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목적 세번째 5
어딘선가 본적이 있는 방, 온통 흰색의 벽지에 그 속에 있는 벽돌까지 흰색인 정신장애가 생길듯한 방을 빙자한 연구소의 실험실. 이번에도 역시 누군가가 의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결박기에 누군가가 묶여있었다. 전에 묶여있는자와는 다른 사람이다. 유안 풀문이다.
그때와 똑같이 묶여있는 자의 앞에는 아이린 풀문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고 그녀의 뒤로는 크로서스 삼자매가 그 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유안은 온몸이 묶여있음에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 전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입은 봉해져 있지 않다는 점일까.
"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아이린. "
그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과도 같은 눈을 하고 있는 아이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린은 그런 유안을 바라보며 바보같다는듯이 사랑스럽다는듯이 존경한다는듯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증오..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표정으로 그를 고개를 기울이며 쳐다보며 말했다.
" 이해할 수 없겠죠? 저도 그래요. 한때 과학자였던 내가 뇌가 몸을 지배한다고 믿는 내가 이렇게까지 뒤틀리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어요? 하지만 거짓은 없었어요. 당신에게 보여줬던 저의 모습 모두...다 저의 모습이에요. "
유안은 그녀의 말에 한번 두 눈을 질근 감고 다시 뜨고는 그녀를 똑바로 직시하며 말했다.
" 질문이 틀렸었군. 이제부터 뭘 할 생각이지? "
그녀는 자신의 양손을 마주치며 기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바라던 대답이였던 모양인듯이 그녀는 입웃음은 귀에 걸릴정도로 늘어져 있었고 숨길 수 없었던 웃음소리가 그녀의 기괴하게 찢어진 입속에서 흘러나왔다.
" 바로 그거에요. 아주 좋은 질문을 했네요. 전 당신을 만들꺼에요. "
그녀의 대답에 유안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녀의 뒤에 있던 크로서스들에게 시선을 보내봤지만 그녀들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유안은 옛날부터 아버지에게 맹목적이였던 크로서스들의 태도를 떠올리고는 이내 관뒀다.
하지만 아이린은 유안이 시선을 자신의 뒤쪽으로 돌리자 유안의 뺨을 양손으로 어루어만지듯이 쓸어내리며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두 눈을 마추었다.
"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나봐요. 말 그대로에요. 전 당신을 만들꺼에요. 당신 그 자체를 말이에요. "
" 대체...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나를 이해할 수 없어. 아이린. "
아이린은 아직까지도 갈피를 잡고 있지 못하고 있는 유안을 바라보며 답답해하면서도 그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던 손이 그의 어깨 위로 올라갔다. 아이린은 곧 그의 다리위로 올라타 그의 얼굴을 똑바로 다시 쳐다보며 말했다.
" 당신의 복제인간,클론을 만들꺼라는 거에요. "
유안은 순간 더 벙찌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조차 의심이 들었기도 했고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달늑대에서조차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지어 더 이상 연구를 하지 않았던 분야이기도 했다.
" 불가능하다고 얼굴로 말하고 있네요. 하지만 리히타르젠에서는 이미 진작에 가능했답니다. 당신의 아버지,줄리어스가 리히타르젠을 해체하기전에도요. "
" 리히타르젠의 자료들은 모두 소거되었어. 그렇다면 지금은 불가능할텐데. "
유안의 말대로 이전 리히타르젠 해체작전에서 13인의 과학자 대부분이 죽었다. 그리고 그 자료들은 폐기,소거되었다고 기록이 되어있다.
" 흐흐흐흐흐.....아하하하하하!! "
하지만 아이린은 그런 유안의 말에 광소으로 대답했다. 갑작스럽게 미친듯이 웃어대는 아이린을 보며 유안은 무표정으로 일관했지만 그녀의 모습은 비정상적이였다. 그녀는 곧 웃음을 멈추고는 천천히 고개를 내리며 유안의 얼굴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말했다.
" 그런데 말이에요. 어떻게 되서인지는 몰라도 리히타르젠의 자료들이 다 달늑대에 있찌 뭐에요? 신기하죠? 당신의 아버지...아니..우리의 아버지는 참 대단한 사람이었네요. 비인륜적인 연구를 어떻쿵하면서 실질적인 연구를 모조리 다 빼갔으니까 말이에요. "
다시 한번 그녀는 양손으로 유안의 얼굴을 감쌌다. 오른쪽 손의 검지로 천천히 그의 눈을 시작으로 눈썹, 귀를 쓸어내리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말했다.
" 일단은...죽지 않는 선에서에요. 두개니까 하나쯤은 없어도 되는....당신의 눈,눈썹,귀,이빨,잇몸..머리카락이나 혈액은 말할 것도 없죠. "
그리고 손은 점점 얼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그의 팔과 다리...마지막으로는 그의 상체를 어루어만지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 팔....다리...그리고 신장. 아 간은 재생가능하니까 간도 베어내면 되겠네요. 아..폐는 안되던가. 뭐, 천천히 생각하도록 하죠. 어짜피 당신은 쉽게 죽지 않을테니까 말이에요. "
그녀의 광소를 넘어선 단어가 그 단어에 맞는 신체부위들을 움찔하게 했다.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 그녀 본인이 말했듯이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충분히 눈앞에 있는 유안 풀문을 만들어낼거라는 것이다. 아이린은 이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유안에게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 왜 그래요? 설마 겁먹은건 아니겠죠? "
그녀의 말대로 그는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새삼 깨닫고 있었다. 아이린,에리온느가 아버지에 의해 피해를 입은 상처를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그녀 역시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 알아요. 당신이 이렇게나 조용한 이유를요. 어깨가 짓눌리고 있어서죠? 줄리어스가 선을 행할때 사용했던 악이 당신을 숨막히도록 짓누르고 있어서죠? "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것 또한 유안의 마음속에 있는 한가지의 짐이였다. 하지만 유안은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린은 그런 싱거운 유안의 반응에 재미없다는 듯이 검지손가락으로 그의 볼을 콕콕 찌르며 말했다.
" 뭐라도 말을 해줬으면 좋겠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무시당하는건 가슴이 아파요. "
" 무시하지 않았어. "
" 그래요? 그러면 어떻게 생각해요? 제 계획에 대해서요. "
자신의 의견에 대한 생각을 묻는 아이린의 얼굴은 마치 칭찬을 바라고 있는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유안은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며 온갖 생각이 머리속에 스쳐지나갔다. 어찌 사람이 이렇게 단시간에 격변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리고 여전히 변해버릴 수 있다는 것인가. 유안은 아무런 표정변화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말했다.
" 하고싶은대로 하면 돼. "
상정한 내의 대답이였는듯 천진난만했던 그녀의 표정은 보기좋을정도로 일그러졌다.
" 그럴게요. 내가 당신을 만들어낸다면 말이에요. 당신은 더 이상 그 마음의 짐을 짊어지지 않아도 되요. 알았죠? "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였다.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유안 풀문의 클론을 만들어내려고 하는지 그 이후 진짜 유안 풀문을 어떻게 할 셈인지 조차 말이다.
끼이이익.... 쿵.
아이린 풀문이 크로서스들과 함께 실험실에서 나갔다. 꽤나 최신식의 실험실인 방의 출입구는 거대한 철문으로 어느 은행에서나 볼 수 있는 돈을 보관하는 금고를 잠구는 잠금쇠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문이 닫김과 동시에 전등도 완전히 꺼졌고 바깥으로 통하는 창문 하나 없는 방은 어둠에 삼켜졌다. 보이는 것은 하나 없었지만 환기구를 통해 바람이 통하는 소리만은 들려왔다.
그런 어둠속에서 녀석이 속삭였다.
' 저 계집, 완전히 미쳐버렸군. 니 친구도 그때 내가 해줬던 조언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말이야. 그건 그렇고... "
어둠속에서 어둠이 보였다. 녀석은 실체화해 어둠이 되었고 그 속에서 그의 모습이 실루엣과도 같이 나타났다.
" 자멸할 셈이냐? "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는 유안의 뒤에서 그의 귓가에 속삭이며 말했다. 하지만 유안은 역시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생각에 빠져있는듯 두 눈을 감은채 명상을 하고 있는 것 같아보였다.
" 지금의 너라면, 너를 묶고 있는 모든 족쇄따위 손쉽게 부숴버릴 수 있을터, 맘만 먹는다면 널 모르모트로 쓰려고 하는 저 계집년을 죽이는 것은 숨쉬는 것보다 쉬운 일일터, 어째서 침묵하나. "
유안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녀석을 확실히 포착하고는 천천히 닫혀있던 입을 떼기 시작했다.
" 그녀가 한말은 틀리지 않았어. 난 적어도 그녀에게만큼은 사죄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너무나도 큰 불행을 만나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아닌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서 말이야. "
" 너의 아버지, 줄리어스 풀문의 의지였지. 하지만 생각해둬라. 그렇게 속죄하는 기분을 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도 아는 것 역시 중요하지. "
" 넌 모든걸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거냐? "
" 너도 알고 있지 않나. 이 세상이 이렇게 되어버린 이유를 말이야. "
유안은 질린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 또 그 소린가. 언제쯤 되면 그 소리를 그만둘꺼지? "
" 그만두지 않아. 넌 중요한 이 세계의 톱니바퀴가 될 수 있는 운명을 타고났다. 줄리어스 역시 그랬지. "
녀석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치의 앞도 보이지 않아 어딘가에 부딪힐것 같으면서도 다급해하지 않고 침착하게 유안의 앞으로 걸어갔다.
" 너가 스스로의 길을 걷는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졌나. 뭐하긴 아직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문제인게 아닌가,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죽을 위기에 처하다니 말이야. "
" 죽을 생각은 없다. "
" 그건 너의 생각이지. 여기에서 널 보란듯이 가지고 놀았던 그 년의 생각은 달라보였다만? "
" 너의 말대로, 난 너로 인해 상상을 초월할 힘을 얻었다. 두번 말하지만 죽을 생각은 없다. 죽을 상황에 놓인다면 너의 그 강력한 힘으로 도주하도록 하지. "
유안의 앞에 선 검은 그림자는 곧 헛웃음을 지었다. 재밌다는 듯이 그렇지 않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 넌 아직까지도 그때와 똑같다.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손에 넣고서도 또 다른 벽에 막혀 그때와 같은 꼬맹이와도 같은 모습으로 있지. "
" 친구를 잃어버렸을때를 말하는거냐. "
" 그것도 있지. 그것뿐만이 아니라 너가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당했을때 그로인해 너의 누나인 유피 풀문이 죽어 장례식장에 있을때, 세계정부로 보내지게 되었을때, 여동생인 유이 풀문이 죽었을때, 약혼자가 실종이 되었을때...."
" 그만. "
어둠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한가지는 똑바로 보였다. 그것은 바로 노골적으로 유안을 비웃고 즐거워하고 있는 검은 그림자의 모습이였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