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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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까
작품등록일 :
2017.04.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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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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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07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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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아니래도 소용없어(1)

DUMMY

프리실라는 기도라도 하듯 깍지껴 맞잡은 손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머리칼과 똑같이 검고 푸른빛이 도는 눈이 조금씩 조금씩 움직였다. 그러다가도 가끔은 무언가에 놀란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날 만져보고 싶어하면서도 차마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피부로 느꼈다.


그렇게 다소곳한 사람은 처음봤다. 동시에 부산스러운 사람도 처음이었다.


프리실라는 숨까지 떨어가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 어깨 위에 올렸다. 무슨 해를 가할 것 같지는 않아서 나는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어깨에 얹어진 손은 크기를 재는 것처럼 어깨 끝과 안쪽을 좌우로 조금씩 움직였다.


그게 전부였다. 무슨 짓이라도 당할까 긴장하고 있던 나는 참았던 숨을 한 번에 내뱉었다.


"힉!"


오래된 문에서나 날법한 쇳소리가 났다.


"숨을 쉬잖아. 살아있어!"


프리실라가 말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이 사람도 뭔가 정상은 아니구나, 하고 말이다.


"진짜야. 아아...!"


아니 그럼 방금 전까지 움직이던 사람이 가짜겠느냐고.

그렇게 따지지는 못했다.


프리실라가 정말, 정말 너무 기뻐보였기 때문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이야 게일 라스펠트도 있고 글리 캐스트도 있었을텐데 새삼 웬 감격인지 되려 무서웠다.


"아, 근데... 키가 너무 큰 거 같은데. 얘, 넌 몇 살이니?"


하며 묻기 무섭게 프리실라는 양손은 물론 얼굴까지 바들바들 떨며 저어댔다.


"아냐아냐아냐.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누나는 프리실라라고 해. 프리실라 핸드메인."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 이름을 말한 프리실라는 내 대답을 기대하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레이크... 아이힐데른인..."


"레이크? 레이크레이크레이크레이크레이크?"


프리실라는 내가 대답한것과 거의 동시에 내 이름을 마구 연호했다. 그 때는 숙이고 있던 등허리를 활짝 폈는데, 난 무슨 장대가 일어나는 줄 알았다.


인상을 한 마디로 정리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거대하다고 하기엔 가녀렸고 왜소하다고 하기엔 눈높이가 너무 차이난다.


목선도 얇고 얼굴도 작고 손가락 마디마디 길고 가는, 고향에서 아저씨들이 으레 술먹고 떠들던 전형적인 미인의 형이었다.

어느정도냐면 난 폭포처럼 쏟아지는 흑발이라는 걸 오늘 정말 처음봤다. 목소리도 나긋나긋하게 숨이 많이 섞여있었고.


난 잘 모르겠는데 아저씨들은 그게 좋덴다.


"음, 귀여운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혹시 다른 별명 같은 건 없니?"


그렇게 물은 프리실라는 또 혼자 비명을 지르더니 미안해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아냐, 아냐아냐.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누나의 생각인데. 레이크는 파란색이 잘 어울릴거 같아."


"예?"


"이것 봐!"


프리실라는 어디선가 파란색 조끼를 꺼내 내 몸통에다가 들이밀었다. 그러나 기뻐하는 것도 잠시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지 눈에 띄게 어깨가 축 늘어졌다.


"아닌가? 음... 아니야 괜찮아. 무늬가 들어가면 좀 다를지도 몰라."


라며 이번엔 원래의 것을 치우고 반대쪽에서 비슷한 모양에 체크무늬가 들어간 조끼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이번엔 비교적 꽤 마음에 들어했다.


"봐 잘 어울리네. 한 번 입어보겠니? 아! 그보다도 그 셔츠부터 갈아입자. 새하얗고 귀여운 걸로."


"예? 아니 난 그런 걸 하러 온 게..."


"싫으니?"


아직 거절도 다 못 했는데 프리실라는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 싫은거구나. 그럴 수밖에 없겠지. 원래 남자아이들이란 시키는 건 무조건 하기 싫은 법이잖니?"


"그러니까..."


"아하...! 레이크는 당돌한 성격이구나? 아하... 그래...!"


한 번 더 거절해보려해도 프리실라는 알 수 없는 소릴하며 내 말은 들은체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선 어쩔줄 몰라하면서도 눈가는 웃고 있는 것이, 아 이 사람은 정말 뭔가 이상하구나, 하는 생각이 또 다시 엄습했다.


"아니, 저기. 프리실라? 무슨 말을 들은건지 모르겠지만 난 여기 옷을 사러 온 게 아니에요."


"아냐, 아냐아냐아냐. 다시 다시...!"


프리실라는 양손을 마주잡고 끙끙 앓았다.


"누나."


그리고는 그 한 마디를 매우 힘주어 말했다.


"누나라고 불러서. 다시. 다시 해줄래?"


그게 그토록 간절할 일인지 간절하고 또 간절해서 나는 조심스레 다시 말했다.


"옷을 사러온 게 아니라고요... 누나."


"어어. 그래. 미안해. 하지만 누나가 레이크에게 옷을 팔려고 한 건 아니야. 그냥 입어줄 수 있나 해서... 그... 선물이라고 생각해주면 안 될까...?"


이상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대체 뭐 때문에 나에게 옷을 입히고 싶어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이 여자가 글리 캐스트와 무슨 관계인지도 모른다.

한패면 어쩌지, 아니면 이 사람도 속고 있는 거면 어쩌지. 복잡하다.


"아... 안 되는구나... 그래... 미안해... 누나가 눈치가 없어서... 나는 그냥 그, 흑... 흐... 흐윽..."


어쩌고 뭐고 하기도 전에 프리실라가 느닷없이 울음 터뜨리기 시작했다.

난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말하자면 아무짓도 하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나쁜놈이 되어버린 것이다.


"너 이 자식! 프리실라 님이 이렇게 부탁하는데!"


그림자마냥 존재감을 지웠던 게일 라스펠트가 내게 치댔다.


"아니. 내가 여기서 옷을 왜 갈아입어!"


대장간에서 과일을 찾는 격이었다.

프리실라는 계속 훌쩍이고 게일 녀석은 시끄럽게 떠들고 엎친데 덮친격 웬 녀석이 슬쩍 와선 손가락으로 내 등 한 가운데를 찔렀다.


"어우, 레이크가 글리였다면. 이런 부탁 한 번쯤은 들어줬을텐데."



그리하여-


나는 의자에 앉아 두 손바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다섯 손가락을 전부 쭉 뻗어 완전히 밀착시켰다가 주먹을 쥔 다음. 다시 쭉 펴고선 제각기 마구 까닥여도 보았다.

뭐 그렇게 해야해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단지 어색해서, 어색한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서 그리했을 뿐이다.


사실 앉는 것부터 꺼려지는 의자였다. 벨벳이라고 하는 부드럽고 푹신한 천으로 만들어진 붉은색 의자였는데 난 그게 이름이 벨벳이라는 것도 처음알았다. 노랗게 빛나는 금속의 틀은 또 어떤지, 그게 색칠이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금이었으면 난 거기 앉지 않았을 것이다. 금엔 독이 있다고 엄마가 그랬으니까.


기다란 테이블도 마찬가지였다. 테두리와 모서리에 노란실로 장식되어있는 와인색 보가 쫙 깔리고 일정한 간격으로 촛대가 놓여있었다. 촛대에 초는 딱 세개씩이었으며 유독 가운데 것이 길었다. 아니 다시 보니 받침대가 긴 거였다.


차라리 장소만 그랬다면 좀 나았을지도 모른다. 누구 보여줄게 아니라서 망정이지 다른 이가 지금 내 옷차림을 본다면 지나치면서 두 번정돈 돌아볼 꼴이었다. 셔츠는 소매가 짧고 조끼는 잠기지도 않았다. 옷깃에 리본을 묶어놓은 얇은 끈으로된 타이는 어느샌가 헐렁해져 앞섬에 흘러내린 끈이 내 눈에도 보였다. 하지만 난 그걸 고쳐묶을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핫! 누나가 다시 묶어줄게."


내게 이런 옷을 입힌 장본인인 프리실라는 상냥히 웃으며 끈을 다시 묶어주었다.

나는 잠자코 이 무서운 누나가 해주는대로 모가지를 맡겼다.


자연스레 건너편에 앉은 글리에게 눈빛을 쏘게 되었다. 녀석은 얄궂은 눈웃음으로 날 비웃다가 아주 잠깐 혀를 비죽 내밀고선 도로 넣었다.


"다 됐다."


매듭을 끝마친 프리실라는 자기 작품을 내려다보며 소리다 안 날 손가락 한마디짜리 박수를 쳤다.


"아. 기분이 안 좋니?"


그러더니 금새 또 울상이었다. 아무래도 지금 내 불편함은 겉과 속으로 마구 표출되는 모양이었다.


"누나가 미안해... 옷이 이렇게 작을 줄은 몰랐어. 레이크도 좀 더 작았다면 좋았을텐데. 아무리 그래도 이미 큰 걸 되돌릴 순 없으니까..."


컸으면 좋았겠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작았으면 좋겠다라는 건 또 처음이었다.


"맞아. 누나도 그게 정말 슬퍼. 남자아이는, 항상 남자아이였으면 좋을텐데..."


감상에 빠진듯 중얼거렸던 프리실라는 무언가 떠오른 것인지 금새 또 화제를 바꾸었다.


"레이크는 나이프 쓰는 법. 배운 적 있어? 아니면 누나가 가르쳐 줄까?"


나이프. 나이프라. 그게 뭐 어려울 것이 있는가. 난 그것보다 수 배는 더 큰 검을 다루는 법도 배웠다.


"아니. 그냥 슥삭슥삭 하면 잘리는 거잖아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그런거였다. 그 외에 무슨 방법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나이프란 그런거였다. 먹기 좋게 자르기 위한 도구. 그런데 프리실라에겐 그뿐만이 아닌 듯 했다.


"핫...! 잘 모르는구나. 걱정하지마. 이 누나가 차근차근 알려줄게."


"아니. 안다니까요?"


"자, 이렇게 오른손으로 꽉 쥐고."


나는 프리실라가 건내준 나이프를 오른손으로 꽉 쥐었다.


"나이프는 가볍게 쥐는거야."


...가볍게 쥐었다.


"이 손가락은 여기에, 그리고 손목의 각도와 모양새는 이 정도. 나이프질을 할 때는 살살. 접시에 부딪히면 안 돼. 너무 급해서도 안 되고. 어깨와 몸은 최대한 흔들리지 않고."


프리실라는 손수 내 손과 손목을 잡아가며 밀착해서 나이프 쓰는 법을 알려주었다. 세상에 나는 나이프가 그렇게 쓰기 어려운 건지 처음 알았다. 비록 미천한 자의 예상일뿐이지만 내 생각엔 미크로셀 영주님도 나이프질 이렇게 안 할 것이다.


"자, 진짜 식사자리에서 실수하면 안 되니까. 지금 한 번 해보자."


한 차례 동작을 알려주고 난 다음, 프리실라가 내게 연습을 권유했다. 뭘 썰으라고? 하는 눈빛을 보내도 그저 손만 이렇게 저렇게 흔들뿐이다.


결국 난 공기를 썰기로 했다. 아 그러니까 이렇게...


나는 제법 그럴듯하게 흉내내어 팔과 손을 움직였다. 허공에다 슥삭슥삭. 그러면서도 제대로 하고 있는건가 프리실라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프리실라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역시 한 번엔 안 되는 걸까.


"헛...! 잘하네? 벌써 잘 하면 안 되는데?"


안 되는 거였나보다.


"아니 그럼 어쩌라고요."


난 나도 모르게 툭 내뱉었다.

잘해야한다더니 잘해서 문제라면 정말 어쩌자는거냐고.

그러거나말거나 프리실라는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어... 음... 아, 벌써 잘 하면 안 되는데..."


정말 모르겠다.


"어... 그래... 레이크는 누나 없이도 잘하는구나. 그럼... 누나는 음식이 언제 나올지 잠깐 보고올게..."


프리실라는 눈에 띄게 기운이 쳐져서는 터덜터덜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도 괜히 내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다.


단 둘이 남게되자마자 쿡쿡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글리 캐스트가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선 어깨를 들썩거리고 있었다. 참으려면 참고 말거면 말지. 누가봐도 일부러 참는척 웃음을 흘리는 척을 하고 있었다.


"아아 레이크는 눈치가 없어서 탈이라니까. 프리실라가 뭘 원하는지 저언혀 모르는구나?"


그리고는 고개숙여 또 쿡쿡거리다가 뱀 같은 눈으로 날 노려보기도 했다.


"도대체 이게 지금 뭐하는 거야?"


나는 곧장 물었다.


"뭐하는 거냐니? 식사를 기다리는 거잖아. 글리는 배가 고픈 걸 아주 싫어해. 끼니를 거르는 것도 싫어하고. 먹을 걸 낭비하는 건 아주 못된 짓이라고 배웠거든."


"프리실라는 뭐하는 사람이야? 너희랑은 무슨 관계고?"


"글쎄에. 프리실라가 무슨 일 한다고 말하는 건 글리에겐 너무 어려운 질문이야. 프리실라는 아주 여러가지 일을 하는 사람이거든. 글리랑 아무 관계도 아니고."


그리고 글리는 씩 웃었다.


"근데 글리에게 대답을 듣는다고 해도 레이크가 그걸 믿을까? 글리는... 아니라고 생각해."


"하긴 너한테 물은 게 잘못이지."


나는 아예 고개를 돌려버렸다.


"오우, 방금 그 말. 글리에겐 조금 상처인 걸?"


말은 그렇게한 글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테이블 위에 턱을 괴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게일 라스펠트가 음식이 담긴 카트를 밀고왔다. 프리실라도 그 뒤를 종종 걸음으로 따라왔다.

하나하나 놓여지는 음식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대충 과일이나 닭요리나 뭐 그런것들 같았다. 나는 놓여진 물부터 마셨다. 타이 때문인건지 아니면 조용하고 꽉막힌 분위기 때문인건지 계속 목이 탔다.


한동안 접시 놓는 소리만 계속 되었다.


내 앞에도 두툼한 스테이크가 한 덩이 담긴 접시가 놓였다. 넓적하게 썰어져 붉은 살코기의 결이 그대로 보이는 그런 먹음직스러운 고기가.


"그럼 다들 맛있게 들어요. 오그리가 정성껏 준비한 거니까."


나는 은근하면서도 강렬한 프리실라의 시선을 느끼며 나이프를 잡아 고기 위에 대었다. 그리고 배운대로 교양있게 썰어나갔다.


한 조각 썰어 입에 넣을 때까지 프리실라는 유심히 날 보았다. 얼마나 부담스럽냐면 혀에서 고기맛도 안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 레이크는 누나가 안 도와줘도 잘 하는구나..."


고깃덩이가 막 목구멍 넘어갔을 때 프리실리가 말했다. 정말 먹던게 거꾸로 나온데도 별 수 없을 거 같았다.


"헣. 그러고보니... 슬리체는?"


프리실라가 글리에게 물었다.

그 정체모를 마법사 녀석의 이름이 나왔을 때 나는 좀 더 그 이야기에 집중했다.


"슐리체라면... 배가 아픈게 아닐까요? 글리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글리는 쥐고 있는 나이프를 휘휘 저었다.


"아... 그래...? 그래도 끼니는 거르면 안되는데... 아! 내가 가서 보고 올까."


"아하. 글리가 보고올게요. 프리실라는 여기 있어요."


"아아, 그래..."


프리실라가 수긍하자 글리는 슬리체를 데리러 밖으로 나갔다.

얼마지나지 않아 식당의 문이 척 열리더니 화제의 주인공 슬리체인지 슐리체인지가 홀로 등장했다.

녀석은 나보다 더 가관이었다. 아니 가관이라고 할 순 없었다. 한참 안 어울리는 나에 비해 녀석은 정말 완벽하게 도련님으로 탈바꿈 된 모습이었다. 내게 입히려던 그 모습 그대로를 완벽하게 입고 있었다. 나한테 파란색이 어울린다더니 그것이 딱히 내가 아니어도 되는 모양이었다.


"슬리체, 누나가 걱정했잖니. 어디갔다 오는 길이야?"


"명상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소란스러운 건 좋아하지 않아서."


"아. 그랬구나. 헛! 맞아. 어서 앉아. 다 식겠다."


프리실라는 직접 일어나 의자를 꺼내주었다. 슬리체는 별 말없이 그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나이프를 들었다. 왼손이었다. 슬리체는 포크와 나이프를 반대로 들었다.


"어머. 그게 아니지. 나이프는 오른손에 들어야하는 거야."


프리실라가 그걸 지적했다.


"저는... 이게 편해서..."


"그래도 해보자. 누나가 도와줄게."


슬리체는 군말없이 식기를 바꾸어 쥐었다. 몇 번 본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저 녀석은 의외로 글리보다 더 순종적인 모양이었다.


바꾼 손으로 하는 나이프질은 영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못하는건 아니지만 어설프다고 해야하나 영 신통치 못한 모습을 보이자 프리실라는 오히려 더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도 좋아하고 있었다.


"그래그래, 그래.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누나가 도와줄게."


하더니 프리실라는 아예 슬리체의 옆에 앉아서 식사 보조를 해주었다. 보조라기보다 거진 먹여주고 있었다. 입에 넣어주고 묻으면 닦아주고 먹고 싶은게 있냐고 묻는가 하면 말하지 않아도 먹이고 싶은 걸 가져다 놓기도 했다. 슬리체를 정성스럽게 돌보면서 프리실라는 정말 행복해보였다.


뭐 좀 이상한 장소에 이상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상한 분위기 풍기며 먹긴 해도 음식은 정말 맛있는 편이어서 난 우선 먹기로 했다. 어차피 이야기를 해도 그 후에나 통할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글리 녀석은 또 어디로 사라진거지.

슬리체를 데리러 간다고 해놓고선 돌아오지 않은 체였다.


쿵 쿵 쿵.


이번엔 누군가 문을 노크했다. 프리실라가 들어오라 허하자 문은 꽤나 거칠게 벌컥 열렸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건 하얀 천을 두른, 요리사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거구의 사내였다. 어찌나 키가 큰지 보통의 문보다도 큰 식당문조차 낮아서 몸을 숙여 들어올정도였고 덩치도 우락부락했다.


"프리실라 님. 탑 근처를 배회하는 수상한 녀석들을 잡았습니다."


사내가 말했다.


"수상한 사람?"


그걸 보기위해서인지 프리실라가 일어났다.

사내가 줄을 잡아당기자 줄줄이 수상한 녀석들이 끌려들어왔다.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다는 게 참 신기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착각이 분명했다. 난 저 녀석들 이름을 모른다. 모르기로 했다.


"아! 레이크 님 여기 계셨군요!"


왠지 제일 안 시끄러울 줄 알았던 애가 이번엔 가장 먼저 외쳤다.

나는 애써 고개를 돌리고 테이블에 머리를 괴는척 얼굴을 가렸다.


"어... 아는 사이니?"


프리실라가 물었다.


"아, 아니 그게..."


"야 왜 모르는 척 해! 레이크! 이럴 땐 도와줘야하는 거 아냐?! 혼자 그렇게 맛있는 거 먹고 잇냐!"


그러자 왠지 제일 시끄러울 거 같은 녀석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야! 로망소설 읽기 좋아하고 사람 때리는 거 좋아하는 아이힐데른 출신의 레이크 아이힐데르으으으은!"


저건 진짜 나중에 한 대 때려야지.


작가의말

ㄹㄹㄹ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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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49. 오목과 오목(4) +2 20.03.01 171 2 18쪽
281 49. 오목과 오목(3) +6 20.02.27 154 2 22쪽
280 49. 오목과 오목(2) +4 20.02.21 157 3 23쪽
279 49. 오목과 오목(1) 20.02.19 164 2 26쪽
278 48. 볼록과 볼록(5) 20.02.13 153 2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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