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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연가(還生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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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초쥬스
작품등록일 :
2017.02.10 00:02
최근연재일 :
2018.08.11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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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17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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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7화. 자리를 옮기다

DUMMY

수라혈신과 혈교도가 떠난 후

모두가 입을 열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 곁으로 다가오는 두 인영이 있었다.

늙고 허리가 심하게 굽힌 노파와 그런 노파를 부축하는 젊은 시녀는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내 앞에 도달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염이라 하옵니다.”

“소, 소녀 가주전에서 시녀로 일하고 있는 연이라 하옵니다.”

그렇게 자신들을 소개한 두 시녀는 곧바로 내 뒤쪽에 있는 선녀스승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선녀스승의 품에 안겨 두 눈을 감은 노야를 향해 천천히 절을 올렸다.

그렇게 한 번의 절이 끝나고 두 번. 세 번째가 되자 뒤늦게 제갈무와 남궁후연을 비롯한 제갈세가의 장로들이 땅바닥에 숙여 절을 올렸다.

“노야께선 편히 떠나셨는지요?”

나이 지긋한 노파가 선녀스승을 바라보며 미소를 그렸다.

“응. 편히 보내줬어.”

“그거 다행이군요. 하지만 아쉽습니다. 먼저 가 노야께서 드실 차를 준비했어야 했는데······.”

“그때가 되면 내 동생을 부탁해도 될까?”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지요.”

“고마워.”

선녀스승의 대답에 노파는 망설이는 눈빛으로 노야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선녀스승은 가볍게 손을 저어 노파의 몸을 무형의 기운으로 감싸 안아 자신의 품 가까이 데려왔다.

“작별인사는 해야지?”

“······감사합니다.”

배려를 거절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노야의 손을 잡은 소파가 굵은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한동안 이어진 노파의 울음소리는 모두를 서글프게 만들었다.

그리고 노파의 눈물이 멈추자 기다렸다는 듯이 제갈무와 남궁후연이 다가왔다. 하지만 일정 거리 이후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거기까지야. 그 선을 넘으면 죽을 수 있어.”

새하얀 빛의 벽이 제갈무와 남궁후연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 참. 이 아이를 눕히고 싶은데 괜찮은 장소가 있을까?”

선녀스승의 질문은 제갈세가의 장로이 아닌 노파에게 향한 질문이었다.

“생전 노야께선 자신이 죽으면 그곳에서 하룻밤 쉬게 해달라 하셨습니다.”

“그래? 그럼 그곳으로 안내 좀 해줘.”

“명을 받듭니다.”

노파의 대답에 황급히 노파에게 다가온 젊은 시녀가 노파를 부축했다. 그리고 노야를 품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난 선녀스승은 자신의 뒤에 있는 그녀들을 보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으니 걱정하지 마. 그리고 그 아이를 데리고 나를 따라오도록 해.”

태연한 표정으로 관통상을 입은 남궁일지를 본 선녀스승은 그런 남궁일지를 살피고 있던 제왕단주를 향해 그렇게 말하고는 시선을 그녀에게로 향했다.

“너도 따라와.”

“······네.”

“그리고 아들! 언제까지 그런 볼품없는 모습으로 땅바닥이랑 연애질할 건데?”

“스······.”

“앞으로 그 입에서 스로 시작하는 단어가 나오면 손모가지 비틀어버릴 수 있어.”

“어머니······저 지금 많이 힘듭니다.”

내 대답에 선녀스승이 눈매를 찌푸리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컥!?”

“어디서 꾀병이야!? 난 이렇게 약해빠진 아들 둔 기억이 없거든?”

내 배를 걷어찬 선녀스승이 버럭 화를 냈다.

“저 환자입니다!”

“환자는 개뿔! 진짜 환자는 저 뒤에 있는 아이지.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죽을 텐데. 그래도 괜찮아?”

“윽······.”

“오늘은 특별히 내가 도와줄 테니까 빨리 정신 차리고 준비나 해.”

“······네.”

힘없이 대답한 나는 삐걱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비틀거리며 선녀스승의 뒤를 따랐다.






***






천으로 가려진 창문 틈으로 노을빛이 들어오는 이곳은 제갈세가 내에서 노야와 한 노파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아니 애초에 존재 자체도 몰랐다.

제갈세가의 부지는 용도에 따라 나누어져 있었는데 이곳은 직계와 방계가 사는 내전이 아닌 외전 구석진 곳에 위치해 있다.

겉모습은 다른 전각들과 다를 것이 없었으며 그것을 증명하듯 일 층과 이 층은 수많은 서적으로 빽빽하게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위층

올라가는 계단도 없으며 애초에 왜 이렇게 높게 지었는지 의문조차 가지지 않았던 이 전각의 숨겨진 삼층과 사층은 바로 선녀스승이 제갈세가를 떠나기 전 마지막 날까지 지냈던 거처였다.

그런 선녀스승의 거처는 거의 밀실과 다름없을 정도였는데 방 안의 상태가 너무나도 깨끗했다. 그 이유는 바로 노야가 노파에게 주기적으로 이곳을 청소해 달라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나와 선녀스승을 비롯한 그녀들과 제왕단주를 안내한 노파와 시녀는 능숙하게 방문을 열고 우리들을 안쪽으로 안내해주었다.

그리고 노파는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 병풍이 있는 한쪽 벽으로 다가가 새하얀 천을 들췄다. 뒤이어 노파의 행동에 젊은 시녀가 창문을 가리고 있는 천을 옆으로 걷어냈다.

저물어가는 노을빛이 들어와 방 안이 은은하게 빛이 났다. 그런 방안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선녀스승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런 면에서는 나보다 더 섬세하다니까.”

그렇게 노야를 칭찬하며 천천히 노파에게로 다가간 선녀스승은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 깨끗한 자리를 준비해둔 노야의 치밀함에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노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선녀스승과 함께 노야의 흐트러진 옷을 정리하던 노파는 노야의 머리맡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살아생전 노야께서 부탁하신 일이 있으십니다.”

“응? 그게 뭔데?”

“이 찻잔에 술을 채워 달라 하셨습니다.”

“······뭐? 풋!”

노파의 말에 끝내 웃음을 터트린 선녀스승은 한 동은 웃음소리를 멈추지 않고 크게 웃었다. 그렇게 한참 이어진 선녀스승의 웃음소리에 노파는 환한 미소로 준비해둔 술병을 가져와 선녀스승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 술입니다.”

“나. 이미 작별주는 따라줬는데?”

“······.”

“아니. 한 번 더 주지 뭐.”

노파에게 건네받은 술병을 열고 노야의 머리맡에 있는 찻잔에 술을 따른 선녀스승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편하게 쉬어. 뒷일은 이제 신경 쓰지 말고.”

그리고는 그 술병을 노파에게 다시 건넨 선녀스승이 몸을 돌려 내게 다가왔다.

“아들.”

“······네?”

선녀스승의 부름이 너무나도 어색하게 느껴진 나는 나도 모르게 당황했다.

“넌 저기 가서 그 빌어먹을 몸뚱아리 좀 챙기고 있어 봐.”

“아······네.”

그리고는 옆으로 나를 밀친 선녀스승이 제왕단주의 품에 안겨있는 남궁일지를 바라보았다.

“저기에 눕혀.”

선녀스승의 말에 재빨리 침상에 남궁일지를 눕힌 제왕단주가 식은땀을 흘리며 선녀스승의 눈치를 봤다.

“너. 이 아이의 속살을 봐도 돼?”

“흡!?”

“안돼지?”

“아······예!”

“그럼 나가.”

“······예?”

“나가라고.”

“······.”

“밖에서 기다려. 너 지금 죽을 정도로 상태가 나쁜 건 아니잖아? 가서 부하들 좀 챙기고 있어 봐. 이 아이는 내 아들이 치료할 테니까.”

선녀스승의 말에 황급히 내게 다가온 제왕단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버, 벗겨야 하나?”

“예?”

“다, 당연히 환부를 봐야 치료할 수 있을 테지만······하지만 의원으로서도 남자로서도 시집도 안 간 처녀의 속살을 꼭 봐야 하는 건가?”

“······.”

“내 저 아이의 숙부로서!”

“괜찮습니다.”

“뭐, 뭐가 괜찮나!?”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채, 책임?············커, 커흠! 좋네. 그 대답이 듣고 싶었네.”

그 대답과 함께 내 어깨를 손으로 툭 친 제왕단주가 어색하게 웃으며 방을 나섰다. 그리고 그 뒤로 그녀가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노야에게 다가갔다.

“······할아버지.”

또다시 뒤늦게 터진 그녀의 눈물샘을 조용히 지켜보던 선녀스승은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노야와 그녀가 있는 곳에 새하얀 빛의 벽이 솟아났다.

“이해는 하지만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네. 아들.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해?”

“반 시진은 필요합니다.”

“그거의 반으로 줄여. 그때까지 내가 보살필 테니까.”

그리고는 젊은 시녀에게 깨끗한 천과 따뜻한 물을 부탁한 선녀스승은 능숙하게 남궁일지의 옷을 벗겼다.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린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그대로 두 눈을 감았다. 당황해서가 아니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엉망이 된 몸을 살펴보았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버린 몸을 보고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힘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온몸에서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어떻게 해서든 부여잡은 나는 정신을 손끝과 눈에 두고 할 수 있는 대로 회복시켰다.

두 눈을 뜨고 팔과 달리 떨리지 않는 손끝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네.”

그런 내 상태를 파악했는지 선녀스승이 씩 웃었다.

숨을 고르고 또다시 고르고 선녀스승의 곁으로 다가간 나는 환부를 제외한 다른 부위를 전부 깨끗한 천으로 가린 선녀스승의 정성에 감사했다.

그리고

“아······.”

“왜 또?”

“그게······항상 제 짐에 두고 다닙니다.”

“······.”

치료에 필요한 각종 도구가 들어있는 목함은 내 품이 아닌 방에 있었다.

“아 그거? 그거라면 이제 곧 가지고 올 거야.”

“······네?”

“너. 이 어미가 누구인지 벌써 잊은 거야? 나야 나. 선녀.”

“······아하.”

늦은 반응에 선녀스승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지만 이곳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에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도련님께 필요하시다 하여 준비해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집중하실 수 있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래주시겠습니까?”

“네. 조금이지만 의술을 배웠습니다.”

내 목함을 챙겨온 요화는 깨끗한 천으로 입을 가린 상태였다. 이렇게 완벽하게 준비해온 것을 보아 선녀스승은 지금의 상황을 예견한 듯 보였다.

뭐. 선녀스승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요화의 배려를 받아들인 나는 목함을 건네받자마자 그 안에 들어있는 병을 꺼내 그 병 안에 들어있는 투명한 물로 손을 씻었다.

그리고

“어머니.”

“응?”

“전 이 여인을 꼭 살려야 합니다.”

“너라면 할 수 있어.”

“이 관통상은 무인에게 치명적인 상처입니다. 제 의술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내 대답에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던 선녀스승이 피식 웃으며 품속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넸다.

“네가 원하는 게 이거지?”

“······.”

“하지만 이건 알아야 해. 이걸 사용하는 순간. 세상의 균형이 깨질 수 있어.”

“전 이 여인을 믿습니다.”

“음. 그래? 내 아들이 그렇게 말한다면······믿어야지.”

선녀스승의 손가락이 다시 튕겨지며 이 방 전체가 하나의 환영진에 가려졌다.

“작은 실수라도 이 아이는 죽음의 강을 건너게 돼.”

“할 수 있습니다.”

“좋아. 그 대답을 들었으니 이제부터 이 어미는 너를 믿고 이 아이를 억지로 붙잡아둬야겠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응. 누구의 부탁인데? 당연히 들어줘야지.”

남궁일지의 손을 꼭 잡은 선녀스승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식은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넌 이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게 되었어.”

침상의 한편에 목함의 내용물은 새하얀 천 위에 펼쳐놓은 뒤 내가 처음으로 든 물건은 바로 엄지손가락 길이의 대침이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약선스승에게 배운 내 모든 의술을 이 자리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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