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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 소환된 용사의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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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뢰의사신
작품등록일 :
2016.11.2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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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8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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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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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1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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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2-32

DUMMY

잠시 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길이 한 말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겠지.

그 알 수 없는 말을 한 본인은 표정의 변화 없이 대답을 기다리듯 서 있을 뿐이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주인아저씨가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손님. 죄송하지만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이제 저희 여관은...”


“부서져 버렸군.”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는 듯이 무너져 내린 여관의 잔해를 한 번 쓱 훑어보고는 다시 주인아저씨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느 정도면 준비가 되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심하게 물어보는 길의 모습에 주인아저씨의 주먹 쥔 손이 떨렸다.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인가.

선대에서부터 물려받은, 평생을 살아왔고 살아가야 할 터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할 말이 아니었다.

만약 저 말을 한 게 길이 아니라 나였다면 한 순간의 유여도 없이 뺨을 얻어맞았을 것이다.

무례한 정도를 지나서 싸움을 걸고 있는 걸로 밖엔 보이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길의 태도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조롱하는 것도, 바보 취급하는 것도 아닌 평소대로의 길이었다. 그렇기에 주인아저씨도 곧장 화를 내지 못한 거겠지.

지금이라도 말려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그런 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사라져 버렸다.

다름 아닌 길이니까 분명 무슨 생각이 있을 거다. 저 당당한 모습으로 ‘사실은 아무 생각도 없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한다면 나는 앞으로 어떤 얼굴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 모르게 될 것 같다고.

지금은 길을 믿어보자.


“야, 너...!”


나에가 참지 못하겠는지 나서려는 걸 손을 들어서 막았다. 지금 나에가 나서서 길과 말싸움이라도 벌인다면 분위기가 더욱 안 좋아질 것이다.

그런 의미를 담아 나름 진지한 눈빛으로 나에를 쳐다보니 벌레 씹은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래도 다행히 의미는 통했는지 더 이상 끼어들려 하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그 대신 제지하려고 뻗은 내 팔을 인정사정없이 꼬집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내가 소리를 지를 뻔 했다. 기껏 방해하지 못하게 하려고 한 일인데 그래선 본말전도지 암.


“그만해 주십시오 손님. 이젠 저희에게 남은 게... 없습니다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잇던 주인아저씨의 눈에서 끝내 눈물이 떨어졌다. 여지껏 참고 있었던 것이 길의 말 때문에 울분과 함께 흐르는 듯 했다.

가족의 앞이라 함부로 보이지 못했던 감정이 한계에 달해 느슨해져 버린 걸까.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도, 또 보고 싶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보고 있는 사람마저 눈시울이 붉어질 것 같으니까.


“웃기는 소리 하지마라.”


하지만 길은 가차 없이 주인아저씨에게 쏘아붙였다. 어째선지 조금 화가 난 것처럼도 보였다.

예상치 못한 말에 주인아저씨가 눈물을 흘리던 것도 잊은 채 길을 멍하니 쳐다봤다.

되레 화를 내는 길의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런 건가. 과연, 이것이 충격요법이구나.

울고 있는 아이의 뺨을 때려서 울음을 그치게 하는 것 같은 황당무계한 방법이지만 의외로 먹히는 데선 먹히는 모양이다.

써먹을 데는 없을 테니 참고만 해두도록 하자. 실제로 했다간 아이의 부모형제 온갖 친인척들에게 둘러 싸여 몇 백배로 얻어터질 수도 있으니 주의하도록.


“무,무,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물어본 주인아저씨를 노려보며 길이 말했다.


“주인장. 당신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건 고작 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건물 따위뿐인가?”


도발하듯 강한어조로 말하는 길에게 주인아저씨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길도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닌 듯 그대로 말을 이었다.


“당신과 당신이 지켜야할 사람과 지켜야할 지식, 전통, 추억이 모두 여기 있다. 그런데도 모든 걸 다 잃었다느니 나약한 소리나 하고 있을 건가?”


길의 손짓에 따라 뒤를 돌아본 주인아저씨는 자신을 보고 있는 가족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잠시 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다시 돌아본 주인아저씨의 얼굴엔 더 이상 눈물이 보이지 않았다. 뭘 느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엉망진창인 길의 말로 마음을 다 잡은 모양이었다.


“지금 당장은 준비 못하겠지만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식사만이라도 준비해 보겠습니다.”


“아아.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부탁하지.”


길은 주인아저씨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돌렸다.


“어딜 가시는지요?”


“지금부터 3년간 잃어버렸던 걸 되찾으러 간다.”


길은 그대로 걸어와 이젠 내 차례라는 듯이 내 어깨를 슬쩍 밀었다.

잘못 짜여진 연극처럼 누군가의 손에 놀아난 것 같은 기분에 빠져 있던 터라 내 할 일을 순간 까먹고 있었다.

솔직히 믿는다고는 말했지만 이런 게 튀어 나올 줄은 몰랐다고. 사람을 믿는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법이다.

나는 괜히 겸연쩍어져서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지금껏 뒤에 서 있던 카티아에게로 다가갔다.


“카티아씨. 저랑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에,엣? 뭔가요?”


순간 카티아의 표정에 혐오감이 섞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데자뷰가 느껴지는구나.

떠올려보면 그것은 중학교 3학년 즈음. 선생님의 호출로 같은 반 여자아이에게 말을 걸었을 때 저런 표정을 봤던 것 같다.

얼마 후 그 애에게 듣기로는 그 때 내가 데이트 신청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고 했던가.

아니, 뭐 그런 일도 있었다는 거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요즘엔 가끔 베개를 눈물로 적시는 정도로 밖엔 신경 쓰지 않으니까.

아무튼 그 때처럼 커뮤니케이션에 잠시 혼동이 왔을 뿐인 것이다.

다시 한 번 말을 골라서 입을 열었다.


“남작의 저택으로 함께 가주셨으면 합니다.”


내 말에 카티아의 표정이 좀 전과는 다른 의미로 굳어졌다. 굳이 다 말하지 않더라도 내 말이 뜻하는 바가 뭔지 알겠지.

지금껏 일부러 피하지는 않았지만 먼저 다가서려 하지 않았던 에스메랄다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껄끄럽고 어색하다는 수준이 아니겠지.

그럼에도 나는 카티아를 에스메랄다와 만나게 하려고 한다. 어제 있었던 라뮤의 투정 같은 말을 신경 써서가 아니다.

나나 다른 녀석들로는 에스메랄다의 입을 열기는커녕 감정을 드러내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했던 카티아라면 다른 상황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

에스메랄다가 악마일 가능성이 남아 있는 한 할 수 있는 모든 패를 준비해 두고 싶었다.

물론 내 말에 그대로 승낙할 리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해야만 했다.

만약 길이 나서지 않고 그대로 초상집 같은 분위기였더라도 했었을 말이다. 다행히 길 덕분에 말을 꺼내기 더 쉬워졌을 뿐이지.

이젠 어떻게 카티아와 주인 부부를 설득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일 뿐이다.


“...네. 가겠어요.”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카티아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가지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던 게 바보 같아질 정도로 금방이었다.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던 주인부부에게 카티아는 결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엄마, 아빠. 나 다녀올게요.”


“...그래. 다녀오렴.”


맥이 빠질 정도로 간단하게 고민하던 게 해결 됐다. 아직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쉽게 넘어갈 줄은 몰랐는데. 이것도 길의 덕분인가.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에 휩싸여 있는 동안 우리를 향해 낮은 땅울림이 다가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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