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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아를 주운지 나흘 째. 우리는 어느덧 세인테르비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아무리 준비를 많이 했다고 해도 한동안 이어진 노숙으로 모두들 알게 모르게 지쳐있었기에 지붕이 있는 곳에 도착한 것은 솔직히 기뻤다.
날 때부터 인도어파로 태어나 평생 침대와 한 몸으로 살아온 나에게 있어서 이렇게 장기간 바깥에서 생활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어서 새로운 도시 새로운 침대에 몸을 뉘어야겠다. 그리고 라뮤를 안고 뒹굴 거리며 한 달 동안은 침대에서 나오지 않으리.
“오옷! 다 왔구나!”
그리고 여기에 들뜬 어린이가 한 명.
벨리아는 마차 안을 제 방처럼 누비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지금은 창가에 앉은 내 무릎위에 무릎을 세운 채로 앉아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아무리 어린 애라 가볍다고 하지만 역시나 무릎으로 허벅지를 누르니 평범하게 아픕니다. 그만 좀 내려와 주지 않으려나. 그나마 피부가 닿지 않으면 찌릿찌릿한 충격이 오지 않기에 망정이지.
그건 그렇고 여기까지 오는 나흘간 결국 벨리아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거의 없었다. 딱히 벨 리아가 우리에게 숨기고 있다기 보다는 그냥 자기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저 어째서 그 곳에 있었냐는 물음에 모르는 아저씨가 맛있는 것을 준다기에 따라갔더니 그 곳에 도착해 있었다고 한다.
정말로 알기 쉬운 납치 방법이었다. 아무리 이세계라고 해도 그런 수에 넘어가는 아이가 아직도 있다니 믿을 수 없을 정도다. 그 장본인이 눈앞에 있으니 더 놀라고 팔짝 뛸 일이지만.
-항상 주머니에 사탕을 가지고 다니는 녀석이 잘도 말하는군.-
누가 들으면 오해할 만한 소리를 하는 구만 이 녀석은. 어디까지나 내가 아이들과 마주치는 것과 그 때마다 내 주머니에 사탕이 들어 있었던 것은 우연이다. 저런 유괴범들과 같이 취급하는 건 참을 수가 없구만.
-......-
뭔가 말하라고 인마.
아무튼 그렇게 쫄래쫄래 모르는 사람을 따라간 벨리아는 우리가 만났던 시장의 열기에 흥분한 나머지 비장의 수단을 써서 유괴범들로부터 벗어나서 헤매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나를 만난 거겠지.
참고로 비장의 수단에 대해서 물어 봤지만.
“안나가 화났을 때 도망치기 위해 만든 기술인 것이다!”
라며 자랑스러워하는 얼굴만 봤을 뿐 자세한 것은 듣지 못했다. 그건 그렇고 안나는 도대체 누구야.
뭐, 그래도 다행스럽게 유괴범들로부터 벗어났으니 된 거겠지. 유괴범들이 허술해서 다행이었구나.
어느덧 가까워진 세인테르비의 성벽은 신성도시의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높고 굳건했다. 종교라는 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게 아닌 건가. 적어도 지구에서는 그런 이미지였는데.
여긴 오히려 요새 같은 모습이었다.
“세인테르비가 세워진 초기에는 이교도들의 습격이 잦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후에 성벽을 새로 세웠다고 하더군요.”
마차를 몰던 마빈이 타이밍 좋게 내가 궁금했던 것을 알려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건만 아무래도 생각이 얼굴에 드러난 모양이었다.
좀 더 포커페이스를 단련해 두는 편이 좋으려나.
“그건 그렇고 왠지 소란스럽네요.”
마빈의 말대로 세인테르비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 사람이 몰려 있었다. 대도시의 입구에는 항상 여행자들이나 상인들로 줄을 이룰 테지만 세인테르비는 그런 정돈된 모습이 아니었다.
분명 무언가 문제가 생긴 모습이었다. 어째서 가는 곳마다 순탄히 지나가는 일이 없는 걸까.
“잠깐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마빈이 고삐를 옆에 앉아 있던 길에게 맡기고는 주위의 상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몇 마디를 나누더니 돌아왔다.
“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세인테르비의 모든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고 합니다.”
돌아온 마빈은 난감한 표정으로 상황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건가?”
“네. 경비들이 출입을 막고는 있지만 이유까지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째설까요?”
과연, 난감한 상황임에 틀림없구나. 맘대로 출입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유마저 알려주지 않는다면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도 여전히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것이겠지. 밖으로 새어나가서는 안 될 내부의 사정이라는 녀석일 것이다.
사실 듬직한 지붕과 포근한 침대를 앞에 두고 이러고 싶지는 않지만 예로부터 현인들도 말하지 않았던가. 군자는 위험한 곳에 가지 않는다라는 말도 있고 말이지.
그러니 여기는 패스하고 다음 마을로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으응...? 여기 못 들어가는 것이냐?”
벨리아가 세인테르비로부터 되돌아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애는 세인테르비에 데려다 줘야 하는구나.
뭐, 다소 늦어지긴 하겠지만 며칠 지나면 이 소동도 가라앉을지도 모르니 지금은 물러나는 편이 좋겠지.
하지만 인생만사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법. 내 생각을 모두에게 전하기도 전에 길이 마차를 몰아 세인테르비의 입구로 향하기 시작했다.
출발하기 전 벨리아를 봤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말릴 사이도 없이 역류해 오는 사람들 사이로 우리가 탄 마차는 나아가서 순식간에 성문에 도달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성문을 지키는 경비들에게 막혔다.
“멈추십시오. 현재 세인테르비로의 출입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앞을 막아선 자들은 경비라기에는 장비가 화려했다. 빈틈없이 몸을 감싼 은빛의 풀플레이트 아머에 딱 보기에도 양산형으로 만들어진 게 아닌 잘 다듬어진 검이 경비보다는 기사를 연상케 했다.
아니, 실제로 풍기는 분위기를 봐선 기사들일 확률이 높아 보였다. 성문을 지키는 사람이 기사급이라니 원래 이렇게 경계가 삼엄한 건지 아니면 기사들이 여기까지 나와 있어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환인 건지.
점점 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어찌됐든 이대로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문전박대 당하고 끝일 텐데 길 녀석은 무슨 생각이었던 거지?
그런 의문을 입으로 담기도 전에 길이 마차에서 내려 우리 앞을 막아선 기사에게로 향했다.
“우리는 세인테르비에 용무가 있다만, 들어가게 해줄 수 없나?”
“방금 말했다시피 현재 어느 누구도 세인테르비로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돌아가 주십시오.”
대뜸 반말을 하는 길에게도 기사는 인상을 찌푸리는 일 없이 기계처럼 사무적으로 말했다.
“그런가. 그렇다면 당신들의 상관에게 말을 전해줄 수 있는가?”
“......말씀하시지요.”
생각을 알 수 없는 길의 얼굴 때문이었을까. 기사는 길을 쫓아내지 않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런 기사에게 길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납치되었던 성녀님을 모시고 왔다고 전해주게.”
...호오. 길 녀석 그렇게 나온 건가. 신성도시에 있어서 성녀라는 이름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해서야 상황이 악화되기만 할 뿐일...
순간 주위를 둘러보다가 어느새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긴 벨리아와 눈이 마주쳤다. 어어어....
““에에에에에!?””
우연히 같은 타이밍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건지 에스메랄다와 나에, 그리고 라뮤가 소리 질렀다. 뭐야 이거... 나 그런 거 들은 적 없다고......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미소를 잊지 않는 세라씨가 무섭기까지 할 정도였다. 저것이 어른의 여유인가...
그런 상황에서 나와 눈이 마주친 벨리아는 장난스럽게 씨익 웃으며 손으로 브이자를 그렸다.
- 작가의말
제 글이 라노벨 같다고 하는 댓글이 보이네요.
네 맞습니다. 원래 이거 라노벨 공모전에 내려고 쓰기 시작했던 거에요.
뭐 광탈당해서 지금은 이렇게 계속 연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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