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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책 먹는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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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켄로
그림/삽화
봄소금
작품등록일 :
2017.03.28 20:23
최근연재일 :
2017.04.26 12:11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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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29
글자수 :
115,107

작성
17.04.21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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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아카데미 밖으로 #1

DUMMY

그로부터 일주일이 흘렀다.


“이 마법진의 중심부에 그려진 삼각형에 재료를 올려놓고, 마력을 흘려넣으면 그 구성성분이―”


언제나처럼 분필을 든 교수가 칠판 앞에 선 채로 그려놓은 마법진에 대해서 설명하는 중이었다.

테오도르는 이미 3년도 전에 공부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는 무의미한 필기에 잉크를 낭비하는 대신 빈스와 나눈 이야기를 되돌이켜 보고 있었다.

빈스 교수와의 극적인 신뢰관계를 성취한 테오도르였지만, 그의 일과는 딱히 큰 변화가 없었다. 학생의 신분이니 수업을 들어야하는 것도 같았고, 도서관의 책으로 글러트니의 공복을 해소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단, 이제는 그 뒷감당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만큼은 달라졌다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는 도서관에서 소모한 책의 목록을 그날그날 나에게 제출하도록 하게. 어차피 도서관을 관리하는 교직원도 없겠다, 내가 담당하겠다고 한다면 문제없겠지.


역시 베르겐 아카데미 최고의 실력파 교수, 빈스의 입지는 한낱 유급생에 불과한 테오도르와는 많이 달랐다. 도서관에서 소모한 책을 보충하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사비로 충당한다고 해도 돈이 모자랄 일은 없었다.

5서클 마스터, 향후 고위 마법사의 전망이 뚜렷한 마법사의 수입은 그만큼 막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테오가 암매상을 찾아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흔치 않게도 얼굴을 굳혔다.


―···자네로서는 괜찮은 방법이었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겠네. 하지만 암매상은 자네의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곳이야. 될 수 있으면 찾아가지 않는 것을 추천하도록 하지.

―‘강제서약서’까지 사용했는데도 말입니까?

―그래. 강제서약서로 구속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암상인 한 명이지. 다른 곳에서 꼬리를 잡히는 것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라네. 뒷세계의 어둠은 보통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깊고, 암매상은 겨우 입구 근처에 불과한 지점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빈스 교수의 눈빛에는 단 한 점의 웃음기도 보이지 않았다. 진지하게 어둠을 들여다보고, 뒷세계의 광기를 체험해본 인간의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을 마주한 테오도르에게 가능한 일은 오직 얌전히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밖에 없었다.


‘게다가 암매상에 전처럼 집착할 이유도 없어졌고.’


안 그래도 마력을 증가시키는 데에 필요한 아티팩트는 빈스 교수를 통해서 구할 수 있었다.

아티팩트의 가격이 제법 높은 편이라지만 기존의 마력시약에 비하면 저렴했고, 가성비 역시 뛰어났다. 마법의 숙련도를 흡수한다는 장점까지 감안한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테오는 머릿속으로 시각화된 정보를 재차 살펴보았다.



[마도서 “글러트니” / E Rank]


스킬 : <마력증폭>, <속성 친화력(火)>


강력한 아티팩트를 포식한 글러트니의 봉인이 한 단계 해제되었습니다. 이제부터 글러트니는 몇 가지의 마법을 저장하고 원하는 때에 해방할 수 있습니다. 이 기능은 당신의 마력량에 따라서 보다 확장될 수 있습니다. 이전의 소유자는 이 기능을 ‘메모라이즈(Memorize)'라고 명명했었으며, 소유자가 원한다면 그 명칭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 불완전한 상태입니다. 기능이 대부분 봉인됩니다.

* 하루에 한 번, 굶주림을 해소하기 위해 깨어납니다.

* 공복을 해소한 직후, 한 가지 질문에 대답합니다.

* 소유자에게 먹이를 감정하는 능력을 부여합니다.

* 먹은 책이나 물건으로부터 정수를 추출합니다. 소유자의 이해도가 높을수록 그 효율이 증가합니다.

* 마력을 품은 물건으로부터 마력의 일부를 흡수합니다.

* 메모라이즈 기능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일주일 전, 빈스 교수의 방에서 먹어치운 ‘포효하는 불꽃’이 일으킨 변화였다.

3서클 초입에 불과하던 마력량이 대번에 반 이상 차올랐고, 글러트니의 봉인이 한 단계 해제되었다. 뒤이어 그와 동시에 활성화된 메모라이즈란 기능은 테오도르의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법을 저장하고,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상급 아티팩트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능력이잖아!’


그때 테오의 경악은 실로 올바른 것이었다.


카터 가문의 ‘포효하는 불꽃’조차 엄밀히 따지자면 중상급에 해당하는 아티팩트다. 그 윗단계에 이르면 이미 한 가문이나 특정한 인물이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국가에서 직접 나서서 국보로 지정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허나 국보에서도 ‘메모라이즈’라는 기능을 지닌 물건은 손에 꼽힌다. 그런데 테오는 글러트니에게 먹이를 준 대가로 그와 같은 능력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한 번에 저장할 수 있는 마법은 아직 세 개뿐이지만··· 저 설명대로라면 더 늘어난다는 뜻이겠지.’


3서클에 세 개라면 단순계산으로는 서클당 한 개다. 지금도 순간적인 화력이 4배로 뛰어오른 거나 다름없는데, 그 이상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소리였다.

빈스 교수가 괜히 마도서를 ‘미증유(未曾有)의 힘을 보유한 괴생물’이라고 표현한 게 아니었다.


새삼스럽게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오려던 순간,


데엥―!


묵직한 괘종시계의 종 소리가 그것을 날려버렸다.

여태까지 펜만 사각거리던 교실에 웅성거림이 퍼지고, 그런 분위기를 이해한 교수가 분필을 내려놓았다.

지난번에 <보름달 구슬> 사건으로 체면을 구긴 탓인지.

결국 버나드 교수는 테오가 앉아있는 방향을 단 한 차례도 돌아보지 않고 수업을 마친 후, 말없이 교실을 떠나갔다.


‘에휴, 한심한 인간.’


테오는 점점 멀어지는 그의 등을 가볍게 일별하고, 앉았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버나드 교수는 죽어도 그가 일삼은 괴롭힘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을 것이고, 테오 역시 그에게 준 망신을 사과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아마 졸업할 때까지 이 모양이겠지.

그는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면서 교실을 나섰다.


오늘도 동거인에게 먹일 책을 찾으러갈 시간이었다.


* * *


도서관에 들른 테오는 평소처럼 몇 권을 끄집어내고, 그걸 배낭에 집어넣었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글러트니가 깨어날 시간만 기다리면서 전전긍긍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이 책을 반출할 수 있었다.

빈스 교수의 서명이 적힌 허가증만 있으면 어지간한 일들은 해결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뭐, 해야할 일도 몇 가지 생기기는 했다만.’


그마저도 얻은 것에 비하면 별 게 아니다.

먹어치운 책의 목록을 빈스 교수에게 제출하는 것, 그 외엔 별다른 일도 없었다.

그는 평소처럼 빈스의 연구실로 걸음을 옮겼다.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테오는 먼저 적당한 세기로 문을 두드렸다.


“교수님, 테오도르입니다.”

―들어오게나.


허가를 받자마자 문고리를 돌린다. 지난주의 이야기로 한층 거리감이 옅여진 탓일까, 빈스 교수의 연구실을 오가는 일이 예전처럼 부담스럽지 않았다.

익숙한 커피향, 두툼하게 쌓아둔 책과 논문 사이에 가려진 빈스의 모습은 언제나와 같이···


‘음?’


미묘한 위화감을 느낀 테오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언제나와 다른 점을 찾아보던 그는 금세 차이를 깨달았다.


“교수님, 대청소라도 한 번 하셨어요?”


테오도르가 느낀 위화감의 원인은 간단했다.

빈스 교수의 연구실답지 않게 너무 깨끗했던 것이다.

바닥에 나뒹굴었던 양피지, 엎어져있던 책이 모두 깔끔하게 정리되어있었다. 다른 부분은 잘 챙기면서도 유난히 연구실의 정리만은 소홀한 빈스답지 않은 풍경이었다.


그는 가볍게 실소하면서 테오의 말에 대답했다.


“그럴 만한 일이 생겼다네. 자네와도 무관한 일이 아니니까, 오늘은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겠군.”

“네? 무슨···”

“일단 앉게나.”


테오는 일단 시키는 대로 익숙해진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빈스는 자신의 서랍에서 몇 장의 종이뭉치를 꺼내서 뒤적이더니, 두 장을 뽑아서 테오 쪽으로 밀어냈다.

그는 반사적으로 눈앞에 놓인 그것들을 내려다보았다.

맨 위에 적혀있는 몇 글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멜토르 왕국··· 제126회··· 마법경연회?!”


처음에는 더듬거리던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높아지고, 끝내 경악으로 터졌다.


마법사의 나라로 유명한 멜토르 왕국.

해마다 그 수도에서 열리는 마법경연회는 대륙 어디에 있는 마법사라도 관심을 두는 대행사였다. 이국의 마법사들은 물론 이름도 없이 은거하던 자들마저 우글우글 몰려들어, 멜토르의 수도 마나빌(Mana-vil)은 때 아닌 성황을 이룬다.

하지만 마땅한 자격을 증명하지 못한 마법사는 경연회장에 발을 들여놓을 수도 없고, 밖에서 콩고물이라도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빈스 교수가 내민 양피지는 그 마법경연회의 입장을 허가하는 통행증, 아니 초청장이나 다름없는 물건이었다.

비록 학생의 신분이라지만 테오도르 또한 한 명의 마법사. 이 초청장의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쯤은 알고 있었다.


“교수님, 설마 마법경연회에 초청받으신 겁니까?”

“별 거 아니네. 매년 받아왔던 거니까.”


경악한 테오와는 정반대로, 빈스는 여유롭게 앉아서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다.

작년까지는 스스로의 연구에 바빠서 초청장을 받고도 가지 않았다. 올해 역시 별 일이 없으면 아카데미에 남아서 연구에 집중할 생각이었다만, 이번에는 사정이 바뀌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을 꺼냈다.


“내가 초청장을 보여준 이유가 뭔지 알겠나?”


설마, 하는 마음으로 테오가 빈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짐작한 모양이로군. 내게 온 초청장으로는 한 명의 조수를 동반해서 입장할 수 있다네. 작년까지는 별로 갈 마음이 없어 휴지통에 던져뒀다만···”


기대에 찬 테오의 눈빛이 낯을 간지럽히자, 빈스는 간만에 입꼬리를 한껏 당기면서 웃어보였다.

그동안 나이에 안 맞게 뻣뻣하게 굳어진 테오도르의 표정이 안타까웠는데, 지금은 어떠한가. 흥분으로 벌개진 낯이 또래의 청년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빈스는 유쾌한 기분으로 준비한 선물을 내놓았다.


“어떤가? 함께 마법의 총본산으로 떠나보겠나?”


대답은 정해져있었다.


작가의말

빈스 교수도 일방적으로 테오를 지원하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테오도 그의 도움에 지불할 수 있는 대가가 있지요.

그 대가란...

다음화에서 뵙겠습니다!

* 올리기 직전에 퇴고하느라 1시간 늦어졌네요.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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