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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 소환된 용사의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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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뢰의사신
작품등록일 :
2016.11.24 22:57
최근연재일 :
2020.01.05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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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1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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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2-37

DUMMY

“이제 혼자서 다 짊어질 필요 없어요.”


어떤 더러움도 씻겨 내려갈 것 같은 순백의 미소가 삭막한 방 안에 작렬했다. 저택에 서린 악마의 기운마저 정화될 것 같은 신성함에 나도 모르게 내려 놓아선 안 될 짐마저 내려 놓게 될 것 같았다.

아무리 집사장이라도 그걸 정면으로 받고선 무사할 수 없었던지 무섭게 굳어있던 표정을 풀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해낼 수가 없구먼. 다 알고 있었던 것이오?”


기운이 빠진 듯 의자에 깊숙히 몸을 기댄 채 집사장이 물었다. 확실히 새라씨의 말은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설마 정말로 모두 파악하고 있었던 건가?

하지만 세라씨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게 너무 힘들어 보였는 걸요. 혼자서.”


맥이 빠질 정도로 예상 외의 대답이었다. 뭐 세라씨 답다면 세라씨 다운 거겠지만.


“허허허...”


집사장도 어이가 없는지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지만 조금은 홀가분 해 보였다.


“그쪽 아가씨의 말대로 이 것이고 저 것이고 너무 끌어안았던 걸지도 모르겠구려. 당신들이 이 곳에 온 것도 결국 운명이겠지.”


“말 할 생각이 든 건가.”


“그렇소. 어차피 이대로는 상황이 나빠지기만 할 뿐일 테지.”


지금껏 쓰고 있던 여유만만하던 가면이 벗겨지자 나타난 것은 세월의 무게조차 버티지 못하는 지친 노인의 모습이었다.

더욱 짙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주름을 손으로 문지르며 집사장은 입을 열었다.


“무엇부터 들려 드리면 되겠소?”


“3년 전 악마가 나타났을 때의 이야기부터 부탁하지.”


미리 준비했던 것처럼 길은 곧장 집사장에게 말했다.


“3년 전이라... 그 날은 잊혀지지가 않는구려. 아가씨의 생일이었으니까.”


집사장은 그리운 듯, 그리고 두려운 듯 눈을 좁혔다.


“그 날은 아침부터 날씨가 좋았소. 하늘도 에스메랄다 아가씨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듯 했지. 도시 사람들로부터 선물 받은 플루아의 갖가지 꽃들에 둘러싸인 아가씨는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지.”


집사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날의 광경을 상상해 봤다. 하지만 에스메랄다의 무표정이나 가끔 짓는 슬픈 표정 외에는 본 적이 없어서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 놈이 나타난 건 아가씨의 생일 파티가 한창이던 때였지.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며 나타난 악마는 자기를 디 그리스 소개하며 다짜고짜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했소.”


“어떤 선택이지?”


“플루아의 모든 생명과 아가씨의 행복.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었지요.”


“생명과... 행복?”


나에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이리라.

우리들의 표정을 본 집사장이 이해 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게 당연하지요. 우리들도 그 땐 그랬다오. 그래서 처음엔 디 그리스와 맞서 싸우려고 했었다오. 악마라는 존재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했었으니 마땅히 물리칠 수 있을 줄 알았던 게지.”


자조하듯 말하는 집사장의 표정이 그날의 일을 떠올리는 듯 일그러졌다. 악마는 고대에 활동했었다고 하니까 요즘 사람들이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지금 파시온드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그보다 하위의 존재인 마족들이니까.

그래서 당연히 악마는 마족보다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하다. 물론 상급의 마족들 중엔 이전의 악마보다 강한 자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일반적으론 그렇다.

지금의 마족들에게조차 밀리고 있는 인간들이 악마에게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결과는 굳이 집사장의 말을 듣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압도적이었습니다. 손도 쓸 수가 없었지요. 만약 그 때 아가씨가 나서지 않으셨다면 그 날 플루아는 사라졌을 지도 모릅니다.”


“남작 영애가?”


“네. 플루아의 주민들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셨지요. 그 땐 그게 최선이라 생각하셨던 게지요. 아가씨의 말에 아무런 짓도 하지 않고 순순히 물러나는 디 그리스를 보며 다른 이들도 그 상황에 안도했습니다. 그 땐 그게 얼마나 무서운 선택이었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으니까 말입니다.”


생명과 행복. 언뜻 보기엔 망설이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국엔 생명을 택하고 행복을 포기할 것이다.

누군가의 목숨이란 뚜렷한 가치와 어떤 것을 얻고 잃게 될지 조차 모르는 불확실하고 추상적인 행복 중에서 무엇을 우선하겠는가? 더군다나 그것이 도시 하나 분의 생명이라면.

하지만 그 불확실성이 얼마나 무서운 함정인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때론 목숨 보다도 소중한 것을 뺏길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기에.


“처음으로 디 그리스가 가져간 아가씨의 행복은 플루아의 꽃들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이 곳의 꽃들을 사랑하셨던 아가씨였기에 그건 당연한 일이었지요. 아가씨는 슬퍼하셨지만 곁에 있는 소중한 가족들 덕분에 기운을 차리셨습니다.”


플루아의 꽃이 한날한시에 진 것은 그 때문이었던가. 꽤나 황당무계한 이야기였지만 악마의 힘이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아가씨가 다시 웃을 수 있게 되자 디 그리스는 또 다시 아가씨의 소중한 것을 뺏아갔습니다. 바로 주인님과 주인마님이었죠. 이 때부터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지만 어리석고 힘 없는 늙은이인 저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저 돌아가신 주인님을 대신해서 플루아를 보살피는 일 뿐이었지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집사장의 얼굴을 보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 얼굴엔 회한과 자책감만이 가득했다.


“부모님을 잃은 아가씨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플루아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을 겁니다. 꽃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주민들도 아가씨에겐 소중한 존재들이었으니까요. 그랬더니 다음 목표는 기다린 것처럼 아가씨가 다가간 주민들로 바껴 있었습니다. 마치 아가씨가 일으킨 것처람 아가씨 주위에서 명백히 이상한 사고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지요. 저주받은 아가씨란 별명도 이 때부터 생겼던 겁니다.”


하나하나 차례차례 에스메랄다의 소중한 것을 빼았는다. 행복을 가져간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던 건가.

조금이라도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을 빼앗아서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이라면 나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가씨를 지탱해주던 친구가 있었지만 디 그리스 때문에 그 친구마저 잃을 뻔 했었다는군요. 그 뒤로 아가씨는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로 하셨습니다. 그런 아가씨가 너무 가여워서 며칠만이라도 아가씨가 마을을 돌아다닐 수 있게 손을 썼었습니다.”


“악마의 날... 말이군요.”


“허허... 그렇습니다. 늙은이의 이기심 때문에 사람들에게 겁을 준 것은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소이다. 언젠가는 모두에게 사과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만은...”


“그건... 할아버지 탓이 아니잖아?!”


듣고있던 나에가 감정이 북받친 듯 외쳤지만 집사장은 가만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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