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에 소환된 용사의 옆을 지나가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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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뢰의사신
작품등록일 :
2016.11.2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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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7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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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21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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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DUMMY

“우리가 왔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애스메랄다를 찾는 내 시선을 눈치 챈 길이 다가와 말했다. 역시 늦어버린 건가.


“미아내요... 흑... 제가 이썼는데도 암 것도 모태써여...우우...”


결국 라뮤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라뮤에겐 별다른 전투의 흔적이 없는 걸로 봐서 디 그리스는 처음부터 에스메랄다만을 노렸던 모양이었다.

카티아를 지키던 라뮤가 무사한 반면 에스메랄다의 호위인 알렉스만 부상을 입은 걸로 봐선 틀림 없겠지.

전투의, 아니 전투라고도 할 수 없는 한 순간의 일방적인 공격이었을 것이다. 라뮤가 손을 쓰기도 전에 끝이 날 정도로 순식간에 알렉스를 공격하고 에스메랄다를 데리고 간 거겠지.

아무리 기습이었다 해도 용사인 라뮤와 길의 목에 칼을 겨눌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인 알렉스를 제치고 에스메랄다를 납치해 가는 게 쉬울 리가 없다. 더군다나 떨어져 있던 우리들이 있던 방을 폭파시키면서 말이다.

아무래도 디 그리스의 힘은 내 예상을 훨씬 웃도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놈은 어디로 갔지?”


“저, 저기... 흑 예요.”


길의.물음에 라뮤는 훌쩍거리며 한 곳을 가리켰다.

저택을 둘러 싼 긴 벽의 한 곳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일렁이고 있었다.

어떻게 봐도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 노골적이라 오히려 시야에 들어오지 읺을 것 같았다. 피하고 싶어지는 기분이랄까.


“기다리고 있는 건가.”


“그렇겠지. 백퍼센트 함정이겠지만.”


“그렇다면 가야겠군.”


“그렇겠네.”


길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불길하게 뒤틀린 공간을 향해 걸어갔다. 왠만하면 피하고 싶지만 인질을 잡힌 건 우리쪽인지라 그럴 수도 없겠구나.

나는 아직까지 훌쩍거리고 있는 라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걱정 마. 죽일 생각이었다면 데려가지도 않았을 거야. 이 자리에서 죽였겠지. 그러니까 아가씨는 살아있을 거야.”


무슨 목적이 있으니 에스메랄다를 산 채로 데려간 것일 거다. 물론 목적이 달성 되었을 때도 살려둘 진 알 수 없다. 어쩌면 이미 살해당했을 지도 모르지.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지만 굳이 말로 하진 않았다.


“...정말요?”


“물론이지. 그러니까 그만 뚝 해.”


“네... 흥~”


내 말에 조금 마음이 풀린 건지 라뮤는 손수건에 귀엽게 코를 풀었다. 그런데 저거 내 손수건 아니던가?

평생 보물로 삼아 모시다가 죽는 날 무덤에 함께 묻어달라고 해야지.


“아가씨가 살아계신다면 더더욱 꾸물거리고 있을 순 없습니다.”


지팡이 삼던 검에 힘을 실어 똑바로 서며 알렉스가 움직였다. 저대로 디 그리스가 있는 곳으로 향할 셈인듯 했다.


“그 몸으로 전투는 무리다. 얌전히 치료나 받고 있도록.”


“아니오. 저는 가야만 합니다. 아가씨의 호위이자 친구로서.”


길의 제지에도 알렉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봐선 길의 말에 따르는 게 전적으로 옳았다. 서있는 게 고작인 지금 상태로는 디 그리스와 싸우기는커녕 발목만 잡게 될 것이다.

나에가 오기를 기다려서 치료를 받고 우리의 뒤를 따르는 편이 분명 나을 것이다.


“알렉스도 함께 가야 해. 부탁한다.”


하지만 나는 길의 말에 동조하지 않았다. 앞으로 있을 결전에 알렉스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랬기에 무리를 해서라도 데려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 말에 길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봤다.


“알렉스는 물론이고 너도 데려가지 않을 거다. 이건 장난이 아니야.”


“나도 알고 있어. 그래도 가야만 해. 나도 알렉스도.”


막무가내처럼 보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모든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까지는 내 생각을 밝힐 순 없으니까.

제대로 된 설명을 힐 수가 없어서 나는 그저 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 밖엔 할 수가 없었다.

길은 내 눈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마주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네놈이니까 또 얼토당토 않은 일을 꾸미고 있는 거겠지. 말해두는 데 널 지켜줄 여력을 없다. 죽더라도 그건 네 탓이다.”


“물론.”


다행히 길은 깊이 파고들지 않고 허락해주었다. 뭔가 이상한 데서 신뢰받고 있는 것 같지만 이 경우엔 잘 된 거겠지.


“카티아. 너는 나에가 있는 곳으로 가라. 지금부터 우리는 디 그리스의 영역으로 돌입한다.”


“네, 네... 저기...!”


“뭐지?”


“아가씨를... 구해주세요.”


“그럴 생각이다.”


길의 대답에 카티아는 깊게 허리를 숙이고는 길이 가리킨 방향으로 달려 갔다. 길은 그런 카티아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우리쪽을 돌아봤다.


“가자.”


짧은 길의 말에 우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필요도, 여유도 없었다. 디 그리스가 꾸미고 있는 게 무엇이든 끝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기... 감사합니다. 드렉님.”


알렉스가 다가와 내게 작게 말했다. 길에게 대신 말해준 일에 대해서인 듯했다.


“아뇨. 이제부턴 알렉스 씨의 힘이 필요해 질 거라 생각한 것 뿐입니다.”


“...네. 반드시 아가씨를... 플루아를 구할 겁니다.”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알렉스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알렉스에게 마주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으니까.

우리는 먼저 일그러진 공간으로 들어서는 길의 뒤를 이어 적진으로 향했다.

현기증과 같은 묘한 감각이 스치듯 사라지고 나타난 공간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방금 전까지 있던 곳과 완전히 똑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곳이 다른 공간이라고 인식할 수 있었던 건 누군가의 실수로 색이 빠져 나간 것처럼 잿빛으로 도색되어 있었던 것과 우리를 기다리듯 정원을 가득 채운 존재들 때문이었다.

거울처럼 우리가 있던 세계를 그대로 비춘 것만 같은 이 공간은 디 그리스의 집착의 발로인 것인가. 이런 곳에서 계속 몸을 숨기고 있었으니 누구도 악마의 모습을 보지 못할 만도 하다.


“입구에서부터 마중인가. 이 곳의 주인은 성격이 급한 모양이군.”


빛으로 된 검과 방패를 소환하며 길은 개미떼처럼 우리를 둘러싼 괴물들을 노려봤다. 어제 플루아를 덮쳤던 것과 같은 괴물들이었다.


“이렇게 반겨주시다니 기쁘네요.”


세라씨는 환하게 웃으며 빛의 활을 꺼냈다. 하지만 감긴 듯 휘어진 눈에선 서늘한 기운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봐,봐주진 않을 거에요...!”


다가온 전투에 긴장한 모습으로 라뮤는 빛의 창을 적들에게 겨누었다. 연약해 보이는 라뮤와는 달리 창은 금방이라도 괴물들을 꿰뚫을 것처럼 사납게 빛을 발했다.


“아가씨는... 어디냐!”


알렉스가 노성을 지르며 검을 들었다. 상처가 무색할 정도로 패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나는 제일 뒤에서 전체를 둘러봤다. 어디든 빽빽히 들어선 괴물들 때문에 뚫고 나갈 곳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디 그리스와 에스메랄다는 아마 저택 안에 있겠지. 결국 무식하게 해치우며 나아갈 수밖엔 없는가.

다른 수를 생각할 틈도 주지 않은 채 괴물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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