇지만 결국 적응할 것이고, 익숙해질 거야. 언제부턴가 더는 전에 방식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게 되겠지. 그렇게 될 때까지, 우린 흔들리지 않고 단호히 밀고 가야 해. 과정 중에 결과를 만들어내면서 말이야. 난 그럴 자신이 있어.”


“그래. 너라면 할 수 있겠지. 나도 널 최대한 돕겠어.”


“그렇다면 2신장 자리를 맡아줘, 지토.”


요압이 말했다. 지토는 가만히 요압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재니서리의 장으로서 상아궁 호위를 담당해줘. 네게 하임의 칭호를 선물하겠어. 널 바로 인정하지 못하는 모그리드인들이 많겠지만, 난 네가 그들을 결국 다 굴복시키길 원하고 있어. 난 네가 모그리드 군부의 상징이 됐으면 해. 모그리드 최강의 전사로서 모그리드인들의 자랑이 됐으면 하는 거야. 아브넬 장군님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그래. 그렇게 할게. 그건 어렵지 않아. 어차피 다른 보직들 나 별로 관심도 없으니까. 큰 군대를 지휘하고 싶지도 않고, 어떤 특수한 임무를 맡고 싶지도 않고.”


지토가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요압.”


“뭔데. 말해.”


“네가 나에게 2신장 자리를 주는 이유를 알고 있어.”


요압을 똑바로 보며 지토가 말했다.


“강력한 네스토 부대인 재니서리를 통제하고 상아궁을 지키는 역할. 중요한 역할이지. 십이신장 중 두 번째 서열이고 네가 하임 칭호까지 준다고 했으니 군부에서 나의 위상은 아마 너 다음 정도로 굳어지겠지. 네가 그만큼 나를 존중하고 인정했다는 것으로 모두에게 비춰질 거야.”


“그런데?”


“그런데 이게 허울뿐인 거란 걸 내가 모르진 않아.”


지토가 말했다. 요압은 동요하지 않았다.


“재니서리라는 강력한 부대를 통솔한다지만 그 숫자는 고작 100명. 나의 영향력은 어디까지나 상아궁이라는 특수한 공간으로 제한돼 있고. 사실 실권은 중앙군을 통솔할 3신장과 수도를 지킬 4신장, 그리고 정보부를 담당할 6신장과 헌병대를 통솔할 7신장이 쥐고 있지. 넌 그걸 네 사람들로 채울 거지? 아비새와 노이어, 나하리. 그리고 네 조카 엘리압 정도?”


“난 마마를 배려해 카블라 왕족 중 하나에게 무조건적으로 십이신장 자리를 보장하기까지 했어. 그 정도로는 부족한가?”


“세겜성주잖아. 허울은 좋지만 여전히 실권과는 동떨어져 있지. 다른 십이신장직들도 마찬가지야. 다들 전역으로 넓게 퍼져있고, 권력의 중심인 수도로부터는 멀어졌어. 넌 이 자리들을 네게 호의적이지만은 아닌 녀석들로 채우겠지. 플랑데, 이스르엘...... 십이신장을 또 할 만한 다른 녀석들이 누가 있을지 모르겠군. 아톨?”


“중요한 문제지.”


요압이 다시 차를 들이켰다.


“난 약속을 지킬 거야, 지토. 세계 최강의 군부를 만들어 보이겠어. 당연히 어중이떠중이로 십이신장을 채우지 않아. 날 반대하는 녀석이라도 실력이 되면 자리를 줄 거야. 이 나라의 무력은 유지돼야만해.”


“그래. 하지만 실권은 계속 네가 쥘 것이고.”


지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요압의 뜻을 반대할 마음이 없었고, 요압의 제의를 거절할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해둬야 하는 건 있었다.


“난 네 꿍꿍이를 모르지 않아. 루리아도 모르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너도 알겠지만, 우린 널 반대하지 않을 거야. 네 계획이 궁극적으로는 이 나라를 위한 것이니 말이야. 하지만, 요압. 지나치게 모든 걸 다 네 손안에 쥐고 흔들려고 하진 마. 난 너와 계속 협력하고 싶고, 함께 좋은 나라를 만들어가고 싶어. 네가 선을 지키는 한, 내가 널 적대할 일은 없어. 그러니까 조심해.”


“.......”


지토가 회의실을 나갔다. 요압은 남은 차를 마셨다. 요압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가 적대할 일은 없어야지.”


요압이 중얼거렸다.


“나도 너와 싸우고 싶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거든. 하지만 또 내 걸 뺏길 맘은 조금도 없단 말이지. 서로 조심하자고, 친구.”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31 evolutio..
    작성일
    19.04.15 13:03
    No. 1

    군조직을 구상하신 것에도 정말 시간을 많이 들이셨을 것 같고..

    반대파들의 분위기와 그와중에 요압이 구슬리는 과정도 억지스러움 없이 충분히 납득되었고, 지토와 요압의 은근한 갈등.. 계속 해서 마지막에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요압이 풍기는 뭔지모를 긴장감..

    전부 너무 좋았지만 요번 화는 빵점입니다.

    루리아와의 달달각을 또 다음주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합니까!?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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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70 라오콘
    작성일
    19.04.15 15:04
    No. 2

    제이 만큼은 아니어도 요압은 참 매력적인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 같군요.
    권력을 탐하고 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반대로 1인자 욕심을 내고 있지는 않고,
    실권과 권력의 중심을 원하지만 반대로 모든 권력을 혼자 독차지하려고 하지는 않고.
    지금은 이렇지만 사람의 욕심이라는게 언젠가 선을 넘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에 따르는 갈등과 갈등의 봉합이(배제든 타협이든) 참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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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시므리 (5) 20.03.16 134 7 21쪽
174 시므리 (4) +1 20.03.09 132 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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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그의 재능은 끝이 없고 (2) +4 19.11.18 182 9 18쪽
166 그의 재능은 끝이 없고 (1) +1 19.11.11 179 7 24쪽
165 삼마 (5) +2 19.11.04 177 5 19쪽
164 삼마 (4) +3 19.10.21 175 11 24쪽
163 삼마 (3) +2 19.10.08 186 8 19쪽
162 삼마 (2) +4 19.09.30 196 9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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