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과 시작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동자23
작품등록일 :
2017.05.28 01:06
최근연재일 :
2017.08.15 03:28
연재수 :
238 회
조회수 :
52,538
추천수 :
565
글자수 :
2,173,500

작성
17.08.09 16:47
조회
100
추천
1
글자
9쪽

chapter7 : 분기 (7)

DUMMY

(7)

최전방 요새가 무너졌다는 말을 들었으나 4요새도시 병사들에게는 먼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음 마왕군의 목표가 될 전선은 2요새도시가 있는 주둔지였으니 한참이나 북으로 떨어져 있는 이곳이 공격당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느긋한 군기.

마왕군의 발호로 전쟁 상태에 돌입중이건만 순찰병 역시 느긋하다.

“하암. 꼭 요새 밖을 나갈 필요가 있나? 그제랑 같고, 어제랑 같을 텐데.”

“그러게 말이야.”

평범하게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요새도시를 둘러싼 벽 밖으로 랜턴을 들고 설렁설렁 움직이는 제국의 병사 둘.

허리춤에 비스듬히 매단 검대에 하나의 병이 찰랑인다.

“어, 뭐야?”

“크큭. 이런 재미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

마개를 열자 화악 퍼지는 주향.

제대로 숙성된 과일주임이 분명했다.

“나도 한입만.”

제국의 병사로 들어가 배 곪고 살 걱정을 덜어버렸지만 병사로 풍운의 꿈은 이룰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처지다. 귀족, 하다보다 준기사 자격만 되도, 진급에 상급을 노려볼 수 있겠지만 말단이 병사를 관리하는 부관이 되고, 그 한계를 넘어 기사를 노리기란 불가능.

철저히 막힌 통로에 위에서 내려오는 것은 오직 명령에 따른 철저한 순응뿐이었다.

이리 늘어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요새도시 안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

빡빡한 훈련.

엄중한 군기.

그나마 중앙군 소속이라 다행이지 공에 눈이 먼 귀족가의 사병이 되면 필연적으로 전장에 끌려가기에 이리 여유를 즐기면서 술 한 잔 할 수 있는 현실을 불평하지 않는다.

“크악. 좋다.”

“좋나?”

“응. 어?”

이질적인 목소리.

입안에 퍼지는 알싸한 맛에 정신이 팔려 다른 이가 접근하는 것도 알아보지 못했다. 혹시 상급자가 등장한 것인가 싶어 화들짝 놀라 등을 편 그에게 등 뒤에 있던 인물이 다시 묻는다.

“좋나?”

“아, 아닙니다!”

“그래. 네 인생 마지막 축배니 잘 되새겨야 할 거야.”

스윽.

목 아래 따끔한 느낌에 눈을 부릅뜬다. 고개를 돌리고 뒤를 확인하자 보이는 것은 술병을 건넨 녀식이 이미 차가운 시체가 되어 땅에 몸을 뉘이고 있다는 사실뿐.

눈앞이 캄캄해지고 숨결이 잦아지면서 병사의 사고는 끊어진다.

“처리했습니다.”

척후와 요인 암살을 담당하는 마왕군의 암살대.

인간이 밤에 시야가 줄어든다면 이들은 낮보다 더 좋은 야간시력을 통해 먼저 상대를 포착하고 암습하는데 특기를 가지고 있다.

설령 달빛에 몸이 비친다 해도 들키지 않도록 검은색의 천으로 얼굴까지 푹 눌러쓴 암살대는 이제 막 교대를 시작한 순찰병을 처리하고 시간을 확인한 후 성벽 가까이 다가선다.

찌릿찌릿한 느낌.

마왕군의 침공 경로에 따른 4개의 요새도시는 각기 신성력과 마법진으로 방어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마기를 배척하는 마나의 흐름이나, 천적관계에 놓여있는 신성력 모두 마족들에게는 치명적인 기운이다.

“모셔오도록.”

암살조장의 말에 푹 눌러쓴 검은 두건 아래 나직한 목소리가 명을 받는다.

슥!

붉은색과 흰 천을 몇 겹으로 겹친 화려한 복장의 무녀가 등장하자 경계를 맡은 암살대를 제외하고 전 암살대원이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다.

무녀가 손을 들어 올리자 내려왔던 고개는 빠르게 제 위치로 돌아간다.

요새도시의 성벽에 손바닥을 가져다대는 무녀.

작게 불꽃이 튈 정도로 반발력이 일어났지만 무녀는 아무런 표정 없이 눈을 감고 먼 옛날 조상들이 사용했던 진언을 외우며 기운을 희석시킨다.

고운 얼굴에 땀방울이 맺히고, 마족을 상징하는 뿔이 낮게 진동하면서 무녀의 몸이 흔들린다. 흰 피부가 마나의 영향을 받아 푸르게 변하고, 신성력의 기운에 화상을 입어 붉게 변했지만 성벽에 댄 손을 결코 떼지 않았다.

“지금입니다.”

기운이 빠진 목소리.

반발이 느껴지던 성벽이 무녀를 중심으로 반경 십미터 내외 기운의 공백 지대로 바뀌자 암살조장은 무녀의 신호에 따라 몸을 영체로 바꾸고 성벽을 돌파한다.

파짓!

입에서 흘러내리는 피.

그러나 두 눈에선 의지가 가득하다.

성벽에 댄 손바닥에 기포가 끓어오르고 피부가 흉칙하게 변할지언정 가슴에 담은 이 뜻은 포기하지 못하니까.

진언을 외우는 무녀의 기원은 성벽을 넘어간 암살조장에게 확실히 전해졌다.

성벽 마법진의 흐름을 보조하는 마법석을 암살조장이 깨버린 것이다. 동시에 성벽을 타넘은 암살조가 곳곳에 불을 지르며 혼란을 유도했고, 지근거리에서 무녀를 지키던 여호위대가 휘청 거리는 그녀를 등에 업고 빠르게 이탈한다.

요새도시를 수호하는 신성력과 마법진에 균열이 난 곳을 주술사들이 억지로 벌려놓는다.

하늘을 울부짖는 스펙터가 귀곡성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쏙 빼놓고, 그림자의 세상에서 산다는 블랙 섀도우가 세 갈래 커다란 손으로 제국의 병사들을 낚아채 땅속으로 들어간다.

무녀장은 불길이 치솟는 4요새도시를 보면서 마법통신을 방해하는 기원의 술을 끝마치고 달을 바라보며 눈을 감는다.

조상에 대한 기원을 담아 일의 성공을 간절하게 바라면서.

“부디··· 부디···.”


* * *


“이쪽으로 가는 게 맞아?”

전쟁지역을 거슬러 올라가는 태평한 두명의 남녀.

똑 닮은 얼굴에 바람에 흔들리는 갈색과 은색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휘날린다.

“맞아, 레나. 그러니까 보채지 좀 마.”

“가족이 위험한 일을 하는데 어떻게 급하지 않을 수 있겠어.”

레나는 볼에 바람을 불어 넣고 리안을 응시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마왕인 리안을 응시했다고 하는 것이 옳으리라.

“우려먹는구나.”

“당연하지!”

시원스레 목소리를 높이는 레나.

“리안은 항상 빈틈이 없어서 재미가 없었다니까. 그런 차 잡은 약점을 쉬이 놓을 수 없는 거잖아. 그렇지?”

한쪽 눈을 찡긋 하며 귀엽게 웃어 보인 레나의 얼굴은 심술궂은 마녀의 표정이었다.

“마녀다.”

저도 모르게 흘러나온 소리에 리안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양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이미 밖으로 토해진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는 노릇이다.

“오호. 그거 누구?”

“으, 응? 뭐가?”

“내 귀에 분명 마녀라는 소리를 들었거든.”

“아닐 거야. 나는 분명 마악 너언이라고 말했거든.”

더위로 흘러내린 땀방울에 찰싹 달라붙는 머리카락을 볼에서 떼어내며 레나는 상큼한 얼굴로 물었다.

“마악 너언?”

“응. 막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기가 막힌 듯 불온한 미소를 입가에 담으며 레나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이어졌다.

“그 뒤에 다는. 막악 너언 다? 어디서 되먹지도 않은 농담을 해!”

레나의 주먹이 올라가고 올라간 손은 기운을 담아 리안의 가슴을 토닥인다.

···토닥이는 수준이 아니라 구타다! 라고 생각한 리안이었지만.

“쿨럭. 이제 좀 풀렸어?”

“아니. 이 입이지? 이 귀엽고, 예쁜 여동생에게 못된 말을 하는 요 입!”

찰싹!

마왕의 카리스마가 무색하게 리안의 눈가에 찔끔 눈물이 맺힌다.

“아파!”

“아프라고 때리는 거야!”

정녕 여동생은 이길 수 없는 존재란 말인가!

리안은 탄식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르고 푸른 하늘. 해가 쨍쨍하고 전쟁이 일어난 지역이라는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하고 고요한 평야.

“리안. 배고파.”

“이럴 때만.”

“삐졌어?”

수백 수천년, 시공의 마왕이라 불리며 군림했던 리안은 삐질 수 없었다.

“아니. 잠시만 기다려.”

전용 하인으로 부려먹는 것인지, 개인 요리사를 데리고 다니는 것인지 모를 리안의 능숙한 솜씨에 레나는 그늘이 넓은 나무에 등을 기대고 무릎을 세워 그 위에 턱을 올린다.

물끄러미 바라보며 두 눈에 애정을 담는다.

마왕. 용사. 현재의 리안. 마왕이 된 리안.

상식을 넘어 이해의 범주를 초월하는 사태로 돼 버렸지만 레나는 리안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저리 애를 쓰는데···, 노력하고, 전진하는데 여동생으로서 어찌 멈춰있을 수 있을까?

이곳에 있지 않은 또 하나의 리안을 생각하며 레나는 작게 주먹을 쥔다.

“뿔이 생기면 좀 어때. 리안은 리안인 걸. 또 걱정 병이 도져 제 맘대로 생각하는 걸 테야. 만나면 때려줘야지.”

레나의 낮은 음성에 요리를 하는 마왕인 리안도, 마왕으로 거듭나 전쟁을 선포한 리안도 오한에 흠칫 몸을 떨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끝과 시작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오탈자 수정 없이 그대로 올라갑니다. 17.06.17 152 0 -
공지 글을 읽기 전에 먼저 보아주세요. 17.05.28 382 0 -
238 chapter8 : 교차 (5) +2 17.08.15 125 1 10쪽
237 chapter8 : 교차 (4) +2 17.08.12 88 1 10쪽
236 chapter8 : 교차 (3) 17.08.12 69 1 12쪽
235 chapter8 : 교차 (2) 17.08.12 76 1 10쪽
234 chapter8 : 교차 (1) 17.08.12 70 1 9쪽
» chapter7 : 분기 (7) +2 17.08.09 101 1 9쪽
232 chapter7 : 분기 (6) 17.08.09 95 1 9쪽
231 chapter7 : 분기 (5) 17.08.09 86 1 9쪽
230 chapter7 : 분기 (4) 17.08.09 88 1 10쪽
229 chapter7 : 분기 (3) 17.08.09 72 1 9쪽
228 chapter7 : 분기 (2) 17.08.09 73 1 10쪽
227 chapter7 : 분기 (1) +1 17.08.09 138 1 10쪽
226 chapter6 : 마왕 (8) +2 17.08.06 101 1 11쪽
225 chapter6 : 마왕 (7) 17.08.06 81 1 10쪽
224 chapter6 : 마왕 (6) 17.08.06 111 1 42쪽
223 chapter6 : 마왕 (5) 17.08.06 85 1 21쪽
222 chapter6 : 마왕 (4) 17.08.06 108 1 33쪽
221 chapter6 : 마왕 (3) 17.08.06 89 1 18쪽
220 chapter6 : 마왕 (2) 17.08.06 99 1 29쪽
219 chapter6 : 마왕 (1) 17.08.06 93 1 19쪽
218 chapter5 : 반전 (8) +2 17.08.05 125 1 24쪽
217 chapter5 : 반전 (7) 17.08.05 105 1 19쪽
216 chapter5 : 반전 (6) 17.08.05 97 1 12쪽
215 chapter5 : 반전 (5) 17.08.05 95 1 10쪽
214 chapter5 : 반전 (4) 17.08.05 180 1 11쪽
213 chapter5 : 반전 (3) 17.08.05 95 1 12쪽
212 chapter5 : 반전 (2) 17.08.05 96 1 14쪽
211 chapter5 : 반전 (1) 17.08.05 166 1 12쪽
210 chapter4 : 전쟁 (8) +1 17.08.05 119 1 14쪽
209 chapter4 : 전쟁 (7) 17.08.05 95 1 14쪽
208 chapter4 : 전쟁 (6) 17.08.05 188 1 13쪽
207 chapter4 : 전쟁 (5) 17.08.05 96 1 11쪽
206 chapter4 : 전쟁 (4) 17.08.05 95 1 11쪽
205 chapter4 : 전쟁 (3) 17.08.05 87 1 10쪽
204 chapter4 : 전쟁 (2) 17.08.05 90 1 12쪽
203 chapter4 : 전쟁 (1) 17.08.05 99 1 11쪽
202 chapter3 : 대회의 (10) 17.08.02 143 1 11쪽
201 chapter3 : 대회의 (9) 17.08.02 168 1 20쪽
200 chapter3 : 대회의 (8) 17.08.02 90 1 15쪽
199 chapter3 : 대회의 (7) 17.08.02 155 1 10쪽
198 chapter3 : 대회의 (6) +2 17.08.02 122 1 11쪽
197 chapter3 : 대회의 (5) 17.08.02 93 1 9쪽
196 chapter3 : 대회의 (4) 17.08.02 104 1 12쪽
195 chapter3 : 대회의 (3) 17.08.02 95 1 12쪽
194 chapter3 : 대회의 (2) 17.08.02 98 1 10쪽
193 chapter3 : 대회의 (1) 17.08.02 111 1 13쪽
192 chapter2 : 삼파 (7) +2 17.07.29 133 2 11쪽
191 chapter2 : 삼파 (6) 17.07.29 166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