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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한추영
작품등록일 :
2017.01.20 11:32
최근연재일 :
2018.03.22 09:08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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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87
추천수 :
1,884
글자수 :
183,605

작성
17.03.06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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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글자
20쪽

제 23화. 음양사자의 정체 (2)

DUMMY

남이가 양 노인에게 달려가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대나무 숲 안쪽에서 엄청난 살기가 폭사되며 여덟 개의 쇠줄이 천옥랑을 노리고 빗살처럼 날아왔다.


“앗!”


천옥랑은 난데없이 쇠줄이 자신들을 공격해오자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급히 몸을 움직여 피했다. 여덟 개의 쇠줄 끝에는 날카로운 갈고리가 달려있었는데 여덟 개의 줄이 서로 엉키지도 않은 채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천옥랑을 꼼짝 못 하게 공격했다.


천옥랑은 다급하게 이리저리 피하며 검을 빼 들고 강철 쇠줄을 쳐냈지만, 어느새 천옥랑의 검은 쇠줄에 감겨 십여 장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쇠줄을 움직이는 공력으로 보아 천옥랑이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기이한 것은 집요할 정도로 천옥랑을 공격하면서도 땅바닥에 쓰러진 양 노인은 쇠줄이 전혀 건드리거나 스치지도 않는다는 점이었다.


“성한아, 도와줘!”


천옥랑은 절박한 나머지 급히 원성한을 불렀다. 원성한은 숲속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끼고 잔뜩 긴장하고 있다가 난데없이 등 뒤에서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나자 황급히 몸을 돌렸다.


천옥랑은 여덟 개의 쇠줄 공격에 옷차림과 머리가 엉망이 되어 이미 낭패한 꼴을 보이고 있었다. 검을 잃은 천옥랑은 경공을 써서 쇠줄 공격을 간신히 피하고 있었지만 조만간 쇠줄에 묶이거나 붙잡힐 것만 같았다.


“어떤 놈이냐!”


원성한이 크게 외치며 자신의 무기 청룡대도를 꺼내 들고 쇠줄을 끊으려고 달려들었다.


찌익 찍. 청룡대도의 칼날이 쇠줄과 부딪치자 쇠를 긁는 듯한 거북한 금속성이 울렸다. 원성한의 청룡대도는 돌이나 쇠도 단칼에 잘라버리는 보도였지만 자신들을 공격하는 가느다란 쇠줄에는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원성한은 자신의 대도로도 쇠줄을 자를 수 없자 믿을 수가 없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쇠줄은 각기 길이가 십여 장에 달했는데 쇠줄을 조종하는 사람이 높은 대나무 위에 숨은 듯 쇠줄이 그 위에서 끊임없이 뻗어 나왔다.


원성한은 도대체 이 쇠줄을 누가 조종하는가 싶어서 고개를 들어 대나무 위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나무 가지 위에는 검은색과 흰색 옷을 입은 동남동녀 여덟 명이 각자 한 손에 쇠줄을 들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동남동녀들이 서 있는 대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자 아이들의 몸도 바람에 따라 흔들렸다.


너무도 기이한 광경에 원성한은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지금까지 무림맹 안에 이처럼 기이한 복장을 한 동남동녀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이놈들!”


원성한은 대도를 고쳐잡고 몸을 날려 아이들이 있는 대나무 위로 뛰어오르려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나무 위에서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니 자신을 향해 쇠줄 세 개가 화살처럼 다가왔다. 쇠줄을 든 아이들이 공중에서 대나무 사이를 옮겨 다니며 몸을 움직이자 쇠줄은 살아있는 것처럼 원성한을 집요하게 공격해 들어왔다.


다급해진 원성한이 대도를 크게 휘두르며 막아내려 했으나, 제대로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순식간에 쇠줄에 붙들려 칼을 빼앗기고 말았다.


한편, 남이는 밖으로 뛰쳐나가려다가 처음 보는 기이한 무공에 놀라 숨을 죽이고 나무 뒤에 얼른 몸을 숨겼다. 천옥랑과 원성한은 천림원 내에서도 무공이 최상급에 속하는 후기지수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어린아이들이 휘두르는 은색 쇠줄에 속절없이 당하는 모습이 너무 당황스러웠다.


여덟 명의 동남동녀들은 모두 열두어 살가량 되어 보였는데 남자아이들은 검은색, 여자아이들은 흰색 옷을 입고 있었다. 여덟 명 모두 얼굴에는 허연 분칠을 하고 입술에는 붉은 연지를 찍어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이들 두 명이 쇠줄을 한번 떨치니 천옥랑과 원성한이 순식간에 그 줄에 칭칭 묶였다. 그리고 여자아이 네 명이 쇠줄을 던져 땅바닥에 쓰러진 양 노인의 팔다리를 하나씩 묶더니 돌연 대나무를 박차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마치 양 노인의 몸이 하늘을 나는 수레에 실린 듯 공중으로 떠올라 두둥실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천옥랑과 원성한을 묶은 아이들도 공중으로 몸을 날려 마치 하늘을 날아가듯 그 뒤를 뒤쫓았다. 체격이 작은 아이들의 어디에서 저런 힘과 무공이 나오는 것일까?


잠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남이는 더 늦었다가는 저들을 시야에서 놓칠 것만 같아서 황급히 뒤를 쫓으려고 했다. 천옥랑과 원성한의 기질이 나쁘기는 하지만 어찌 됐던 같은 학당의 학우였고, 양 노인의 안위도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남이가 소리를 내어 저들을 부르려는 순간, 어딘가에서 부드러운 손이 나와서 남이의 입을 막았다. 사람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남이는 깜짝 놀랐다.


뜻밖에도 자신의 입을 가로막은 사람은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기하진이었다. 기하진은 한 손으로는 남이의 입을 막고 다른 한 손으로는 어깨를 부드럽게 끌어당긴 채 입술을 자신의 귀에 바싹 붙이고는 속삭였다.


“지금 움직이면 안 돼.”


남이는 기하진이 귀에 입술을 바짝 대고 소곤거리자 불현듯 부끄러운 느낌이 들어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나 기하진은 그런 사실을 모르는 듯, 남이의 입을 막은 손을 떼지 않고 계속 사라져 가는 동남동녀들을 주시했다. 기하진의 손이 자신의 입에서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남이는 손가락으로 기하진의 팔을 톡톡 친 뒤에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


기하진은 그제야 얼굴을 붉히며 남이의 입을 막고 있던 손을 얼른 뗐다. 그러나 어깨를 감싸 안은 손은 여전히 풀지 않았다.


남이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양 노인과 수련생 두 명을 끌고 가자 걱정이 되었지만 지금 이 순간은 자신의 입술에 닿았던 기하진의 부드러운 손바닥과 어깨를 감싸 안은 팔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에 뭔지 모를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동남동녀가 시야에서 사라질 만큼 멀어지자 기하진은 다시 남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가자.”


기하진의 숨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혀 남이의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아까 정체불명의 사람들을 발견했을 때와는 또 다른 울림이었다.


기하진이 몸을 일으키며 경공을 전개했다. 여전히 한쪽 팔은 남이의 손을 잡고 있었지만 기하진은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사실 기하진은 맹주전을 찾아가던 길이었다. 며칠 전, 사마경에게서 맹주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청하라는 말을 듣고 몇 날을 고민하다가 드디어 결심을 굳히고 남궁진악을 직접 만나 보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언감생심, 자신이 맹주의 제자가 될 수는 없으리라 여겼지만, 총군사인 사마경이 그렇게 말해주었기 때문에 또 딱히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하진은 무림맹 내에서도 가장 은밀하고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맹주전으로 가는 도중에 울창한 대나무 숲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 대나무 숲에서 불현듯 세찬 살기와 함께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이 들려오자 호기심이 일었다.


아니 이 적막한 곳에서 도대체 누가 싸우고 있는 것일까?


숨어서 보니 자신도 아는 천옥랑과 원성한이 아닌가! 게다가 여덟 명의 동남동녀들이 쇠줄을 운용하는 무공이 얼마 전 천림비고에서 맞닥뜨렸던 음양사자의 무공과 비슷해서 기하진은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비록 음양사자의 귀조수만큼 위력적이지는 않으나 지금 자신의 실력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 것만 같았다.


기하진이 잔뜩 긴장하며 몸을 숨기려는 찰나, 앞으로 달려나가려는 남이가 눈에 들어와 급히 남이를 붙잡은 것이었다.


기하진이 공력을 일으켜 경공을 발휘하자 남이도 경공을 펼쳤지만 기하진을 따라가기가 벅찼다. 억지로 숨을 참으며 공력을 운용하던 남이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런데 뜻밖에도 기하진은 나는 듯이 달리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남이에게 말을 걸어오는 게 아닌가.


“저들의 무공이 너무 수상해. 가서 확인해봐야만 할 것 같아. 그리고 양 할아버지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저 두 놈도 구해와야지.”


기하진은 전혀 숨이 차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 기하진의 모습이 믿기지 않아 남이는 달리면서 토끼 눈을 하고 계속 기하진을 힐끔거렸다. 다들 기하진을 보고 무림신동, 무림신동 하기에 남이는 기하진이 최연소 나이로 천림원에 입교해서 그렇게 불리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오늘 보니 기하진의 무공이 자기보다 훨씬 윗길이 아닌가!


대나무 숲 오솔길이 끝나는 곳에 이르자 제법 큰 이층 전각이 하나 나왔다. 전각은 특이하게도 팔각형의 구조로 지어져 있었고 팔면에 문이 있었다.


여덟 명의 동남동녀들은 쇠줄로 묶어 끌고 온 사람들을 데리고 황급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저희들끼리 손짓을 해대며 뭐라고 시끄럽게 얘기를 하는 듯했다. 허겁지겁 달려가는 모습에서 시간에 쫓기는 듯 굉장히 분주하고 서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이들이 전각으로 들어가면서 팔을 크게 휘두르자 여덟 개의 면에 있는 문들이 저절로 타다닥 소리를 내며 하나씩 닫히기 시작했다.


기하진은 남이에게 속삭였다.


“저 집 안으로 들어가야 해. 아까 보니 저쪽 이 층 창문이 열려 있어. 그쪽으로 들어가자.”


말을 마친 기하진은 남이의 손을 잡고 이 층 창 옆에 있는 나무 위로 날렵한 다람쥐처럼 올라갔다. 그리고는 솔개가 날아오르듯이 순식간에 몸을 날려 창문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남이는 현기증이 나서 기하진의 손을 힘주어 꽉 붙잡았다.


두 사람은 미세한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 층인 줄 알았던 전각의 내부는 뜻밖에도 이 층이 아니라 천장이 높은 방이었다. 방의 천장이 높아서 이 층처럼 보인 것이다.


커다란 방 한가운데 태극과 팔괘가 그려져 있고 태극 위에 양 노인이 앉아 있었다. 팔방을 뜻하는 팔괘 문양 위에는 여덟 명의 동남동녀들이 각각 하나씩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천옥랑과 원성한은 쇠줄로 단단히 묶여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기하진과 남이는 대들보 위 어두운 구석에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동남동녀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각자 앉은 곳에서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뭔가 웅얼웅얼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너무도 기괴한 모습에 기하진과 남이는 잔뜩 긴장한 채 숨소리를 죽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남이는 자신도 모르게 기하진의 손을 잡은 손에 자꾸만 힘을 주었다.


팔각형으로 지어진 전각은 천장이 뚫려 창이 나 있었고 그 창으로 달빛이 흘러들고 있었다. 창백한 달빛은 태극문양 위에 자리 잡은 양 노인장을 은은하게 비추었다.


잠시 뒤, 웅얼웅얼 주문을 외던 동남동녀들이 오른쪽 팔을 천천히 들어 양 노인을 향해 뻗었다. 왼손은 가슴 부위에서 엄지와 중지를 한데 모아 수인(手印)을 맺은 채 주문을 계속 외웠다. 웅웅거리는 주문 소리에 기하진과 남이는 저도 모르게 아찔한 현기증이 들었다.


차 한잔 정도 마실 시각이 흘렀을까, 여덟 명이 앞으로 뻗은 손바닥에서 이상한 기류가 흘러나오더니 양 노인장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아지랑이처럼 흘러나오는 뿌연 기류는 아이들의 몸에서 흘러나와 양 노인의 몸 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때 아이들이 입을 모아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음양이 변화하니 영육(靈肉)이 바뀌는 도다. 일월이 바뀌니 천지가 새로 깨어나는 도다.”


일순간 아이들의 손바닥에서 나오던 하얀 기류 전체가 순식간에 양 노인의 몸 안으로 쑤욱 빨려 들어갔다.


잠시 뒤, 고개를 숙인 채 의식을 잃었던 양 노인의 입에서 비명 같은 기괴한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어느새 구부정한 양 노인의 허리가 반듯이 펴졌다. 그리고는 양 노인의 얼굴이 심하게 뒤틀리는 것이 아닌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기하진과 남이는 충격적인 광경에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서로 붙잡은 손에서는 땀이 났지만 두 사람은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래에서 쇠줄에 묶인 채 그 광경을 지켜보던 천옥랑과 원성한도 두 눈이 튀어나올 듯 커져 양 노인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양 노인이 다시 기괴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심하게 비틀어지던 얼굴이 갑자기 길쭉하게 늘어나며 갸름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머리에서 하얀 백발이 순식간에 허리까지 자라났다. 손이 뒤틀리며 손톱이 자라나 귀조(鬼爪)의 모습을 했다.


비명을 멈춘 양 노인은 어느새 음양사자로 변해 있었다. 눈을 감고 있던 음양사자가 별안간 눈을 번쩍 떴다. 눈동자는 동그란 고양이 눈, 묘안(猫眼)으로 바뀌어 있었다. 음양사자의 두 눈에서 기괴한 노란색 안광이 흘러나왔다.


매일 같이 천림비고에서 보며 인사하던 양 노인이 기실 음양사자였다니!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충격을 받은 기하진은 두 눈을 부릅떴다. 음양사자가 자신의 얼굴을 아는 것도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매일 같이 보며 인사를 했으니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겠지. 천옥랑이 자신이 아닌 것도 그래서 알았을 것이고.


그러나 어떤 이치로 남자인 양 노인이 백발마녀인 음양사자로 변하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너무도 기괴한 광경을 보았지만 기하진은 마냥 놀라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의 손을 붙잡은 남이의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남이는 너무 놀라서 낯빛이 하얗게 질린 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떨림을 멈추지 않았다가는 무공이 고강한 음양사자에게 금방이라도 발각될 것만 같았다.


기하진은 한 손으로 남이의 어깨를 꼬옥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남이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그리고는 운기를 하여 따뜻한 기운을 남이의 손에 조금씩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는 남이를 바라보며 걱정하지 말란 듯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남이는 지금까지 기하진과 말 한마디 제대로 해 본 적도 없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기하진이 옆에 있는 것이 너무 고맙고 위안이 되었다. 기하진이 계속 공력을 불어넣어 주자 남이의 두려움도 천천히 사라졌다.


음양사자가 벌떡 일어서자 동녀들이 즉석에서 준비되어 있던 붉은 비단옷을 꺼내어 음양사자에게 입혔다. 음양사자는 어느새 기하진이 천림비고에서 만났던 바로 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음양사자를 둘러싸고 있던 여덟 명의 동남동녀들이 그대로 음양사자를 향해 오체투지를 했다.


“노모님을 뵈옵니다.”


“진공가향 무생노모(眞空家鄕, 無生老母), 흑련신교 영원불멸(黑蓮神敎 永遠不滅)”


아이들이 외우는 주문이 묘한 여운을 남기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진공가향 무생노모는 원래 백련신교의 교리였다. 백련신교의 교도들은 무생노모를 미륵불로 떠받들며 언젠가는 이 세상에 진정한 극락, 즉 진공가향을 세우리라는 서원을 담아 주문처럼 외우곤 했다.


음양사자는 원래 백련신교의 한 지파인 흑련교(黑蓮敎)의 교주였다. 음양사자가 흑련교를 주창하며 교주 자리를 넘보자 백련신교의 교주인 남무궁이 흑련교와 흑련교도들을 일소해 버렸다. 그러자 음양사자는 공동의 적을 가진 남궁진악과 손을 잡고 무림맹에 몸을 숨긴 채 힘을 기르며 남무궁에게 복수할 날만을 기다려 왔던 것이다.


음양사자는 한쪽 구석에 묶인 천옥랑과 원성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놈들을 내 앞으로 끌고 오너라.”


동남동녀들이 잔뜩 겁에 질린 천옥랑과 원성한을 두 손으로 달랑 들어 음양사자 앞에 내려놓았다. 천옥랑은 처음 보는 기괴한 모습에 이를 딱딱거리며 덜덜 떨었다.


“네놈들이 감히 본좌의 몸에 손을 대었으니 결코 살려둘 수 없다.”


음양사자의 말에 동남동녀들이 엎드린 채 모두 한목소리로 외쳤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지엄하신 노모님을 욕보였으니 저놈들의 눈알을 파내고 심장을 도려내야 합니다.”


동남동녀들의 말에 기겁한 천옥랑이 덜덜 떨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요? 귀, 귀하도 맹의 사람이요 나, 나도 맹의 사람이니, 우리는 같은 편이지 않소? 어, 어찌 같은 편을 죽이려 하시오?”


천옥랑의 말에 음양사자가 콧방귀를 뀌었다.


“네놈이 네 아비의 위세를 너무 믿는구나. 네 아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 그게 무슨 소리요? 귀하가 맹의 사람이라면 부맹주님의 아랫사람인데 어, 어찌 윗사람을 어려워하지 않는다는 소리요?”


천옥랑의 말에 음양사자가 깔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여덟 명의 동남동녀들도 무엇이 그렇게 우스운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들이 깔깔거리는 소리가 마치 고양이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한참을 웃던 음양사자가 돌연 웃음을 뚝 멈추고 차가운 표정으로 천옥랑을 바라보았다. 음양사자가 웃음을 멈추자 동남동녀들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순식간에 웃음을 그쳤다.


“건방진 녀석. 무생노모는 장차 다가올 세상의 주인이거늘, 네놈 아비가 뭐라고 내가 그를 어려워할까? 신공만 완성되면 남무궁도 내 적수가 되지 못할 터인데 네놈 아비는 말해서 뭘 하겠느냐?”


음양사자가 성큼성큼 걸어 천옥랑 앞으로 다가오더니 오른손 손가락 하나를 꼿꼿이 세우더니 천옥랑의 얼굴을 찌익 그었다. 손톱이 지나가는 자리에 혈선이 생기며 붉은 핏방울이 방울방울 맺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옥랑은 얼굴의 통증을 느낄 새도 없었다. 어느새 음양사자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음양사자는 긴 혓바닥을 내밀어 천옥랑의 얼굴에 맺힌 핏방울 날름 핥았다. 축축한 혓바닥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자 천옥랑은 질끈 눈을 감았다. 부드럽고도 까칠까칠한 혓바닥의 기괴한 느낌에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음양사자는 천옥랑을 잠시 내려다보더니 휙 몸을 돌렸다.


“하지만 지금 이놈들을 죽인다면 신공의 수련에 방해만 되겠지.”


음양사자가 치렁치렁한 백발을 한 손으로 훑어 내리며 말했다.


“저놈들의 기억을 지워라.”


음양사자의 말이 떨어지자 동남동녀들이 다시 깔깔깔 거리기 시작했다.


“기억을 지워라. 기억을 지워.”


천옥랑과 원성한은 죽이지 않는다는 말에 살았다 싶었지만, 기억을 지운다는 말에 다시 두렵기만 했다.


동남동녀 네 명이 천옥랑에게 달려들어 움직이지 못하도록 몸을 누른 뒤에 한 명이 천옥랑의 고개를 젖혀 입을 벌리게 했다. 그러자 어린아이 하나가 작은 호리병에 든 물약을 천옥랑의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말할 수 없이 쓴맛에 천옥랑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 모습이 재밌기라도 한 듯 깔깔거리며 웃었다. 아이들은 천옥랑에게 약을 다 먹이자 원성한도 마찬가지로 붙잡고 입을 벌려 억지로 약을 먹였다.


약을 먹은 천옥랑과 원성한은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기억을 지웠다. 기억을 지웠어.”


동남동녀들이 박수를 치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때 음양사자의 눈길이 머리 위 대들보를 향했다.


기하진과 남이는 별안간 음양사자가 자신들을 노려보자 깜짝 놀라서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설마 들킨 것일까? 기하진과 남이는 잔뜩 긴장하여 숨도 쉴 수가 없었다.


음양사자는 어둠 속을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쥐새끼 두 마리가 숨어들었군.”


자신들이 숨어 있는 것을 알아챈 듯 음양사자가 입꼬리를 올리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밖에서 소리가 나자 음양사자가 소리쳤다.


“무엇이냐?”


“맹주님께서 지금 찾으십니다. 속히 준비하시지요.”


그 말에 음양사자의 눈길이 다시 대들보 위를 향했다.


“쥐새끼들이 운이 좋구나.”


음양사자가 몸을 돌려 성큼 앞으로 걸음을 내딛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무엇인가 번쩍하고 지나간다 싶었는데 음양사자의 몸은 어느새 문밖에 나가 있었다.


“맹주를 만나고 올 테니 저놈들을 표시 나지 않게 천림원에 갖다 놓거라.”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음양사자의 몸은 순식간에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대들보 위에 숨어 있던 기하진과 남이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조용히 내뱉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 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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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3화. 음양사자의 정체 (2) +3 17.03.06 5,734 61 20쪽
23 제 22화. 음양사자의 정체 (1) +4 17.03.03 5,309 6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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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제 20화. 주화입마 +6 17.02.27 5,328 7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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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 11화. 천림원의 괴짜들 (1) +6 17.02.06 6,208 70 16쪽
11 제 10화. 잇따른 살겁 +4 17.02.03 6,689 77 15쪽
10 제 9화. 무림신동 (3) +4 17.02.01 6,537 79 17쪽
9 제 8화. 무림신동 (2) +5 17.01.30 6,729 86 17쪽
8 제 7화. 무림신동 (1) +5 17.01.30 7,447 82 17쪽
7 제 6화. 무림맹의 외톨이 소년 (2) +7 17.01.27 7,084 71 11쪽
6 제 5화. 무림맹의 외톨이 소년 (1) +5 17.01.25 7,821 81 19쪽
5 제 4화. 운명의 수레바퀴는 구르기 시작하고 (3) +6 17.01.23 9,306 84 10쪽
4 제 3화. 운명의 수레바퀴는 구르기 시작하고 (2) +3 17.01.21 8,468 84 16쪽
3 제 2화. 운명의 수레바퀴는 구르기 시작하고 (1) +5 17.01.20 8,995 91 15쪽
2 제 1화. 세 아이의 소원 +5 17.01.20 10,991 85 16쪽
1 프롤로그 +7 17.01.20 13,468 73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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