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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 소환된 용사의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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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뢰의사신
작품등록일 :
2016.11.2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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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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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25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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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DUMMY

이자벨의 분투를 옆에서 짠한 마음으로 보고 있자니 더 이상은 못 버티겠는지 이자벨이 도망치듯 달려와 내 뒤로 숨었다.

사내아이 못지않게 씩씩하던 우리 이자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내 등 뒤에서 빠끔히 고개를 내민 이자벨이 기어들어가는 듯한 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이제 됐다... 돌아갈래.”

“...그래. 그러자꾸나.”

첫 술에 배부르길 바랄 순 없지. 오늘은 이제 전략상 퇴각이다.

이자벨이 공주라는 걸 안 뒤에도 거리낌 없이 껴안으려 드는 세라씨를 힘겹게 떼어내며 나와 이자벨은 연무장을 뒤로 했다.

연무장에서 조금 걸어가자 대기하고 있던 메이드 두 사람이 다가왔다. 이자벨의 요청(이라 쓰고 생떼라고 읽는다.)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자벨은 잡고 있던 내 손을 놓고 메이드들에게로 돌아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는 척하며 슬며시 메이드들의 목을 살펴봤다. 아무런 장식도 하지 않은 깨끗하고 하얀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여기까지 손을 뻗진 못한 것 같네.

남몰래 속으로 안도하고 있었더니 이자벨에게서 차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오늘만 몇 번째냐.

“어째서 드렉은 그렇게 여자의 몸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거냐?”

냉장고에 며칠이고 방치된 커피처럼 싸늘하게 식은 눈빛이 사정없이 가슴을 후벼 팠다.

아무런 꾸밈도 겉치레도 없는 말이란 말인가. 덕분에 메이드 두 사람이 옷깃을 여미며 내게서 몸을 돌리고 있지 않은가.

“어흠. 잘 들어 이자벨. 나는 그러지 않았단다.”

흐르는 식은땀을 감춘 채 겉으로는 평정을 가장하며 쓸데없이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더 이상 어른으로서의 위엄을 잃을 순 없다. 애초부터 없었던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기분 탓이다.

그럼에도 이자벨은 냉랭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까도 여선생이랑 뽀뽀 하려고 했으면서.”

“윽...”

베티와 비밀 이야기를 했을 때인가. 옆에서 보면 그런 식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아니라고 말하려고 해도 변명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숨기는 것이 있어서 비밀 이야기를 했습니다’라고 말 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말문이 막혀 있는 나를 보며 이자벨이 추가타를 날렸다.

“여자 용사의 가슴을 당당히 훔쳐봤으면서.”

“크윽...!”

날카로운 지적이 아물지 않은 상처에 날아와 박혔다. 들켰던 것인가.

분명히 세라씨의 가슴을 보긴 했다. 하지만 그건 별로 음흉한 속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성 가득한 그 흔들림에 본능적으로 눈이 향했을 뿐이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에 끌려 펀치를 날리는 고양이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고양이를 보는 것처럼 귀엽게 봐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훌륭한 변명이다. 차마 입으로 내뱉지는 못 하겠어.

“그, 그렇게 가슴이 좋으면...”

이자벨이 부들부들 떨며 중얼거렸다. 저게 무서워서가 아니라 분노에 의한 떨림이란 것 정도는 지금의 나라도 알 수 있었다.

“내 가슴이라도 보면 되지 않느냐아아앗!”

분노를 표출시키듯 가슴을 활짝 피며 외치는 이자벨. 뒤에 있던 메이드들은 그대로 굳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아-

자신 있게 뻗은 가슴은 깎아지른 절벽이라고 할까 아무것도 자라지 못한 평원이라고 해야 할지......

그걸 보고 있자니 살아오면서 저질렀던 수많은 잘못들이 떠올라서 절로 고개가 수그러졌다.

나는 천천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양 손을 짚었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서 머리를 바닥에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저는 바보에 변태입니다.”

쓸데없이 고집을 피워 왔던 게 바보 같아 졌다. 그저 이렇게 잘못을 인정하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웠던 걸까.

“이, 이게 무슨 뜻이냐! 이 바보 말미잘 멍청이잇!”

이자벨의 허리힘이 실린 멋진 스윙이 뒤통수를 가격했다. 나는 잠자코 그 분노의 일격을 맞으며 오체투지를 풀지 않았다.

씩씩거리던 이자벨이 화가 난 채로 메이드들을 데리고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발소리가 사라지고 뒤따르던 메이드들의 불쌍한 사람을 보는 것 같은 시선마저 사라졌을 때에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을 아이들은 항상 보고 있습니다. 아이들 앞에선 모범을 보입시다.

이자벨이 떠나고 나서 고요해진 복도를 되돌아서 연무장으로 돌아갔다.

이미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는지 연무장에는 다른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딱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서 단 둘이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고민했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해결된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저쪽에서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베티와 공부하는 데 사용하는 탁자까지 곧장 걸어갔다. 그 곳에는 눈을 감은 채 의자에 앉아있는 길이 있었다.

길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서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생각하고 있으니 마침 길이 눈을 떴다.

“무슨 일이지?”

감정이 담기지 않은 무미건조한 눈이 나를 향했다.

“그러는 너야말로 무슨 일이냐? 훈련은 다 끝났을 텐데.”

탐색을 하려는 건지 본론을 꺼내지 않는 길에게 나도 둘러가는 말을 되돌려줬다.

방금 전까지 훈련을 하고 있었던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흐트러짐이 없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것 같았다.

점점 길의 로봇설이 유력해지는데.

“끝나고 할 일이 남아 있어서 일부러 훈련에는 힘을 뺐다.”

내 시선을 눈치 챈 것인지 길이 묻지도 않은 말에 대답했다.

“할 일이란 게 뭔데?”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가볍게 이야기나 나눌 작정으로 물어본 것이었는데 길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이런 거다.”

순식간에 뻗은 길의 손에서 빛조차 가를 기세로 은빛 검이 휘둘러졌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칼끝은 나를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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