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내 삶의 일상1
우리 일행은 이제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나처럼 영지를 무한에 가깝게 실체화할 수 있는 존재는 딱 셋뿐이거든.
내 아내 – 강제 결혼을 당했어도 아내니까··· 흑··· - 아그네스, 로반토, 그리고 나뿐이다.
길드 마스터들은 이제 몬스터 대륙의 전선을 관리하며 밀어붙이기로 했다.
키르기스스탄은 승희 씨의 신성기사단이 담당한다.
세 길드 중에서 전력은 가장 막강 편이다.
신성 기사와 사제들이 전부인 그들은 다른 각성자들과 함께 하면 웬만하면 죽지도 않는다.
그 덕분에 숫자는 비슷한데 훨씬 큰 전력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들은 일격필살로 사살하지 않으면 죽지 않으니까. 잘린 신체도 그대로 붙인다. 물론 폭격당해서 신체가 조각나면 그것조차도 붙는다. 그냥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지.
그나마 개개인의 전투 능력도 뛰어난 높은 수준의 각성자들이라서 쉽게 다치지도 않으니 뭐··· 거기다가 유럽의 여러 각성자들과 길드들이 그들과 함께 싸우기 때문에 그들이 전면에서 다 두들겨 맞을 일도 별로 없다.
미영 씨의 아마조네스 길드는 몬스터 대륙 내를 다니며 게릴라전을 펼치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은 늑대인간 왕자 로반토와 함께 다닌다.
로반토의 늑대 소굴 영지의 관문이 차원 경계에 있는 자신의 집과 연결되어 있어서 로반토가 영지 실체화 고정을 하면 그대로 연결되니까 게릴라전을 펼치기에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래서 지금 로반토와 미영 씨의 길드는 몬스터 대륙의 괴수 밀림을 헤집고 다니면서 온통 괴수 밀림을 엘프의 밀림으로 바꾸고 있다.
사이사이에 생명의 나무 묘목도 심는다고 하더라.
이제 시작이니 겨우 첫걸음을 때는 것 뿐이지 뭐···
그리고 철우 형님의 무도가 길드 – 검, 도, 권 기반의 무술을 하는 이들이 모인 길드다. – 는 현재 나와 함께 있다.
원래 이들이 한반도에서부터 몬스터 대륙으로 밀고 올라가야 하는데··· 아그네스가 가지 않고 버티려고 해서 쩔쩔매는 중이다···
“그러니까 아그네스··· 우리 출퇴근하자니까요···? 어차피 캡슐이 내 집에 있잖아요. 그러니까··· 응?”
“싫어요··· 옆에 있을 거야··· 나 버리려고··· 그렇죠?”
“무슨 수로 버립니까···”
버리면 내가 죽을걸?
아니 못 죽인다고 해도··· 절대 깨지지 않는 계약이라며?
“버리려고 하면 다시 부를 거잖아요?”
“아··· 그렇죠.”
“자주 만날 수 있어요. 응? 잊었어요? 내 영지에 벰파이어 성지 있잖아요?”
“거기로 올 수 있어요···?”
“그럼요. 갈 수 있어요. 그러니까 형님 좀 도와줘요. 나 보고 싶으면 부르면 되잖아요?”
“응··· 알았어요··· 대신···”
- 스르르릉··· 채채챙
“바람 피면··· 잘라버릴 거예요··· 알았죠···?”
으헉··· 자르긴 뭘 잘라. 이 아가씨가··· 못하는 소리가 없냐···
“저기요··· 뭘 잘라야 하는지는··· 알아요···? 남녀 간의 관계를 가지는 그런 거···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른다면서요···?”
참고로 아그네스는 정말로 그런 부분을 모른다.
벰파이어들이 탄생한 초창기에 아그네스는 인간처럼 엄마의 배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 후에 드라큘 백작이 일족을 늘리던 방법은 자기 수하들을 벰파이어로 변이시키는 방법이 대부분이었고, 이후에는 그런 일족이 부활할 수 있도록 자기 피를 헌신해서 일으켜 세우는 것만 봤기 때문에 어떻게 아이를 가지는지, 관계를 어떻게 가지는지··· 이런 걸 정말로 모른다.
요즘은 애들도 알지만··· 벰파이어 일족은 정말로 대부분이 모르더라.
그래서 라파엘 님한테 물어봤다. 저들이 그런··· 행위가 가능한지.
얼마든지 가능한데 살아있는 인간과는 다른 신체라서 그런 본능이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흡혈 욕구가 그런 본능에 가깝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지금 아그네스는 저게 무슨 말인지 모르고 하는 말이라는 얘긴데···
“그 집사가 얘기해줬어요. 주인마님이 되셨으니 어떻게 방비해야 하는지 알려주겠다면서···”
“나 집에 좀 갔다 올게요··· 이 망할 집사 놈을 진짜!!!!”
이제 하다하다 내 소중한 머시기를 자르라고 해? 응?
이 자식을 내가 진짜!!
“참아요. 나중에 같이···.”
- 챙!
“같이 하면 돼요. 몸이 있다면 피를 빨아버리고 싶지만···”
“에이. 지지. 그런 거 먹으면 못써요. 착하지?”
“응. 나 착해요. 그러니까 남편··· 나 피 좀···”
“응? 으응?? 내피? 응??”
어째서? 왜 여기서 갑자기 피를? 응?
“저··· 아그네스? 아내님? 저기요?”
“자··· 저기로 가요.”
- 퍽!!
“끄헉··· 머리가···.”
- 질질질···.
“괜찮을 거예요··· 내 피도 줄 거니까··· 훗··· 서로 피를 나눠요··· 후후후훗···.”
차라리 기절시켜주지 그랬어요···
잠시 잊고 있었다···.
외모 나이 18세, 풋풋해 보이면서도 성숙하고 섹시한 쭉빵 미녀.
하지만 실제 나이 추정 불가··· 무척 오래 살아버린 벰파이어퀸이라서 잊었는데··· 저분 벰파이어다. 사람 아니고.
내가 기절하듯 자는 동안에 계속 피를 먹은 거야? 응?
크허허허··· 차라리 기절시키지··· 왜 힘만 빼서는···
* * *
“크흐흠··· 그러니까··· 부부인데 여태 그··· 한 번도 잠자리가 없었던 거군. 그런 건가? 동생?”
“네··· 그렇죠···”
다행히 온몸의 피가 빨려서 죽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진짜로 내 피를 빨아먹으면서 자기 피를 나한테 밀어 넣었거든.
그래서 몸이 홀쭉해지는 사태는 생기지 않았는데 말이지···
기분이 엄청나게 이상했다.
내 피가 마구 빨리는 그 이상한 기분은··· 하다하다 쾌감이 느껴지기까지 하더라.
그러다 죽겠지 했는데··· 내 몸에 벰파이어퀸의 혈액이 수혈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탭이 메시지를 띄우더라.
- 벰파이어퀸 아그네스 드라큘 님과 영구 상호 종속 계약이 맺어져 있습니다.
- 벰파이어화에 저항합니다.
- 벰파이어퀸의 격과 힘을 흡수합니다.
- 벰파이어퀸의 마력 진화를 촉진합니다.
솔직히 저걸 보고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가지는 느낌이 오더라.
일명 '그림자 술법'이라고 부르는 벰파이어의 그림자 다루는 능력을 더 잘 쓸 수 있게 되었다.
게임처럼 표현하자면 에너지를 덜 쓰고 더 오래 쓰고 더 효과 크게, 잘 쓸 수 있게 되었달까?
그리고 이걸 가지고도 훌륭한 전투법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걸 왜 아그네스는 하지 않는지 모르지만··· 아마 조만간 쓸 수 있겠지.
이거 정말 참신한 방법인데···
어쨌든 그래서 벰파이어화 되지는 않으면서 아그네스는 흡혈 욕구를 채우고 나는 나대로 힘이 성장하고···
하지만 이런 우리 관계를 철우 형님이 알아 버렸다.
내가 그랬잖아··· 그런 거 없다니까··· 그냥 억울한 기분만 느꼈을 뿐이라니까요?
“흐흠··· 자네··· 이혼은 안되는 거겠지?”
“네. 이거 상호 종속 계약이라고 해서··· 다시 환생해도 이 계약은 안 풀린다고 하던데요.”
“그렇군··· 그러면 동생. 차라리 제대로 첫날밤을 치르는 것이 어떤가···?”
“에에??”
어째서 얘기가 그렇게 되는 걸까요? 응?
정말 당황스러운데··· 솔직히 결혼은 결혼이니까··· 이름이야 어쨌든···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안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솔직히 결혼했는데 부부 생활이 없는 것도 이상하지 않는가? 동생. 늦게 결혼했으니 후사를 빨리 봐야지? 더구나··· 제수씨가 그 백작님 후계자 아닌가? 그러면 더 빨리 아이를 보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음··· 그것도 그렇지만··· 솔직히 지금 상황이 평화로운 시기가 아니라서 좀 그래요.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그때 생각해볼게요.”
그게 아니라도 신경 쓰이는 것이 있어서 좀 무섭기도 하다.
나는 인간이고 그녀는 벰파이어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다면··· 굳이 표현하자면 하프 벰파이어··· 라는 것인데···
원래 인간이면 인간 벰파이어면 벰파이어지 그 중간은 있을 수가 없다.
벰파이어도 원래는 인간에서 출발한 종족이다. 신족과 마족이 원래 인간이었던 것처럼.
물론 지금의 마족은 마물도 마족이 되고 그러긴 했지만 최초의 마족은 분명 인간이고 그때 당시는 인간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 사이에서는 그냥 인간 아니면 벰파이어가 나올 거다.
그런데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런 혈통 유전에 대한 걱정이 아니다.
아이가 만약 벰파이어의 혈기와 나의 원천지기를 모두 가지고 태어나게 되면··· 그 아이는 어떤 고통이나 문제를 겪을까 하는 두려움이 그녀와의 관계를 진전시킬 수 없게 만든다.
차라리 원천지기를 함께 가지고 태어나면 상관없지만 그냥 마력, 혹은 기운만 가지게 되면 어떨지 알 수가 없다.
더구나 지금의 나는 약간이지만 신성을 깨닫고 난 이후라서 신성력을 가지고 태어날 수도 있는데··· 과연 괜찮을까? 혈기와 신성력이 기필코 충돌할 텐데···
그럴 거면 차라리 인간 아니면 순수 벰파이어로 태어나는 것이 좋겠지만 프라부일 님은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말씀하셨다.
벰파이어도 인간의 아종이라서 유전적으로 섞일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 어떤 식으로든 우리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나와 아그네스의 능력이 고루 섞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럴 때 어떤 문제가 생길지 상상도 할 수 없으니 각오 단단히 하라고 하더라.
차원 초월적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면서.
무슨 아이 하나 가지는데 전 차원이 경계하고 대비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흠··· 그런가? 음··· 혹시··· 대화가 필요하면 얘기하게. 동생. 언제든 들어줄 수 있으니 말이네.”
“네. 그럴게요. 형님.”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다.
혹시 내 생각을 느끼시는 건가? 아니면 다른 걱정이 내 얼굴에 드러났나?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철우 형님에게 인사를 하고 배웅을 했다.
“잘 부탁해요. 형님. 차분하게 밀고 올라가시면 될 거예요.”
“알겠네. 동생. 그런데 말이야···. 때론 그냥 지르고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데 말이야··· 그렇지 않나? 더구나··· 저렇게 아름답고 섹시··· 크흐흠··· 미안하네. 음. 하지만 사실이지 않나? 응? 크흐흐.. 또 보세!!”
그러더니 거대한 날개 달린 탈것에 올라타고 떠났다.
“워. 저거 뭐지?”
저런 걸 언제 만든 거야?
- 지잉··· 지이이잉··· 슈웅!
“아이고··· 이건 또 뭐냐··· 트랜스포머··· 아냐 이건 다른 거 닮았는데··· 이거 마크로스냐?”
마크로스··· 80년대 초반의 대 히트작.
전투기를 조종 가능한 인간형 개체로 변형해서 거인 외계인과 싸우기 위해 개발했다는 마크로스의 발키리라는 기체.
다 좋은데··· 정말 아제 발상이다.
어쩌면 저걸 만들 생각을 다 하냐?
그런데··· 사실 나도 아제다···
“멋지긴 멋지다···”
“가지고 싶으십니까? 주인?”
- 더듬더듬
- 채챙
“집사. 내 꺼예요. 건드리면 짤라버릴 거예요?”
“··· 죄송합니다. 주인마님··· 주인에 대한 충성이 저를 망가트리는군요··· 용서를···”
저 집사 놈 저거··· 잘했어요. 아그네스. 최고다. 이힛.
끔찍한 소름이 마구 솟아나고 있었는데 다행이네.
“저 기체는 1세대 기체라고 하는군요? 주인. 원하시면 주문하겠습니다. 어차피 주인의 영지에서 만드는 시설입니다. 설계도도 이미 있다고 합니다만.”
오호라!? 정말??
그런데 저건 뭐라고 불러야 하냐? 마장기? 로봇?
··· 정말 잘 모르겠다. 응.
“음··· 정말로 설계도면이··· 있다고? 그거 철우 형님이 회수 안했어요?”
“네. 주인을 위해 남겨두셨다고 합니다. 어차피 유미 박사님이 계셔서 상관없습니다. 그분의 개발품이니까요. 태블릿.”
아니 이제는 집사까지 멋대로 하는 거냐?
나는 말 한마디 안 해도 탭이 알아서 다 하긴 하더라.
그런데 이제는 사방에서 나 대신 명령하고 지시를 하네···
- 마장기 '발키리1' 설계도면 확인.
- 기술 개발자 이유미 박사님 상태 확인 중··· 근무 상태 정상입니다.
- 영지에 '발키리1' 제작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 이유미 박사님께서 제작을 거부합니다. 사유 – '자네 마크로스 좋아하지? 자네 전용의 발키리3 특수 기체를 개발 중이야! 하루만 참고 기다리시게!'
- 발키리3 예명 '스타탭' 개발이 완료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뭐? 스타탭? 이름이···.?
“탭? 그거 니가 지은 이름이지···?”
- 그렇습니다. 좋은 이름이지 않습니까?
“저기··· 혹시···?”
- 맞습니다. 마스터의 추측은 매우 정확합니다.
우아··· 이젠 하다하다··· 그래서 이름이 그 모양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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