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란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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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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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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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2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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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자작

DUMMY

보름이 지나고 리온 칼리아 백작은 오크 토벌을 성공적으로 끝낸 후 군대를 이끌고 회군했다.


“아버님, 무탈하셔서 다행입니다.”


병사들을 이끌고 성으로 들어온 리온은 갑옷을 벗으며 아들을 바라보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란은 피로해 보이는 아버지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병사들이 많이 줄은 것 같습니다.”

“기사 둘과 병사 오백이 죽었다. 다친 이들도 많지.”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오크의 숫자가 예상의 배를 넘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피해가 심하구나. 게다가 오크 주술사와 오크 전사도 백이 넘게 있더구나.”

“오크 주술사와 전사...설마 오크 로드라도 나온건 아니겠지요.”


오크 로드는 오크 랜드를 통합하는 오크들의 대장을 뜻한다. 실제의 왕은 아니지만 수만의 오크 군세를 다스리니 왕이나 다름없다. 백년전 아발론을 수만의 군세로 침공한 오크들에게도 오크 로드의 존재가 있었다. 정말 오크 로드가 나타난다면 칼리아 영지만의 힘만으로는 상대하기 힘들 것이다.


“글쎄다. 설마 아니라고 생각하지만...경계는 해두어야 겠지.”


아란은 묵묵히 갑옷을 정비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다 고개를 숙이며 방을 빠져나갔다. 문을 열고 나가려던 아란은 아버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버님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죽은 기사와 병사들도 명예롭게 생각할 겁니다.”

“...고맙구나.”


방문이 닫히고 아란이 밖으로 나가자 리온은 묵묵히 아들이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평생을 전장에서 살았기에 수없이 많은 병사들을 황야에 묻었지만 그렇다고 희생자가 생길때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들의 말은 리온의 마음을 조금 가볍게 해주었다. 다음날 점심에 아란을 초대한 리온은 식사를 하며 한마디 말을 건넸다.


“슈만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간 고생했더구나. 잘했다.”

“감사합니다.”

“마법을 익혔다더구나.”

“네, 집에 있는 마법서적으로 독학했습니다.”

“마법서적? 우리 집에 그런 것이 있었나?”


리온은 가문의 책장에 마법서가 있었단 것을 알지 못했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아란은 이미 이에 대해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해둔 상태였다.


“예, 저희 영지의 옛 가신이자 영지 마법사였던 볼튼 경이 남기신 서적이 있었습니다.”


볼튼은 증조부때 그를 모셨던 가신 중 하나인 마법사였다. 증조부때만 하더라도 칼리아 백작령의 힘이 제법 강했기에 영지 직속의 마법사도 고용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볼튼은 증조부에게 충성을 다하는 마법사였다. 리온은 아란의 말에 납득했다.


“아, 볼튼 경이라면 그러실 만하지.”

“바로 이 책입니다.”


아란은 두꺼운 책을 꺼내어 리온에게 내밀었다. 식탁위에 책을 올려놓은 리온은 책자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마력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표지에 볼튼 이라고 적혀 있구나. 그래도 혼자서 익히기에는 어렵지 않았느냐?”

“볼튼 경께서 그것도 안배를 해 두셨더군요. 책을 완독하자 뒷표지에 새겨져 있던 마법진이 발동하여 머릿속으로 마법을 익히기 위한 단계가 그림처럼 새겨져 쉽게 익힐 수 있었습니다. 일회용인지 지금은 사라져 버렸지만요.”

“그래? 안타깝구나. 나도 전장에서 마법사들이 제자들을 가르치는 방법을 좀 듣긴 했다면 볼튼 경의 방법이 있었다면 왕국 전체에서 좀 더 쉽게 마법사들을 육성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리온은 아쉽다는 듯 책을 바라보았다. 아발론 왕국은 천년의 역사를 가진 유서깊은 왕국이다. 그 덕분인지 기사의 육성법이 체계적으로 발달되어 있어 강국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법왕국이라 불리는 카르티아나 칼데인 제국에 비하면 마법사의 숫자가 극히 적었다.

그 이유는 오백년 전에 있었던 사이져 왕국의 국교화 정책 때문이다. 오백년전 아발론 왕국의 국왕은 아들이 죽은 후 종교에 심취하여 사이져 왕국의 종교인 태양신 렉트라를 모시는 태양교를 국교로 삼았다.

문제는 이 태양교의 교리에 있었다. 태양교는 태양신만을 유일신으로 모시며 다른 신이나 힘은 이단이라며 인정하지 않았다.

이로인해 아발론 왕국에서는 마법사들이 대대적인 탄압을 받고 쫓겨나거나 죽어갔다. 하지만 300년전 제국이 탄생하며 국경이 침범 당하자 아발론 왕국은 마법사의 부재로 번번이 패배했고 뼈아픈 깨달음을 얻은 왕국은 다시금 마법사를 육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왕국이 왕립 마탑을 세운 것은 겨우 100년 전이었다. 때문에 아발론 왕국에는 마법사가 많이 부족한 실정이었다. 아무리 가난하다고 해도 명색이 백작가문인 칼리아 백작가가 한 명의 마법사도 보유하지 못한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기에 리온이 이토록 안타까워 하는 것이다.

자신의 아들을 정규 마법사로 이르게 한 그 마법진을 밝힐 수 있었다면 지금의 부족한 마법사들을 좀더 빠르게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아란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수련법은 제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제가 좀더 체계적인 공부를 한 후 수련법을 가르친다면 마법사 전력을 더 쉽게 확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필요한 것이 있다면 즉각 요청하거라. 수도에서 마법사를 초청해야 한다 해도 그리 하겠다. 돈은 신경쓰지 말거라.”

“감사합니다, 아버님. 하지만 아직은 독학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래...”


이야기가 일단락이 되자 다시 식사에 열중하던 리온은 식사가 끝나자 차를 마시며 아란에게 물었다.


“이번에 재정관으로 임명할 제프리는 어떤 인물이냐?”

“정직하고 유능한 친구입니다.”

“그래, 그렇겠지. 나와 같은 실수를 하면 안된다.”


그렇게 말하는 리온의 얼굴은 조금 씁쓸해 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엘리안 남작은 어릴때부터 그를 따랐던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정관으로서의 전권을 주었었는데 그것이 영지에 독이 되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내가 영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하지만 앞으로는 재정관에게 모든 업무를 맡겨서는 안된다. 그러니 너에게 전권 행정관의 직위를 정식으로 부여하겠다. 영지에서 네 생각대로 일을 해보거라.”


아란은 뜻밖의 제안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행정관의 직위는 그간 공석이었다. 재정관인 엘리안 남작이 행정관의 역할까지 겸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온이 말하는 전권 행정관은 영주의 지위아래 행정업무를 맡는 이들과는 틀리다.

전권 행정관은 영주가 영지를 장기간 비울 때나 행정 업무를 보기 힘들 때에 임명하는 것으로 영주에게 사후보고만 올릴 뿐 모든 행정업무를 할 수 있었다. 영주대리와 비슷한 직책이었으나 영주가 있을때도 자체적으로 행정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권한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래, 지금은 뭘 하려고 하느냐?”

“화장실을 만들겁니다.”

“...화장실? 왕궁에 있는 것 말이냐?”


아발론에도 화장실의 개념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제국의 개념과는 조금 틀린 개인용 화장실이며 각종 마법적 처리가 된 호화시설로 왕궁이나 백작 이상의 고위 귀족의 저택에만 설치 되어 있었다.


“그것과는 조금 다르죠. 왕궁처럼 마법적 처리나 화려함을 뺀 간이 건물을 마을마다 만들 생각입니다.”

“간이 건물이라고는 하나 화장실이라 불릴 정도면 꽤 손이 많이 갈텐데, 굳이 그런 건물을 지을 필요가 있느냐?”


리온의 질문에 아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사고방식으로 사람의 오물은 그냥 길거리나 들판에 버리는게 상식이었기에 굳이 부족한 노동력을 써가면서 그런 건물을 지을 필요성에 대해 의문점이 생긴 것이다.


“네,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위생입니다. 지금 왕국의 영민들은 모두 오물을 아무데나 내버리거나 땅에 묻어 버리죠. 하지만 오물을 그런식으로 버리면 파리나 쥐등이 꼬여 질병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물등의 지하수원이 오염되어 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요. 두 번째는 화장실의 오물은 비료처리장을 만들고 약간의 과정을 거쳐 비료로 쓸 수 있다는 점입니다.”

“...비료?”

“네, 비료를 뿌린다면 작물에 영양분을 공급해 더욱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게 해줍니다.”

“호오, 마치 마법같구나.”


리온의 말에 아란은 작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실제로 대지의 축복이라는 신성마법도 있었다. 부유한 대귀족들이 신관을 고용해 펼치는 마법으로 대지의 지력을 키워 작물의 수확량을 늘리는 마법인데, 신관을 고용하는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마법 자체의 준비 비용이 너무 비싸서 칼리아 백작령에서는 한번도 사용된 적이 없었다.


“마법처럼 비싸지는 않지요. 그저 노동력만 있으면 됩니다. 그정도는 마을에서도 충분히 조달가능하지요. 게다가 지금은 농한기라 놀고 있는 노동력이 많을 테니 자재만 지원한다면 금새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 한번 해보거라. 네 말대로 지금은 농한기니 노는 노동력을 동원해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리고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말해보거라.”

“화장실 건설 건은 영민들을 부리면 되지만 현재 진행중인 대규모 건설사업은 외부의 인력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타 영지에서 들어오는 길목에는 갈린 자작령이 있지요.”

“...내가 자작령을 방문해 타협을 해주었으면 하는구나.”


리온 칼리아 백작은 스스로 영주의 업무를 잘 못한다고 여겼지만 어리석은 이는 아니었다. 몇마디 말에서 단박에 뜻을 알아들은 아버지를 보며 아란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갈린 자작은 아마 저희를 경계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와 부딪치려 하지 않겠지요.”


패트릭 갈린 자작은 부유하며 그 부유함을 토대로 자작령에 어울리지 않는 많은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작위가 자작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전장의 붉은 사자라 불리던 리온 칼리아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하지만 영지를 통과하는 자유민이 수만이 된다면 그의 영지에도 부담이 될터인데?”

“그래서 상비금 중 삼천 골드를 그에게 주려고 합니다. 이정도의 자금을 받는다면 자유민들을 통과시킬 때 드는 비용을 훨씬 상회할테니까요.”

“흠, 명분과 실리라...”

“그렇습니다. 지금은 거절하지 못할 겁니다.”

“...패트릭 갈린이 언젠가 이빨을 드러낼거란 말이냐?”

“그는 귀족파입니다. 그리고 발트라 백작을 배경으로 군사를 키우고 있지요. 그리고 저희는 중립이기에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하고 있구요. 틀림없이 우릴 노릴 겁니다. 단, 명분이 없으니 당분간은 자중하겠지만요.”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다니 훌륭하구나.”


아란은 리온 칼리아의 칭찬에 살짝 볼을 붉혔다. 아마 그가 아버지로부터 칭찬을 들은 몇 안되는 순간일 것이다.


“걱정하지 말거라. 패트릭 갈린 자작은 자유민들이 몇이 들어오든 행패를 부리지 못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아란은 이튿날 부터 제프리와 의논해 영지 곳곳에 비료 처리장과 화장실을 만들기 시작했다. 영민들은 농경지의 생산량 확보를 위해서라는 아란의 공고를 듣고는 반신반의 했지만 아란이 그들에게 해준 것이 너무나 크기에 임금이 제공되지 않더라도 적극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했다.

아란이 시행한 법 덕에 굶어죽어가던 아이들은 살이 올라 뛰어다녔고, 부모들은 그런 아이들을 보며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지옥같던 삶이 갑자기 바뀌어 버린 것이다. 단지 굶주림의 걱정을 덜었을 뿐만 아니라 시장과 난전이 들어선 덕에 일정한 규칙만 따르면 농번기에도 각종 물건을 팔아 여분의 재산을 만들 수도 있었다.

아란의 공고에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마을 사람들은 영주성에서 파견된 관리를 통해 비료를 만드는 법을 배운후 몇몇을 선출해 비료처리장과 화장실의 관리를 맡기고 돌아가며 그 일을 맡기로 했다. 건설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난 후 리온 칼리아는 영주 집무실 지금은 아란의 집무실이된 곳으로 찾아왔다.


“준비는 되었느냐?”

“네, 아버님.”

“그럼 출발하자구나.”


귀족간의 행사는 하루아침에 정할 수 없다. 방문을 하는 것도 작위에 따라 몇일이나 몇주의 시간을 주고 미리 통보를 해주어야 한다. 리온 칼리아는 기사단장인 킬츠 로아드와 기사 둘 그리고 기병 열기만 거느리고 갈린 자작령으로 향했다.

귀족의 행렬 치고는 지나치게 간소했으나 리온 백작은 애초에 화려한 행렬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행렬에는 여러 대의 마차가 함께 했다. 그 마차에는 갈린 자작에게 선물할 증정품이 가득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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