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에 소환된 용사의 옆을 지나가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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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뢰의사신
작품등록일 :
2016.11.2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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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7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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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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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

DUMMY

그리고 그 앞에는 어제와 같은 모습의 아벨이 서 있었다. 단지 어느정도 거리가 있는 지금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적어도 손님을 반기고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미약하게나마 적개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다행인 점은 그 심상치 않은 기운을 우리에게 향하고 있지 않은 것일까.

아벨의 맞은편에 선 누군가는 이 좋은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검은 로브를 푹 눌러 쓰고 있었다. 어디를 어떻게 봐도 수상쩍기 그지없었다.

키는 제법 컸지만 통이 큰 로브로 몸을 가려 성별조차 알 수 없었다. 물론 그러라고 로브를 입고 있는 거겠지.

그 인물은 다가오는 우리를 알아챈 것인지 아벨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멀어져가는 뒷모습에서 어째선지 알 순 없었지만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혹시 내가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인가?

하지만 그 의문은 이어지는 테스카의 낮은 목소리에 해소되었다.


-마족이군.-


마···족?

테스카의 말을 듣고 다시 그 뒷모습을 쫓아보았지만 이미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가버린 뒤라 찾을 수가 없었다.

확실히 테스카나 디 그리스에게서 느꼈던 기운과 비슷했다. 하지만 뭔가가 달랐다. 이물질이 섞여서 탁해졌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바로 그 느낌의 정체를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악마의 찌꺼기에서 태어난 녀석들이니 틀린 말은 아니지.-


테스카는 심드렁하게 말을 내뱉고는 이내 흥미를 잃은 듯 다시 조용해졌다.

어째서 이런 곳에 마족이 나타난 거지?

그런 의문도 잠시, 곧 우리를 발견한 아벨이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거 드렉씨 아닙니까. 오늘도 또 와주셨군요.”


아까까지의 무거운 분위기가 다 거짓말이었다는 듯이 얼굴에 무해한 웃음을 띄며 아벨이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아직 신경 쓰이는 점이 많았지만 일단 드러내지 않고 인사를 했다. 조금 전 분위기를 봐선 그 마족과 아벨간의 관계가 결코 우호적이진 않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믿고 있을 수 밖에.


“어라. 옆에 계신 두 분은···?”


아벨은 내 뒤에 숨듯이 선 라뮤와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는 벨리아를 의아하게 처다보고 있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사실 다시 아벨을 만나러 오려고 한 것도 그냥 순간적으로 떠오른 것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도 없었다. 이렇게 여럿이서 오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때 신기한 것을 보는 눈빛으로 아벨을 보고 있던 벨리아가 입을 열었다.


“아저씨는 인간이 아니구나!”


너무나도 당차게 내뱉은 말에 순간 머리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신기하게도 아벨은 당황한 기색 없이 대답했다.


“네. 저는 악마입니다.”


아무런 숨김도 꾸밈도 없이 당당하게 말하는 아벨의 태도에 나는 또 한 번 당황하고 말았다. 그렇게 쉽게 말해도 되는 거였나?

어쩌면 나와 함께 왔기에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인가? 그렇다면 꽤나 잘못된 판단인 것 같은데.

아직 이 둘에게는 아벨의 정체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았고 들키지 않는다면 그대로 묻어둘 생각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남에게 떠벌려도 좋을만한 사실은 아니었으니까.

어제 헤어지기 전 아벨이 내게 했던 말을 떠올려 봐도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더군다나 오늘 함께 온 둘은 그 중에서도 이 사실을 알아선 안될 최우선 인물들이었다. 악마의 대척점에 선 성녀와 용사이니까.

물론 어제 본대로 아벨에게는 적의가 없었다. 그리고 아마 우리와 싸울 전투력도 지금은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무방비 상태인 것이다.

혹시라도 전투가 벌어진다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사라지겠지.

그리고 그런 불안을 부채질 하듯 내 옷자락을 잡은 라뮤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에는 이렇게 한없이 가녀리고 소녀스러운 라뮤지만 전투에 들어서면 용사의 이름에 걸맞게 망설임 없이 적을 베어낸다.

지금의 아벨이라면 한 호흡 안에 반토막이 날 것이 틀림없었다.

나 자신도 떨리는 상황이었지만 일단 라뮤를 진정시키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불안하게 떨리는 라뮤의 눈을 바라보며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자 다행히 완전하지는 않지만 라뮤의 손에서 조금 힘이 빠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일단 라뮤는 괜찮다고 봐도 되겠지.

다음은 저 녀석인데···

하지만 그런 내 걱정과는 다르게 벨리아는 일말의 긴장감도 없이 천진난만하게 아벨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구나!”


단지 멋대로 납득한 듯이 소리 지르고는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아벨은 아벨대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이 얼빠진 분위기를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은 것일까.

괜히 혼자 안절부절 못하며 힘이 들어가 있었던 거라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어깨가 축 늘어졌다. 뭐였던 걸까 정말.


“나는 벨리아! 성녀인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악마 커밍아웃을 한 아벨을 따라 벨리아도 스스럼없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다. 말릴 틈도 없었고 말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젠 그냥 맘대로 해라.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아벨도 놀란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당신이 그 성녀님이시군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벨이라고 합니다.”


벨리아를 향해 웃으며 고개를 숙인 아벨의 시선이 이번에는 내 뒤에서 서 있는 라뮤에게 향했다. 그 시선을 받은 라뮤는 또 한번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이번에는 아벨이 악마라서 그렇다기 보다는 그냥 낯을 가리는 평소의 라뮤다운 반응이었다.


“이, 인그라뮤트예요··· 용사입니다아······”


어떻게 할지 반응을 살펴보고 있자나 우물쭈물하면서도 라뮤는 스스로 인사를 했다. 비록 중간에 음이탈이 있었지만 귀여웠으니 플러스 100점이다.


“하하. 귀여운 아가씨들이군요. 반갑습니다.”


아벨은 사람 좋게 웃으며 우리들을 반겨주었다. 아까 전의 그 심각함이 마치 꿈이었던 것만 같았다.

일단은 건드리지 않는 편이 좋겠지.


“그래서, 오늘은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인사를 마친 아벨이 나를 보며 곧바로 본론을 파고들었다.

자, 일단 여기까지 오기는 왔다만 이제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단순히 아벨과 만나면 가슴 속에 안개가 낀 것마냥 불확실하던 불안감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뭔가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대답할 말이 없었다.


“놀러와 주신 손님분들께 여기서 이러는 것도 실례이지요. 우선 누추하지만 안으로 들어가시죠.”


그런 복잡한 내 심정을 읽은 것인진 모르겠지만 아벨이 우리를 집으로 이끌었다. 고맙게도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벌었다. 그렇다고 해서 별로 달라질 건 없겠지만.

집으로 다가가자 문이 살짝 열리며 그 사이로 어린 아이의 얼굴이 빼꼼히 튀어나왔다.


“아. 나쁜 녀석이다.”


문틈으로 얼굴을 내민 건 아진이었다. 어제 그렇게 따스한 시간을 함께 했는데 아직도 내 평가는 저따위인가. 조금 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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