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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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초
작품등록일 :
2012.02.22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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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02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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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DUMMY

"나를 맞이해 주는 건가."


산이 기지개를 켜고 장수는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을 어깨로 받았다. 얽힌 덩굴이 가로막은 동굴 밖 근처를 서성이던 장수 둘이 허리 숙여 인사했고, 붉은 망토에 붙은 낙엽을 털며 안으로 들어갔다.


"혈비유장수 여영공이 돌아왔습니다."


대기하던 장수의 말이 동굴 안을 울렸다. 어두운 길을 따라 들어가니 먼저 도착한 메아리 끝에 다른 장수가 대기하고 있었다.


'더 서늘하네. 가을이기도 하고. 오다 보니 밤도 잘 익었고.'


동굴 내부는 밝았다. 넓은 공간에 기와집도 있어 마을과 다름없었다. 중요한 회의를 위해 호출한 만큼 평소 잘 섞이지 않는 조직 장수들이 마을 한가운데 있는 작은 호숫가에 두루 모여 있었다. 가시굴절 조직 본부 추운바람마을. 이렇게 보면 아늑한 공간 같은데 모두 입에선 입김이 나왔다. 한여름에도 영하 날씨인 이곳 바람은 늘 서늘하고, 옷깃을 여미게 한다.


"보아하니 내가 마지막인가 보네."


호숫가를 바라보고 앉아 있는 장수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서 있었다.


"여영공 장수님이 도착했으니 이제부터 중요한 장생도를 가져오기 위해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한 후 말하는 장수는 긴 머리를 뒤로 넘기며 문서를 양손으로 잡고 읽기 편하게 펼쳤다. 추운바람마을에서 지내는데 이곳의 찬 공기엔 아직 적응을 못 했는지 연신 손을 꼬물거리며 냉기를 쫓고 있었다.


"지금까지 상황과 앞으로 계획을 설명할 것이므로 길어질 겁니다. 의자에 앉아 편히 듣는 게,"


"누구에게 명령이야. 그냥 설명해. 불필요한 건 알아서 줄여주면 되겠네."


굵은 목소리가 정중히 말하는 장수를 가로막았다.


"미리 준비한 의자에 앉아서 들으면 편할 것 같아 말한 겁니다. 불편하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해하십시오."


꼰짚모자를 눌러쓴 굵은 목소리 장수가 이번에는 부드럽게 받아들였다.


"농담이야. 너무 긴장하지 말라고."


"이번 목표는 중요하다. 시간 싸움 이기도 해. 시작하자."


의자에 앉은 채 몸을 돌린 장수의 정리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가시굴절 조직 장수가 모인 추운바람마을은 여느 때보다 더 엄숙했다. 호숫가의 잔잔한 일렁임을 바라보던 지박장수 모하는 옆에서 어깨를 만지는 여성 연순과 함께 장수를 둘러보았다. 이번 회의를 위해 준비한 내용물을 든 장수 김달종은 모하의 움직임을 신호로 알고 오므린 입술을 열기 전 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었다.


"장생과 관련해 지금까지 진행된 내용을 간추리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알아두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박수."


혼자 박수치며 흥을 올리는 초열장수 윤미래.


"마을에서 아무것도 안 한 주제에."


윤미래를 비웃는 무앵장수 우일람. 손바닥을 보이며 어쩌라는 눈빛으로 대신했다.


"좋은 소식이 많습니다. 여러분에게 좋을 거예요."


모하 옆에서 말하는 연순의 음성이 콩알 같은 소란을 일단락 지었다. 김달종이 말했다.


"어제 돗복님과 우희님이 귀뚜라미 장생을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장생 박제는 총 아흔여덟인데, 삼 일 전 통보를 통해 소용돌이눈 조직은 장생 잡기를 그만두기로 했으니 두 마리는 우리가 잡아야 합니다. 그 건에 관해선 모하님과 이야기가 끝났고, 제가 들은 건 없으니 궁금한 장수님은 직접 들으시기 바랍니다."


모하에게 시선이 간 장수도 있었지만 이내 김달종에게 돌아갔다. 그가 합의했으니 합당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 것. 물론 왜 그런가 궁금한 장수도 있었다. 여영공이 그 중 한 명.


"소용돌이눈 조직이 손 떼면 그걸로 끝인가요. 마지막이 가장 힘들다고 한 게 그 녀석들이었는데."


"아니, 그렇진 않다. 두 명이 마지막 장생 잡기를 도울 것이라 했다. 남은 두 마리 중 하나는 장생도에 구속된 게 아니라 산에 사는 여치 장생. 원래 소용돌이눈 조직이 잡으려 했던 것이다. 살아가는 장생에다가 마지막이라는 점 때문에 손에 넣기가 힘든 건 자명한 일. 우리 전원이 달려들어도 안 돼. 그쪽 도움 없이 손에 넣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라."


모하는 여영공 외 다른 의견이 있는지 주변을 둘러본 후 말 없음을 확인하고 반 보 물러났다. 김달종은 손을 비벼 한기를 몰아내고 계속 설명을 이었다.


"산 맥박도 뛰기 시작했죠. 사람에 비유하면 느끼기 힘드니 '지진'이라고 해두겠습니다. 발끝으로 느낄 수 있을만한 약한 지진은 지금도 약 이틀 간격을 두고 일어나는데, 이건 전초전도 안 됩니다. 장생이 사라진 산은 기지개를 켜지 않아 산의 정기가 제대로 안 돌 것이고 생태에 변화가 올 것이며, 그것대로 혼란이 생기겠죠. 그리고 조용하던 온갖 잡것들이 날뛰고 행패를 부릴 겁니다. 각 나라가 안정시켜놓은 '사람 길'이며 마을, 도시까지 들고 일어나니 꽤 괴롭겠지요. 그 혼란의 기미는 저 안, 깊은 산에서부터 시작할 겁니다. 나중엔 그걸 수습하기 위해 나라 장수들도 바빠질 것이고요. 하지만 소용돌이눈 조직에서 손을,"


"그래서."


여영공의 못마땅하다는 투가 설명을 가로막았다.


"알아야 할 게 뭔데. 그것만 말하면 될 거 아니야. 검은산맥이 깨어나니 이런저런 일 생긴다는 지루한 나열은 됐다고. 그따위 것에 휘말릴 놈이면 애초 조직에 들어올 만한 장수겠냐."


"알아서 나쁠 건 없지. 듣기 싫으면 나가던지."


경청하던 월귤장수 우희의 쏘아붙임에 손을 가린 망토를 뒤로 돌렸고, 그녀는 작은 나뭇가지를 손가락에 걸었다.


"아흔여덟 마리의 장생을 박제로 만든 뒤 생기는 변화에 대응해 가면서 여러 나라 장수를 상대, 거기에 나머지 두 장생을 취해야 하니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느냐를 아는 건 싸움의 변수를 파악하기 좋겠지만, 저도 여영공과 같은 생각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변화'인 것이지 당장 옥죄지 않는다면 마지막 장생도 탈취에 관한 내용을 우선 듣고 싶군요."


"마지막은 여치 장생이잖아."


노영명의 부드러운 목소리 뒤로 이번에는 윤미래가 끼어들었고 대꾸는 여영공이 했다.


"우리가 목표한 장생도 말이다. 미래 넌 잘 듣다가 꼭 맹한 소리하더라. 자냐?"


"싹 다 태워버린다."


김달종은 으레 있는 소란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윤미래의 '땅강아지에 먹히고 싶은 놈이 많네'라는 말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의 장생과 관련된 설명이 다시 시작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또 경청하는 장수들.


"여러 말씀 잘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제일 중요한 '까마귀 장생도' 탈취 작전을 자세히 말하고 나머지 장생 관련 변화의 태동은 따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작전에 영향을 주진 않으니까요. 아까 설명 중간에 잘려서 못했던 말을 이어보자면 장생이 사라지는 것과 관련된 영향은 소용돌이눈 조직이,"


"김달종 잠깐만. 밖으로 뭔가가 지나가는 것 같아. 내가 보고 올 거니까 그때까지 중요한 이야기는 기다려 줘."


그가 말을 거들기도 전에 우희가 자리에서 떠나 밖으로 나갔다. 설명 귀퉁이가 계속 잘려나가 전달이 덜 된 부분은 일단 제쳐 두고 다른 내용으로 회의를 이어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주제를 바꾸는 김달종. 그의 설명이 진행되는 동안 모하 옆에서 같이 듣던 연순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계속 서 있다간 쓰러질 것 같아 모하가 부축했고, 우일람이 거들었다. 안정된 회의가 깊어지고, 각자 역할을 숙지하면서 여러 의견이 오가고 있었다.


"폭포나라 내부 첩자가 접촉 전 들켰을 경우는?"


"기다리실 것 없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만나기로 한 장소로 나오지 않으면 무조건 두 번째 계획으로 돌아서면 됩니다. 이 경우 접촉자와 관계는 폭포나라를 떠날 때까지 끝났다고 생각하십시오."


"이번엔 내가 제일 한가하네."


"그 평가는 내가 해. 보좌를 제대로 안 하면 실패니까."


"그러십니까."


우희와 여영공 두 장수가 한 조로 묶였다.


"장생 잡기 이후 생기는 변화와 그에 따른 반발 말입니다만 이 부분은 소용돌이눈 조직이 잠재운 상태입니다. 아까 말하려 했는데 설명이 중간에 잘려서...어쨌든 이번 폭포나라 성 장생도 쟁탈은 외부 요소가 거의 끼어들지 않는 성 공략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므로 변수 때문에 틀어지지 않는다는 말뚝 같은 조건을 믿고 역할 지정이 가능한 겁니다."


"그래서 소용돌이눈 장수에게 감사라도 하란 말이야?"


개다래나무 나뭇가지를 돌리던 윤미래의 말에 손동작까지 취해가며 아니라 했다.


"그럴 리가요. 서로 같은 목적이 부분 겹쳐서 그렇지 각자 조직 이익만 챙기면 되니까요."


계속된 회의로 나머지 장수의 역할 설명도 대부분 끝났고, 마지막으로 모하가 마무리했다.


"까마귀 장생도가 걸려있는 폭포나라 성을 정면으로 치는 만큼 희생자가 나올지도 모르고, 붙잡힐지도 모른다. 처음 조직을 만들었을 때 말했지만, 잡히는 순간 조직에서 자동탈퇴임을 명심해라. 그땐 감옥이 더 무서워질 것이다. 마지막 장생은 생각하지 말 것. 보충 설명이 필요한 자는 마을을 떠나기 전 김달종과 상의하면 될 거다. 각자 역할이 현장에서 틀어질 시 임의 행동은 개인에 맡긴다. 결과적으로 까마귀 장생도만 우리 손에 들어오면 된다."


"시작일은요?"


우희가 물었다.


"육일 뒤. 그동안 각자 알아서 쉬도록. 오일 밤에는 마을로 모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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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개울기슭 # 양떼구름 13 전조 6 21.06.16 12 2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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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개울기슭 # 양떼구름 10 전조 3 18.10.29 62 2 10쪽
106 개울기슭 # 양떼구름 9 전조 2 18.10.25 62 2 7쪽
105 개울기슭 # 양떼구름 8 전조 18.10.21 45 2 9쪽
104 개울기슭 # 양떼구름 7 18.10.15 63 2 8쪽
103 개울기슭 # 양떼구름 6 18.08.07 89 2 9쪽
102 개울기슭 # 양떼구름 5 18.08.05 53 2 9쪽
101 개울기슭 # 양떼구름 4 18.08.01 73 2 7쪽
100 개울기슭 # 양떼구름 3 18.07.26 72 2 7쪽
99 개울기슭 # 양떼구름 2 18.07.08 73 2 9쪽
98 개울기슭 # 양떼구름 18.06.29 71 2 11쪽
97 소용돌이눈 2 18.06.27 87 2 5쪽
96 소용돌이눈 18.06.26 41 2 12쪽
95 개울기슭 # 천둥구름 21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13 18.05.24 90 2 8쪽
94 개울기슭 # 천둥구름 20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12 18.05.21 55 2 9쪽
93 개울기슭 # 천둥구름 19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11 18.05.19 58 2 10쪽
92 개울기슭 # 천둥구름 18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10 18.05.11 126 2 11쪽
91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17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9 18.05.08 111 2 9쪽
90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16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8 +1 18.04.26 102 4 9쪽
89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15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7 18.04.08 107 2 8쪽
88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14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6 18.04.05 91 2 11쪽
87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13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5 18.04.04 103 2 10쪽
86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12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4 18.04.03 89 2 12쪽
85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11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3 18.03.11 110 2 8쪽
84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10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2 18.03.10 123 2 9쪽
83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9 까마귀 장생도 쟁탈전 18.03.09 82 2 11쪽
82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8 조짐 18.01.24 97 2 8쪽
81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7 18.01.15 115 2 9쪽
80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6 17.11.29 221 2 8쪽
79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5 17.11.27 121 2 10쪽
78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4 17.11.21 369 2 9쪽
77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3 17.11.06 236 2 8쪽
76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2 17.11.04 101 2 10쪽
» 개울기슭 # 5 천둥구름 17.11.02 415 2 10쪽
74 궁철, 추격의 장 3 17.10.27 106 3 4쪽
73 궁철, 추격의 장 2 17.05.25 153 2 9쪽
72 궁철, 추격의 장 17.05.18 477 2 6쪽
71 개울기슭 # 4 소나기구름 18 예봉산 원정대 17 17.05.17 234 2 9쪽
70 개울기슭 # 4 소나기구름 17 예봉산 원정대 16 17.05.16 139 2 11쪽
69 개울기슭 # 4 소나기구름 16 예봉산 원정대 15 16.07.26 326 2 13쪽
68 개울기슭 # 4 소나기구름 15 예봉산 원정대 14 16.07.22 172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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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개울기슭 # 4 소나기구름 12 예봉산 원정대 11 16.04.22 371 2 6쪽
64 개울기슭 # 4 소나기구름 11 예봉산 원정대 10 16.04.21 589 2 8쪽
63 개울기슭 # 4 소나기구름 10 예봉산 원정대 9 16.04.18 372 3 10쪽
62 개울기슭 # 4 소나기구름 9 예봉산 원정대 8 16.03.25 355 2 8쪽
61 개울기슭 # 4 소나기구름 8 예봉산 원정대 7 16.03.23 338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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