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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뢰의사신
작품등록일 :
2016.11.2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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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0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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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2-21

DUMMY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평소엔 주로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라뮤가 오늘은 어째선지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뭔가가 라뮤를 자극한 것일까?

라뮤의 재촉에 카티아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자 아가씨는 조금씩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하셨어요. 누구도 아가씨를 탓하지 않는데도 말이에요.”


원치 않게 주위의 누군가가 상처 입힌다는 건 분명 참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게 설령 일면식조차 없는 지나가던 사람이더라도.

그래서 저는 남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서 집에서 나가지 않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제 의지로요.


“그 날은 평소처럼 아가씨를 만나러 가던 중이었어요.”


카티아는 잠시 말을 멈추고 천천히 치마를 들어올렸다. 돌발적인 행동에 신사적인 나조차도 재빨리 고개를 돌리지 못한 채 응시하고 말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무릎 조금 위에서 멈춘 치마 아래에는 가늘게 남은 흉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갑자기 나무가 쓰러져서 다리를 조금 다쳤어요. 만약 알렉스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더 크게 다쳤겠죠.”


악재가 겹친 와중에 일어난 우연의 산물인가, 아니면 계획된 악마의 소행인가. 어느 쪽이든 에스메랄다가 받았을 충격이 작지 않았음은 나라도 알 수 있었다.


“아가씨는 멀리서 다가오시지도 못한 채 울면서 미안하다고만 하셨어요. 그리고 그 날 이후론 아가씨를 만날 수 없었어요.”


그 때의 일이 생각난 것일까. 말을 끝맺는 카티아의 목소리가 한껏 가라앉아 있었다.


“너는 그녀를 원망하고 있나?”


“아뇨. 전혀 그렇지 않아요.”


길의 질문에 카티아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분명히 진심이겠지.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고 소중히 여기고 있고 지금도 그 마음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엇갈려 버리고 말았다.

정리하자면 이리도 간단하지만 인생은 그리 간단하게 풀려가지 않아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두 사람은 괴로워하고 있다.

에스메랄다가 웃음을 잃고 모두에게서 멀어진 것도 그 때문일 테지.

기분 좋게 들을 이야기도 아니고 나도 가능하다면 어떻게든 해 주고 싶은 문제였지만 새빨간 타인에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치도 낮은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 흔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조차도 내게는 너무나 난이도가 높은 일이니까.


“...그러면 어째서 만나러 가지 않나요?”


누구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가운데 라뮤가 중얼거리듯 말을 뱉었다.

라뮤의 말에 놀란 듯 카티아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찾아가서 나는 괜찮다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왜 말하지 않는 거예요?”


감정이 북받친 듯 라뮤는 평소와 달리 강하게 말했다. 카티아를 몰아붙이는 것처럼 공격적인 말투였다.

지금까지 함께 하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 말이에요.”


예상치 못한 라뮤의 말에 카티아는 숨죽이듯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차분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얇은 종이로 물을 감싼 것처럼 금방이라도 찢어져 나갈 것 같이 위태로울 터였다.

라뮤는 그런 아슬아슬한 경계를 무참히 뛰어넘어 버렸다.


“아니요. 간단해요. 만나고 싶으니까 만나러 가면 되는 거예요.”


단호하게 말하는 라뮤의 모습이 꼭 떼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나는 카티아 같은 경험은 없지만 어떤 심정일지는 충분히 상상이 됐다.

분명 누구보다도 라뮤의 말처럼 하고 싶겠지. 하지만 그러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거고.

라뮤가 하는 말은 올곧았지만 굉장히 잔인한 말이기도 했다. 인간관계가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이루어져 있는 것이라면 나도 그렇게 외톨이로 지내진 않았겠지.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살아가면서 누군가랑 엮인다는 건 정말로 복잡한 일이다. 그렇기에 라뮤의 말은 무척이나 유치하고 가벼웠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라뮤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내 의견을 밝힐 수는 없더라도 비뚤어진 내 성격상 구석에 구시렁거리는 정도는 했을 터인데도.

분명 유치하고 가벼운 말이지만... 틀리진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렇지만 카티아는 라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우리와 만나고, 아니 우리와 만나기 훨씬 전 악마가 나타난 뒤부터 자신도 모르게 쭉 쌓여 왔던 감정이 얇은 종이를 찢어발기고 터져 나왔다.


“당신이...! 당신이 도대체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는 건가요!?”


카티아가 사납게 소리쳤다. 상처 입은 짐승처럼도 보였다. 오래된 상처에 다시금 피가 흘렀다.


“아무것도 몰라요! 그래도 친구라면 그대로 있어선 안 된다구요!”


라뮤도 물러서지 않고 소리 질렀다.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고 부딪히는 두 사람을 나는 말리지도 못한 채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라고 좋아서 이렇게 있는 게 아니라구요! 나도... 나도 아가씨와 만나고 싶어요!”


“그러면 만나러 가면 되잖아요!”


“그렇게 간단하게 말하지 말아요!”


두 사람이 말을 쏟아내며 서로를 노려봤다. 설득력 없는 감정만이 잔뜩 실린 말만이 쳇바퀴 돌 듯 반복되어질 뿐이었다.

누군가가 저 사이에서 말리지 않는다면 언제까지고 계속 될 것만 같았다.

그 사이에 성큼 발을 들이민 건 나도 길도 아니었다.


“이제 그만해요 라뮤.”


뒤에서 라뮤를 껴안으며 세라씨가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그 틈에 주방에서 몰래 듣고 있었던 주인 부부가 나와서 카티아를 말렸다.

감정이 격해져 눈물이 가득 맺힌 카티아를 감싸며 주인 부부는 우리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카운터 안쪽으로 사라졌다.

마찬가지로 감정이 격해진 라뮤를 끌어안은 세라씨는 아기를 달래듯 섬세한 손길로 라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정시키고 있었다.

어째서 갑자기 이야기가 이렇게 엇나가 버린 걸까?


“세라 누나... 두 사람은 친구잖아요? 어째서 계속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 거죠?”


라뮤가 매달리듯 세라씨에게 안겨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라뮤. 친구란 건 결국 그 정도인 거예요.”


라뮤의 물음에 대답하는 세라씨의 얼굴은 무서울 정도로 표정이 없었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늘 웃음이 머물던 세라씨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표정이었으니까.

잠시 후 세라씨의 얼굴을 평소대로 부드러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여러 가지로 지쳤으니까 분명 내가 잘 못 본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렇겠지.


“더 이상 회의를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군. 오늘은 이만 쉬도록 하지.”


길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무마시키려는 듯이 잘라 말하고는 먼저 몸을 일으켜 2층으로 향했다.

나는 그런 길을 따라 가지도, 이 자리를 정리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오늘 밤은 쉽사리 잠들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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