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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엑소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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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즙
그림/삽화
포도즙
작품등록일 :
2017.01.24 20:34
최근연재일 :
2018.05.29 00:33
연재수 :
1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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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0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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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04 - 대악마의 심장(1)

엑소시즘(Exorcism)




DUMMY

쾅!


“어째서입니까!”


이곳은 밥의 집무실이었다. 탈락이 확정된 태양이 납득하지 못하고 찾아온 것이다.


손목시계로 시각을 확인하고 있던 밥은 태양이 들어오자, 그의 무례한 행동에 순간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가 탈락한 게 이상한가?”


“저는 여태 뛰어나진 않았지만, 뒤처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시험도 저 혼자 작전을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팀원이 표적을 버리고 이탈했을 때, 자신은 끝까지 표적을 목표로 했다.

작전 성공은 악마를 제거하는 것. 악마 역할을 맡은 요원의 발목에 상처를 냈으니 태양은 조건을 충족시켰다.

그런데 작전을 끝까지 이행한 자신은 탈락하고 이탈한 마이클은 합격했다. 태양은 그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던 거였다.


그러나 태양의 말에 밥은 냉소를 지었다.


“성공? 너희 팀은 완벽하게 작전실패다. 굳이 원인을 따져보자면······.”


밥은 손가락으로 태양을 가리켰다.


“너. 네가 작전실패의 원인이다.”


“무슨······!”


“네가 무슨 자격으로 그렇게 당당하게 따지는지 모르겠지만, 알려주마. 어차피 너는 이제 집으로 돌아갈 테니,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다.”


끼익-


밥은 의자에서 일어나 태양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의 커다란 몸집이 가까이 다가오자 상대적으로 태양의 몸집은 마치 어린아이같이 보였다.


아주 가까운 거리. 밥은 소름 끼치게 태양을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태양은 밥의 눈빛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그런 위화감.


“신봉자 역 요원 다섯을 룩에게 보낸 건, 리더의 판단과 그에 따르는 팀원들의 태도를 보기 위함이었다.”


엑소시즘은 전적으로 계급과 명령체계이다. 특히 작전 간 킹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그래서 킹은 경험으로나 이론적으로나 다른 팀원들보다 뛰어난 자가 맡았다. 지금은 훈련 시기에 교육생이 킹을 맡았지만, 밥이 평가하고자 한 것은 킹의 명령을 팀원이 얼마나 잘 따르느냐였던 것이다.

하지만 태양은 킹의 판단을 어기고 단독 행동을 했다. 밥은 지금 그것이 탈락의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명령 체계라고는 하지만 마이클은 말도 안 되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걸 어떻게 따르라는 겁니까!”


“작전에 대한 명령권은 본부와 킹에게 있고 그에 따른 모든 책임도 그들이 짊어지는 거다. 팀원인 네가 판단하는 게 아니다. 너도 알고 있을 텐데?”


“그렇다고 그런 멍청한 짓을 해야 했다는 겁니까! 이게 실제 상황이었다면 놓친 그 악마가 도시 한복판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겠습니까? 이건 억지입니다!”


태양은 흥분한 나머지 상급자에게 해서는 안 될법한 강한 어조로 항의했다.

킹이 신도 아니고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는 거였다. 그런데 닥치고 명령에 따르라니, 태양의 입장에선 밥의 말은 전혀 논리적이지가 못했다.


하지만 밥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내가 킹을 아무에게나 줬다고 생각하나? 나는 작전에 있어 가장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교육생에게 킹을 주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7팀에 킹은 아주 만족스러운 판단을 했지 .”


“뭐?”


“너는 킹의 명령에 따라 룩과 폰을 지원했어야 했다. 통상 전투능력이 다른 팀원보다 떨어지는 둘이 표적이 되었다면 버티기는 힘들 터. 나이트인 너는 퀸과 함께 어떻게든 룩을 살리기 위해 최대한 빠르게 지원을 간 뒤, 상부에 지원을 요청하면서 팀을 재정비해야 했다.”


“그럼 표적은? 악마는 내버려 둡니까!”


“바보 같군. 표적은 쉽게 도망치지 못해. 성역이 구축된 순간부터 내부에서 성역을 깨기란 제아무리 악마라도 쉽지 않은 일이지. 더구나 성역에 접근하려면 비숍의 사정권으로 들어갈 테니 시간 벌기도 불가능하진 않지. 그리고 어차피 룩이 죽는 순간 성역에서 벗어난 악마가 순식간에 건물 안에 있던 너희 둘을 찢어 죽였을 거다. 그러니 확률적으로 높은, 룩을 지원하러 가는 선택 한 가지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너의 단독행동 때문에 다섯 신봉자에게 너의 팀원은 모두 전멸했다. 너는 작전 성공을 했다고? 실제상황이었으면 넌 이미 죽었다. 왜냐? 네가 악마 역 요원에게 상처를 주기 훨씬 전부터 성역이 깨져있었거든. 이유는 말 안 해도 알겠지?”


눈치채지 못했다. 눈앞에 표적을 잡기 위해 온 신경을 쏟고 있었으니까. 솔직히 당시 팀원의 상태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태양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성역 안에 없는 악마는 목줄 없는 짐승과도 같기에, 인간인 태양은 그저 순식간에 먹이로 전락해버릴 뿐이었다.


“그리고 너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자신이 틀렸다는 걸 말이야.”


“!”


“감정에 치우쳐서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한 자신이 한심한가? 내가 그래서 너 같은 놈에게 킹을 주지 않은 거다.”


태양은 속을 훤히 들킨 기분이 들었다.

정곡을 찔린 듯한. 감정에 치우쳤다는 그 말이 시리도록 태양을 조여 왔다.


“이름 김태양. 1997년생. 국적 대한민국. 사는 곳 평화시. 모친과 단둘이 살다가 2007년도 어머니 사망. 사망 원인 불명. 그 후 친척 집에 맡겨졌다가 작년에 평화시로 돌아온 뒤, 의미 없이 매일 밤을 거리를 돌아다녔고 플라벨룸 입소 한 달 전쯤 요한 성당 사건 목격자. 그 사건 역시 아직 원인 불명.”


“······.”


“네놈이 플라벨룸에 오기 전 조사한 자료들이다. 정말 수상하기 짝이 없지. 그런데 그런 찝찝한 사건들과 관련 있고 재능조차 없는 네놈이 이곳에 입소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스텔라의 부탁 때문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플라벨룸에 입소하기 위해선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을 과거와 재능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태양은 그 두 가지가 모두 부족했다.


“그래도 성력 발현에 성공하고 훈련도 뒤처지지 않아서 조금은 기대했건만, 역시나···.”


밥은 갑자기 험상궂은 표정으로 태양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잘 들어라, 교육생. 아니 이젠 김태양일 뿐.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면 너는 절대 엑소시스트가 될 수 없다. 네놈의 하찮은 복수놀이는 집에나 가서 하도록.”


태양에게는 사형선고와도 같은 대사를 던지고 밥은 시선을 또다시 시계로 옮겼다. 아까부터 대화 도중 계속 시각을 확인하는 걸 보니 뭔가 바쁜 약속이라도 있는 듯했다.

아마 합격자들 수속에 관한 일정이라도 잡혀있는 거겠지. 어쩌면 이처럼 태양에게 시간을 내어준 것도 밥 나름대로 무언가 기대감이 있었던 거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결국, 밥은 더는 너 따위에게 내어줄 시간은 없다는 듯 태양을 강제로 쫓아냈다.


태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결국 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오자 공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알 수 있었다. 밥의 말이 옳고 자신은 틀렸다는 것을.


하지만 태양은 밥이 말한 그 감정이란 놈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고 싶어 했고 이렇게 무의미한 발걸음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최후의 발악 같은 거였다.


이성으로 감정을 제어할 때마다 감정은 거세게 반항했다.

숨겨져 있던 것까지 모두 다 끄집어내서 어떻게든 이성을 삼켜버리고 오감을 마비시켰다.

하지만 그래도 태양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 감정이 훗날 그놈을 삼키기 위한 원동력이라면 말이다.


아픔, 슬픔, 분노, 집착, 복수 ······.


그 감정들이 엑소시스트에겐 필요 없을지언정 김태양에게는 필요했다.



숙소로 돌아온 태양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정리했다. 몇 가지 되지 않아서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태양.”


짐을 거의 다 정리할 때쯤, 민호가 굳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합격 된 교육생들은 이제 정식 엑소시스트가 되어 전 세계 곳곳에 배치될 예정이었다. 보통 본인이 속해있는 국가에 있는 지부에 배치되게 되는데, 이는 엑소시스트로서 활동하면서 지리적인 정보나 의사소통 원활이라는 이점을 얻을 수 있고 각 나라의 가치관, 고유한 풍습, 문화적 특성 등도 배제할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 소문난 교육생은 유명한 팀에서 스카우트하기도 하고 인력이 부족한 곳으로 배치되거나 원하는 지부로 지원할 수도 있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밟아야 했기에 합격한 교육생들은 며칠 더 플라벨룸에 머물러야 했다.


하지만 민호는 합격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너와 나는 별개야. 만약 나 때문에 포기하느니 어쩌니 하면 평생 너 안 본다.”


“······.”


“나는 나 대로 할 거니까. 너는 너 대로 하면 되는 거야.”


민호는 침묵했다.

태양의 말에 진심과 단호함이 배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그래, 민호 군. 너라도 좋은 엑소시스트가 되렴.”


히데오가 옆에서 민호의 등을 팡팡 치며 심심한 위로를 전했다.

그는 평소와는 다른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애써 밝게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정작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은 히데오 본인이었다. 겉으로는 ‘내 주제에 무슨’ 이러고 있지만, 속은 분명 착잡할 테니까. 히데오도 죽을 만큼 열심히 해왔다는 걸, 적어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하하.”


괜히 더 침울해진 분위기에 히데오도 더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한동안 정적이 흐른 뒤, 짐 정리가 끝난 태양이 히데오를 보며 말했다.


“난 지금 나갈 거다.”


“벌써? 시간 좀 남았잖아.”


“가 있으려고. 여기 더 있을 이유도 없고.”


태양은 괜히 자신이 있으면 민호가 더 불편할 거로 생각했기에 최대한 빨리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먼저 가! 나는···쉽게 발길이 안 떨어지네. 치오는?”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치오는 조용히 이불 속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이불 속에서 소리 없이 울었는지, 얼굴엔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저는······.”


치오는 퉁퉁 부은 얼굴로 작은 입술을 우물우물했다.


치오 역시 탈락한 인원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치오는 태양과 히데오와는 다른 조치를 받았다.

탈락한 치오가 받은 명령은 ‘교황청으로 오라'였다.

당장에 엑소시스트로 활동시키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치오를 교황청에서 교육할 목적인 듯했다.

아무리 탈락했다 한들 치오의 힘을 엑소시즘에서 포기할 순 없었던 거였다. 그리고 어차피 치오에게 돌아갈 집은 없었다.


“하하. 너 세아 보고 가고 싶구나?”


우물우물하는 치오의 속마음을 금방 눈치챈 히데오가 나름 밝게 웃으며 물었다.


그러자 치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치오도 오늘 플라벨룸을 떠나기에, 마지막으로 세아를 보고 싶었던 거였다.

이곳에서 지낸 일 년이란 시간 동안 치오에게 세아는 친누나 혹은 엄마와도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세아는 치오를 정말 많이 챙겨주고 예뻐해 주었다. 무표정이었고 애정 섞인 말 같은 것도 없었지만, 치오는 그녀의 진심을 모두 느꼈다.


“근데 아쉽지만 힘들 거야. 걔 지금 난리 났어. 전 세계적으로 스카우트하려고 줄을 섰다니까!”


“저, 정말요?”


“응. 이곳저곳 엄청 불려다니는 것 같던데?”


그럴 만도 했다.

이번 기수 최고 엘리트를 뽑자면 단연 세아였으니까.

잠재력까지 우수하다고 평이 났으니 국적 불문하고 모두 자기네 소속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 파견 나온 요원들의 입으로 전해진 엄청난 미모도 한몫했을 것이다.


치오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시무룩해하더니 말없이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고생들 해라.”


태양은 발을 움직였다.

그리고 아주 잠깐, 일 년간 지냈던 방안 풍경을 마지막으로 한번 보았다.

그저 평범한 방 안 풍경. 그러나 이곳을 평범하지 않게 만든 건, 이곳을 기점으로 퍼져있는 기억들과 감정들이 만든 기록 때문이었다.


태양은 다시는 오지 못할 그곳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갔다.


*


태양의 시야에 공터가 보였다. 일 년 전, 처음 발을 내디딘 그 공터. 그리고 공터에는 예정대로 처음에 타고 온 전용기가 있었고 처음과 같은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자신의 위치 역시도 처음과 다른 게 없었다.


하지만 처음과는 다른 것이 마음속에 있었다.

플라벨룸에서 보낸 일 년이란 시간이 무의미한 시간이 되지 않도록, 태양은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될까 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다시 될까 봐, 지금까지 두려워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했지만, 결국에 이렇게 돼 버렸다.

그러나 여태껏 자신을 조여 오던 미래가 막상 현실이 되고 나니까 별거 없었다. 두려움도 좌절감도 들지 않았다. 후회는 더더욱 없었다.

어차피 포기하지 않을 거니까.

그저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태양은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봤다.

이제는 익숙해진 유적 같은 건물들과 훈련장이 보였다.


‘나, 뭐하냐···.’


시답지 않은 감상에나 빠져있다니. 태양은 고개를 흔들며 시야를 제자로 돌렸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시야에 없었던 게 보였다.


분명 아무도 없는 공터와 착륙해 있는 전용기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용기 앞에서 태양을 맞이하듯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


그 남자를 본 순간 숨이 멎었다.

온몸의 털이 고슴도치처럼 곤두서고 자신도 모르게 몸에 구멍이라도 난 듯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뇌와 신경이 마취라도 된 듯 마비가 되어갔다.

남자를 보자마자 순식간에, 단 1초 만에 말이다.


'아······.'


고장 난 기계처럼 소리도 내지 않고 입만 뻐끔댔다.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 세상이 얼어붙은 것만 같은 착각.

시야도 흐리게 보였다. 주변에 나무도 전용기도 공터의 땅도 일그러져 갔다.

하지만 눈앞에 서 있는 남자만은 똑똑히 보였다.

허상 따위가 아니었다. 앞에 있는 것은 진짜라고 심장이 미친 듯이 소리치고 있었으니까 알 수 있었다.


남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몸속에 들어온 뱀 한 마리가 마치 내장을 휘젓고 다니는 듯한 소름 끼치고 불쾌한 기분이 온몸을 지배했다. 이 기분, 태양은 분명 느껴 본 적이 있었다.


이 기분을 느끼게 만든 상대와 눈이 실제로 마주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남자는 얼굴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아니 확실했다.

그는 저 곰 인형 탈 너머로 자신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참으로 오랜만에 뵙네요.”


곰 인형 탈을 쓴 남자는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때와 같이 남자의 말투는 여성스럽고 부드러웠다.


또 각, 또 각.


남자는 영국신사처럼 품위 있게 걸어서 태양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때까지 태양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굳어버린 몸과 생각이 제대로 돌아가질 않아서 그저 남자가 걸어오는 장면을 혼이 나간 모습을 멍하니 볼뿐이었다.


“이제야 눈높이가 맞는군요. 오래 기다렸습니다. 이 순간을.”


남자는 커다란 인형 탈을 태양에게 들이밀었다. 두 사람의 얼굴이 거의 맞닿았다.


“무슨 말씀이라도 해보세요? 이래서야, 옛날이랑 다를 게 없지 않습니까?”


그 날 이후, 태양은 수십 번도 더 생각했다.

언젠가 놈을 만났을 때, 어떤 감정으로 어떤 행동을 할까.


그리고 그때마다 항상 똑같은 모습에 도달했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앗아간 놈을 갈기갈기 찢어놓겠다고, 죽여 달라고 무릎 꿇고 빌 정도의 고통을 주겠다고.

그러기 위해 살아왔고, 노력했고,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채, 미쳐버린 정신을 붙잡고 비어버린 가슴에 분노와 복수로 채우면서 버텨왔다.


그리고 지금 놈을 만났다.

평생을 바쳐서 놈을 찾겠노라고 생각했건만, 이렇게나 빨리, 그것도 어이가 없는 장소에서, 어떠한 준비도 하지 못한 채.


그런데 사실 그런 건 상관없으리라. 평생을 목표로 한 녀석이 제 발로 나타나 줬으니, 태양에게 이 이상의 행운은 없었다.


하지만 태양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막상 놈을 만나자 들었던 감정은, 분노도 희열도 아닌 두려움이었으니까.


그 옛날 놈의 앞에서 떨고 있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놈에 대한 트라우마가 모든 감각과 생각을 잠식했다.

태양은 아직도 십 년 전 그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인형 탈 얼굴이 옆으로 비틀어졌다.

의아함을 나타내는 몸짓치고는 90도로 꺾인 목이 기괴해 보였다.


“흠, 역시 아직은 일렀던 거 같군요. 제가 나타나는 건.”


아주 조금 태양의 사고가 돌아왔다.

그 조금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저놈이 노리는 게 뭐지? 저놈이 하는 말은 뭐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거지? 그리고 도대체 왜 플라벨룸에 놈이 있는 거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떠한 판단도 할 수가 없었다.


“근데 저도 어쩔 수가 없었답니다. 당신이 이렇게 허무하게 탈락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남자는 진심으로 곤란한 듯한 말투였다.


남자가 왜 곤란한지는 태양이 알 리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의 말을 듣기는커녕 공황상태에 빠져 허우적댈 뿐이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작게 귓속말이 들려왔다.


“제가 당신을 위한 선물을 준비했답니다.”


속삭이듯 들려온 말에 태양은 정신이 바짝 들었다.


“자, 첫 번째 선물. 저는 당신의 이름을 알고 있지만, 당신은 제 이름을 모르시죠?”


남자는 태양의 귀에 다시 속삭이듯이 말했다.


“코브렐루.”


곰 인형 탈을 쓴 남자는 자신을 코브렐루라고 소개했다.

신기하게도 태양의 혼란스러운 머릿속에 그 네 글자만은 똑똑하게 각인되었다.


“이제 두 번째 선물이에요. 이건 좀 큰 선물이니까, 기대하셔도 됩니다. 자, 하나.”


남자는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그에 맞춰 태양의 심장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둘.”


불안하다. 미친 듯이 불안하다.

태양은 이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분명히 무언가 일어날 거라는 예감, 아니 확신이 들었다.


“하나.”


콰아앙!!!!!!!!!


대지를 찢는 듯한 폭발음에 고막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 소리와 함께 바람에 실려 온 뜨거운 열기와 화약 냄새가 소리와 걸맞은 폭발이 일어났음을 알려주었다.


태양은 본능적으로 소리가 난 쪽으로 몸을 돌렸다.


불길에 휩싸인 플라벨룸에 악마의 형상을 한 듯한 검은색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04 - 대악마의 심장(1)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댓글 남겨주신 분들 드립니다. 정말 덕분에 힘이 많이 납니다. ㅠㅠ
다음 화는 내일 바로 올리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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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10 – 코브렐루(5) +4 18.05.05 71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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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10 – 코브렐루(3) +2 18.05.03 69 5 12쪽
127 10 – 코브렐루(2) +8 18.04.28 87 7 17쪽
126 10 - 코브렐루(1) +2 18.04.27 75 6 15쪽
125 09.5 - 위로 +3 18.04.26 70 6 14쪽
124 09 - 신봉자 소탕 작전(epilogue) +8 18.04.21 86 7 12쪽
123 09 – 신봉자 소탕 작전(12) +4 18.04.21 78 6 15쪽
122 09 – 신봉자 소탕 작전(11) +2 18.04.21 76 6 15쪽
121 09 – 신봉자 소탕 작전(10) +5 18.04.19 83 6 20쪽
120 09 – 신봉자 소탕 작전(9) +3 18.04.18 77 7 15쪽
119 09 – 신봉자 소탕 작전(8) +2 18.04.15 75 5 16쪽
118 09 – 신봉자 소탕 작전(7) +2 18.04.14 81 5 10쪽
117 09 – 신봉자 소탕 작전(6) +4 18.04.13 75 5 12쪽
116 09 – 신봉자 소탕 작전(5) +4 18.04.12 80 5 11쪽
115 09 – 신봉자 소탕 작전(4) +1 18.04.11 75 5 12쪽
114 09 - 신봉자 소탕 작전(3) +2 18.04.06 93 6 17쪽
113 09 – 신봉자 소탕 작전(2) +2 18.04.05 89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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