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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2017공모전참가작 의술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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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이가
작품등록일 :
2017.06.2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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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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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1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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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의술의 탑 [26]

DUMMY

진태는 오금례 씨 진단을 대산이 내린줄로만 알고 있었다. 아예 태석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설령 있었다고 해도, 별 신경도 쓰지 않았을 터.


무혈과성 괴사라는 것이 그리 만만한 병이 아니었기 때문. 어중이떠중이들이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성격의 질환이 아니었다.


멍하니 서 있는 진태에게 정섭이 다시 다그쳤다.


"뭐하고 있어? 사과하시라니까. 수술 방에서 집도의하고 보조의한테 소리 지르는 게 말아돼?


화를 내다보면 점점 더 빡치는 스타일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정섭이 딱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아까보다 한층 더 험악한 목소리였다.


진태가 인상을 찌푸렸다.


사과라면 몰라도, 감사라니?


"무슨 소리세요? 한 교수님."

"여기 꼴..아니 이태석 선생이 병동에서부터 무혈관성 괴사 진단해서 수술까지 들어왔다고. 아, 못들었어?"

"저녀석이 했다고요? 그럼 대산이는?"


이미 감압을 마친 대산. 할 일을 끝낸 드릴을 기구대 위에 내려 놓았다. 그리곤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저는 의심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때 수술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태석 선생의 덕입니다."

"낫형적혈구 어쩌구 했던거는?"

"그것도 이태석 선생이 진단했습니다."

"하."


그냥 무혈관성 괴사를 진단하고 수술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원인을 찾아내고 재발을 예방하는 일은 무척 어려웠다. 때문에 기껏 걷게 해준 환자가 다시 괴사가 생겨 오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태석은 그 두가지를 완벽하게 해내버린 것.


진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태석과 정섭을 번갈아가면 둘러보았다. 잠시 후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아까 소리 지른건 미안하다. 그럼."


그는 들어왔던 길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끝내 감사의 인사는 듣지 못한 태석. 정섭이 혀를 끌끌 찼다.


"꼴통, 너무 걱정마라. 정형외과 수술하는 사람이 김 교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다 연결시켜 줄게."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스승이 제자 가르쳐 주는 건 당연하지. 수술은 잘 끝났네. 이제 봉합만 하면 되나?"

"네, 교수님."

"그래, 그럼 잘 마쳐라."


정섭은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대체 여긴 왜 온걸까. 태석은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저, 교수님. 지금 어디가시는 겁니까?"

"응? 아 당뇨로 계속 우리 병원 내과 다니던 환자인데, 발이 죄 썩어서. 그거 재건해주러 간다."


족부 재건술.


그리 흔하게 하는 수술은 아니었다. 태석의 눈이 빛났다.


이미 저녁이 다 되어 가는 시각. 지금 들어가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처음 보는 수술은 놓치기 싫다.'


어차피 얘기나 꺼내볼 참이었다. 이미 보조의가 정해져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못 먹는 밤 찔러나 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저, 교수님. 저도 들어갈 수 있을까요?"

"너? 너도 들어오고 싶다고?"


정섭은 시계를 쳐다보며 물었다.


지금껏 수술하고 있던 놈이 할 소리가 아니었다. 자가 환자도 아니지 않은가."


"왜. 족부 재건술 관심 있어?"

"네. 배우고 싶습니다!"


정섭의 표정이 묘해졌다. 배우고 싶다라.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었다.


2 외과의 레지던트들은 다들 격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레지던트란 직함이 그들의 노동강도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레지던트. 거주자라는 뜻. 그야말로 병원에서 살라는 말이었다. 대부분은 그 뜻에 걸맞은 삶을 살고 있었다.


애인이나 가족들이 면회를 오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는 정도.


그렇게 치열하게 일하다보면 싫어도 점점 의사가 되어갔다. 그게 레지던트 수련의 목적이자 방식이었으니.


그런 와중에 배움을 논한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정섭은 다시 태석을 돌아보았다.


"꼴통. 이거 빨라도 네다섯시간은 걸리는 수술이야. 나야 내일 외래도 없고 수술도 없지만, 너는 아니잖아."

"괜찮습니다! 체력 하나는 자신 있습니다."


이 말만은 진심이었다.


어쩌면 탑에 들어간 이유가 지치지 않는 체력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으니. 따로 운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타고 났을 뿐.


"진짜 꼴통이네, 이거. 알았어. 들어와. 대신 내일 일 빵꾸내면 알지?"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16번 방이야."

"네!"


대산은 그런 태석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고생을 하지 못해 환장한 놈 같았다. 1년차면 혹시 몰랐다. 하지만 이제 4년차가 아닌가.


'친구지만, 이럴 때 보면 진짜 미친 놈같네.'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대산아, 봉합 끝났다. 이제 드레싱 해드릴까?"

"어? 어. 그래. 너 또 수술방 넘어간다는 거지?"

"응. 난 급하잖아. 배울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어."

"적당히 하지. 알았다. 일단 드레싱부터 하자."


이제 통증은 한결 나아질 터였다. 하지만 움직이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살을 째고, 뼈를 갈아내었으니까.


태석과 대산은 절개한 부위에 두툼한 거즈를 덧대고, 압박붕대로 감았다. 너무 세게하면 통증이 있었고, 살살하면 풀렸다.


적당함에 모든 것의 묘미가 있었다.


"오케이. 됐다."


대산이 이마에 땀을 훔쳤다.


말이 수술이지, 거의 노동이나 다름 없었다. 쇠꼬챙이로 뼈를 쑤시고, 갈아내고. 진이 쭉 빠졌다.


반면 태석은 쌩쌩하기만 했다. 새 수술에 들어갈 생각을 하니 활력이 도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산아, 고맙다. 덕분에 좋은 수술 배웠어."

"고맙긴. 환자 놓칠 뻔 한 거 잡아준 게 더 감사하지. 바로 수술갈거야? 밥은 먹어야지."

"아, 그래 후딱 먹고 들어가야겠다."

"내가 환자 회복실로 뺄 테니까, 너는 밥 먹으러 가. 한 10분 정도 되겠다."

"알았어. 이따 연락할게."


태석은 후다닥 수술방 식당을 향해 달렸다.


수술방 식당은 탈의실과 대기실 사이에 있었다. 정해진 식사 시간은 따로 없었다. 수술이 시간에 딱딱 맞추어서 끝나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


배식대에는 몇 개의 음식이 놓여 있었다. 대개 오래 두어도 맛이 변하지 않고, 잘 상하지 않는 것들.


수술복을 입은 몇몇이 허겁지겁 입에 무언가를 쑤셔 넣고 있었다. 수술 중간에 나왔거나, 수술 사이에 먹는 것이리라.


태석은 서둘러 뭐가 있는지 살폈다.


'김밥, 주먹밥, 컵라면."


이외에도 초코바, 음료수 등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생존 음식들.


이중에서는 그나마 컵라면에 김밥이 제일 나았다. 실제로 인기도 퍽 있는 편이었고.


태석은 무심결에 컵라면을 집어 들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초코바 두 개를 집어 들었다.


'5분, 10분이라도 술기를 살피고 가자. 기껏 들어갔는데, 실수만 하면 오히려 역효과야.'


우선 환자의 상태부터 살펴야 했다. 족부 재건술이라고 해서 다 같은 수술이 아니었으니. 상태에 따라 수술 종류가 크게 달랐다.


태석은 초코바 하나를 입에 쑤셔 넣고는 모니터 앞에 앉았다. 16방 수술 목록을 띄웠다. 마지막 수술만 이름이 빨갰다. 응급으로 잡혔다는 얘기.


"환자분 성함이.. 박경원. 아니 30살 밖에 안됐는데 당뇨가 이렇게 심하시네."


전혀 조절이 되지 않고 있었다. 당화 혈색소가 9가 넘을지경. 이쯤되면 환자가 치료를 거의 받고 있지 않다고 봐야했다.


신장 기능도 살짝 떨어져 있었다. 혈당 때문에 신장 조직에 손상이 간 탓이리라.


'발 사진은 안 찍어뒀나?'


의무기록을 쭉쭉 뒤졌다. 태석의 손을 멈추게 하는 사진이 있었다.


발등이 새카맣게 죽어 있었다. 괴사한 자리 위로는 작은 자가 놓여 있는 사진. 길이를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다.


'2.5cm. 거의 동전만하네. 그렇게 크진 않은데..'


재건술 종류를 결정할 때 기준이 있었다. 정확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2.5cm이 작은 것은 분명했다.


환자의 상태를 알아냈으니, 이제는 뭘 할지 알아볼 차례.


태석은 검색창에 'Foot reconstruction flap(족부 재건 피판술)'을 쳤다. 예상대로 꽤 많은 자료가 나왔다.


'3cm이 기준이었구나. 이것보다 작으면 국소 피판만 돌리면 돼.'


피판. 어떤 장기나 피부의 결손을 재건할 때 쓰는 피부나 근육을 칭하는 말.


국소 피판이란, 결손된 장기 근처에 있는 피부와 근육을 이용해서 재건해주는 수술을 뜻했다. 당연히 아예 떼오는 수술보다는 난이도가 훨씬 낮았다.


그렇다고해서 태석이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대강 이런 방식으로 하는구나. 환자의 경우라면..'


태석은 몇번인가 손을 움직여 보았다. 얼추 방향은 나온 것 같았다. 더 자세히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시간이 허락치 않았다. 이제 들어가야만 했다.


'속이 조금 불편한데.. 에이. 일단 들어가자. 교수님보다는 먼저 들어가야지.'


수술방에는 환자가 초조한 눈으로 누워있었다. 그를 향해 마취과 의사가 다가갔다.


"박경원 씨, 환자분은 당뇨가 너무 심하셔서 전신마취는 어렵습니다. 다행히 발쪽의 수술이고 한정섭 교수님께서 부분 마취로 하겠다고 하셔서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괜찮으시죠?"

"네, 뭐.."


예상과는 달리 그리 뚱뚱한 사람이 아니었다. 배만 불뚝 나왔을 뿐, 팔다리는 기이하게 말라 있었다.


"그냥 부분 마취로는 안될 거구요. 척추 마취로 하겠습니다. 옆으로 누우신 다음에 몸을 새우처럼 말아주세요."

"이, 이렇게요?"

"네. 지금 좋습니다."


등을 말자, 척추뼈들이 도드라졌다. 마취과 의사는 뼈 사이를 꾹꾹 눌렀다. 주사가 들어갈 만한 공간을 찾고 있었던 것.


"자, 그럼 소독하고 찌르겠습니다. 좀 많이 아파요."

"윽."


날카로운 주삿바늘이 척추 사이를 찌르고 들어갔다. 바늘 끝에 노르스름한, 반투명 액체가 맺혔다. 태석도 본 적이 있는 액체.


'의술의 탑에서 봤던 것과 같네. 뇌척수액이구나. 제대로 들어갔어.'


주사를 통해 마취제가 주입되었다. 마취과 의사가 환자를 다시 정자세로 눕히며 말했다.


"다리 쪽에 감각이 사라질 거에요. 마취약 때문에 그런 거니까 걱정마시고요. 수면제 놔드릴 테니, 한 숨 주무세요."

"네. 부탁드립니다."


곧 환자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정섭이 들어왔다.


"꼴통, 이거 준비는 해봤냐?"

"아니요. 아직 못 해봤습니다. 하지만 방법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어디 해봐."


정섭은 뒷짐을 진 채 태석이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태석은 방금 논문에서 본 것 그대로 발을 닦았다.


'사이즈는 실제로 보니까 더 작아 보여. 백프로 국소 피판을 돌릴 거야. 발등과 가까운 곳에서 상대적으로 살이 남는 곳은 종아리. 이쪽까지는 다 닦아야 한다.'


꼼꼼하게 부위를 소독하는 태석. 발가락 사이도 놓치지 않았다.


"음. 잘했네. 뭔 수술할지 알고 닦는 거야?"

"발등에 괴사한 부위를 잘라내고, 종아리 뒤쪽 살을 돌려서 재건하실 것 같습니다."

"오. 제법인데? 그럼 괴사한 부위 잘라내는 건 네가 해봐라."

"네?"

"네가 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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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의술의 탑 [27] +35 17.07.18 13,294 42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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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의술의 탑 [25] +25 17.07.16 13,741 442 12쪽
24 의술의 탑 [24] +24 17.07.15 14,137 443 12쪽
23 의술의 탑 [23] +25 17.07.14 14,422 436 10쪽
22 의술의 탑 [22] +15 17.07.13 14,936 427 10쪽
21 의술의 탑 [21] +20 17.07.12 14,770 446 10쪽
20 의술의 탑 [20] +17 17.07.11 15,152 437 10쪽
19 의술의 탑 [19] +20 17.07.10 15,583 421 9쪽
18 의술의 탑 [18] +17 17.07.09 15,706 471 10쪽
17 의술의 탑 [17] +24 17.07.08 15,793 453 10쪽
16 의술의 탑 [16] +24 17.07.07 16,374 421 10쪽
15 의술의 탑 [15] +30 17.07.06 15,629 395 10쪽
14 의술의 탑 [14] +23 17.07.06 15,522 386 10쪽
13 의술의 탑 [13] +24 17.07.05 16,253 419 10쪽
12 의술의 탑 [12] +22 17.07.04 16,297 430 11쪽
11 의술의 탑 [11] +25 17.07.03 16,593 425 10쪽
10 의술의 탑 [10] +26 17.07.02 16,894 402 10쪽
9 의술의 탑 [9] +34 17.07.01 16,974 397 11쪽
8 의술의 탑 [8] +29 17.06.30 17,354 421 10쪽
7 의술의 탑 [7] +19 17.06.29 17,727 421 9쪽
6 의술의 탑 [6] +18 17.06.28 17,931 381 9쪽
5 의술의 탑 [5] +28 17.06.28 18,615 405 7쪽
4 의술의 탑 [4] +25 17.06.27 19,241 469 7쪽
3 의술의 탑 [3] +27 17.06.26 19,798 418 8쪽
2 의술의 탑 [2] +27 17.06.26 21,396 408 7쪽
1 의술의 탑 [1] +28 17.06.26 27,064 40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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