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밑에 코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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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내림
작품등록일 :
2017.05.07 21:12
최근연재일 :
2022.06.0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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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10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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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쪽

2170년 미래전쟁 (1장)

DUMMY

쉬이이-


하아~


쉬이이-


하아~


눈이 번쩍 뜨였다.

지하실에 비상용 초록등이 켜져있을 뿐이라 눈이 부시진 않았다. 그저 시야가 흐릿해지는 멀미를 느꼈다. 토가 나올 듯 속이 울렁 거렸다.


왼쪽을 바라봤다. 안면이 녹슬어 있는 로봇과 눈을 마주첬다. 기괴했다. 로봇의 눈에 불빛이 서서히 꺼져갔다. 이윽고 고개를 떨궜다.

나를 바라봤던 그 로봇은 바로 나였다. 방금 전까지 나는 로봇이었다.


"아아, 아아"


새로운 목소리를 얻었다. 다시 인간이 되었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오감이다. 머리를 아찔하게 만드는 금속과 기름냄새. 이 지하실은 생명의 활기와 거리가 먼 장소였다.


"..."


나는 죽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죽었다. 그리고 그 두번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다. 몸을 유지시키기 위한 핵전지를 구할 수 없었다. 가지고 있는 것이란 이 몸 뿐.


연료를 다 하기 직전에 나는 이 몸으로 들어왔다. 로봇의 몸이 작동을 멈추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뇌에 담아 재구성 시켰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통스럽거나 후회되는 기억들을 무의식에 감췄기 때문이다. 감춰진 기억은 우연히 꿈에서나 볼 수 있겠지만 의식적으로 떠올릴 수 없다.


얇은 담요로 몸을 감싸고 차가운 바닥에 발을 딛었다. 너무나도 오랜만의 촉감이라 가슴이 뛰었다. 발바닥 조차 자극이 너무 컸다.


로봇이 입고 있던 갈색의 바바리 코트를 벗겨서 내가 입었다.


"그동안 수고 했다."


로봇의 등을 쓰다듬었다. 녹슬고 차갑다. 손바닥을 펼쳐보자 녹이 묻어있다. 징그럽고 소름이 돋았다.


인간으로서 살았던 생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죽음이 다가오고 뜬 눈으로 저 로봇을 바라봤다. 전송되는 것이 내 기억 뿐이라면 저 로봇은 과연 나일까? 생각하다가 이 로봇과 두 눈이 마주쳤다. 거울속 낯선 내 모습을 보던 경험을 기억하는가? 그것보다 더 기괴하다.


새로운 몸을 얻은 미래의 내가 부러웠었다. 미래의 내가 될 로봇이 부러웠었다. 더 완성된 미래의 패턴을 가진 내가 부러웠다. 내가 남겨지고 죽는 것이 괴로웠다.


가슴이 쿡쿡 쑤셨다. 가슴을 꾹 눌렀다. 방금, 로봇으로서 죽음에 이르기전에 깨어난 지금의 나를 보고, 로봇은, 나는... 절규했다. 그게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온다.


눈물.


실로 오랜만이다.


차갑게 식은 로봇을 담요로 덮어주었다. 이제 보니 정말 못생겼고 관리도 안 된 모습이다. 36년 동안 저 모습으로 살아온 것이 기적이다. 지금 내 나이는 103살. 67살에 삶이 지루해서 자살했다.


자살한 이유는 시시하다. real war라는 가상게임에서 랭킹이 밀려났기 때문이다. 내 인생을 모두 바친 게임에서 밀려난 것은 참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결국 자살을 했다. 동시에 로봇이 되었다.


결국 로봇이 되어서 밥먹을 필요도 없고 잠을 잘 필요도 없게 됐다. 오히려 24시간 멈추지 않고 게임을 했다.


난 real war에서 9번 째로 강했다. 모두가 종이 한 장 차이의 실력이지만, 찰나의 결정에서 실력이 정해진다.


서로의 실력이 극한에 이르면 완벽한 승리를 장담 할 수가 없다. 랭킹 1위라도 랭킹 47위에게 연패 했고 100위권이 1000위 밖으로 순간 밀려나기도 한다. 모두가 밥도 안 먹고 게임만 하는 괴물들. 내가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결국 랭킹이 밀려나면서 난 좌절했다. 모든 것이 허망했다. 내 모든 추억과 결혼 생활이 게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미칠 듯 눈물이 났다. 결국 힘 없는 노인이 되었다.


다시 살고 싶었다. 젊어지거나,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찾은 방법은 신체를 젊은 몸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젊어지는 시술은 비쌌다. 복제 인간을 만들어서 뇌 이식하는 것은 불법이다. 대신 구닥따리 로봇 하나와 브레인 스캔이라는 불법 프로그램을 써서 내 기억을 옮겼다. 그리고 자살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결국 젊어지고 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지금 멸망에 이르고 있다.


지금 이곳 지하실은 쉽게 들어 올 수 없는 비밀스러운 곳이다. 지하에는 미리 챙겨 놓은 캔푸드, 물, 그리고 약이 5일분 준비되어 있었다. 솔직히 이정도로는 부족하다.


공기를 압축해서 분출하는 단검과 배낭을 집어들었다. 배낭이 몹시 무거워 몸이 절로 쳐진다. 로봇과 비교하면 개미 같은 힘을 지닌 육체였다. 그래도 보통 육체와 다르다. 재벌의 욕망으로 유전자 개량과 나노공학을 적용해 만들어진 몸이었다. 전투적인 능력은 없지만 엄청난 면역력과 자연치유 능력을 가졌다.


1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조용히 밟았다. 1층 문에 달려있는 작은 창호로 1층 내부를 살펴 보았다. 1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만약을 위해 치밀하게 움직였다. 조심히 문을 열고 카펫을 사근사근 밟으며 거실로 들어갔다.


거실은 어질러져 있었다. 누군가 침입하더라도 이미 털어간 빈집처럼 보이기 위해 꾸며놓은 것이다.


커텐이 처진 창문으로 다가갔다. 커텐을 약간 밀고 틈사이로 밖을 봤다. 감염된 부랑자 무리가 거리를 점령하고 있었다. 잔디밭과 거리 곳곳에 텐트까지 쳐져 있다.


부랑자들은 집에 들어오려고 돌로 창문을 때리기도 하고 손잡이 없는 문을 손톱으로 박박 긁어대기도 했다. 그러나 이 주변에 있는 어떤 집도 간단히 침입 할 수가 없었다. 이곳에 모든 집은 이 날을 대비하여 유리도 벽도 쉽게 부셔지지 않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칩입에 성공한 집도 멀쩡히 문만 열려진 상태였다.


그 집은 힘세며 포악한 청년들이 점령했다. 그 집에는 많은 식량이 보관되어 있었다. 모두 집주인 챙씨가 멸망을 대비해 비축해놓은 식량이었다.


처음에 이 마을을 침입한 부랑자는 한 둘 뿐이었다. 관대하게 음식을 나눠주기도 했다. 이것이 문제였다. 부유한 사람들만 사는 이 동내에서 식량을 나눠준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래서 지금 처럼 부랑자들이 거리의 몰려오게 되었다.


커텐 틈으로 한 참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머리가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 머리와 시선이 마주쳤다.


"제발, 먹을 것 좀 나눠주세요!"


"...! 허ㄱ!"


나는 깜짝 놀라며 뒤로 나자빠졌다. 심장을 붙잡았다. 깜짝 놀란다는 감각을 잊고 있었다. 힘겹게 심호흡을 했다. 기계가 느끼지 못한 공포를 느꼈다. 싫은 느낌이 전신으로 쭉 퍼졌다. 힘이 절로 빠졌다.


정말 소름 돋는다. 1센치도 안 돼는 작은 틈으로 보고 있었는데 그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창 너머로 부산스러운 소리가 났다.


"이봐! 역시 이곳에 사람이 있어!"


"꼬마 아가씨를 봤어요!"


커텐의 틈 사이로 붉은색 눈동자가 몰려들었다. 부랑자들이다. 그것도 그냥 부랑자가 아니라 감염된 부랑자. 감염자는 빨간 핏줄이 튀어난 눈동자로 구분 할 수 있었다.


우드득! 우드득!


끼이이익- 끼이이익-


벽과 창문을 긇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어서 돌과 주먹, 막대기로 창문을 마구 쳐댔다.

손발이 떨려왔다. 다시 인간이 됨으로써 공포를 느낀 것이다.


얼마 후 두드리던 소리가 멈췄다. 완전히 잠잠해졌다.

대신 한 여인의 부드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부모님이 안 계시니? 혼자라면 내가 엄마가 되줄께. 그러니까. 문좀 열어주렴. 꼬마 아가씨야."


커튼에 비치는 검은 그림자.

여인의 그림자.


"아..."


나는 왜 겁을 먹는 거지?


로봇이었다면 당장 저 대가리를 뿌셔버렸을 것인데...


이게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위태로운 몸이라니.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심호흡을 했다.


이곳은 상류층들만 생활하는 곳. 걷 모습은 화려한 주택이지만 사실 재앙을 대비해서 만들어진 개인벙커였다.


퍼펙트 하우스.


재앙이 매뉴얼에 따르면 전쟁용 안드로이드 9기가 이 마을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안드로이드는 나타나지 않았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감염된 부랑자 무리에 의해 파괴되었을 지도 모른다.


지금 밖에 있는 부랑자들은 대부분 감염자였다. 시나리오에 따르는 좀비라면 하루만에 모두 제압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감염자들은 지능을 가진 동시에 본능이 앞서는 반 불사신 괴물이었다.


저들은 뇌가 없어도 움직인다. 머리가 있어도 비감염자를 향한 성욕과 식욕을 억제하지 못했다. 게다가 일반인에 비해 수십배는 많이 먹는다. 배가 부르면 평범한 사람으로 행동하지만, 공복이 찾아오면 식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비감염자를 산체로 잡아먹는다. 비감염자를 산체로 잡아먹음으로써 식욕과 성욕, 쾌락을 충족하는 것이다.


며칠 전 챙씨도 동점심에 호소하는 여인에게 마음이 약해져서 문을 살짝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그 자리에서 뜯겨 먹혔다. 놀라운 것은 챙씨 뒤편에 먹을 것이 한 가득 있었다는 것.


빠드득! 빠드득! 우드득! 우드득!


...


내가 말 없이 오랫동안 잠잠히 있자 모두가 벽을 긁어댔다. 심리적으로 큰 압박감이 느껴진다.


벽 긁는 소리.


창문 긁는 소리.


두드리는 소리.


저들은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멈추지 않고 내었다.


나 또한 소리 자체를 피할 수가 없어서 괴로웠다.


나는 귀를 막고 거실에 있는 쇼파로 갔다. 그 쇼파에 몸을 묻었다.


감정이란 이 얼마나 불편한 것인가? 나는 어째서 이런 걸 계산에 넣지 않았단 말인가? 도저히 움직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겁쟁이가 되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오래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화성으로 출발하는 마지막 우주선을 타야한다.


*



화성은 까다로운 검증을 통해 선택된 소수만 갈 수 있다. 돈과 권력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주 할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프로그램이다. 이미 프로그램에 의해 선택된 사람을 태운 5대의 우주선이 화성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뒷세계의 권력자들은 비밀리에 우주선 한 대를 더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우주선을 노리고 있다. 여기도 문제가 있다. 이 우주선 또한 탑승자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정된 탑승자 목록에는 로크 가문의 딸 뮤나가 있다.


뮤나는 수행원과 우주선으로 향하는 도중에 부랑자의 습격으로 죽었다. 하지만 수행원은 살아남고 뮤나의 뇌와 여분의 육체 한 기가 남아있었다. 수행원은 여분의 육체에 그 기억을 다시 심어서 죽었던 증거를 없애려고 했다. 나는 아마도 그 수행원을 죽이고 이 육체를 훔친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부족한 게 있다.


지금 세상은 동공 검사나, 지문 검사, 유전자 검사 따위로 자신을 증명할 수 없다. 자신을 증명하는 확실한 검사는 뉴련 회로다. 육체가 똑같더라 해도 뇌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뉴런의 지도라면? 이것은 위조가 거의 불가능하다. 맵핑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선 뉴런의 지도가 95%는 일치해야 했다. 나 또한 뇌구조까지 속일 수가 없다. 뉴런 95%를 뮤나의 뉴런으로 바꿔버리면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뮤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3년 6개월 후면 마지막 우주선이 떠난다. 찾아야 하는 것은 우주선의 위치이고 해결해야 하는 것은 뉴런 검사를 피하고 화성에 가는 우주선을 타는 것이다.


끼이이익- 끼이이익-


"후... 거슬린다."


손가락 끝을 맞대고 감정과 정신을 차분히 다스렸다. 그 다음 벽을 긁어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이 몇 명인지.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는지. 어떤 기분이고 어떻게 나올지 상상했다.


미래를 알 수 없지만 어느정도 예측할 수는 있다. 그 위험을 예측하고 그 위험을 극복한다. 게임처럼. 이것이 내가 살면서 배운 전부였다.


저 감염된 부랑자들은 구식이라도 화약총까지 가지고 있다. 반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공기를 압축해서 분출하는 스쿠버 칼이 전부다. 바다에서 상어나 대왕문어가 공격해 올 때 몸통을 쑤셔 넣고 압축된 공기를 분출하는 호신용 무기였다. 분출을 한 번 사용하면 재충전하는데 5분이 걸린다.


"제발 도와주세요! 아기가 아파요. 문좀 열어주세요!"


쾅! 쾅! 쾅!


또 어느 여인이 창문을 두두리며 울부짖었다. 아기가 아프단다.


커텐을 열어 여인을 마주볼 용기가 안 난다. 지금 내 심장이 좋지 않다. 이 상태로 쭉 있으면 속이 뒤집혀서 기절할 지도 모른다.


문제는 나약하고 만만한 먹잇감이 이 집에 홀로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저들은 몇 날 몇 일 쉬지도 않고 소리로 공격해 올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로봇이 아니다. 상황을 좀 더 적극적이고 유연하게 대처 할 필요가 있었다.


스쿠버 칼을 집어들었다. 공포를 이겨내고 싶었다.


커텐을 접고 당당히 창문 앞의 여인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여인은 포대기 위에 검은 천을 덮어 놓은 상태로 애달프게 울음소리를 냈다. 그러나 붉은 눈동자 주변에는 한 방울의 눈물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아기를 보여줘."


나는 반말 어조로 무심하게 여인을 바라보고 말했다. 여인은 가증스럽게 우는 소리를 내며 검은 포대기를 쓰다듬었다.


"정말이에요. 아기의 몸이 너무 차가워서 천을 거둘 수가 없어요. 믿어주세요."


"아기를 보여주라니까!"


이 여인은 분명히 아무거나 포대기로 감싸놓고 것을 아기라고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알겠어요. 조금만."


천을 살짝 들어서 아기의 얼굴을 보였다. 분명히 아기가 맞았다. 미묘했다. 그녀의 말에는 거짓말이란 없다. 내가 36년 동안 로봇이라 감정이 메마른 것인가?


"아기를 자세히 보여줘."


"그럴 순 없어요! 저도 어머니 랍니다. 이 아이가 불쌍하지 않나요? 어린 숙녀께서 어떻게 그런 매정하고 차가운 태도를 보이실 수 있나요? 오 하느님! 아직 어린 나이라 도덕적인 죄를 묻진 않겠어요. 하지만 이 불쌍하고 가여운 아기를 보셨잖아요! 당신도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의 자식이 아닌가요? 우리 모두가 형제인데!"


"..."


시대에 뒤떨어진 연극 같은 그녀의 말에 홀린 것인가? 아니면 인간으로써 감정이 되살아났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계산하는 이성과 피부로 느끼는 감정이 너무 달라서 혼란스러웠다.


나는 모르게 동정심이 피어올랐다. 손은 어느세 창문을 열려고 하고 있었다. 자꾸 육체가 내 이성과 상반되는 행동을 하려고 한다.


창문은 안쪽에서 레버를 돌려야만 조금씩 올라가는 구조였다. 나는 딱 손가락만 넣을 수 있는 정도로 창문을 열였다.


"우선, 다른 사람들은 물러나"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 작고 귀여운 숙녀께서 겁먹고 있습니다. 잠시만 물러나 주시겠어요?"


"필요한 것이 뭐지?"


"될 수 있으면 집안으로..."


"그건 절 때 안 돼."


"먹을 거랑 해열제가..."


"해열제?"


"아픈 아기에게 필요한 약이에요."


"기다려"


몸이 차갑게 식은 아기에게 해열제는 필요 없다. 하지만 나는 따지지 않고 지하실에 있는 캔 푸드 세 개와 해열제를 챙겨서 돌아왔다.


다시 돌아왔을 때 여인이 열려진 창문의 틈 사이로 손가락을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었다. 몸서리가 절로 났다. 여인은 나를 보더니 손가락을 빼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집안에서 나오는 공기가 따듯하네요."


"이상한 행동 하지마세요.


창문 레버를 천천히 돌렸다. 캔푸드를 건내 줄 수 있는 딱 아슬아슬한 공간만.

오른손으로 스쿠버 칼을 쥐었다. 왼손으로는 캔푸드를 들어 작은 틈으로 밀어 넣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여인은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캔 푸드를 집었다. 마지막 캔푸드 두 개도 옆으로 세워 창문 틈으로 밀어 넣었다.


텁!


"잡았다!"


틈으로 팔을 길게 넣은 여인이 내 손목을 잡아 당겼다. 엄청난 힘에 팔이 창밖으로 딸려들어갈 것 같았다. 입을 악물고 비명을 참았다.


창문 아래에서 숨어 대기하고 있던 남자가 창문 틈으로 벽돌을 쑤셔박았다. 창문을 닫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비명을 지르며 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놔라해서 놔둘 상황이 아니란 것은 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해, 해열제를 아직 안 받았을 텐데 이래도 돼?"


"호호호! 아기는 이미 싸늘한 죽었거든. 그래서 해열제는 필요 없단다. 건방진 아가씨야. 내가 원하는 것은 니 몸과 이 집이야. 지금이라도 창문을 모두 열어 놓으렴. 내가 꼬마 아가씨의 착한 엄마가 돼줄게"


"필요없어!"


"이봐! 어서 잡아!"


다른 팔도 또 들어와 코트를 잡아 당겼다.


"큭!


"꼬마야 이미 늦었다!"


스쿠버칼을 거꾸로 잡고 내 왼쪽 손목을 잡은 여인의 팔을 내려 찍었다.


푹!


"꺄아아악!!!!! 으히히! 깔깔깔깔깔!"


고통의 비명과 웃음이 뒤섞인 목소리. 여인은 손을 놓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비집어 넣을 수 있는 모든 틈으로 손들이 들어오려고 했다.


힘겹게 칼을 뽑아냈다.


검은 피가 묻어있는 칼로 잡아 당겨지는 코트를 잘랐다. 그 다음 두 발로 벽을 밀어내며 팔을 잡아당겼다.


쿵.


팔이 빠졌다. 동시에 뒤로 떨어졌다. 겨우 빼낸 오른손 상태를 봤다. 피멍이 손자국 형태로 나 있었다.


"레버를 찾아, 레버를 돌려!"


"찾았어! 어느 반향으로 돌리는 거지?"


창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비명 소리와 환호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시도 가만히 지켜 볼 수가 없었다. 코트를 벗어 손들을 덮었다. 레버를 잡아당기는 손을 빠르게 찔러 난도질 했다. 조금 참아내던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손을 빼냈고 나는 레를 되돌렸다.


다시 다른 손이 내 팔목을 잡으려했다. 손바닥부터 팔목까지 그대로 찔러 넣었다. 그리고 공기를 분출했다.


푸쉬이이이이익!


펑!


"끄으으아악! 아파. 아파!"


손이 걸래처럼 터져나갔다. 칼을 빼내기 쉬워졌다. 칼을 회수하고 레버를 끝까지 돌렸다. 창틈에 집어넣은 팔들이 조금씩 짜부러졌다.


"그만! 그만! 팔을 배내게 해줘! 아파, 아프단 말이야!"


"제발! 팔만 빼내게 해줘! 내가 잘못했어! 부탁이야 너무 아파!"


전신의 힘을 다해 레버를 극한으로 돌렸다. 조금씩 돌아가는 레버에 따라 뼈과 창틈의 돌이 바스라져갔다. 이 튼튼한 창문은 압축기와 다름 없었다.


우드드득!


빠각!


팔 다섯개가 덜렁덜렁 거렸다. 더 이상 힘이 부족해서 내려가지 않았다. 다섯개의 팔이 힘차게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칼로 칼을 하나씩 잘라냈다. 비명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크아아악! 잡히면 널 먹을 거야! 네 팔을 씹이먹어 버릴테야!"


팔 다섯개를 잘라내는 작업은 오래 걸렸다. 팔을 모조리 잘라낸 후에야 겨우 창문을 닫을 수 있었다. 그마저도 창틈에 여러가지 물질이 있어 완전히 닫을 순 없었다. 창틈으로 여러가지 저주스러운 말이 쏟아져 나왔다.


창문틈에서 부터 벽을 타고 피가 흘러내린다. 잘라낸 팔은 바닥에서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죽지 않는 것이다. 손 주변에 뭔가 잡히는 무엇이든 일단 잡히면 꾹 잡아쥐었다.


"태워야겠어. 아주 숯덩이로 만들어주마"


잘라낸 손을 천에 손들을 담았다. 그리고 부엌에 있는 음식물 분쇄기에 집어 넣었다. 뼈까지 갈아서 소각해 버리는 분쇄기였다. 손을 집어넣고 스위치를 눌렀다. 끝가지 살아 꿈틀거리던 손들은 완전히 분쇄되었다.


그걸 다 본 뒤에 바닥에 주저앉았다.


"후..."


드디어 끝났다.


*


그 후 몸에 묻은 더러운 피를 씻어냈다. 씻어내다가, 거울 속에 비친 새 모습을 힐끔 바라보았다. 화이트 숏 컷에 초록 색 눈. 새로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 낯선 시선에 시선을 내려깔았다.


겨우 이런 것으로 죄책감을 느끼는 가?

103년을 살아왔다. 그저 36년 만의 감정이 어색했을지도 모른다.


피를 씻긴 후 사용한 물은 그냥 버렸다. 본래라면 자동 정화되어 식수로 사용해야 했지만 찝찝했다.


코트도 소각해버렸다. 그래서 입을 옷이 없었다. 그저 얇은 천으로 몸을 감쌌다.


지하실에 있는 캔푸드를 꺼냈다.


캔푸드의 내용물은 콩도 아니고 옥수수도 아니고 고기도 아니었다. 무슨 밀가루 같은 건덕이가 뭉텅뭉텅 모여 있었고 표지에는 -필수 영양소를 담았습니다- 라는 문구가 보였다.


스푼으로 한 입 떠먹었다. 곡류 같은 고소한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것조차 굉장히 자극적이었다. 36년 만에 먹은 음식은 그야말로 놀라웠다. 잊고 있었던 감각이다. 맛있다. 정말 맛있다.


반밖에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불렀다. 먼지가 들어가지 않게 종이로 덮어 놓았다.


3층으로 올라갔다. 쿵쿵 소리가 났다. 징그러운 놈들이다. 옥상에서도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도 당연히 비밀 통로가 존재한다. 지하에 만들어진 비밀통로는 이 마을의 모든 집과 연결되어 있었다. 챙씨의 집이 점령당하는 순간 더 이상 비밀 통로가 아니게 되었다. 위험한 던전에 불과했다.


지하를 뒤져보면 통로의 위치를 모를 리 없다. 저들이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비밀통로를 찾아냈을거라 확신한다.


식량은 2일 분으로 줄었다. 아껴 먹는다면 일주일은 먹는다. 적게 먹는 다는 것은 에너지를 적게 쓴다는 것이다. 확실히 이 부분은 생존에는 유용한 몸이었다. 로봇조차 에너지를 너무 많이 잡아먹는다. 아무리 강하더라도 오랫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격렬하게 움직일 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강하지만, 오래 생존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에너지를 소비하는 몸.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얼마전까지 다시 인간이 될 거라고 생각을 못해서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집에 식량을 비축하지 않았다. 다른 집으로 이동해야 한다.


설마 그 작은 틈 사이로 바라보는 것을 들킬 줄이야. 내 존재를 들키지 않았더라면 옆 집으로 넘어가는 것이 조금 더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방을 감시당하고 있었다.


이곳은 문이 딱 4곳 존재한다. 정문, 후문, 옥상 문, 비밀 통로의 문이다. 또 보안이 철저하다. 집집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유전자 인식과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2단계로 걸처야 문을 열 수 있다. 다른 방법은 마스터키 뿐이다.


이웃집에서 이곳을 떠나기 전에 내게 맡겼던 마스터키가 있었다. 이것을 이용하면 집으로 바로 들어 갈 수 있었다. 문제는 문을 열고 닫히는 시간이다. 아무리 빨라도 문을 여는데 3 ~ 4초, 닫히는 데 3 ~ 4초가 걸렸다. 또 두꺼운 문이 열리면서 나는 소리도 문제였다.


"무기, 무기 무기가 필요해! 왜, 도대체 왜 내가 무기를 준비해 두지 않았지?"


이동하면서 저들을 견제 할 방법이 필요했다.


공업용 절단기로 싹 잘라버리고 이동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당장 그런 무기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옆집으로 갈 수 있는 방법. 갈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 * *



"쩝..."


캔 푸드가 하나 남았다. 조금 굶었다가 배가 많이 고프면 그것을 조금씩 떠먹었다. 이곳에서 버틸 수 있는 최대한 까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저들이 이곳에 식량이 많기 때문에 내가 나오지 않는다고 착각을 해줄 필요가 있었다.


여러 방법으로 확인해본 결과 옥상도 비밀통로도 모든 창문도 지켜지고 있었다. 은밀하게 나갈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는 쇼파에 앉아 눈을 감고 생각했다. 과거에 읽었던 어느 책이 떠올랐다.


나는 수직적인 사고를 한다. 논리적이고 현실성있는 치밀한 계산을 한다. 그러나 지금의 뇌로는 모든 상황을 치밀하게 계산하고 반응 할 수가 없었다. 즉,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이기에 수평적 사고 쪽이 유연해졌다. 수평적 사고는 이곳도 저곳도 한 번씩 파보는 것으로써, 다양한 시도를 생각 할 수 있었다. 물론 다양한 사고가 가능 할 뿐이지 현실성이 없다.


그 책을 읽다가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상인이 있는데 생활이 너무 어려워서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렸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 돈을 갚을 수 없게 되자 상인은 감옥에 가야했고 그 때 고리 대금업자가 찾아와 "만약 당신의 딸과 결혼하게 해준다면 빛을 청산해 주겠다"라고 말했다. 상인은 당연히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자 고리 대금업자는 "그렇다면 이렇게 정합시다. 이 지갑 속에 검은 돌과 흰 돌 두개를 넣고 만약 흰 돌을 집으면 당신의 딸과 결혼도 하지 않고 돈도 청산해 드리겠소. 하지만 검은 돌을 집으면 당신의 딸과 결혼하고 그래도 빛도 청산해 드리오다."그래서 상인은 자신의 딸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고 상인의 딸은 "좋아요. 대신 돌은 제가 집겠어요."라고 대답했다.


상인과 딸과 고리 대금업자가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고리 대금업자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있는 검은 돌과 흰 돌 중. 검은 돌 두 개를 집어 지갑에 넣었고 딸은 그것을 보게 되었다. 과연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딸은 시집을 안 가고도 아버지의 빛을 청산해 줄 수 있는가?


여기서 나는 아무리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을 떠올리려고 해도 방법은 찾을 수 없었다. 만약 검은 돌 두개를 넣었다고 사깃꾼이라고 외친다면, 당장에 결혼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결국 빛을 청산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두 개다 검은 돌이 분명할 것을 집는다면? 딸은 결국 불행한 결혼을 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나는 문제를 맞추지 못했다. 그리고 문제의 해결책은 듣기 전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발견할 수 없었지만 결과를 듣고 나니 너무나도 간단했다.


딸은 지갑에 손을 넣고 돌 한 개를 집었다. 그리고 그 돌을 아주 획! 던져버린 후 "어머! 죄송해요. 하지만 지갑에 있는 돌이 남아 있으니 그것을 확인하면 제가 집은 돌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죠?"라고 대답하고 지갑을 열어보니 당연히 검은 돌이 들어있었다. 결국 상인의 딸이 집어 던진 돌은 흰색 돌이여야 했으니 상인의 딸과 결혼도 못 하고 상인의 돈도 못 받아게 되었다.


물론 현실적이지 못해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이것이 수평적 사고였다.


어려운 문제의 해결책은 쉽고 당연해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 생각하면 너무나도 쉬운 방법이라서 "나도 이정도는 생각할 수 있었어"라는 대답이 나올 정도여야 한다.


흔하고 간단하게 생각하자. 옆집으로 갈 수 있는 방법. 분명히 내가 보고 듣고 살아온 경험상 간단하고 누구라도 생각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저녁이 되었다.

평소라면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지하실로 내려가 작은 전등만 키고 시간을 보냈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1층으로 가서 불을 켰다. 그리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2층, 3층까지 모든 커텐을 올리고 손가락을 조금 넣을 수 있을 만큼 창문을 열어놓았다.


"창문이 열려있다!"


누군가 비명을 지르며 상황을 알렸다. 그러자 하나 둘 씩 창문으로 달려와 손을 넣으며 집안으로 비명과 웃음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돌 같은 것을 던지기도 하고 뭔가 알 수 없는 더러운 것을 꾸역꾸역 집어 넣었다.


"이봐, 어서 포기하라고! 사람은 역시 함께 있어야 즐겁지? 낄낄낄~"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오라며 손짓하는 자들. 비명을 지르며 욕설을 내뱉는 자들. 칼과 송곳으로 긁어대며 웃는 자들. 저들을 제압 할 수 있는 것은 군대 뿐이다.


도대체 세상 모든 군대는 어디로 간 것일까? 뭐, 정부까지 사라진 마당이었다. 이제 지구는 지옥 같은 저들이 신 인류가 되어 세상이 변하고 있었다.


나는 말아놓은 종이에 불을 붙이고 책과 찢어진 종이를 창문 가까운 곳에 쌓아놓고 보란 듯이 불을 피웠다.


"불장난 하면 오줌 싼다 아가야! 히히히!"


나는 창문을 향해 다가갔다. 지하실에 모아둔 물과 약들을 창밖으로 던져 주었다. 쓸만한 물건이 떨어지자 부랑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아우성 쳤다.


"천사라도 된 거야? 작은 꼬마 악마야!"


"나를 줘! 그것들은 내만 필요해!


"일루와! 그거 가지고 어서 일루와!"


모든 약과 수통을 털어 주자, 그들끼리 싸움이 일어났다.


어느 정도 불이 붙자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창밖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곳에는 먹을 것도 많고 약도 많다!"


"알고 있어! 이 빌어먹을 자식아! 그러니까 어서 나눠주란 말이야!"


"알았어. 모두 나눠줄게. 모두 줄게!"


그렇게 말 하면서 나는 일층, 이층, 삼층에 모조리 불을 질렀다. 연기가 자욱하게 퍼져나갔다. 그러자 하나 둘 씩 비명을 지르며 요란하게 떠들석 거렸다.


불은 서서히 피어올라와 계단과 천장까지 번졌다. 불은 멈추지 않고 꾸준히 번져나갔다.


군중의 비명소리는 더욱 크고 혼잡하게 퍼져나갔다. 옥상에서도 쿵쿵대는 발소리가 시끄럽고 들렸다. 기괴했다. 두두리는 소리는 수천명이 동시에 북을 치는 것 같다. 모든 것이 타오르고 혼란스러워졌다.


찢어놓은 검은 천으로 머리부터 몸까지 감쌌다. 그 다음 길다란 화분 두 개를 1층 문옆에 나란히 세웠다. 그리고 그 속으로 들어가 조용히 쭈구려 앉아 심호흡을 했다.

오장육부가 떨려온다. 공포나 두려움이 보다는 흥분된 긴장감이다. 큰 위기에 닥쳤을 때 오히려 알 수 없는 고양감이 피어오른다.


문 옆에 달려있는 모니터를 통해 조용히 속삭였다.


"정문, 후문, 옥상, 지하 통로 동시 개방."


- 권한에 따라 모든 문이 개방됩니다. -


끄아아악! 꺄아악!


우르르르르!...


화분 뒤로 숨어서 보았다. 맹수처럼 으르렁 거리던 부랑자 무리가 문이 열리자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선두에 있던 자들은 제일 먼저 엎어져 갈려버렸다. 뒤에 있던 자들은 사람을 밟고 미친 듯이 계단을 타고 방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직, 아직다. 부랑자들은 계속 들어왔다. 불빛에 달려드는 하루살이 처럼. 끝이 없었다.


바닥에 깔린 여러 부랑자는 죽지 않았지만 쇼크로 기절 한 상태였다. 1층으로 들어오는 무리가 존재가 없음을 확인했다. 1층으로 조용히 빠져나갔다.


검은 천을 뒤집어 쓰고 어둠속\을 달렸다. 모두가 나를 신경쓰지 않았고 그 덕분에 은밀하게 이웃집 마당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곧 바로 문으로 달려가 반지 형태의 마스터키를 문 가까이 대었다.


띠리릭-


두꺼운 정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엄청 따가운 시선을 등 뒤로 느꼈다. 뒤를 돌아봤다. 잠잠한 어둠속에서 기다리고 있던 몇 몇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저깃다! 저년이 다른 집으로 들어간다!"


"헙!?"


순간 숨을 참았다. 문이 절반도 열리지 않는 순간에 땅바닥에 몸을 굴려 안으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한 장정이 천을 잡아당겼다. 천을 그대로 벗어 얼굴로 던져버린 뒤 문틈 사이로 쏙 들어갔다. 그리고 곧 바로 열쇠를 대고 외쳤다.


"폐쇄! 강제 폐쇄!"


*


말은 했지만 문이 다 열리고 닫히는데 수초가 걸렸다. 문이 다 닫히는 사이에 다섯 명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들을 피해 어둠속으로 스며들었다.


"폐쇄!? 깔깔깔!!~ 그래 좋아, 폐쇄! 지금 여기에 우리만 있는 거지?"


"그럴껄?"


"우리끼리 싸워봤자 물어 뜯고 꼬집는 것 밖에 할 수 없잖아?"


"호호호! 맞아!"


들어온 다섯은 그들 끼리 타협을 시도했다.


나는 2층 으로 올라가는 계단 뒤에서 숨을 죽이고 앉았다. 오른손에 스쿠버 칼을 쥐어잡고 조용히 무릎을 굽혔다.


문이 모두 닫히자 시야가 안 잡힌다. 창으로도 불빛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쿵!


쿵!


들어오지 못한 무리들이 비명을 지르며 문을 열어달라고 울부짖었다. 내부로 들어온 다섯명은 콧웃음을 치면서 그들을 조롱하고 있었다.


'여자 두 명, 남자 세 명'


그들은 벽을 짚으며 어두운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소리를 들으면 그들이 어떤 상태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한 남자가 손전등을 켰다. 나는 사물 뒤로 몸을 숨겼다.


"일단 그 꼬마를 잡아야 하니까, 이봐 너, 이거 받아."


"뭐? 어떻게 하라고?"


"2층으로 가봐"


손전등을 들고있던 남자는 1층을 뒤졌다. 그리고 손전등은 하나 더 받은 남자가 막 2층으로 오르고 있었다. 나는 은밀하게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2층으로 오르는 남자는 손목을 흔들며 이곳 저곳을 대충 둘러 보았다. 몸을 낮게 움직이며 2층의 화장실 문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그리고 문을 가볍게 밀고 다른 곳으로 숨었다.


끼이익...


"거기 있는거지? 크크크! 심장 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오는구나!"


남자는 화장실을 향해 전등을 비췄다. 그리고 그가 천천히 다가가 화장실 문을 열었다.


남자의 등 뒤로 다가갔다.


그의 손전등을 잡는 동시에 목을 향해 칼을 꼽고 그 상태로 압축된 공기를 분출시켰다. 쉬이익- 목이 터지져나갔다. 남자가 쓰러지는 남자를 잡아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몸통은 여전히 꾸물 거리고 있었다.


신속하게 손정등을 올라오는 2층 계단을 향해 놓았다. 그러곤 빠르게 1층으로 내려가 서랍장 옆에 바짝 붙어 숨었다.


"이봐 찾은거야?"


"뭔가 시끄러운 것 같은데?"


"너는 나랑 같이 2층으로 올라가고 너희 기다리고 있어"


두 남자가 윗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부드러운 카펫을 사뿐히 밟으며 쇼파로 다가갔다. 한 여자는 쇼파에 업드린 체 가만히 있었다.


여자의 뒷통수에 칼을 댔다. 그대로 푹 찍어눌렀다.


푸욱!


"카, 아 카아악!"


"까하하하하! 저깃다 저깃어!"


구석에 있던 여자가 소리를 어둠 속에서 웃음소리를 비명같이 질러대며 따라왔다. 2층에 이르렀을 때, 나는 누을 가렸다.


나는 빠르게 계단을 타고 3층까지 도망갔다. 2층을 오르는 동시애 손정등의 불 빛이 나를 비췄고 두 남자가 나를 발견했다.


"찾았다!"


"2층 계단을 지키고 있을테니까, 니가 가봐!"


한 남자가 3층으로 뛰쳐올라갔다.


"옥상 문 개방."


열쇠를 대고 빠르게 외쳤다. 다시 3층의 어두운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한 남자가 손전등을 비추며 조금 반쯤 열려있는 옥상 밖으로 달려 나갔다.


"어딨어? 어딨어 이 꼬마자식아!"


"옥상 문 강제 폐쇄!"


"뭣!?"


반쯤 열렸던 옥상문이 다시 닫혔다. 남자는 빠르게 닫히는 문으로 몸을 던졌다. 문틈에 대기하고 있던 나는 온 몸을 다해 발로찼다. 들어오다 내 발에 차인 남자는 몸이 어쩡쩡하게 반쯤만 들어왔다. 몸이 끼인 것이다.


"그... 끄아아아아악!"


문이 조금씩 밀려들어갔다. 몸이 짜부러져버렸다. 머리만 집안에 남아 이상한 소리를 내며 입을 뻐끔거렸다.


"후..."


잠시 숨을 돌렸다. 그리고는 바로 3층에서 조용히 기달렸다. 2층 계단을 지키던 남자가 3층으로 올라왔다. 그와 동시에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이봐, 머리만 남았네? 꼬맹이는 어디갔어?"


"커억, 끄르르르륵."


"그세 아랫층으로 내려갔다고?"


"끄르르륵! 끄으!"


"제대로 말 하란 말이야! 젠장!"


남자는 더 이상 추적하지 않고 2층 계단에 지켰다.


"둘로 줄여 줘서 정말 구맙구만? 해가 뜨면 죽을 줄 알아! 알았어? 대답해봐! 거기 있는거지? 이 계단의 바로 아래 말이야!"


그가 내려오지 않고 2층의 통로를 지켰다. 나 또한 윗층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그가 한 동안 정말로 내려오지 않고 아침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1층에 불을 키고 부억으로 갔다.


"빌어먹을, 어떻게 불을 키는 거야?"


계단을 통해 밝은 1층의 불빛이 올라왔다. 밝은 곳이라면 표적을 찾기 쉽겠지만 남자는 내려가지 않았다.


"어쭈 여유를 부려? 내가 함정인 거 모를 것 같아?"


그러면서 한 참동안 함정인 것을 다 안다느니, 내려가면 내가 불을 끌 거라느니, 다 예상하고 있다는 둥 여러가지 말을 짓거렸다. 덤으로 아침이 되면 나를 잡아 어떻게 죽일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한 없이 내뱉었다.


그렇게 해가 밝아왔다. 남자는 밤새도록 2층의 계단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고 한 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하지만 말 뿐이었고 내려오지 않았다.


"헤헤, 그래 당장이라도 네 목아지를 따서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면, 녀석들이 너의 머리통을 돼지 오줌통을 공 대시 차듯 빵빵 차버리겠지? 아아, 그런데 아쉽게도 나 또한 밖으로 나가서 저 놈들과 이 집을 공유하기 싫어. 먹을 것도 말이야. 근데 빌어먹을 먹을 것은 2층에 없는 건가? 아 배고파, 배고파!"



* * *


"이봐 꼬맹이! 너도 이렇게 뜯어 먹어줄거야, 산체로 말이야."


도대체 저 꼬마녀석이 뭘 하고 있는거지?


일층에서 시체를 써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후 시체 타는 냄새도 났다. 그러다가 얼마 후 꼬마가 1층 계단 입구에 작은 쇼파를 가져다 놓았다. 쇼파에 앉아 당당히 1층 계단을 지켰다. 남자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오? 너는 1층 계단을 지키려고? 나는 2층을 지키고 말이지? 푸헬헬! 뭐라고 대답해봐, 벙어리가 아닌거 알아! 대답좀 해보라고!"


꼬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심히 칼은 쥐고 앉아 있었다.


아침.


"으으음. 너는 안 졸리나? 아니면 혹시 몰래 잔 건가? 배 고프지 않아? 아무것도 안 먹은 것 같은데? 아니면 그 잘난 은밀함으로 이미 배불리 먹었던 거야?"


다시 저녁.


"앗, 내가 깜빡 졸았군? 후후 그거 알아? 오! 벌써 저녁이라니? 다섯시간은 잤나? 너는 잤냐? 혹시 못 잔거야? 그렇다면 내가 유리하겠군. 안 그래?"


그러면서 남자는 여자가 앉아 있던 쇼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2층에 조용히 누워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일어나! 교대 하자구, 피곤하네 쩝."


여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는 일어나라며 소리를 질러댔다. 씩씩 거리며 누워있는 여자를 향해 달려갔다.


목이 없는 상태로 꾸물거리는 몸뚱이 뿐이었다.


남자는 그 자리에서 얼어 붙은 둣 짧은 비명을 질렀다.


휘이익! 팍.


"끄아악! 뜨, 뜨거워!"


살이 익어가는 냄새가 났다. 남자는 등 뒤로 박힌 무언가를 뽑았다. 불에 빨갛게 달군 과도였다. 심장이나 목으로 던져 익어버리게 하려는 수작이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3층의 문으로 뛰어갔다.


"나갈게! 내가 나갈게! 문 열어줘! 제발 문 열어줘! 개방! 옥상 개방! 열려라! 열어라!"


결국 포기한 남자는 3층의 문 앞에 등을 기대로 주저 앉았다. 계단을 타고 오르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곧 바로 계단 쪽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창문으로 나가면돼? 좀 대답좀 해봐!"


"나가고 싶나?"


꼬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얼른 계단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2층에는 유령처럼 이불을 뒤집쓴 소녀가 통조림을 들고 있었다.


"배고프지?"


"그래, 그래 꼬마야. 나는 몹시 배고프고 지쳤단다."


"이거 먹어."


3층으로 던져준 그것은 콩도 옥수수도 고기도 아니었다. 통조림을 열자, 밀가루가 뭉친 것 같은 건데기가 둥실둥실 떠다녔고 표면에는 필수 영양소를 넣었습니다. 라는 문구가 있었다. 남자는 배가 너무 고팠기에 통조림을 한 번에 마셔버렸다. 고소한 곡류 냄새가 풍겨왔다.


"하아, 이제 좀 낫네. 고맙다 꼬마야. 이제 조용히 나가마. 앞으로 찾아오지도 않으마."


"맛있어? 배불러?"


"아직도 배고프지만 맛은 있구나. 근데 졸음이..."


온 몸이 축 처지면서 눈꺼풀이 감겨오자 남자는 두 눈을 의심해야 했다. 한 은발의 소녀가 자신 앞에 나타난 것이다. 한 손에 칼을 쥐고.

남자는 더 이상 눈을 뜰 필요가 없었다.


작가의말

 예전에 썼던 소설을 다시 수정했는데, 분량을 더 나아갈 수 없었다. 더 쓰려는 의욕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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