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파는 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에그머니나
작품등록일 :
2015.03.20 13:48
최근연재일 :
2018.05.20 14:26
연재수 :
165 회
조회수 :
42,290
추천수 :
935
글자수 :
1,193,004

작성
16.10.13 13:32
조회
187
추천
2
글자
10쪽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5)

DUMMY

루프는 로즈가 그 계약서를 읽어 내려가는 것을 흥미롭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계약서의 검은 글씨를 따라 서서히 아래로 이동하는 로즈의 눈이 괴상하게 흔들리는 것을 포착했다. 그것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루프는 직감적으로 그녀가 후불제 요금에 대해 읽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게 뭡니까? 후불제? 만족도에 따라 대금을 구매자 마음대로 지불할 수 있다?"

로즈의 정해진 질문이 이어졌고, 라키안은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요. 정직함과 신용으로 먹고 사는 라키안 행상회의 신조입니다."

그 정직함과 신용에 의해 자신은 조수를 빙자한 몸종이 되었지. 루프는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게 어딨습니까? 어딜 봐도 판매자한테 불리하게 되어 있는걸로 보이는데요?"

"구매자가 좋으면 된거 아니겠습니까?"

로즈의 표정이 라키안을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더 의심으로 물들었다. 루프는 격한 공감을 하며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봐?"

사정을 정확하게 모르는 이리나드는 그런 루프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루프는 손을 내밀어 잠잠하라고 표현했다. 루프에게 지금은 나름대로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 가련한 한 마리의 장미꽃이 교활한 행상놈의 손에 떨어지느냐 마느냐 하는.

"아무리 봐도 수상한데요... 당신 정말 뭐하는 사람입니까?"

라키안은 로즈의 도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뻔뻔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 판매자가 손해보고 팔겠다는데 구매자가 뭔 상관입니까? 블랙 컨슈머에요?"

저 미칠듯한 당당함. 이쯤되니 로즈도 두뇌 회전이 잘 안 되는 모양인지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드리웠다. 정황을 잘 모르는 아이들 셋만 순수한 얼굴로 라키안과 로즈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를 관심있게 듣고 있을 뿐이었다. 특히 알리오는 더 그랬다. 지금 오가는 대화의 결과에 따라 그의 부모님이 살 수 있는 희망이 결정되는 거였으니까.

'이제 싫으면 말아요 라고 하겠지.'

루프는 라키안이 던질 다음 말을 예측하며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의외로 로즈가 먼저 말을 꺼냈다.

"... 그래요 좋습니다. 어차피 저한테 딱히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니 당신을 믿도록 하겠어요. 하지만... 만일 혹시라도 이 마을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할 생각이라면... 저도 가만 있지는 않겠어요."

그러면서 로즈는 보란듯이 자신의 빠알간 눈동자를 부릅 뜨며 라키안을 쏘아봤다. 루프는 그 모습을 보면서 보쥬라크에서 자신을 구하기 위해 붉은 눈을 드러내며 사람들 앞에 나서던 이리나드의 모습을 떠올렸다. 저 로즈란 아가씨도 붉은 눈의 마녀라는 저주에 얽혀 살면서도 그것을 이용해가면서까지 지키고자 하는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그녀의 마음 씀씀이에 루프는 돌연 마음 한켠이 아련해졌다.

그녀는 정말 그래야만 할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정직함과 신뢰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구요."

로즈는 더 이상 뭐라 말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라키안이 내밀은 깃펜을 들고서 계약서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 것이었다. 저 깃펜도 마법 물품인가? 잉크도 따로 안 찍었는데 검은 먹이 잘도 나온다. 신기할 법도 한데 로즈는 별다른 말도 없이 계약서에 사인을 마치고 라키안에게 돌려줬다. 라키안은 그것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받아 들었다.

"자, 그럼 다 됐네요. 뜸들일 필요도 없으니 바로 상품을 전해 드리도록 하죠."

라키안의 저 자신만만한 표정은 의심으로 가득 차 있던 로즈의 마음에조차 한 줄기 미풍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또렷했다.

"이번엔 또 무슨 짓을 하려나..."

루프가 작게 혼잣말을 했는데 알리오가 들은 모양이었다.

"저 아저씨 이상한 사람이에요?"

루프는 약간 당황했지만 나름 성의껏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는 제일가는 괴상한 사람이란다."

이리나드가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얼굴이 빨개진 더크가 훔쳐 보았다. 루프의 대답을 들은 알리오의 표정에 일순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괴상한 만큼 확실히 믿을만한 사람이기도 하지."

그래서 루프는 이와 같은 말을 덧붙였다. 알리오의 표정은 여전히 조금 불안해 보였지만 그래도 루프는 소년을 다독였다. 그가 아는 라키안이라면 분명,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사람같지도 않을 정도로 병색이 짙은 저들을 고쳐내고야 말 것이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라키안은 계약서를 자신의 마법 베낭에 마구 쑤셔 넣고는 이내 그것을 다시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뭘 찾는건지, 무슨 요령으로 찾는건지 예측도 불가능할 지경이다만, 여튼 그는 열심히 베낭을 뒤적거렸다. 가끔 혓바닥까지 빼무는 것이 굉장히 열심히 찾는 중이라는 것을 어필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로즈가 보기에는 든 것도 없어보이는 저 조그만 베낭을 뭣하러 저렇게 쑤셔대나 싶을 뿐이었지만...

"찾았다!"

마침내 라키안이 꺼낸 것은...

"끼야아아아아아악!"

라키안이 그것을 베낭에서 꺼내는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명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방 안의 그 누구도 심장이 덜컹 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엄청난 비명이었다. 마치 몸을 사타구니부터 정수리까지 통째로 잡아 찢기는 사람이 낼 듯한 그런 비명소리였다.

"뭐, 뭐야!? 니미럴!"

바른 생활 소년 루프의 험해진 입에서 어울리지도 않는 욕설이 튀어 나왔다. 놀랍게도 와이트랑과 블래냐는 고양이 모습을 하고 있는 주제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서 앞 발 두개로 이미 귀를 막고 있었다. 고양이가 저러고 있는 것 자체도 굉장히 기괴한 일이었다만 다들 괴성에 혼비백산해서 아무도 그것을 신경쓰지 못했다.

"우아앙!"

알리오는 울음을 터뜨렸다. 더크는 말없이 귀를 틀어막고 있었고 루미는 자신도 덜덜 떨면서도 알리오를 달래느라 애쓰고 있었다.

"이게 뭡니까?"

로즈가 소리쳤다. 그... 놈이 여전히 소리를 꽥꽥 질러대고 있어서 고함치지 않으면 목소리가 완전히 묻힐 지경이었다.

"이거요? 풀인데요? 풀뿌리요. 풀뿌리 처음 봐요?"

풀뿌리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지, 당연히. 괴성을 지르는 풀뿌리를 보는게 처음이지. 로즈는 황당해했다. 무슨 저딴 질문을 다 하나?

"에이, 그런 표정 짓지 마요. 이게 바로 없어서 못 먹는다는 만병 통치약 '만들다말라'에요."

만들다말라?! 그건 또 뭔가?! 로즈도 평생을 약재사를 하며 지냈지만 그딴 이름을 가진 소리지르는 풀뿌리에 대해서는 씨알도 들어 본 적이 없다! 만드라고라라는 성능이 좋고 씨끄러운 식물이야 워낙 유명하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로즈가 아는 한 만드라고라는 저렇게 무식하게 크지 않다. 기껏해야 어른 손바닥만 하려나? 그러나 라키안이 꺼내든 저 만들다말라라는 괴상한 이름의 그것은 무슨 어른 다리통 하나보다도 더 컸다.

잠깐, 저게 어떻게 저 베낭에서 나온거야? 라키안의 괴상한 상술에 신나게 놀아나고 있는 로즈는 점차 사고가 마비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아 이젠 이거고 저거고 다 모르겠다. '저게 좋은 약초라니 믿는 수 밖에...' 이런 비이성적인 생각이 자꾸 용솟음 치는 것이다! 심지어는 로즈 뿐만 아니라 루프와 이리나드까지도!

정작 병자 입장인 매트와 보레인은 죽을 맛이었다. 병 자체의 고통도 견디기 힘든데 저 괴성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지옥도였다. 병 기운 때문에 자세한 정황을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저 외부인이 뭔가 치료를 하려고 하는것 같기는 한데...

이게 무슨 치료야!

"자, 아~ 하세요."

그 괴상하고, 커다랗고, 씨끄러운데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염이 덕지덕지 나 있고 냄새까지도 고약한데다 몸통 중간쯤에 그냥 대충 뚫어 놓은 구멍 속에 공허가 자리잡고 있는 듯한 나선이 세 개 삼각형 모양으로 놓여 있는 그 하얀 무우같은 것을 입에다 가져다 대는 것이 무슨 치료냐!

"괜찮아요. 안 죽어요."

죽는게 문제가 아냐! 어차피 안 먹고 버텨도 죽긴 할테니까...

"이런... 얼굴들이 완전 죽상들이시네."

병 때문에 이미 오래 전부터 죽상이었다.

"걱정 마세요. 안 아파요."

물론, 아픈게 걱정도 아니다. 이미 죽도록 아팠으니까.

"자, 아~ 하세요."

저 싸가지 없어 보이는 놈의 능글거리는 표정과 마치 연인에게 달콤한 푸딩을 떠먹여 주는 젠틀맨같은 느낌의 목소리가 바로 지독하게도 큰 문제다!

"후후후... 이미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로즈씨가 저의 천재적인 언변에 넘어가 일방적인 부당거래를 당해 이걸 샀지요. 로즈씨도 그러더군요. 만들다말라를 씹자... 만들다말라를 씹자... 만들다말라를 씹자... 만들다말라를 씹자..."

요령도 좋지. 혀 한 번 안 꼬이고 저걸 다 발음하네. 로즈가 그런 쓸데 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매트와 보레인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병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있는대로 더 심하게 구겨가며 라키안이 내민 그것의 밑둥을 한 입씩...

씹는 것이었다.

냠,

그리고,

냠...

"꾸끄끼이에에엑!"


작가의말

 ... 라키안의 기묘한 장사...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세상을 파는 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5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2: 뜻밖의 기연 (1) 18.05.20 46 2 8쪽
164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마지막) 18.05.18 68 2 6쪽
163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30) 18.05.17 62 2 7쪽
162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9) 18.05.16 70 2 10쪽
161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8) 18.05.13 65 3 7쪽
160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7) 18.05.12 55 2 9쪽
159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6) 18.05.11 66 2 9쪽
158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5) 18.05.10 79 2 10쪽
157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5) 18.05.09 90 2 11쪽
156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4) 18.05.08 53 2 11쪽
155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3) 18.05.07 77 2 11쪽
154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2) 17.08.30 133 2 13쪽
153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1) 17.08.29 112 2 9쪽
152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20) 17.08.28 120 3 7쪽
151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9) 17.08.27 130 3 7쪽
150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8) 17.08.26 120 4 8쪽
149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7) 17.08.25 120 3 7쪽
148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6) 17.08.24 76 2 8쪽
147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5) 17.08.23 144 2 8쪽
146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4) 17.08.21 83 3 7쪽
145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3) 17.08.19 116 2 8쪽
144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2) 17.08.18 116 3 9쪽
143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1) 17.08.18 91 2 9쪽
142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10) 17.08.16 162 3 10쪽
141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9) 17.02.17 183 2 31쪽
140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8) 17.02.05 181 2 13쪽
139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7) 16.10.16 217 2 8쪽
138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6) 16.10.15 224 2 8쪽
»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5) 16.10.13 188 2 10쪽
136 세상을 파는 자 Chapter 11: 저주와 장미와 불꽃 (4) 16.09.27 295 2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