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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엑소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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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즙
그림/삽화
포도즙
작품등록일 :
2017.01.24 20:34
최근연재일 :
2018.01.13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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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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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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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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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03 - 플라벨룸(8)

엑소시즘(Exorcism)




DUMMY

“아, 꺼져!”


“야! 이 병신아!”


태양에게 한 소리는 아니었다. 위태롭긴 하지만, 태양은 아직 대열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리에서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태양 뒤쪽에 누군가가 대열을 흩트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욕을 하는 사람들은 마치 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을 정도로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이해는 충분히 되었다. 그들에겐 앞에서 퍼지고 있는 교육생은 그저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일 뿐이니까. 그리고 차라리 거리가 더 벌어지기 전에 욕을 해서 빨리 포기시켜야, 본인에게 오는 부담감이 줄 테고, 또 이 지옥 같은 뜀걸음이 끝날 것이리라.


결국, 욕 소리가 줄어든 것을 보니 그 누군가는 대열에서 빠진 듯했다. 조교들이 강제로 끄집어냈거나 아니면 스스로 압박감은 이기지 못해서 자진 이탈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교육생들은 더욱더 예민해졌고 교육생 중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이면 여기저기서 욕이 쏟아졌다. 심지어 그 사람의 앞이나 옆에서조차 욕을 해댔다.


‘욕할 힘이라도 있어서 좋겠네···.'


태양은 그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말은커녕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힘겨웠으니까.

서서히 뇌가 마비되고 사고가 뿌옇게 흐려졌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다리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펑, 하고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이 몸이 과열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직 뛰곤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기는 자신이 아닌 제삼자로부터 터졌다.

태양처럼, 아니 이미 예전부터 한계에 다다른 교육생이 있었다. 태양의 룸메이트, 일본인 히데오였다.

그는 온몸을 비틀거렸고 달리는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 때문에 히데오와 히데오 앞에 있는 교육생 사이에 거리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히데오를 기준으로 그 뒤로 이어진 줄 전체가 쳐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태양은 멍해 있던 머리에 찬물을 맞은 듯, 순식간에 정신이 확 들었다.

왜냐하면, 히데오 바로 뒤에 있던 사람이 태양이기 때문이다.


‘아 저 새끼가······.'


큰일이다.

히데오의 속도가 줄어듦에 따라 자신의 속도도 줄어들고 있었다.

옆을 보니 원래 자신의 옆에서 뛰고 있던 교육생이 아닌 그 뒤에 있던 교육생이 옆에 있었다.

그러니까, 이미 한 행(行)정도 쳐진 셈이었다.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태양은 자신의 페이스가 깨졌다는 걸 인지했고 그 순간 다리에 힘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한 걸음 한 걸음이 고비였다.


이윽고 태양 뒤에서 뛰고 있는 교육생들이 열이 쳐지고 있음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다들 심히 지쳐있어서 그것을 눈치채는 대에 시간이 좀 걸린 모양이다.

그 이후로부턴 당연한 순서를 밟듯, 사방에서 히데오를 향해 욕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다들 쥐어짜며 힘겹게 말이다.


“하아···야···. 꺼···져!”


“피해 주지 말고······포기해. 이 새끼야! 하아···.”


사실 히데오가 여기까지 버틴 것도 기적이었다. 첫날 훈련에서 증명됐듯, 히데오는 저질 체력의 소유자였다. 요행으로 어제 집에 돌아가진 않았지만, 지금 이 훈련은 그런 요행이 통하지 않을 듯싶었다.

더욱이 중요한 건 히데오 한 사람 때문에 태양을 비롯한 뒤에 수십 명이 단체로 탈락할 위기라는 거였다. 이미 지칠 때로 지친 그들은 히데오가 벌려놓은 거리를 좁혀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걱정에 일찍부터 절망적인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히데오는 자진해서 빠지지 않았고 이상하게도 교관이 그를 밖으로 끌어내지도 않았다. 그래서 거리만 점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히데오가 속해 있는 줄은 한 행(行) 더 뒤로 쳐지고 말았다.


‘하아··· 하아······.'


여기저기 힘겨운 욕 소리와 저주 섞인 말들이 울렸다.

태양도 히데오에게 욕 한마디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욕할 힘을 아껴서 한걸음이라도 더 내딛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참고 있었다.

육체적으로 지치고 고통스러우면 마음 또한 약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태양은 마음만은, 정신력만은 강하게 먹으려고 노력했다.

포기란 없다.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달리 육체는 조만간 자신이 쓰러질 거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순간 걷잡을 수 없이 힘이 빠져버린 다리 때문에 태양은 크게 휘청했다.


‘아······!'


몸이 더는 달리지 못할 거라고 그 짧은 순간에 수십 번을 외치는 것 같았다. 이대로 라면 자신이 히데오 보다도 먼저 쓰러질 것이 분명했다.


그때, 등에서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


그 차가운 감촉은 작고 여렸지만, 이 순간만큼은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 태양을 계속 달릴 수 있게 해주었다.


뒷사람의 손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손의 주인은 살며시 태양을 밀어주었다.


강하게 밀어준 것도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저 살짝 등에 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행위가, 태양에게는 더없이 힘이 되었다.

넘어질 것 같이 위태로웠는데, 등 뒤에 있는 든든한 버팀목 덕분에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마저 안정감이 들었다.


태양은 흐트러진 정신을 다잡고 이를 악물었다.

여전히 등에선 차가운 감촉이 느껴지고 있었고, 신기하게도 더 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태양에겐 달갑지 않은 일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덕분에 위기는 모면했다.


‘누구지?'


그것은 누군가의 손이고, 그 누군가는 태양 바로 뒤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뜀걸음을 하기 위해 대열을 갖출 때, 훈련장에 도착한 순으로 마구잡이로 갖췄고 뒷사람이 누군지 확인하지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민호인가······.'


태양은 이런 경쟁 속에서 이런 짓을 하는 놈은 민호밖에 없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어쨌거나 상황은 조금 나아졌을 뿐, 사실 변한 것은 없었다. 앞에 있는 히데오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한.


‘젠장.'


맘에 들진 않지만, 방법이 없기에 태양은 자신의 한쪽 손으로 히데오의 등을 받쳐주었다. 그리고는 뒤에서 받는 힘을 고스란히 넘겨주듯이 살짝 힘을 주었다.


태양의 그 손길에 다리에 힘이 없던 히데오는 순간 넘어질 듯 휘청했지만, 아주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훨씬 안정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거리를 좁히기에는 아직 무리였지만, 더 뒤처지는 건 막은 듯했다.


하지만 의외에 곳에서 위기는 또다시 찾아왔다.


어쩌면 예상할 수도 있었을지 몰랐다.

두 행(行)정도 뒤처졌을 때, 히데오 옆에 있던 인물이 윌리엄스라는 것을 빠르게 인식했다면 말이다.


“꼴값 떨고 있네.”


윌리엄스는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히데오를 한번 쳐다보더니, 그대로 뻥 하고 히데오의 옆구리를 발로 차버렸다.


퍽!


“윽!”


가뜩이나 간신히 버티고 있던 히데오는 그 발길질에 힘없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인해, 히데오를 밀어주느라 몸의 균형이 앞으로 쏠려있던 태양도 같이 고꾸라졌다.

둘은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치듯 버려졌고, 차가운 대열은 그들을 아슬아슬하게 비켜서 지나갔다.


‘아···!'


한계를 맞은 육체는 달콤한 휴식을 만끽하자, 도저히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태양은 멀어져 가는 대열의 뒷모습만 망연자실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절망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이대로 끝인 건가?

무언가 억울했다. 히데오 때문에, 윌리엄스 때문에, 억울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고작 이틀 만에, 시작하지도 못하고 끝난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그리고 고작 뜀걸음 하나 못해서 퇴소당한다는 것이 억울했다. 

그게 너무 억울해서 태양은 일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일어난 몸은 계속 비틀거리며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시발!”


태양은 모든 걸 포기하고 바닥에 몸을 맡겼다.

하늘에 떠 있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뜨거운 구체가 자신을 비웃듯 내리쬐고 있었다. 그 뜨거운 열기 속에 몸도 마음도 모조리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그때, 어떤 그림자가 자신을 내려다봤다.

그림자는 자신을 녹일 것만 같았던 태양을 가려 주고선, 손을 내밀었다.


태양은 멍하니 그 그림자를 쳐다보았다.

눈이 부셔서 처음에는 누군지 몰랐지만, 점차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반짝이는 금발과 호수를 담은 듯한 푸른 눈. 저 거대한 빛과 열을 갖은 구체조차도 그녀의 뒤에 있으니 단순히 그녀를 위한 후광이 되어버릴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


태양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녀는 첫날 소란의 주인공인 세아라는 여자이고, 자신의 등을 밀어준 사람이 저 여자였다는 것을. 또 저 여자도 자신을 밀어주다 같이 낙오됐다는 것과 지금 또다시 자신을 도우려고 한다는 걸.


태양은 조금 망설이다가 그 손을 툭 쳤다.

도움을 받는다는 것, 태양에게는 너무나 어색한 일이었다.


“신경···꺼.”


이렇게 된 이상 오기라도 일어날 테다.

태양은 다시금 안간힘을 썼다. 다행히 터질 것 같던 호흡은 조금 안정감을 찾았다.

양손을 땅에 짚은 채, 두 발에 힘을 주었다.


“큭!”


통증이 밀려왔다.

여태껏 자신의 몸이 아닌 것 같이 아무런 느낌조차 없던 두 다리가 휴식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돌아오자, 진한 통증을 동반했다.

하지만 태양은 다시 이를 악물고 삐걱삐걱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조금씩 올라가는 몸에 희망이 보이던 찰 나, 툭 하고 무언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몸이 크게 휘청했다.

그 순간, 또다시 바닥에 처박히는 미래가 보였다.


‘아······.'


다행히 그 미래는 실제로 일어나진 않았다.

지켜보던 세아가 태양을 잡아줬기 때문이었다.


“괜찮아요?”


불안한 눈동자로 세아가 태양을 쳐다보고 있었다.

커다란 눈동자 속엔 걱정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가식이 아닌 진심이 느껴지는 그런 눈동자였다.


태양은 괜히 머쓱해져서 대답을 회피하곤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했다.

막상 일어나고 나니 조금은 다시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대열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이대로 포기 할 순 없었다.


태양은 한발 한발 힘겹게 내디뎠다.

그런데 뒤에서 세아의 맑은 음성이 들려왔다.


“저기······.”


뒤를 돌아보자, 누군가를 가리키고 있는 세아의 모습이 보였다. 세아의 손끝을 따라가 보니, 그곳엔 대(大)자로 뻗어있는 히데오가 있었다.


태양은 어이가 없었다.

자기 몸 하나 간수하기 힘든데, 저런 시체 같은 놈을 끌고 가자고? 뭐, 그런 뜻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렇지만, 이곳에 이 분을 두고 갈 순 없어요.”


“장난하나? 애초에 저놈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거 몰라?”


솔직히 누굴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자신이 좀 더 육체적 단련을 했다면, 좀 더 강하게 마음먹었다면 히데오가 뒤처졌다 한들 이렇게 되었을까?


태양은 항상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이 세상은 혼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결국, 믿을 건 자기 자신뿐이니까 욕을 먹는 것도 자기 자신일 뿐이라고.

그러나 이처럼 누군가를 위하는 행위를 권유받는다면 탓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앞에 여자가 민호와 같은 분류라고 생각했다.

남을 못 도와서 환장한 사람인 것처럼 쓸데없이 오지랖 떨어대는 성격.

하지만 결정적으로 여자는 민호와 달랐다. 민호는 자신의 행위를 남에게 강요하지 않지만, 앞의 여자는 그것을 강요했다. 첫날 윌리엄스에게 교과서에 나올 법한 훈계를 하지 않았던가.

태양은 그런 세아의 태도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우려면 너 혼자 돕든가, 왜 나한테 난리야.”


“저는 태양 씨가 저분을 도왔으면 해요.”


“참나, 이건 뭔 개소리야? 내가 왜?”


“동료이자 친구니까요.”


“미친.”


친구?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저 일본인이랑 자신이 며칠이나 봤다고 친구인가, 그리고 이 여자는 무슨 근거로 저렇게 말하는 건가.

동료? 이건 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태양이 아는 이곳 플라벨룸은 경쟁 사회였다.

하나라도 더 집에 가야, 자신이 엑소시스트가 될 확률이 높아지는 마당에 동료는 얼어 죽을.


태양은 더는 대꾸를 하지 않기로 했다.

도저히 역시나 첫날에 예상대로 이상한 여자였다.


태양은 매정하게 돌아섰다.

시간이 너무 지체됐다. 어서 출발하지 않으면······.


“나는 태양 씨가 조금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졌으면 해요. 솔직히 신경 쓰고 계시잖아요.”


뒤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전 알고 있어요. 당신이 좋은 사람이란 걸.”


그 말에 태양은 기분이 굉장히 불쾌해졌다.

자신이랑 말 한번 섞어보지도 않은 여자가 자신에 대해 뭘 안다고 저렇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데, 태양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저 여자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태양은 화가 났지만, 화를 내진 않았다.

그럴 기력이 남았다면 한 걸음이라도 뛰는 게 나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한마디 정도는 하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봐, 사람 잘못 봤어. 난 그렇게 좋은 놈이 아니야. 저놈 도울 힘도, 그럴 맘도 전혀 없으니까, 더는 나한테 왈가왈부하지 마. 그리고······.”


불쾌했던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너나 잘해.”


자기감정에 따른 표정관리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여자 주제에 솔직해지라는 소리나 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첫날에 보였던 이상한 행동, 그건 분명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 하는 짓이었다.


태양은 이제 어떤 말이 들려오더라도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는,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물론 속도도 나지 않았고 절뚝거리며 위태로웠지만, 어느 정도 뛸만했다.

이미 퇴소가 확정돼 있을 수도 있는 상태였지만, 아직 교관에게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으니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의든 타의든 결국에 더는 뛰지 못하는 자들이 퇴소 조치를 당했다. 하지만 자신은 아직 뛸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만나보고 싶다···. 진짜.


숙소에서 한 히데오의 시답지 않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시답지 않은 이유였다.

누구는 거창한 정의감 때문에, 누구는 절실한 신앙심 때문에, 누구는 자랑스러운 명예 때문에, 또 누군가는 분노로 가득 찬 복수심 때문에······. 이 지옥 같은 훈련을 견뎌내고 엑소시스트가 되고자 했다.

그런데 고작, 그 시끄러운 여자 하나 만나겠다고 사서 이 고생을 하는 멍청한 일본인.


그러나 환상을 가득 품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동경하는 그의 눈동자는 태양의 머릿속에서 잊히지가 않았다.


“야!”


태양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저 멀리 있는 히데오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네가 만나고 싶어라 하는 그 여자, 지금 플라벨룸에 와 있다.”


확실히 이곳에 올 때 같이 왔으니, 어딘가 있긴 할 거다.


벌떡!


그 말에 시체처럼 누워있던 히데오가 거짓말처럼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오! 스텔라 니이임!!“


바로 옆에 있던 세아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몸을 움찔거리고는 히데오를 믿을 수 없다는 듯 토끼 눈으로 쳐다보았고 저 앞에서 힘겹게 한 걸음씩 내딛던 태양은 갑자기 뒤에서 느껴지는 소름 끼치는 기척에 뒤를 돌아봤다.


태양의 시야에 보인 것은, 한 마리에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광기에 휩싸인 눈동자로 쫓아오고 있는 히데오의 모습이었다.


‘우와. 저 개 같은 놈이.'


저렇게 체력이 남아있었으면서 퍼지긴 왜 퍼져!


문득, 히데오의 광기 어린 얼굴과 몸짓에 소름이 끼친 태양은 자신도 모르게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기다려! 스텔라 님 어디 계신 거야! 빨리 말해!”


히데오는 태양을 잡을 기세로 쫓아왔다.

두 사람은 그렇게 추격전을 펼치듯 점점 속도를 내며 달렸다.


아직도 뜨거운 열기 속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세아는 멀어져가는 두 남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 나도 어서 따라가지 않으면······.”


그러다가 자신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아 나도 모르게 그만···.'


그리고 그녀의 표정은 다시금 차가운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너나 잘해.


세아의 귓가에 그의 말이 맴돌았다.

그녀는 분명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세아는 아주 잠깐, 슬픔을 담은 듯한 표정을 하고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홀로 쓸쓸히 뛰기 시작했다.


03 - 플라벨룸(8)





작가의말

참고로 20화가 넘는 연재를 하면서 선호작 8명, 최신화 조회 수 7명? 정도 되는데 저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첫 글이고 많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제가 굳이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혹시 인기가 너무 없다 보니, 연재를 중지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시는 분이 ‘혹시나’ 계실까 봐서입니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100화 이상 연재하기로 이미 마음을 먹었으니까요.

(혹시나 한 분도 안 보신다면, 모르겠지만....)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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