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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7.06.08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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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1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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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DUMMY

리비오는 말아 쥔 오른손을 그대로 명치에 꽂았고 반응도 채 할 수 없이 빨랐던 그의 주먹을 미처 방어하지 못한 소년은 컥, 소리와 함께 배를 움켜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리비오는 고통스러워하는 소년의 턱을 향해 다시 주먹을 날렸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소년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구겨진 옷을 정리한 그는 문 앞에 구경 나온 아이들과 자신의 뒤에서 넋 놓고 있는 세 명을 보더니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이 양아치 같은 놈 누구냐?”


구경을 나온 아이 한 명을 붙잡고 리비오가 물었는데, 알고 보니 덩치 큰 아이는 옆방과 자신의 방에만 그런 게 아니라 반대쪽 끝 방부터 이렇게 헤집고 다녔다고 했다. 서열 정리를 하려 했던 그는 나름 아이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아이였다. 워낙 시골에 있던 리비오는 몰랐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히 입에 오르락 내릴 정도로 실력이 있다고 장황이 나 있었다.


모두들 그가 가장 위에 설 것으로 생각했고 실제로 그에게 덤비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제 방금 일어난 일로 다들 그 생각을 바꿨다. 눈앞에 있는 처음 보는 아이가 이제 가장 뛰어난 것이었다. 자신들이 생각했던 가장 센 아이를 단 두 방에 보낼 정도로 강한 아이. 리비오의 눈치를 보며 상황을 정리할 때까지 교관이나 관리하는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이 되자 소문은 바람보다 빨리 퍼져 이미 다들 어젯밤 있었던 일을 듣게 되었고, 소문은 언제나 늘 부풀려져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지나가는 아이들은 한 번씩 리비오를 쳐다봤고 어떤 아이들은 그에게 일부러 접근하며 친한 척을 해댔다.


상황파악이 끝난 리비오는 알레 마을에서의 자신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아이들 중 쓸모 있다고 생각한 아이들을 받아들여 자신만의 세력을 단단히 구축해냈다. 두려움과 부러움의 대상으로 자리 잡혀갈 때, 바람에 녹여진 소문은 덱스터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사실 덱스터는 이미 사전에 알고 있었다. 각 마을에서 온 아이들의 평가와 점수가 매겨진 종이를 보며 그는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며, 첫날 밤 일부러 관리들을 보내지 않은 것은 사실 그가 구축해 놓은 가문의 전통 아닌 전통이었다. 허술한 관리를 통해 억지로 참았던 경쟁심리를 표출하게 해 아이들끼리 서로 더 우위인지 일찌감치 서로 판별해 내는 게 오히려 나중에 가서 터지는 것 보다 좋다고 생각한 그였다.


자신의 일터인 방 안에 앉아 있던 그는 팔짱을 끼며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렸다. 더글라스의 지시를 받아서였던 것도 있었지만,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는 것 또한 없지 않아 있었다. 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기다리던 중 그가 원하던 인물이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리비오 페로티 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덱스터는 문 앞에 서 있는 그를 자신의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천천히 다가와 의자를 앉자마자 덱스터의 말이 흘러나왔다.


“요즘 애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하더구나.”


“감사합니다.”


약간의 질책 아닌 질책이 섞여 있는 말투였지만, 리비오는 개의치 않아 했다. 오히려 그런 점이 덱스터의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다른 얘기할 필요 없이 그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가 누군지는 잘 알 거다. 내가 직접 너를 뽑기도 했으니까. 너를 부른 건 다른 게 아니라 물어볼 게 있어서다.”


“말씀하세요.”


“발레르라고 알지?”


잠시 잊고 있던 이름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리비오는 잠시 멈칫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 걔에 대해서 이야기 좀 해봐라.”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건지...”


덱스터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뭐 가족관계나 어떤 성격이고 마을에서는 어땠는지, 그런 거 말이다.”


그가 왜 발레르에 대해 궁금해하는지 리비오는 알 수 없었고, 기껏 불러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한 정보를 묻는 것에 기분이 나빴지만, 그의 표정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발레르는 원래 저희 마을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태어나기 좀 전에 들어와 살았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랑 단둘이 살았는데, 그마저도 며칠 전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성격은 뭐... 마을에서 왕따를 당할 정도로 좋지는 않습니다. 누구하고도 대화를 잘 하려 하지 않고요.”


“다른 건 또 없나?”


리비오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얘기를 나누려 하지 않아 그리 친하지는 않아 제가 아는 건 이것밖에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냐, 그 정도면 됐고... 듣자하니 벌써 파벌을 만든 것 같더군.”


무슨 생각으로 묻는지 알 수 없어 리비오는 침묵으로 답했다.


“만드는 것까진 좋다만 그걸 이용해서 다른 동기를 괴롭히거나 그러지는 마라. 이래나 저래나 결국엔 한 식구가 될 거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그래, 잘 알아들었으리라 믿는다. 내가 봤을 때 너는 조금만 더 다듬으면 성인이 되기 전에 일반 병으로 뽑힐 것 같다. 그러니 괜히 삐딱선 타지 말고 지금처럼만 해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그만 나가 봐.”


나가는 리비오의 뒷모습을 보며 덱스터는 피식 웃었다.


“이상한 놈을 뽑았군.”


발레르와 잠시나마 동행했던 그로서는 리비오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상관에게 허위보고는 어떤 벌이 내려지는지 알면서 그렇게 말했다는 건, 불러놓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 언짢아서거나 자신이 알지 못하는 둘 만의 어떤 일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는 아마 후자 쪽일 거라 생각했다. 아니면 그 둘 모두일지도.


덱스터는 높은 자신감에서 나오는 그 오만함이 마음에 들었다. 다른 교관이었다면 용서하지 못했겠지만, 그는 그런 종류의 고지식한 사람이 아니었다. 엇나갈 수야 있겠지만,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가 볼 때는 리비오는 눈치가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중요한 건, 타 또래보다 월등히 강한 힘으로 그의 자존심을 지켜낼 걸 알았기에 덱스터는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리비오가 알려준 것을 토대로 적어 내려가며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


태양이 쪼개진 채 흩날려 하늘을 수놓을 때쯤 더글라스와 병사들은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그의 마음은 밤을 새워서라도 강행군을 하고 싶었지만, 꽤 지친 말들을 전부 교대할 수 있을 만큼 마구간에 말이 있지 않았기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잠시 여기서 쉬기로 했다. 말을 멈추며 더글라스는 직급이 가장 놓은 병사만을 불러 세우고 나머지 부대원들은 해산시켰다.


“루치아까지 도착하려면 얼마나 걸리지?”


“이 속도라면 내일모레 아침쯤 도착할 겁니다.”


“빠듯하군. 동이 트기 전에 전부 준비시키고 날 깨우러 와라.”


“알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하루 빨리 그들과 만나길 고대하며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여관으로 들어갔다.


*****************************************


거실에는 데니카 혼자였다. 애나를 방에 보내고도 그녀는 꽤 오랫동안 작업에 열중했다. 그들이 더글라스에게 따라 잡히거나 도망갈 수 있는 건 그녀 자신에게 달렸기에 눈이 뻐근하고 어깨가 결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어쨌거나 더글라스는 이곳으로 온다는 건 그녀 또한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이 자신을 찾아온 그 시점부터 그녀는 이제 그들과 다름없는 처지가 되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아직까지도 그다음을 결정짓지 못했다. 티보의 말대로 이제 그녀도 이 나라에 지금처럼 지낼 수 있는 건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그 얘기는 애나도 빗겨가지 않을 것이다.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떠올라 그녀는 작업을 멈추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와중 그들이 쓰고 있는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녀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알고 있다는 듯 말을 걸었다.


“왜?”


그녀의 예상대로 거실로 나온 사람은 티보였다. 그는 아무 대답 없이 걸어가 전날 새벽에 앉았던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서도 어떤 말이 들려오지 않자 그녀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안 갈 거라고 얘기했잖아, 티보.”


“그래, 나도 알고 있어.”


다시 찾아오는 정적 속에 티보는 머릿속으로 단어를 고르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애나, 저 아이 때문이지?”


이번엔 그녀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티보는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그 방법밖에 없어.”


“그래서? 그러면 저 애 혼자 여기 내버려두고 도망가라는 이야기니? 네가 말한 게 최선이라는 건 나도 알아. 그런데 애나는 어떡하라고.”


조금 격양된 말투로 그녀가 티보를 쏘아붙였다. 그는 묵묵히 그녀의 분노를 받으며 겉옷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며 일어났다.


“자, 이거.”


그녀의 바로 앞까지 간 그는 주머니를 그녀의 책상 앞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바닥에 닿으면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고, 데니카는 그게 어떤 소리인지 깨달았을 때쯤, 티보가 그녀에게 말했다.


“결국 이거 때문이잖아. 몇 년간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을 거야.”


“너 이게 뭐하는···”


“내 결혼반지까지 팔아서 마련한 돈이야.”


화를 내려던 그녀는 티보의 말에 나오려던 말을 삼켰다. 허탈한 그의 표정을 보며 그녀는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티보는 애나의 작업대 의자에 앉았다.


“애나에게 주고 그들이 닿지 않는 곳에 보내자. 네가 계속 데리고 있다간 더 큰 일 날 수 있어.”


여전히 들려오지 않는 데니카의 대답에 티보가 다시 달래려 입을 열려는 순간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일그러진 얼굴과 촉촉해진 눈가를 보이기 싫었는지 그녀는 티보가 보는 쪽을 손으로 가렸다.


“애나는 고아였어. 엄마가 죽고 나서 얼마 안 돼 아빠란 작자는 애나를 버리고 도망쳤지. 누더기가 된 옷을 입고 때가 잔뜩 낀 채 동냥하는 그녀를 내가 데려다 키웠어, 무슨 말인지 알겠니? 저 아이에겐 내가 어머니고 애나는 내게 딸이야. 그래, 그게 애나에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겠지. 근데, 그러면 애나는 다시 버려지는 거잖아. 다시... 혼자가 되는 거잖아.”


갈수록 갈라지던 목은 결국 마지막에 말할 때쯤 숨과 함께 간신히 들릴 만큼 흘러나왔다.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은 턱에 맺혀 그녀의 손등 위로 아련하고 천천히 떨어졌다. 티보는 그녀의 흔들리는 어깨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데니카는 새어나오려는 울음소리를 입술을 깨물어 틀어막은 채 눈물을 흘렸다. 그는 그런 그녀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다 자리를 피해줘야겠다 싶어 천천히 최대한 소리 나지 않게 일어나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


다음 날 그들은 방 안에서 지냈다. 저녁이 다가오며 해가 조금씩 기울며 애나를 제외한 모두 긴장이 쌓여갔다. 저녁을 억지로 꾸역꾸역 먹은 발레르는 가장 먼저 방에 들어와 챙겨놨던 작은 종이에 무어라 적고는 잘 접어 쪽지 모양을 만들었다. 그가 주머니에 넣는 순간 방문이 열렸다.


“왜 이리 일찍 들어갔어?”


“속이 좀 안 좋아서...”


애런의 물음에 발레르는 힘없는 척을 하며 변명을 둘러댔다.


“그래도 이제 마지막이잖아. 너 애나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어? 아닌데.”


당황한 나머지 발레르의 목소리는 조금 커졌고, 흔들리는 그의 눈빛을 보며 애런은 고개를 내저었다.


“뭘 숨기고 그러냐.”


“숨기는 게 아니고...”


무언가 말을 더 하려던 발레르는 자신의 변명이 너무 궁상맞다 생각해 그만 입을 다물었다. 드러눕는 애런을 바라보며 그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떡해.”


“뭐가.”


“이제 못 만나잖아. 좋아하는 거 알려봤자 뭐하냐고.”


“야, 어디 뭐 죽으러 가냐. 그래서 이대로 아예 끝내려고?”


발레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애런은 답답함에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왜 이렇게 극단적이지? 만약 우리가 다시 돌아오면, 그래도 안 볼거냐.”


“아니.”


“그럼 말해.”


“싫어.”


“미친놈, 도대체 왜?”


“그건 애나한테 내 감정을 넘기는 거잖아.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하염없이 기다리게 할 수는 없어. 차라리 다시 돌아오면 그때 얘기하는 게 나아.”


상체를 일으켜 다그치던 애런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네 말도 맞다. 내가 더 끼어들어 봤자 뭐하겠어.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빠진 발레르를 보며 애런은 다시 자리에 드러누웠다.


“이따 준비해야 할 때 나 좀 깨워줘. 미리 좀 자둬야지.”


“알았어. 좀 자 둬.”


발레르의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누운 애런을 보며 그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작은 쪽지의 감촉을 다시 한 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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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17.06.18 178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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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화. 17.06.17 221 2 14쪽
21 21화. 17.06.17 23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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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화. 17.06.16 262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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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화. 17.06.15 235 1 13쪽
16 16화. 17.06.15 229 1 14쪽
15 15화. 17.06.14 212 2 14쪽
14 14화. 17.06.14 247 2 14쪽
13 13화. 17.06.14 244 2 14쪽
12 12화. 17.06.13 277 2 13쪽
11 11화. 17.06.13 307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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