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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연가(還生戀歌)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로맨스

독초쥬스
작품등록일 :
2017.02.10 00:02
최근연재일 :
2018.08.11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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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0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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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43-2화. 선택을 강요받다

DUMMY

오만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오만한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사내의 등 뒤에 나타난 수라는 지금의 이 사내가 얼마나 강한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혈교의 창시자로서 수라혈신의 이름을 가진 그가 데려온 백강시들은 결국 장식품에 불과했던 것이다.

“자. 선택해.”

“······.”

“뭘 그렇게 망설여? 선택을 하던. 아니면 발로 뻥 차던가 해야 할 거 아니──”

강한 돌풍이 불어 일으켜 사내를 저 멀리 날려 보낸 나는 황급히 그녀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내 발은 세 걸음째에서 멈춰버리고 말았다.

“어디서 수작질이야? 다 죽여줄까?”

귀신같이 앞에 나타난 사내가 짜증 어린 표정으로 손을 움직인다.

“그만!”

“그만? 그럼 결정한 거야?”

“왜 그녀들을 죽이려고 하는 거지?”

“음? 설마 모르는 거야?”

“······.”

“나 참. 넌 대체 지금까지 뭘 배운 거야? 응? 백리성. 그 새끼가 말 안하든?”

검신스승의 이름을 꺼낸 사내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아까 말했지? 내가 혈교를 만든 이유를 네가 안다면 나한테 덤빌 수 없을 거라고.”

“그 이유가 뭐지?”

“하아. 내가 답할 이유는 없지. 아아. 재미없어졌다. 그냥 다 죽어. 이제 귀찮으니까.”

사내의 손이 움직이자 수라가 움직였다. 점점 존재감이 짙어지는 수라는 거대한 형체를 만들어 내 바닥에 내려앉았다.

“저것들의 십팔나한진을 뚫은 건 칭찬해주지.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 말과 함께 다시금 백강시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그 사이에 거대한 수라가 나를 향해 붉은 대도를 던졌다.

“큭!?”

쿵!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렸다. 그 충격의 여파로 노야와 그녀의 몸이 흔들렸다.

“노야! 소저!”

“하하하하! 한눈팔 여유는 있나 보네?”

“제길!”

“그래! 절망해라! 네 절망은 곧 내 행복이 될 테니까!”

단단한 백강시들의 공세에서 벗어난다 해도 그 앞에는 수라가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공방 속에서 내 마음은 전전 초조해져갔다.

팔짱을 낀 채 나를 지켜보고 있는 수라혈신의 뒤에 그녀와 노야가 있다. 노야는 이미 한계점에 도달해있는 상태다. 이 이상 늦는다면 정말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큭!”

육체는 힘들지 않았다.

대신 마음이 힘들었다.

백강시들의 연계를 받아내도 힘들지 않았다.

수라의 참격도 힘들지 않게 받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유지되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내 손에서 빛나는 이 봉으로 백강시 한구를 쳐냈다. 마치 공처럼 저 멀리 날아가는 백강시가 힘없이 떨어져간다. 끝까지 발버둥 치듯 맹렬한 공방 속에서 억지로 빈틈을 찾아내 백강시를 한구씩 처리해갔다.

‘왜 저렇게 여유로운 거지? 왜 이 기회를 이용하지 않는 거지? 이유가 뭐야. 뭐냐고!’

답답해도 너무 답답했다.

그녀를 지키기 위한 힘. 무신이라 칭송받는 스승들의 무학을 전부 빨아들여 최강의 힘을 가졌음에도 왜 난 이렇게 무력한 거지?

그리고 왜 저자는 그녀를 죽인다고 말만 하는 거지?

이렇게 나를 묶어뒀으면. 아니 애초에 나를 기다리지 않아도 그녀를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사내는 그만큼 강했으며 천하의 노야조차도 그렇다 할 반항도 못 하셨다.

‘뭐지. 난 지금 뭘 놓치고 있는 거지?’

저렇게 여유로운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자에게 득 될 것이 없다.

제갈세가에 펼쳐진 천라지망(天羅地網)도 점점 이곳으로 좁혀지고 있는 상황이다. 제아무리 수라혈신이라 불리는 저자라 할지라도 정파명숙의 합공을 혼자서 견딜 수는 없을 것이다.

‘찾아내. 찾아내. 찾아내! 무조건 찾아내! 내가 놓친 무언가를!’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가라앉은 두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이 자리에 놓친 무언가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놓친 것을 볼 수 있었다.

“뭐야······이게?”

“뭐긴 뭐야? 기다리는 거지.”

“──!?”

처음부터 왜 몰랐을까?

이곳에는 수라혈신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남궁일지가 상대하는 여인 또한 혈교도고 이 백강시들 또한 혈교의 괴물이다. 그리고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상대하는 이들 또한 혈교도고 이 일대를 둘러 쌓고 있는 이들 또한 혈교도라는 것을 말이다.

‘기다린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자리에 서서 한곳을 응시하고 있는 이들의 숫자는 어림잡아 오십은 되어 보였다. 저 많은 혈교도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과연 정상일까?

거기에 나는 이 자가 얼마나 치밀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설마 이 모든 게 계획된 일인가?”

“그렇다고 하면?”

사내의 대답에 나는 확신했다.

이 사내의 눈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마른하늘에 반짝이는 별 하나가 떠올랐다.

“빌어먹을!”

별을 본 순간. 내 마음은 초조해져 갔다. 무리하게 힘을 끌어올려 끈질기게 달려드는 백강시들을 처리했다. 과격하다는 단어가 어울리는 지금의 내 모습을 그녀에게 보이고 있다는 것조차 잊은 채 나는 오로지 이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는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그렇게 맹렬한 공방이 점점 식어가고 백강시의 숫자가 다섯으로 줄어들었을 때. 나는 결단을 내렸다.

두 다리가 끊어져도 좋다. 무조건 이 자리를 파괴해야 한다. 아니 저 혈교도들이 만들어낸 진을 파괴해야 했다.

“하아아압!”

나답지 않게 힘찬 함성을 내지르고 백강시와 수라의 영역을 벗어나 사내가 버티고 있는 최후의 벽까지 무너트리고 노야와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처음으로 노야와 그녀가 내 영역에 들어왔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때. 내 눈앞에 붉은 핏방울이 튀어 올랐다.

“······?”

“이번에야말로······당신을······지켜줄······거예요.”

내 눈이 이상한 걸까?

왜 내 앞에 남궁일지가 있는 거지?

그리고 왜 남궁일지의 배에 검이 박혀있는 거지?

“자······언니를······지켜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낸 남궁일지가 힘겹게 내 손에 그것을 쥐여준다. 새하얀 천이 스르륵 벗겨져 내용물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주먹 크기의 새하얀 구슬은 영롱한 빛을 내뿜으며 주위의 혈기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무적이라······할지라도······방심하면······안되는거······알죠?”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남궁일지를 껴안은 나는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수 없었다.

“자······당신이······얼마나 강한지를······보여줘······요.”

남궁일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멈추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은 이 현실을 직시하며 내 얼굴을 감싼 그 손이 이끄는대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껏 내가 보았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다. 제왕단은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상태였고 주위 일대는 알 수 없는 글자들이 바닥에 그려져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빌어먹을! 제대로 당해버렸군!”

어깨에 큰 상처를 입은 중년 사내가 다가와 내 어깨를 잡았다.

“자네가 일지가 말했던 자인가?”

“······.”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절망하는 건가!? 이거 실망이군 그래!”

“······.”

“자. 이제 눈을 떴으니 반격해야겠지! 이곳은 나한테 맡기고 저 빌어먹을 괴물들이나 좀 막아주게!”

이미 의식을 잃은 남궁일지를 넘겨받은 중년 사내는 수하들로 보이는 이들에게 무언가 명령을 내리고는 바닥에서 노야를 보살피고 있는 그녀에게 남궁일지를 조심스럽게 넘겼다.

“이게······현실입니까?”

“그럼 거짓이겠나?”

“왜 이렇게 다친 겁니까? 왜?”

“그걸 내 입으로 설명해줄 수는 없네. 난 그저 어디까지나 내 조카딸의 선택을 믿을 뿐이네.”

“······.”

그 대답에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수라의 어깨에 올라탄 사내와 백강시들. 그리고 짙은 혈기를 내뿜는 여인과 그 수하들이 보였다.

“하하하! 이제 빠져나왔나보네. 아니. 구해졌다고 해야 할까? 설마 그 물건을 준비했을 줄이야. 기억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미래까지 볼 수 있는 거였어?”

“너······.”

“하하하! 만나서 반갑다! 다시 내 소개를 할 필요는 없겠지? 그런데 너. 내가 만들어낸 환영속에서 잘 놀더라?”

“······”

“그 빌어먹을 놈들의 제자라도 내 힘을 완벽하게 대처할 수는 없지. 그 증거로 지금의 너는 저년을 지키지 못했어.”

사내의 말에 나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하늘에는 별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

“······이렇게 기다린다고 오실 것 같아?”

“와야지. 그러지 않으면 다 죽어.”

“뭘 하려는 거지? 대체 뭘 위해서!”

“뭘 위해서? 그거야 당연히 그녀를 위해서지.”

“뭐?”

“내가 원하는 건 오직 하나야. 그녀를 되살리는 것. 그것 외에는 관심도 없어.”

그 말과 함께 사내의 곁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녀가 나타났다. 의식이 없는 듯 축 쳐져있는 어깨가 들썩이고 면사에 반쯤 가려졌던 얼굴이 그대로 세상에 노출되었다.

내 앞에 나타나 다른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말했던 정체불명의 여인

그 여인의 등장과 함께 내 머릿속에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른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소서

그렇게 마음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힘이 폭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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