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혈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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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에크낫
작품등록일 :
2017.06.26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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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0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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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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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종심 타격(3)

DUMMY

“미친 건 너희들이지. 감히 주님과 교회를 배반하고 악마의 사역을 받아 용을 만들어내다니. 저 하사관은 저 지경이 될 때까지 자기는 용과 싸웠을 뿐이라고 우겨대더군. 하지만 네놈을 심문하면 좀 더 바른 소리가 나오겠지.”


아까의 공손한 말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베르나르도의 두 눈에서는 불타는 듯한 증오가 새어나왔다. 리오를 똑바로 쏘아보며 이를 갈아붙이는 그 표정은 이미 악마의 그것이었다. 델카스의 창, 지옥의 재판장이라고 불리는 성당기사 베르나르도 토르케마다는 눈앞에 있는 이단자를 당장 쳐죽이지 못하는 게 한이라는 듯이 눈을 부릅떴다. 극도의 분노 탓에 그의 잘생긴 코에서 한 줄기 피가 흘렀다. 리오가 자기 오른팔을 붙잡으며 항의했다.


“크윽······. 이, 이러고 너희가 무사할 줄 아느냐? 무고한 신도들을 이단자로 몰아?! 교황이 제정신이 아니구나. 보르셀라인 왕국군을 치다니, 반드시 우리 국왕께서 복수해 주실 것이다!”


“닥쳐!”


베르나르도는 아까와는 전혀 딴 사람이 된 것처럼 포효하며 장갑 낀 손으로 리오의 얼굴을 후려쳤다. 리오는 의자를 넘어뜨리며 땅에 굴렀다. 베르나르도가 진은 검을 리오의 얼굴 바로 옆에 처박았다. 리오는 자신의 눈에서 1인치 앞에 틀어박히는 검을 보고 침을 삼켰다. 베르나르도는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 충혈된 눈으로 리오에게 말했다.


“후안 칼소가 내 앞에 오면 그 역시 사로잡아 영광스러운 델카스의 재판정에 세울 것이다! 어딜 감히 버러지 같은 이단자가 성하를 모독하느냐!”


베르나르도는 정말로 이 자리에서 리오를 살해할 것처럼 보였다. 그쯤 되자 뒤의 기사들이 나서서 단장을 말리기 시작했다.


“단장님,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대계(大計)를 위해 잠시 참아 주십시오. 뒤는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베르나르도는 악귀 같은 표정으로 기사들을 돌아보더니, 잠시 후 기사 하나에게서 손수건을 받아 얼굴을 닦았다.


“이런, 제가 너무 흥분했군요. 이런 실수를.”


베르나르도는 리오에게 등을 보인 채 한 손을 들어 보였다.


“대대장님은 정중하게 기사단 본부 지하로 모시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나머지 병사들은······.”


리오를 따라온 병사들 몇이 불안한 표정으로 칼을 움켜잡았다. 숫자가 비슷하다고 하나 저 쪽은 진은 무기로 무장한 살육 기계, 성당기사들이다. 병사들은 혹시 수행원에 불과한 자신들은 살려 주지 않을까 기대해 보았다. 그러나 베르나르도는 판사가 판결을 하듯이 들었던 손을 아래로 내렸다.


“전원 사형입니다. 이 자리에서 집행하십시오.”



드레어 월레스는 지금의 상황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는 어디까지나 학자라고 자부하고 있는 사람이었고, 한 분야에 오랫동안 몰두한 전문가가 그렇듯이 드레어도 다른 사람과의 원만한 관계라는 면에 있어서 상당히 서툴렀다.

하지만 이번엔 그가 아니면 말할 사람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옆에 있는 다른 여단원이 드레어보다 훨씬 무뚝뚝한 태도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레어는 캄의 굳은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캄과는 다르게 드레어에겐 상대방과 공유할 만한 것이 있었다.


“이보쇼. 해군 나리. 우리 주 베르디스와 그의 영광 아래 서품받은 성자 성 루시몬트의 이름으로 제발 부탁하겠는데, 왜 안 된다는 겁니까?”


“내 이름은 상장 바이어 페르자스다. 월레스 상좌!”


메시스 2함대사령관 바이어 페르자스 상장은 노기탱천하여 외쳤다. 그는 정말 베르디스로 올라가서 황제에게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번의 어린 녀석도 모자라서 이번에는 늙은이와 이교도라니, 대체 무슨 생각이신 겁니까, 폐하? 게다가 이들에겐 유신과 같은 정치적 능력이라고는 조금도 없었고 그래서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저 놈들은 폐하만 처벌할 수 있으니 참는 거야. 다른 녀석이었으면 바로 영창에 처넣었을걸. 바이어는 그렇게 생각하며 책상을 짚고 씩씩댔다. 캄은 별 말 하지 않고 장죽에 담배를 채울 뿐이었다. 그 꼴을 본 바이어는 자기 수염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드레어가 히죽 웃었다.


“아, 그랬던가? 미안하군. 나이가 드니 금방금방 잊어버려서 말이오.”


바이어가 일부러 드레어의 계급까지 불러 줬지만 드레어는 장교로서 장군에 대한 예우를 할 생각이 별로 없어 보였다. 바이어가 말했다.


“그대들이 아무리 폐하의 근위기사라 할지라도, 메시스 1함대에 대한 모든 권한은 나에게 있다. 그대들에게 함대의 작전 지휘권을 맡기라는 것은 그야말로 말도 되지 않는 요구이며, 따라서 나는 그것을 거절하겠다.”


“이건 말이 좀 다른데. 폐하께서는 장군이 최대한 편의를 봐 줄 거라고 하셨소. 쿠르스 원수가 지침을 하달하지 않았던가?”


바이어는 이 이상의 오만방자를 참아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원수의 지침은 그대들에게 수병들의 귀중한 목숨을 맡기라는 것이 아니었다! 대체 책임감도 경력도 없는 자들에게 내 함대를 내 줄 거라고 생각했나!”


캄은 물론이고 드레어 역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드레어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길게 누워 천정을 보고 말했다.


“그럼 하나 묻겠는데, 우리가 없으면 용을 대체 어떻게 잡을 생각이시오, 장군?”


“군대는 기책에 의존하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나가 싸워 이길 것이다. 이미 근위기사 하나가 떠난 후에도 우리는 용을 몇 마리나 사살했다.”


드레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잔뜩 흥분해 있던 바이어의 눈길이 그를 좇았다. 드레어는 장군의 집무실 창문까지 가서 밑을 지팡이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나 그 대가가 저것이잖소. 저걸 이제 함대라고 부를 수 있을까?”


드레어가 지팡이로 가리킨 곳에는 유신이 와서 봤던 패전의 참상이 재현되어 있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 규모와 끔찍함이 몇 배는 된다는 것 정도였다. 드레어는 지팡이를 툭 내찔러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3층 아래에서 흐르던 소리가 집무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부러진 돛대를 밧줄로 끌어 옮기려다가 포기하고 불태워 버리는 병사들의 고함 소리, 그리고 항구에 임시로 세워진 진료소들이 모자란 나머지 바깥에 누워 있는 부상병들의 신음. 반파된 배가 마침내 침몰할 때 장교들이 내지르는 알 수 없는 통한의 괴성. 이 새벽의 뷔르제 항은 참혹하고 우울한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바이어는 이를 갈아붙였다. 유신이 떠나고 나서 메시스 함대 단독으로 용들에게 맞서 싸운 흔적이었다. 함대로는 어림도 없는 적이었지만 암초의 관리자 차-벨란카를 위시한 어인들의 영웅적인 활약으로 용 몇 마리를 처치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메시스 함대에서 격침된 갤리온과 용에게 잡아먹힌 수병의 수를 생각할 때마다 바이어는 뱃속이 갈갈이 찢기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바이어는 드레어가 가리키는 곳을 내려다보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드레어의 지독한 무례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가 뭐라고 욕설을 퍼부으려 할 때, 그 때까지 묵묵히 있던 캄이 장죽을 입에서 떼고 바이어에게 말했다.


“유신 경이 그렇게 나쁜 인상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군.”


바이어는 캄에게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나 누런 얼굴에 새겨진 무시무시한 전사의 문신 아래 별처럼 빛나는 눈을 마주하자 그의 기도 조금 꺾였다. 조금 진정한 바이어가 캄에게 말했다.


“그 어린아이 말인가? 확실히 그는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미클로시 전대장의 보고에 따르면 그의 ‘세례자’로서의 능력은 그리 오래 쓸 수 없는 모양이야. 그리고 그대도 명색이 장교라면 알겠지만 그런 것은 전술에 차용할 수 없다. 그대들도 ‘세례자’의 능력 하나만 믿고 설치는 거라면······.”


“그 말에 동의하오. 장군.”


드레어가 여전히 창 밖을 바라본 채로 말했다.


“‘세례자’의 능력 따위, 그 주인에 비하면 편린에 불과한 것이지. 하지만 안심하시오. 나도 캄도 그런 것에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바이어는 그들이 세례자도 아니라는 말에 기가 찼다. 유신의 기적 같은 능력으로도 겨우 용 몇 마리를 해치우는 게 고작이었는데, 평범한 인간들이 어떻게 용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인가? 바이어는 기세 좋게 말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용을 상대한단 말인가? 그대들이 아무리 단련된 사람들이라고 해도······.”


드레어는 바이어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엉뚱한 소리를 했다.


“병사들을 물리시오. 사령관.”


“뭐?”


“용이 오고 있소.”


작가의말

날씨가 매우 더워졌군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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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Epilogue Chapter . 그 가을날의 낙일 +2 20.02.10 232 2 9쪽
196 16. 회심(回心) (10) +2 20.02.10 131 2 17쪽
195 16. 회심(回心) (9) 20.02.10 102 2 15쪽
194 16. 회심(回心) (8) +4 20.02.10 86 2 16쪽
193 16. 회심(回心) (7) +2 20.02.10 81 2 14쪽
192 16. 회심(回心) (6) +2 20.02.10 82 2 14쪽
191 16. 회심(回心) (5) +1 20.02.10 77 2 14쪽
190 16. 회심(回心) (4) +2 20.02.10 124 2 14쪽
189 16. 회심(回心) (3) +2 20.02.10 73 2 15쪽
188 16. 회심(回心) (2) +2 20.02.09 85 2 15쪽
187 16. 회심(回心) (1) +2 20.02.08 85 2 15쪽
186 15. 신의 선물(14) +2 20.02.04 92 3 15쪽
185 15. 신의 선물(13) +2 20.02.04 85 3 15쪽
184 15. 신의 선물(12) +2 20.01.29 115 3 15쪽
183 15. 신의 선물(11) +2 20.01.26 96 3 14쪽
182 15. 신의 선물(10) +2 20.01.25 93 3 15쪽
181 15. 신의 선물(9) +2 20.01.22 88 3 13쪽
180 15. 신의 선물(8) +2 20.01.18 91 3 16쪽
179 15. 신의 선물(7) +2 20.01.15 96 3 11쪽
178 15. 신의 선물(6) +2 19.12.31 140 3 18쪽
177 15. 신의 선물(5) 19.12.30 104 3 13쪽
176 15. 신의 선물(4) 19.12.22 108 3 14쪽
175 15. 신의 선물(3) +2 19.12.17 111 3 15쪽
174 15. 신의 선물(2) +2 19.12.06 105 3 14쪽
173 15. 신의 선물(1) +2 19.11.29 123 5 14쪽
172 14. 고대의 길(14) +2 19.11.24 125 5 17쪽
171 14. 고대의 길(13) +2 19.11.18 128 4 13쪽
170 14. 고대의 길(12) +4 19.11.14 130 4 14쪽
169 14. 고대의 길(11) +2 19.11.11 99 5 12쪽
168 14. 고대의 길(10) +2 19.11.05 133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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