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가야하는 곳 8
유안의 얼굴은 진지했다.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 앞머리에도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그는 확고한 태도를 보였다. 컬러렌즈의 뒤에서부터 뿜어져나오는 황금빛의 오오라가 천천히 에임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 후. 내 자네니까 허락하네. 하지만 절대로 무리는 해서는 안되네 알겠는가? "
에임은 유안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유안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을 확인한 에임은 그에게 작은 장치를 하나 건넸다.
" 위험할때 꼭 사용하게. 신호탄의 일종이네. 꽤나 화력이 좋은 편이니 꼭 하늘을 조준하고 사용하게나. "
" 고맙습니다. 에임. 끝까지 제 선택을 믿어주셔서요. "
" 자네는 항상 올곧아보였네. 지금 자네가 하는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네. "
에임은 곧장 왔던 길을 따라 다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유안은 에임이 뒤돌아가자마자 바로 다시 앞을 바라보고는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붉은 악마와 자카스의 싸움은 어마어마할 정도로 크기가 거대했다.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주위의 건물이 무너지고 잔해들이 가루가 되어갔다. 그들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장막은 제 3자를 막기 위한 것이였겠지만 마치 그들의 싸움이 더 밖으로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 있는 것 같아보였다.
그들의 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둘 그 어느쪽도 지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유안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가 숨어있던 잔해속을 나왔다.
그리고 장막의 앞에 섰다.
툭.
손을 펼쳐 장막에 손을 얹었다. 장막은 생각외로 단단하지 않았고 마치 물에 물방이 떨어진듯 주위로 파동이 일어났다. 이내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을 확인한 유안은 장막을 천천히 만져보더니 이내 장막의 마력순도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은 마치 숙련된 마법사처럼 보였다. 그 누구도 유안 풀문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한때 모 르몬드의 밑에서 마법을 배운 적이 있던 그가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마력의 순도 측정이다.
눈을 감고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이내 물흐르듯이 움직이는 장막의 속에서 한가닥의 굵은 선이 나타났고 유안은 그것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장막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물풍선처럼 터질듯이 말이다.
이내 유안은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고 장막을 파괴하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감고 있던 눈을 뜨는 순간
" 어머. 이게 누구야. 유안 아니야? "
그의 뒤에서 또 다른 가면이 나타났다. 하지만 유안을 잘 알고 있는 듯한 목소리와 어딘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지금은 붕괴된 달늑대의 본사에서 말이다.
유안은 그 목소리를 듣자 바로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포니테일을 하고 얼굴에 여우의 형상을 하고 있는 가면을 쓰고 있는 여성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허리에는 유안이 잘 알고 있는 녀석이 들고 있는 검집에도 있는 문장이 그려져 있었다.
" 아! 그렇지. 나 지금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 "
이내 그녀는 양손을 들어올려 가면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면을 얼굴에서 내려놓았다. 가면속의 얼굴이 들어났고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유안에게 다시 말했다.
" 오랜만이야. 유안 풀문. "
" 코우세 시이네. "
아항이라는 이상한 의성어를 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이네라고 불린 가면은 유안에게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가벼운 발걸음에 한걸음 한걸음 움직일때마다 힐의 소리가 주위로 울려퍼졌다. 그리고 유안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는 거리가 되자 그녀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 뭐야. 언제부터 그런 패션을 고수한거야? 중2병이야? "
시이네는 이내 깬다는 표정으로 유안을 바라봤다. 유안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서고는 말했다.
" 너....살아있...아니...어떻게 된거야? "
그녀는 이내 입술을 살짝 깨물으며 고민했다. 무슨 고민을 하는지는 잘 몰랐으나 뭔가 곤란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도 잠시 금새 그에게 말했다.
" 아니 나에 관한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너야말로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지금 그 벽 부술려고 하는거야? "
유안은 고개만을 끄덕였다.
" 하아... 고민이네. "
그녀는 다시 스스로의 고민속에 빠지기 시작했다. 유안은 그런 시이네의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을뿐 공격태세를 취하고 있지 않았다. 사실 공격할 생각 역시 조금도 없었다. 공격하기보다는 그녀에게 듣고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 뭐가 고민이죠? 시이네? "
시이네의 뒤로 또 누군가가 나타났다. 하지만 역시 얼굴에는 가면을 쓰고 있어서 누군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알 수 있는 것은 가면의 뒤로 길게 금발과 가면밑으로 보이는 달늑대 랑의 제복이였다.
사실 그것만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안은 그녀가 누구인지 기억해내지 못했다. 아니 알았다. 아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치 그때 물망초팀을 구하러 갔을때와 비슷한 느낌이였다.
그때 유안은 떠올렸다. 예카제리아 저택에서 들은 부서진 얼굴의 능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을 안다고 한들 그녀가 누구인지 떠올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새로 나타난 가면의 여성도 곧 유안을 발견했다. 그녀는 유안을 보자 이내 그 자리에 멈춘채 마치 심장이 아픈것처럼 가슴을 부여잡으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숨을 헐떡였다.
" 어? 왜 그래? @#$@#$. "
시이네가 이내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에게 다가갔지만 유안에게는 그 이름이 들리지 않았다. 마치 모자이크라도 되있는 마냥 노이즈가 그 소리를 감췄고 유안은 이내 그들에게 등을 지며 말했다.
" 더 이상 너와 이야기할 시간이 없어. 시이네. "
다시 장막에 손을 얹고는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시이네는 그런 유안을 보고도 아무런 방해를 하지 않았다. 쓰러진 그녀에게 다가가 부축하고 일으켜세웠다.
부축을 받으며 그녀는 시이네에게 말했다.
" 지금 당장 막아요. 유안 풀문을 막아요. 지금 당장!!! "
숨쉬기도 힘겨워 보였던 그녀가 남겨뒀던 힘까지 모두 써가는 듯한 뉘앙스로 소리쳤다. 하지만 시이네는 그녀에게 말했다.
" 무슨 소리야. 그가 저 장막만 부숴준다면 세르파에게 가세할 수 있어. "
" 그게 중요한게 아니에요. 유안 풀문이 가지고 있는 가면...저걸 당장 찾아와요. "
"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알았어. "
시이네는 이내 그녀를 짐짝 버리듯이 바닥으로 내팽겨졌다. 정말 힘이 없었던 모양이였는지 그녀는 바로 바닥에 머리부터 떨어졌다. 빠각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시이네는 그런것을 신경쓰지 않은 채 검집에서 검을 뽑아들고는 유안에게서 달려갔다.
유안도 그런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사이렌을 꺼내들었다. 시이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없던 모양이였는지 단순하게 달려서 유안에게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유안은 그녀에게 사이렌의 총구를 겨누었다.
탕! 탕! 탕!
단 세발의 총성이 들렸다.
그리고 정말 허무하게도 시이네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제복 하의의 무릎부분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려 스스로 설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시이네는 곧 기울어져가는 몸을 검을 지팡이 삼아 버텼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는 분하다는 듯이 이를 악깨물었다.
바닥에 엎드려있던 그녀가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 빨리...전부 가서 막아 어서 막아!!!! "
다시 한번 다 찢어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 순간 그녀의 뒤로 엄청난 범위로 검은 마력이 퍼지기 시작했다. 곧 검은 마력들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안개를 만들었고 끝없는 어둠이 그녀의 뒤로 펼쳐졌다.
저벅저벅저벅저벅···············
그리고 그 안에서부터 수 많은 가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달늑대제복을 입은 자들부터 시작해서 세계정부 그리고 세계정부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국가들의 군복을 입은 자들까지 있었다. 끝이 보이질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유안은 떨지 않았다. 오히려 사이렌을 재장전하기 시작했다. 재장전이 끝나자 어둠으로부터 그 군세들이 유안을 향해 돌격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조용하게 그리고 일사분란하게 유안에게 공격했다. 하지만 그들은 시이네와 마찬가지로 유안의 공격에 하나씩 하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다만 그들에게는 끝이 없었다.
수십명을 처리하고도 그 수가 줄어들지 않자 유안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숨을 헐떡이고 사이렌을 들고 있는 손이 아주 조금 떨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의 두눈에서 뿜어져나오는 황금빛의 오오라는 멈출 생각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공세는 다시 시작됬다.
또 다시 끝이 없는 싸움을 시작한 그들은 유안을 점점 궁세에 몰고 가기 시작했다. 유안 역시 사이렌의 잔탄을 모두 사용하자 사이렌을 투척무기를 사용해 가면을 쓰러뜨리고 이내 육탄전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면의 군세들은 무기를 내려 놓지 않았다. 이윽고 유안의 등 뒤로 칼이 한개씩 꽂히기 시작했다.
" 큭. "
그의 두눈은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허나 그의 육체는 끝에 다다랐다. 그는 이내 자리에무릎을 꿇은 채 가면들의 무기에 온몸이 찔린 채 구속되었다. 유안은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봤다.
여전히 그녀는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 가면의 그 누구도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 중 하나가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입에 귀를 기울였다.
" 당장 가져와. "
가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안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유안에게로 다가가자 주위에 있던 가면들은 유안의 몸에 박아놓았던 자신들의 무기를 뽑아내고는 자리를 비켰다.
가면은 이내 유안의 바로 옆까지 다가가 그의 옷가지에 손을 데려고 하는 순간. 유안의 몸에서 거대한 마력이 소용돌이쳤다. 그 마력의 근원은 가면들의 군세가 나오는 곳과 다르지 않았다.
쓰러져 있는 그녀를 비롯해 그곳에 있는 모든 가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였다.
유안의 옷가지에서 소용돌이친 마력에서 곧 딱 사람크기만 검은 안개가 생겼고 그곳에서 가면을 쓰고 있는 자가 나타났다. 그의 모습은 마치 천사와도 같이 보였다. 등에 난 6개의 날개와 가면에 그려진 천사의 링 같이 생겨진 표식때문에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가면이 말했다.
" 나의 계약자후보에게 무슨 짓을 하는거지. 오리하 풀문. "
그가 나타나자 쓰러져있던 오리하 풀문이 천천히 몸을 추스리며 일어났다.
" 당신이 그렇게 직접적으로 나타날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네요. 뭐하는거죠? 지금. 전 당신이 말하는 거에 단 하나도 차질 없이... "
" 그래. 넌 잘하고 있어. 오리하 풀문. 하지만 계약을 하지 않은 채로는 완벽하지 못해. 아마 지금 그 늙다리가 조기종전을 위해 움직이고 있긴 하지만 실패할거다. 적어도 우리쪽에서 더욱 준비를 해놓는 수 밖에 없어. 그것이 실패하더라도 그 이후를 위해서 말이지. 그러기 위해서라도 계약은 꼭 필요하다. "
" 그럼 저와 하면 되잖아요. 저랑..! "
" 너도 알고 있잖아. 오리하 풀문. 넌 가면에 불과해. 넌 훌륭했지만 거기까지야. "
가면은 이내 오리하 풀문에게 등을 지고 쓰러져 있는 유안 풀문의 귀에 속삭였다.
" 결국은 이렇게 되는군. 로마노프도 이걸 다 예상하고 있었을거라고 생각하면 치가 떨리지만 넌 계약자로써 흠이 없다. 자 선택해라. 유안 풀문. 이대로 죽을 것인가 아니면 나와 계약해 진정한 부서진 얼굴이 될 것인가를. "
- 작가의말
“ 그렇다면 가라. 가서 그의 목을 취해와라. ”
어둠속에서 그가 속삭였다. 곧 달빛이 천천히 그들이 있는 사무실의 창문을 통해 들어왔고 그들의 모습의 일부를 비추기 시작했다.
“ 알겠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인겁니다? 아시겠죠? ”
푸른색 머리의 꽁지머리를 하고 있는 그는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항상 가볍게 생각하고 날라리같은 이미지가 있던 그였지만 그렇지만도 않았던 모양이였다.
“ 걱정말게. 내가 언제 자네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
“ 하긴. 그렇군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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