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윈 시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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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쓰리시에라
그림/삽화
시에라
작품등록일 :
2016.12.24 10:05
최근연재일 :
2017.12.26 12:1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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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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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25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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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64. 서약

DUMMY

“마지막. 당신만 남았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렌시스는 엘리사의 호위기사처럼 옆에 서 있었다.

“입 맞추면 깨어난다는 그 전설. 이뤄지면 어떠려나.”

사리나도 엘리사의 옆에 서서 그를 마주 보았다. 여전히 적안은 빛났다.

“전 신하일 뿐. 왕자는 못됩니다.”

“난 질투심 많은 여왕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엘리사가 살아 있었더라면... 왕자님을 만날 수 있었을까?”

“만났더라도 시원찮은 남자였다면 여왕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겠지요. 올랑드도 잘생겼고 강한 남자였습니다.”

“농담이길 바라.”

사리나는 엘리사의 뺨을 어루만졌다. 혹여나 다시 열기를 띄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숨이 끊어진 자에게 그런 기적이 일어날 리 없었다. 한숨을 내쉬는 사리나에게 이렌시스가 물었다.

“그를 죽이셨습니까?”

“죽였으면 복수라도 할 거야? 예전에 모셨던 군주이자 오랜 친구잖아.”

“이젠 원수입니다. 저는 그를 죽일 수 없고 그도 절 죽이기엔 부담이 되어 서로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럼 조금 더 엘리사를 위해 과감해지지 그랬어.”

“후회하고 있습니다.”

“후회라...”

사리나는 이렌시스를 빤히 쳐다봤다. 무표정한 그 얼굴에서 마땅히 읽어낼게 없었다. 이렌시스는 항상 냉정하게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 해왔기 때문에 남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가 잘 없었다. 그런데 사리나는 조금 달랐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네. 화내는 거 빼곤 티를 내질 않아. 슬프면 슬프다고 말해. 후회하는 수준이 아니잖아. 몸을 쥐어짜고 싶을 정도로... 슬픈 거 아냐?”

“... 위로는 제 아내에게 받겠습니다. 제 나이 반 밖에 안되는 사람에게 들을 말은 아닌 거 같군요.”

“흥. 말 잘하는 것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들을 때마다 짜증나.”

“여왕님도 어릴 때나 지금이나 귀엽질 못하십니다.”

“선머슴마냥 가르친 게 누군데!”

사리나는 소리치고 그를 노려봤다. 그녀가 이렌시스를 잘 알듯 이렌시스도 마찬가지로 그녀를 잘 알았다. 서로를 농담을 주고받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어두웠다. 오젤란 신부의 피는 여전히 남아 있었고 죽은 자를 위한 향의 냄새가 독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 사이엔 이 정도 농담은 별거 아니였다. 사리나는 그를 노려보다가 피식 웃었다.

“결말이 이러지만 않았어도 당신이 싫진 않았는데... 아버지, 안 죽였어. 아니. 못 죽였어.”

“그러셨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 난 내가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영주님은 선백작과 끝까지 화해하려 하셨습니다. 쌍둥이 자매이신 사리나님도 마찬가지 이실테니... 두 분은 쌍둥이 답게 서로 닮으셨습니다.”

“그게 엘리사를 죽게 했겠지. 나도... 그런 무른 감정이 날 곤란하게 하려나... 뭐. 당신 말이 맞아. 처음 아버지를 봤을땐... 근데 결국 아버지는 아버지야. 딸이 어떻게 아버지를 해칠 수 있겠어. 사리나는 손가락을 접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이 손가락으로 선백작을 죽이려 했지만 결국 그에게 생채기조차 낼 수 없었다. 아직 그녀가 분노에 몸을 맡기지도 않고, 인간으로서 지킬 도리를 지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녀는 잔인한 복수를 포기한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대로 넘어 갈 수는 절대 없지. 평생 후회하게 해줬어. 엘리사를 사랑하지 않았으니 후손도 기대하지 말아야겠지.”

“그건... 영주님의 아기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렌시스는 당황하며 물었다. 사리나는 엘리사에게 무릎을 꿇고서 말을 이었다.

“글쎄... 가장 고민이 되더라. 아직도 이름조차 못 받은 그 아기.,.. 태어난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엄마가 죽고..아빠는 살해되고...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싶더라.”

“절대 그 아기만은...죽이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순간 사리나가 정색하더니 이렌시스를 죽일 듯 쳐다보았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냐는 것이다.

“아무리 그 아기가 엘리사를 죽게 했다지만 내가 미쳤다고 걜 죽이겠어? 그 아기는 엘리사의 혈육이야. 절대 안 죽여! 아니, 어떻게든 보호할거라고.”

“그럼 무슨 고민을 하신다는 겁니까?”

“누가 그 아기를 기르게 하냐, 어디서 기르느냐 하는 문제인 게 당연하잖아.”

이렌시스의 멍청한 질문에 사리나는 질색했지만 그는 크게 안도했다. 사리나의 분노가 혹여나 아기에게까지 미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사리나는 대리석판에 기대듯 엎드렸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아기가 크기엔 데어난은 너무 위험해. 아무리 통제해도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아. 엘리사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아직도 몸이 떨려... 내가 데려가기엔 너무 위험해...”

“여기서 크면 선백작의 영향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겠지. 그래서 말야...”

사리나는 머리를 판에 댄 채 눈만 치켜떠서 이렌시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대부가 되어줬으면 해. 엘리사의 아기를 당신에게 맡기고 싶어.”

“절 죽이실 생각이지 않으십니까?”

“당신을 죽이는 건 내가 아냐. 대답만 해줘. 당신이...대부가 되 줄 수 있어? 당신이라면 그 어떤 아버지보다도 그 아기를 멋지게 키울 수 있을텐데.”

“제 나이가 50에 가깝습니다. 제 아들하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요. 선백작이 병이 들어 영주님께 타르베스를 넘겼듯 저도 오래 살지 못할 겁니다.”

이렌시스는 난색을 표했다. 나이는 핑계였고, 엘리사의 아기의 아버지 역할을 하기엔 부담도 되고 죄책감도 있었다. 다 큰 어른조차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는데 아기는 더욱 힘들 것이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사리나는 이렌시스만한 인물이 없다고 생각했다.

“당신 아들만큼 클 때까지면 충분해. 아들 브람만큼 말야. 당신이라면 끝까지 책임지고 보살펴 줄 거라고 믿어. 나하고 엘리에게 한 것처럼 말야.”

“전 결국 두 분 모두를 제대로 섬기지 못했습니다.”

“비극으로 끝났을 뿐이야. 그래도 당신은 끝까지 우리를 위해줬잖아. 그리고 나도 그 아기를 위해 모든 걸 다할 거야. 부담 되는 거 알아. 하지만 믿을 사람이 당신뿐이야.”

“...말이 바뀌신 거 아닙니까...”

“내가 말하지 않아도 엘리사가 당신에게 그 아기를 맡길 거야.”

“...”

이렌시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했다. 지금까지 선백작과 쌍둥이 자매에 걸친 2대를 섬겨왔지만 아기를 받아 기른 적은 없었다. 섬기는 것과 군주의 후계자를 기르는 것, 두 가지는 너무나 극명히 달랐다. 기르라고 명령을 받아도 망설일만한 것을 부탁 받으니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다. 사리나는 그가 선 듯 대답하지 못하는 게 답답하면서도 이해를 했다. 그렇지만 그가 오래 끌지 않길 바랐다.

“오래 생각할 시간 없어. 해가 뜨면 돌아가야 해. 그전에 아기를 어떻게 할지 마무리 지어야 해.”

“여왕님은 제가 맡길 바리시지 않으십니까.”

“맞아. 다른 건 생각 안 해놨어.”

“제가 맡으면 선백작이 아기를 돌려받기 위해 어떤 짓을 할지 모릅니다. 그는 영주님의 출산이 임박했는데도 무력을 썼습니다. 저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당신이라면 아기를 지켜줄 거잖아.”

“위험한 도박입니다. 좋지 않은 선택입니다.”

이렌시스는 단호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 이렌시스가 데리고 있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거절의 이유를 들은 사리나는 기분이 상해 그를 노려봤지만 그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실망이야...”

“어쩔 수 없습니다. 아기를 위하신다면 저로서는 맡을 수 없습니다.”

“...”

사리나는 그를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 죽여 버릴지도 몰라.”

“죽음을 두려워했다면 사리나님을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진짜 재수 없어....”

사리나는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았다. 이렌시스에게 협박 같은 게 통할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처음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젠 확고하게 굳혀 버린 듯 했다.

“일겠어. 데어난으로 데려가는 수밖에... 당신 말대로 여기보단 거기가 조금은 더 안전하겠지. 아버지가 그냥 둘 리 없어. 이제 당신은 어쩔 거야?”

“어떻게 할지 생각해본 게 없습니다. 다만 여기엔 못 있겠지요. 전 괜찮지만 저도 가족을 지켜야 될테니까요.”

“그럼 왜 나한테 죽을 걸 기다리고 있던 거야?”

“제 가족은 알아서 잘 살 겁니다. 제 아들놈도 곧 성인이고 제가 남긴 재산도 적지 않습니다.”

“흐응... 가족들에겐 너무 무책임한 가장이네.”

사리나의 비난을 이렌시스는 담담히 받아 들였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소서러의 책임과 의무에 집중해 온 만큼 가족에게 소홀했다.

“전 군인이고, 소서러입니다. 가족들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좋은 신하지만 좋은 남편과 아버지는 못되겠네.”

사리나는 허리에 대고 있는 단검을 뽑아 겨눴다. 어둠 안에서 어둠을 빨아들이듯 달빛을 받아도 칠흑 같이 어두웠다.

“내가 당신을 죽이면 영원히 이승을 떠도는 귀신처럼 살게 될 거야. 그래도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어?”

사리나는 적안을 거두고 모든 게 내려앉는 듯 하게 차갑게 경고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호응하듯 촛불이 흐느끼고 오직 달빛만이 내리고 있었다. 이렌시스는 마음의 준비를 마친 듯 겨눠진 검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죽어서라도 당신과 영주님을 섬길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요.”

“안식을 얻어 오비루스의 옆에 있을 수도 있어. 당신이 원한다면.”

“그 역시도 좋겠지요. 하지만 오비루스께서 받아주기엔 전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걸 판단하는 건 내가 아니지.”

어둠을 삼키듯 칠흑의 검은 이렌시스의 심장에 아주 가까이 붙었다. 사리나가 손목을 움직이기만 해도 찌를 상황이었다. 이대로 충성을 다한 이렌시스에게 편안한 안식을 줄지, 죽어서도 이승에 남아 영원히 자신을 섬기게 할지 결정해야 했다. 이렌시스의 얼굴엔 초연함만 남아 있었다. 그는 사리나의 판결에 따를 생각이었다. 사리나는 그의 얼굴을 보자 검을 내렸다.

“내게 충성을 다하고 싶다면... 당신의 남은 생 동안이면 충분해. 당신을 증오하지만 당신의 충성심은 보답되어야 하니까.”

“..”

“다시 나의 소서러가 되주겠어?”

사리나는 손을 들어 올려 그에게 내밀었다. 이렌시스는 변덕쟁이 여왕의 두 눈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강해지고 강대한 세력을 얻었지만 여전히 마음이 약한 소녀였다. 어쩌면 아직도 남은 이런 감정이 그녀가 힘을 남발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리라. 이렌시스는 희미한 미소를 띠우고 그녀의 손을 받쳤다.

“일라이마 세르 이렌시스. 이 몸이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손들에 입을 맞추었다. 그 순간 사리나의 손목에서 검은 빛이 발하더니 그의 얼굴에 빛이 몰려들어 그의 몸을 타고 오른 손목에 쓰리는 고통을 주었다. 속살을 파고드는 고통인데도 그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천천히 입을 떼었다. 고개를 드니 사리나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가 이전에 섬겼던 여군주의 미소와 똑같았다. 그 미소를 보자 그는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이 편했다.

“나 사리나 그대의 맹세를 잊지 않겠다.”

사리나는 이렌시스에게 오른 손목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가 옷깃을 거둬 보였다. 타르베스 인장 아래 데어난 까마귀 인장이 새겨져 있었다. 사리나는 만족하며 손을 거두라고 했다. 이제 남은 건 하나였다. 그녀가 엘리사를 바라보자 그가 물었다.

“엘리사님을 다시 살리실 겁니까?”

“이대로 관에 넣어서 땅에 묻히는걸 보고 싶진 않아.”

“오래 고통 받으신 분입니다. 육체의 병과 마음의 병 모두... 엘리사님을 병들게 했습니다.”

“더 이상은 아냐. 육체의 병도, 마음의 병도 더 이상은 없어.”

사리나는 동생의 목 뒤를 들어 올려 받쳤다. 힘없이 목이 뒤로 젖혀졌다. 축 늘어진 머리카락이 사리나의 손목을 가렸다.

“이렛. 당신은 이제 나가 있어. 엘리가 가장 망가질 때니까.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 엘리도 보이고 싶지 않을테고.”

“그러면. 네. 알겠습니다.”

이렌시스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그대로 교회 본당 밖으로 나가서 아무도 들어오지 않게 막았다. 그가 나가는걸 본 사리나는 왼손으로 단검을 들고 죽어 뛰지 않는 심장에 갖다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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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 348. 재판 17.12.09 90 2 11쪽
349 347. 안락 17.12.08 111 2 12쪽
348 346. 의아한 징조 17.12.07 88 2 15쪽
347 345. 능청 17.12.06 137 2 18쪽
346 344. 선긋기 17.12.05 109 2 12쪽
345 343. 대립 17.12.04 101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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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 341. 인질극 17.12.02 102 2 12쪽
342 340. 반역 17.12.01 129 2 14쪽
341 339. 생명 17.11.30 113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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