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부대
1.
다음 날, 비단 가문의 영지에서 징집된 신병들이 모든 훈련을 마치고 퇴소식을 거행했다.
"자네 정말 괜찮겠나? 자네 정도의 실력이라면 내가 남작님께 건의드려 주둔군에 배치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네. 총교관인 내게 그정도 권한은 있네."
그 날 이후 잭은 집요하게 이러한 권유를 해왔다.
물론 나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내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첫 째는 출세.
과거에는 보잘 것 없는 인생을 살았으니,
이번 생에서만큼은 정말 화려하고 잘나가는 인생을 살고 싶었다.
그럴수 있는 재능도, 능력도 얻었다.
당연히 욕심이 났다.
그러나 두 번째 목표가 발목을 붙잡았다.
바로 황태자를 수호하는 일이다.
내 기억에 의하면 황태자는 몇 년이내에 죽게 된다.
황태자를 다시 살리고, 그를 암중에서 수호해야한다.
그것이 전대의 수호기사인 제스 스승님에게서 내가 받은 의무다.
그러나....
황태자는 적이 많다.
정치는 잘 모르지만, 내가 알고 있기로는 발커스 황태자는 권력 암투에서 패배하여, 황제의 눈 밖에 난 사람이다.
그가 가진 권력은 이미 2황자인 타이커스, 아니 3황자인 레이너에게도 밀리는 판국.
그런 사람을 수호한다?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또한 여러가지 정치적 목표에 얽혀서도 안됐다.
그러한 것에 얽히는 순간 황태자를 수호하는데에 있어서 지장이 생길 것은 당연했기 때문이다.
"너희 50명은 롱베르트 성으로 간다!"
퇴소식을 마친 우리에게 지도관이 거만하게 외쳤다.
지도관은 총 열명으로 하나같이 사슬 갑옷을 착용하고, 혁대에는 검을, 왼 팔에는 소형 방패를 착용해 중무장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나를 포함한 50명의 신병들을 데리고 제타 시를 나섰다.
'롱베르트 성이라... 제국 남서쪽에 있는 곳이던가.'
근처에 있던 베어가 투덜거렸다.
"롱베르트라니, 재수 옴 붙었군."
이타카 왕국의 국경과 가장 맞닿아 있는 곳이다.
즉, 최전방이란 뜻이다.
"흥, 어딜 가든 똑같아. 지금 황제 폐하는 보통 욕심을 가진 분이 아니잖아? 이타카 뿐만 아니라 카온, 프로스트, 하이콘... 좀 약해보인다 싶으면 다 먹어치울 기세니까. 어딜 가도 어짜피 꿀 빨만한 곳은 없어."
족제비 처럼 생긴 외모, 이글이 중얼거렸다.
같은 생활관 출신중 롱베르트 성으로 배치받은 자는 베어와 이글, 이 둘이 전부였다.
하여튼 그 둘 뿐만이 아니라 다른 신병들 역시 불평을 표하거나, 공포에 질린 기색이다.
불만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롱베르트 성.
과거 아버지가 배치 받은 곳도 롱베르트 성이었다.
그리고 당신꼐서 돌아가신 곳 역시....
'뭐... 난 과거의 아버지보다 몇배는 강하니까, 방심하지만 않는다면 죽지는 않겠지. 일단 중요한건 전공을 세우는 거야.'
전공을 세운다.
그게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일단은 출세를 해야만 황태자 전하의 근처에 접근 할 수 있을테니까.
현재 황태자 전하가 계신 곳은 동쪽의 전장이다.
엄밀히 말하면 전장은 아니고,
친정군은 이끌고 있는 황태자는 '언제든지' 전쟁에 참가할 수 있다는 티만 팍팍 내는 중이었다.
말하자면 장식이라고 할까?
물론, 그 역시 내년에 전역이 확산되면서 진짜 전장으로 변하겠지만....
'내년까지는 그곳에 간다. 롱베르트에서 전공을 세워서.'
잭 교관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이러한 이유도 있었다.
비단 가문의 영지는 전쟁의 여파가 뒤늦게 찾아오는 곳이다.
이유? 간단하다.
대륙을 양단하는 최대의 산맥인 아르케이보 산맥을 등 뒤에 끼고 있으니 전투가 벌어질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런 곳에 있으면 전공을 세울 수 없다.
출세에도 지장이 있고, 또한 황태자 전하의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과거의 나였다면 당연히 완전 땡큐 보직이라고 하겠지만....
지금 재능을 얻은 나에게는 가장 안좋은 자리였던 것이다.
'일단... 아무런 파벌도 지지하지 않고 전공을 세운다. 오직 제국을 위해 충성하는 이미지를 만들어야해.'
롱베르트 성까지 남은 거리는 약 보름이 넘는다.
그 안에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일까지 고려해서 계획을 짜놔야했다.
2.
보름이 지났다.
지도관들의 인솔에 따라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눈 앞에 보이는 거대한 회색의 성.
앞에는 드넓은 평야가 보이고, 그 앞에는 길다랗게 늘어선 성벽이 보였다.
저곳이 바로 롱베르트 영지가 자랑하는 철의 성벽, 아이언 월이었다.
'이곳이 롱베르트....'
슬쩍 보기만 해도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다.
광활한 평야에는 키 작은 풀들만 가득하고, 화공 따위의 책략을 쓸 요소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면 승부를 해야하는데 눈 앞에는 십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철벽.
그걸 넘어서면 견고하게 세워진 성이 보인다.
오직 힘으로 뚫어야 한다는 뜻인데, 공성에는 한 가지 법칙이 있었다.
바로 수성하는 쪽을 공성하는 쪽이 뚫기 위해서는 병력이 3배 이상 많아야한다는 법칙이다.
물론, 제국의 절반, 아니 삼분의 일 크기도 되지 않는 이타카 왕국의 군대가 그런 병력을 끌어모을 수 있을리 만무.
겉으로 보기에는 '가장 안전한 최전선'처럼 보이는 곳이 바로 롱베르트였다.
'수비만 하는 쪽이라면 말이지....'
그러나 제국은 침략을 하는 쪽.
웅크리고 있어서는 정복 전쟁이라 할 수 없으리라.
"거의 도착했군! 가자!"
지도관중 리더격에 해당하는 사내가 외치자 신병들이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우리는 롱베르트 성 내부로 진입했다.
성으로 향해서 인적사항을 일일이 확인 받고, 또 새로운 인솔자들을 따라 생활관에 배치되었다.
나를 포함한 50명의 신병들은 곧바로 인적자원이 필요한 부대에 배치 되었다.
3.
내가 소속된 부대의 명칭은 205부대였다.
이름에 별다른 뜻이 있는건 아니다.
단지 롱베르트 역사상 205번째로 만들어졌기에 205부대였다.
제국에서는 몰살된 부대 이름을 다시 쓰지 않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길, 하필이면 넘버즈 부대라니. 정말 재수 옴붙었군. 성벽 방위병 같은거 하면 얼마나 좋아?"
옆 관물대에서 칼을 닦으며 베어가 투덜거렸다.
"넘버즈 부대라니? 그게 뭐야?"
그 옆에 있던 신병이 물었다.
베어가 카악, 퉷 하고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근처에는 우리보다 선임병사들도 있었지만 누구도 그런 행동에 제지 하지 않았다.
그만큼 205부대의 풍기가 자유롭다는 뜻이었다.
그 이유?
간단하다.
"새끼, 진짜 하나도 모르는구나. 제국은 한 번 몰살당한 부대 명을 다시는 쓰지 않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
"그거야 알지."
"즉, 205부대는 205번째로 만들어진 부대란 뜻이거든? 우리 앞에 204개의 부대가 전멸했다는 뜻이야."
"그, 그럼, 설마 우리 부대는...."
"그래 새끼야, 우리는 돌격부대다. 나팔 빼엥 불면 바로 우와아아 하고 돌격해서 기병에 깔려 뒈지는 그런 부대."
베어의 말에 신병의 얼굴이 홀쭉해졌다.
그리고 이어서 베어와 비슷한 똥씹은 표정이 되었다.
"이런 씨발, 네 말대로 재수 옴붙었군."
...뭐, 이해는 한다.
돌격부대라면....
100명이 출격하면 10명 살아남을까 말까한 생환율을 보이는 최악의 부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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