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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연가(還生戀歌)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로맨스

독초쥬스
작품등록일 :
2017.02.10 00:02
최근연재일 :
2018.08.11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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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1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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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1화. 환생하다

DUMMY

이름도 모르는 노파를 구해주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연인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리고 죽음과 함께 나를 찾아온 신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생에서는 남이 아닌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살아보라고

그 연인만의 영웅이 되어보라고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그녀만의 영웅이 되리라고






***






그녀와 함께 부모님께 첫인사를 드리러 가는 길이었다.

신호를 기다리며 그녀의 손을 잡고 있던 나는 얼마 남지 않은 보행자 신호를 사이에 두고 힘없이 넘어지는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안전띠를 풀었다.

“어? 어! 저분 왜 저러시지?”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

차가운 바닥에 넘어지신 할머니는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차 앞에 엎드려 계셨다. 결국 참지 못한 나는 문을 열고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어깨를 툭툭 치며 할머니의 의식을 확인했다. 다행히 눈동자는 움직였고 미약한 목소리로 연신 미안하다며 사과하신다.

“제가 병원까지 모셔다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그때. 할머니의 몸을 덮어주는 손길이 보였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체온유지가 우선이야.”

“역시 간호사인가?”

“그러는 당신은? 요즘 군인들 제대로 교육받나 보네?”

나는 육군 장교였고 그녀는 대학병원 간호사였다. 다행히 나도 사전에 교육을 받아 이런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에 재빨리 할머니를 등에 업고 내 차로 옮겨드리려 했다.

그런 그때

“어?”

내 몸과 그녀의 몸. 그리고 할머니의 몸이 허공에 붕 떴다. 온 몸이 부스러지는 고통이 압축이라도 된 듯 한 번에 찾아왔다.

교통사고

화물트럭 운전자의 졸음운전으로 인해 나와 그녀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






새하얀 공간

무엇 하나 존재하지 않는 무의 세계에서 눈을 뜬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다.

“어릴 적부터 너는 힘없는 자를 돕고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는 손을 내밀었지.”

“너는 누구니?”

내가 찾고 있는 건 내 연인이었다. 그런데 연인이 아닌 내 허리 높이의 어린 꼬마아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내 이름이 너무 많아서 뭐 하나 콕 집어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일단 신이라고 해둘까?”

“······신. 결국 난 죽은 건가?”

“화려하게 죽었지. 젊은 나이에 모두에게 인정받아 서른이 되지도 않은 시점에 소령이라는 계급을 달고 찬란한 길을 걸어야 했던 넌. 졸음운전의 피해자가 됐지.”

“그래? 그런데 그 할머니는?”

“운명의 장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노파라면 살아있어.”

“다행이네.”

내 죽음은 신경 쓰지 않고 이름 모를 할머니의 걱정을 했다.

“역시 넌 환생의 환생을 거듭해도 바뀌지 않는구나.”

“환생?”

“내가 너를 마중 나온 것도 벌써 세 번째야.”

“세 번?”

“내가 만든 세상의 법칙에 의해 선한 자는 환생을. 악한 자는 지옥에 던져버리거든. 넌 참고로 세 번의 삶을 모두 선하게 살았고 내가 매번 마중을 나와 줬지.”

“왜 마중 나와 주는 거야?”

“내가 직접 창조해낸 영혼이니까.”

신이라 자칭한 소년은 은은한 미소를 그리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참 아쉬워. 세 번의 생에서 너는 단 한번도 그 아이를 지키지 못했으니까. 남자로서는 꽝인가?”

“그 아이?”

“네 연인. 누군가를 지키기에 눈이 멀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네 연인을 지켜주지 못했지. 이번 생에서도 봐. 넌 노파를 살리려다 결국 네 연인의 죽음을 막지 못했어.”

소년의 지적은 날카로웠고 그 날카로운 지적은 내 가슴을 쑤셨다.

“그런 너에게 다른 기회를 주려고 해. 이번에는 남이 아닌 네 연인만을 위한 삶을 살아봐. 그래! 그 아이만의 영웅이 되어보는 게 어때?”

“영웅?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눈을 뜨면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작별선물을 줘야겠네. 흠······뭐가 좋을까?”

발을 동동 굴리며 생각에 잠긴 소년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눈을 번뜩이며 내게 찰싹 달라붙었다.

“그래! 그게 딱 좋겠네! 이번 생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채 환생시켜줄게. 하지만 그러면 인생이 너무 재미없겠지?”

“아까부터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말했다시피 눈을 뜨면 알게 될 거야. 아. 시간이 다 됐네. 나도 바쁜 몸이라서 말이야. 그럼 이만.”

내게 손을 흔들며 점점 멀어져가는 소년은 무언가 속삭이며 끝내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결국 난 신이라 자칭한 소년이 마지막에 속삭였던 그 말을 듣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






온몸이 비명일 질렀다.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는지 몸은 삐쩍 말랐고 시야는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흐렸다.

일단 밝은 것으로 보아 해가 떠 있는 시간은 확실하다. 하지만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으으······.”

소년과 헤어진 이후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 몸은 내 몸이 아닌 듯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여기······는?”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몸이라는 것에 익숙해진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흐리던 시야가 점점 초점이 맞춰지듯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내 입은 천천히 벌어져 갔다.

“······산?”

나무와 푸른 잡초들. 그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꽃들과 귀를 간질이는 새들의 노랫소리에 내 정신은 이상한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대체 여기는······어디야?”

소년의 말대로라면 난 환생했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산일까?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 내 머리가 거칠게 흔들렸다. 고개를 저으며 어떻게든 현실을 받아들이려 했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앉아만 있던 나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넌 또 뭐니?”

“흡!?”

“여긴 내 허락 없이는 들어올 수 없는 곳인데?”

시선을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골짜기를 형성하고 있는 풍만한 가슴이 처음으로 보였다.

“!?”

“어린아이여도 여자의 매력은 아는 건가? 후후! 귀여워!”

뒤늦게 얼굴을 확인한 나는 지금껏 미녀라 불리는 연예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여인의 아름다운 미모에 넋을 놓았다.

“아하하! 넋을 놓을 정도로 내가 아름다운 거야? 이거 물건이네!”

“······.”

“좋아! 불법침입은 눈 감아 줄게. 그리고 곰팡이처럼 늙어가는 노친네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지루했는데 잘됐네. 너! 내 제자 할래?”

제자?

“그 침묵. 받아들인 거로 해석해도 되는 거지? 아싸! 드디어 나한테도 제자가 생겼다! 야호!”

그 말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는 여인의 옷차림에 위화감을 느꼈다. 내가 살아온 사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만화나 소설에나 나올법한 옛날 옷을 걸치고 있는 여인의 모습에 나는 가장 먼저 해야 했을 질문을 지금 던졌다.

“지, 지금 대통령이 누군가요?”

“대통령?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이 나라를 이끄는 사람이 누구냐고요!”

“흐음 글쎄? 세상이랑 벽을 쌓고 산지 너무 오래 돼서 잘 모르겠는데? 만약 그 빌어먹을 놈이 살아있다면 아마 그놈이겠지?”

“그러니까 그놈이 누구냐고요!”

목소리를 높인 나를 찌푸린 눈매로 쳐다본 미녀가 헛웃음을 흘렸다.

“어쭈? 하늘 같은 스승한테 버르장머리 없게 짜증을 내? 오냐! 그리 궁금하면 알려줄게! 조금만 기다려!”

그 대답과 함께 땅을 박차고 허공에 튀어 오른 미녀가 믿어지지 않는 속도로 앞으로 쭉 나아갔다. 저 멀리 날아가는 새들조차 앞지른 미녀는 끝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저건 또 뭐야? 영화야?”

그렇게 혼자 속삭이던 나는 허공에 까만 점이 보이자 이마를 찌푸렸다.

그리고

쿵! 소리와 함께 눈앞에 먼지가 솟아올랐다.

“초왕이다! 됐냐!?”

“초······왕?”

“그래! 이 나라의 황제! 그 빌어먹을 놈이 아직 살아있더라! 그러면 이제 내 차례지?”

“······?”

“어디 스승 무서운 줄 모르고 말대꾸를 해!”

그 말과 함께 그 날. 내 엉덩이는 붉게 달아올랐다.






***






그녀는 스스로를 선녀라 칭했다. 이름을 물어보니 “아직 내 이름을 알기에는 이르지 않아?” 라는 이상한 대답을 늘어놓으며 나를 데리고 산을 올랐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니 잘 다듬어진 길이 보였고 선녀는 그 길을 오르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참 신기하단 말이야? 이곳은 내 진법으로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곳인데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야?”

자칭 신이라는 소년이 나를 이곳으로 보내줬다고 말한다면 이 선녀라는 사람은 내 말을 믿어줄까?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머리를 긁으며 어색하게 답했다.

“그······자칭 신이라는 소년이 절 여기로 보내줬어요.”

“자칭 신? 그리고 소년은 또 뭐야?”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나는 유독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선녀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하늘이 너를 여기로 보냈다는 거야?”

“하늘이요?”

“그래. 하늘.”

선녀의 대답에 나는 옛날 사람들이 하늘을 신처럼 모셨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늘이 절 여기로 보내줬어요!”

“······그 말을 믿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뭐 평범하게 생각하면 이곳에 내 허락 없이 들어온 네 말을 믿는 게 현명한 거겠지. 그래. 네 말 믿어줄게.”

“가, 감사합니다.”

왜 내가 감사해야 하는 거지?

생각해보니 참 이상했다.

“아. 도착했다.”

“어?”

선녀의 발이 멈추고 동시에 내 발도 멈췄다. 그리고 눈앞에 드러난 엄청난 광경에 입을 떡 벌렸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과 거대한 호수에서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동물들. 거기에 동물들의 휴식처가 되어줄 그늘을 만들어주는 거목들이 빼곡히 솟아 있었다.

그 광경에 압도된 나는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살던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 허공에 뛰어올라 독수리처럼 날아가는 여인. 거기에 초왕이라는 이름의 황제. 그리고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이곳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설마······.”

그 설마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당직이 없는 날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책방에서 책을 빌렸다. 그 대부분이 무협지와 판타지였고 나는 이 세상이 무협지에서 읽은 세상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협?”

“뭐라는 거야? 잔말 말고 따라오기나 해!”

내 혼잣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선녀는 거칠게 내 손을 잡고는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녀가 향하는 곳을 바라보던 나는 연신 감탄사를 자아내며 주위 풍경을 두 눈에 담았다.

하늘 높게 솟아오른 높은 빌딩들과 소음을 내는 차들이 멈추지 않고 달리는 세상과는 너무 비교되는 아름다운 자연이었다.

그런 거였구나.

인간은 이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고 그곳에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을 세운 거였어.

“뭘 그렇게 놀라?”

“여긴 참 아름다운 곳이네요.”

“그렇지? 역시 노친네들이랑은 다르다니까! 여긴 내가 선택한 곳이야. 조화가 잘 이루어진 곳인데 중원 전역을 돌아봤지만 이곳보다 아름다운 곳은 본 적 없어. 그래서 이곳을 선택한 거야.”

“중원······.”

“그런데 네 집은 어디에 있어?”

갑작스럽게 파고드는 선녀의 질문에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과연 이 세상이 맞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다. 섣부른 판단이 내 안전을 깨트릴 수 있기에 나는 신중하게 대처했다.

“사······천?”

생각나는 지역 중 한 곳을 그냥 툭 하고 던졌다.

“사천? 왜 사천에서 이 먼 곳까지 온 거야?”

“여, 여기가 어디인데요?”

“어디긴 어디야? 곤륜이지.”

곤륜?

설마 서왕모(西王母)의 전설로 유명한 그 곤륜산을 말하는 걸까?

“그럼 여기에 자리 잡고 있는 문파의 이름이······.”

“당연히 곤륜파(崑崙派)지.”

선녀의 대답에 나는 확신을 가졌다. 중원이라는 표현과 이곳이 곤륜산이라는 말과 그 곤륜산에 자리 잡고 있는 문파가 곤륜파라고 하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무협의 지식과 일치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선녀라 밝힌 이 여인은 정체가 뭘까? 무협지에서는 흔히 선녀라는 별호를 사용하는 여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이거나 단신으로 대문파도 박살 낼 수 있는 강한 힘을 소유한 여인들이나 사용하는 별호였다.

이 여인은 어느 쪽일까? 라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었다.

인간을 초월한 힘

단 한 번의 도약으로 허공으로 뛰어올라 새처럼 날아가는 그 모습을 직접 목격했기에 나는 눈앞에 있는 이 여인이 상당한 경지에 오른 무림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제가 상상했던 곤륜산과는 다르네요.”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 이곳은 평범한 인간이 발을 들일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평범한 인간이요?”

“그래. 너같이 평범한 인간은 원래대로라면 이곳에 발조차 들이밀 수 없어.”

“왜요?”

“왜긴 왜야? 내가 아까 말했잖아? 이곳은 내가 만든 진법으로 세상과 단절되었다고. 이 세상에서 이 진법을 파기할 수 있는 이는 나 이외에 존재하지 않아. 그 노친네들도 포기할 정도였으니까.”

“그 노친네라는 분들은 대체 어떤 분들이신가요?”

첫 만남에서도 그녀는 노친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말 그대로 노친네들이야.”

“그렇지. 말 그대로 노친네들이지. 허허허!”

“······.”

“······.”

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녀와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웬일로 조용하나 했더니 이런 꼬맹이와 놀고 있었느냐?”

“노, 놀긴 뭘 놀아! 이 노친네야!”

“허허허! 인간이라고는 길가에 뒹구는 말똥보다 더 못한 존재라고 매일같이 떠들어대더니 갑자기 마음이 바뀐 것이냐?”

“윽!”

기가 하늘을 찌를 것처럼 보였던 그녀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슬쩍 뒤를 돌아 목소리의 주인을 보았다.

배꼽까지 늘어진 흰 수염과 깔끔하게 뒤로 넘긴 백발이 참으로 어울리는 노인이었다. 거기에 허름한 옷이 너무나도 잘 어울려 순간 노인을 신선(神仙)으로 착각할 뻔했다.

설마 진짜 신선인 건가?

“그런데 꼬마야. 이 위험한 곳에 무슨 일로 온 것이냐?”

“저도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라······.”

“그럼 저 미친년이 너를 이곳으로 끌고 온 것이냐? 어허. 사내의 맛을 이런 꼬맹이로 대체하려고 한 것이냐? 드디어 정신줄을 놓은 것이냐?”

“내가 왜 미친년이야! 그리고 사내 맛을 모르다니! 이 망할 노친네야! 내가 처녀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데!?”

“딱 봐도 처녀처럼 보이지 않느냐?”

“이 망할 노친네가!”

“그것보다 설명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곳은 불가침조약으로 인해 외부와 단절된 곳이다. 이런 곳에 어린아이를 데려오다니. 제정신이더냐?”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노인의 말과 함께 주변 일대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고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임에도 이상하게 하늘이 어두워져 갔다.

“어쭈? 오랜만에 한판 뜰까?”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내 옷깃조차 건들지 못했거늘. 오랜만에 엉덩이에 불이 나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이 할아버지가! 다 큰 처자의 엉덩이를 때렸었어!?

두 사람 사이에서 갈 길을 잃은 나는 발을 동동 굴리며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런 그때

“아미타불.”

활화산처럼 불타오르는 두 사람 사이에 불쑥 나타난 민머리의 늙은 노인이 무덤덤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린아이 앞에서 이 무슨 추태인가? 두 사람 모두 진정하게.”

“······불성(佛性).”

“검신(劍神). 마음 넓은 자네가 양보하게나.”

“자넨 늘 이런 식으로 내 앞을 막았었지.”

“미안하네. 그리고 늘 고맙네.”

두 노인의 대화가 끊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하늘이 맑아졌고 땅을 검게 물들였던 먹구름들이 점점 사라져갔다.

그리고 민머리의 노인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미타불. 하늘은 어찌하여 이 아이를 우리들에게 보내신 것일까?”

“······.”

“아이야. 이름이 무엇이냐?”

이름?

환생 전에 사용했던 이름을 말해야 하는 걸까? 마땅히 댈 이름이 없기에 결국 나는 환생 전의 이름을 말했다.

“하후(河厚)입니다.”

“하후······그래. 만나서 반갑구나. 내 이름은 유광이라 한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모두에게 유광대사라 불렸단다.”

“유광대사······.”

“갑작스러울지 모르겠지만 하늘의 뜻에 따라 너를 우리들의 제자로 받아들여야겠구나.”

“네?”

갑작스러워도 너무 갑작스럽다.

딱 봐도 평범한 이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고 우리들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신경 쓰여 선녀와 백발의 노인을 번갈아 보았다.

“너는 오늘부터 우리들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그 말에 나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루가 이리도 길게 느껴진 적은 천리행군 이후로 처음이었다.


작가의말

오랜만에 복귀합니다. 부디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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