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혈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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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에크낫
작품등록일 :
2017.06.26 22:50
최근연재일 :
2020.02.10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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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0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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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집결(5)

DUMMY

“하, 하! 기, 기사단, 이 건방진 놈들! 그래, 너부터 갈가리 찢어 주마!”


우고는 붕대를 푸들푸들 떨며 경련하다 재킷 앞섶을 좌우로 확 벌렸다. 그러자 재킷 안쪽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단검이 드러났다. 아르틴을 찔렀던 바로 그 물건이었다. 좌우 양손으로 단검을 하나씩 뽑아든 그는 얀의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재생 능력을 가진 그다운 전투 방식이다. 상대가 무슨 공격을 하건 무시하고 간격 안쪽으로 파고들어 치명상을 입히는 것이다. 얀의 진은 장갑은 인병(刃兵)이 아니므로 우고는 부담 없이 단검을 내던지듯 찔러 왔다.


“뒈져라!”


카카칵! 우고의 눈에 당혹이 떠올랐다. 얀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손목을 민첩하게 틀어 좌우 손바닥을 크게 벌린 다음 단검을 막아낸 것이다. 강철로 진은을 뚫기는 어렵다. 얀이 리블란트의 산적 시절부터 맨손으로 무기를 상대하는 데 이골이 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우고의 실책이었다. 얀은 시원하게 웃어 보였다.


“너나 뒈져라.”


얀은 우고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며 오른손을 뒤로 뺐다가 대포처럼 내뻗었다. 아무리 그가 재생 능력자라고 해도 물리 법칙을 어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얀의 체중은 얼핏 봐도 우고의 두 배. 그리고 근력의 차이는 그 이상이다. 꽝! 그의 가슴 부위가 일격에 함몰되며 뒤로 십여 피트를 튕겨져 나갔다. 우고의 눈과 입에서 한꺼번에 피가 뿜어져 나왔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감싼 붕대가 흘러내리고 피가 고름과 함께 줄줄 흘렀다.

일격에 죽지 않은 것은 그가 용혈의 세례자, 그 중에서도 재생의 권능을 가진 능력자이기 때문이었다. 우고는 벌떡 일어나 단검을 들고 울부짖었다.


“크, 카, 카아아악! 이, 이 새끼가아아아!”


우고의 상반신에서 문신이 춤추듯 떠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가 악을 쓰자 일그러진 폐에서 목을 통해 핏줄기가 터졌다. 기세는 흉흉했지만 아무리 상처가 재생된다고 하더라도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내장 기관이 일격에 모두 망가져 버려 호흡이 흐트러지고 발디딤이 불안하게 비틀거렸다.

뒤쪽에 있던 카드로스는 리키의 치료를 받으면서 날카로운 눈으로 전황을 살폈다.


‘이대로라면 전력은 우리가 우위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드로스의 마음속에서는 말로 할 수 없는 불안이 일었다. 진은의 기사가 셋. 게다가 연금술의 대결에서도 에레일리는 상대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카드로스의 오랜 경험으로 단련된 직감은 그에게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리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명백히 뒤처지는 전력으로 카드로스 일행을 습격했을 리가 없다.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카드로스는 객관적인 눈으로 상황을 살필 수 있었다.

그들이 리들 본인이나 그가 사주했다고 여겨지는 세력과 싸운 것은 적게 잡아도 두 번이다. 세핀 오셀의 ‘일인여관’에서의 전투와 키릴 성에서 세릴이 납치되었을 때가 그것이다. 카드로스는 정보 길드가 리들의 손 안에 있었다는 사실까진 모르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추리의 재료는 충분했다. 두 번이나 그들의 전력을 볼 기회가 있었던 리들이 겨우 이 정도만으로 세 번째 싸움을 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악행도 능력이 있어야 저지르는 것. 그 정도로 자신과 상대의 역량을 잴 줄 모르는 자라면 지금과 같은 재난을 일으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카드로스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보르셀라인 병사들의 어깨 너머를 세심하게 살폈다. 하지만 원군이 몰려오는 먼지구름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커억!”


그 때 얀의 기둥 같은 다리가 우고의 복부에 틀어박히자 그는 다시 길게 핏줄기를 토했다. 보기에는 기괴해 보였지만, 아르틴의 화염에 당해 신체 기능의 상당 부분이 손상된 저런 상태로는 설사 용혈의 세례자라 하더라도 여단 최강의 기사인 얀의 맞수가 되지 못한다. 적어도 카드로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얀의 다리에 걷어차인 우고가 그 다리를 잡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응?”


콱! 얀의 다리에 단검이 틀어박혔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일격에 죽었을 상황이라 얀은 미처 다리를 뺀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무시무시한 고통일 텐데도 얀은 얼굴을 찡그리고 다리를 회수했다. 그가 단검을 뽑아내고 말했다.


“제법 날카로웠지만 단검 따위론 날 못 죽여.”


“카, 하, 하하! 허세 부리지 마라, 돼지 같은 놈! 너, 너, 넌 이제 주, 죽었어!”


얀의 다리 하나를 찔러서 기동력을 봉쇄한 우고는 입에서 피와 침이 뒤섞인 무언가를 뿌리며 달려들었다. 얀은 제자리에 버티어 서서 주먹을 위로 올려쳤다. 콰드득! 쇠가 살을 잡아먹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우고의 턱이 완전히 으스러졌다. 하지만 우고는 목 근육이 늘어날 정도의 타격을 입고도 쓰러지지 않았다. 카드로스는 눈을 크게 떴다.


‘재생력이 명백히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 순간 벌떡 일어나 얀에게 소리쳤다.


“안돼, 얀 경! 피해라!”


찌지직! 얀의 군복이 뜯겨나갔다. 우고는 얼굴 절반이 거의 부서지면서도 얀의 가슴팍을 향해 단검을 베어내린 것이다. 얀의 강철 같은 신체에서 피가 흘렀다. 중상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출혈이다. 얀은 잇소리를 내고 비어 있는 왼주먹을 쥐어 뒤로 끌어당겼다.


“간지럽다! 칼 맞아 본 건 한두 번도 아냐!”


콰쾅! 정말 대포에 맞는 것 같은 소리가 나면서 우고가 뒤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아까에 비하면 확실히 내구력이 상승했다. 우고는 이제 사람이라기보다는, 산탄포를 맞은 시체를 매달아 세워 놓은 꼴을 한 채 흐느적거렸다. 저 상태로도 서 있다니 아무리 세례자라도 정상이 아니다.


“하, 세례자! 그래, 불사신이라 이건가? 죽을 때까지 죽여주마. 어디 한번 다시 덤벼 보······”


그러나 얀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우고의 터진 뱃가죽에서, 그리고 부서진 얼굴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살덩어리가 돋아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얀은 조금 전 에레일리가 시전했던 음계 연금술을 떠올렸다. 그 때 용의 몸속에서 기형종이 자라던 것처럼 우고의 상처에서도 팔이 자라났다. 곧 그것은 완전한 팔이 되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위치에 새로이 팔을 만들어낸 우고는 그 팔로 자켓 안쪽에 있던 단검을 뽑았다. 단검 네 자루를 움켜쥔 그가 기이하게 끼득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미 턱에 팔이 자라 있으니 말은 할 수 없었다. 카드로스가 신음을 흘렸다.


“폭주! 그러나 저런 형태는······.”


들어본 적이 없다. 능력이 폭주한다면 보통 무의식 상태에서 격렬하게 힘을 쏟아내고 죽게 마련이다. 용혈의 세례자 자체가 극히 드문 탓에 사례 자체가 별로 없긴 하지만, 카드로스 자신이 세례자인 만큼 보통 사람보다는 ‘폭주’에 대해 훨씬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고는 악마의 피조물 같은 모습이 되어서도 의식이 분명해 보였다. 카드로스는 여전히 에레일리와 대치중인 리들을 돌아보고 이를 갈았다.


“저, 연금술사의 농간인가!”


그 때 노비아가 있는 방향에서 화염이 폭발했다. 카드로스는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노비아의 차크람을 맞고 눈이 먼 채 쓰러져 있던 하사관이 어느 새 일어나 노비아에게 칼을 겨누고 있었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공격에 왼팔에 화상을 입은 노비아가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만약 그 하사관의 눈이 정상이었다면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을 만큼 불의의 일격이었다.


“크윽······. 폭약인가?!”


노비아는 성한 오른팔로 차크람을 돌리며 말했다. 그러나 뒤편에서 지켜보던 카드로스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폭약을 지향성으로 터뜨리려면 대포, 하다 못해 에레일리의 철포 정도의 장치는 있어야 한다. 게다가 화약에 불을 붙이는 작업은 눈이 먼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합리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카드로스를 움직이게 한 것은 그것보다는 그의 가슴 속에서 널뛰고 있는 세례자의 힘이었다. 그는 저 하사관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직감적으로 알았다. 저것은 아르틴의 능력, 용혈의 세례자의 힘이다. 그러나 같은 능력을 가진 세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론은 한 가지다.

카드로스는 주먹을 쥐어 보았다. 다른 기사들이 싸우는 동안 그의 몸도 리키의 도움을 받아 불충분하게나마 회복되었다. 그는 기병도를 뽑아들고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눈이 먼 채 사방팔방으로 불꽃을 날리던 그 하사관은 카드로스가 능력을 사용해 날린 기병도에 목이 꿰뚫려 죽었다. 노비아가 놀라서 물었다.


“여단장? 아직 몸이······.”


카드로스는 전방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노비아에게 말했다.


“대위. 거리를 주지 말고 일격에 끝장내라. 저 연금술사는······ 세례자를 만들어냈을 지도 모른다!”




***




사람은 일반적으로 빛이 없는 밀폐 공간에 72시간 이상 갇혀 있으면 미친다고 한다.

세릴이 잡혀온 오두막 안은 그나마 등불과 난로가 있었지만, 창문 하나 없는 이 곳 역시 광증을 일으키기에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그녀를 키릴 성 앞에서 납치해 온 리들은 세릴에게 아무런 고초도 가하지 않고 그대로 떠났다. 아무런 자극도 없이, 며칠을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오두막 안에 있다는 것은 차라리 고문이 나을 것 같은 고독감과 무력감을 선사했다.

그러나 세릴은 리들에게 잡혀온 지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강건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세릴은 난로의 타다 만 검댕을 이용해 오두막 바닥에 지도를 그렸다. 패스파인더인 그녀로서는 이 익숙한 작업이야말로 자아의 확인이며 삶을 체감케 하는 일이었다. 이 며칠간 조금씩 검댕으로 그린 오셀 서쪽-웨스트 드레이크의 전도는, 물론 미치지 않기 위해 한 일이긴 하지만 상당한 시간을 들인 탓에 훌륭한 솜씨로 완성되었다. 세릴은 그 중에서도 서남쪽으로 튀어나온 아칼레 반도의 남부, 보르셀라인 왕도(王都) 라 판테르에 검댕으로 점을 하나 찍었다.

세릴은 거기까지 하고 손으로 턱을 받쳤다. 그녀가 순례자 유레크를 성 보르자 대성당에 데려다 준 바로 그날 밤, 세릴은 라 판테르의 야산에서 카드로스를 처음 만났다. 세릴이 올라갔던 전나무를 한 칼질에 베어버린 카드로스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정말 무지막지한 녀석이었어. 암로프 씨는 잘 있으려나.’


세릴은 피식 웃었다. 그들과 맞부딪쳐 살해당한 정보 길드원은 두 손 두 발로도 다 못 셀 지경이니 라 판테르의 정보상 암로프 리는 지금쯤 세릴이 계약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며 화를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선수금으로 받은 금괴 두 개는 나중에 돌려줘야 하나.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세릴은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라 판테르에서 북서쪽으로 선을 죽 그었다. 세릴의 머릿속에 적당한 위치가 확정된 순간 그녀는 그 위치에 검댕을 대고 다시 비볐다. 보르셀라인 북서쪽의 시골 도시 마르데스였다.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여기서 용을 처음 목격했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그리고 그 후에는 정보상 길드원들이 식당에서 습격을 감행했었다. 그리고 그 때 카드로스는 그녀에게 그의 능력, ‘세례자’로서의 힘을 처음 보여주었다.


‘마법사인 줄 알았지. 그 때는.’


작가의말


명절에 징검다리 출근을 하게 되어서, 역으로 집에 내려가지 않게 되어 글 쓸 시간을 얻었군요. 명절에 한 화 정도 더 올라갈 예정입니다.


명절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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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45 신해량좋아
    작성일
    19.02.09 23:24
    No. 1

    명절 잘 보내셨나요~ 3편이나 몰아보니 연참을 얻은 기분이 듭니다 ㅎ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8 에크낫
    작성일
    19.02.10 15:24
    No. 2

    휴가가 징검다리라 집에 내려가 보지도 못했네요 ㅎㅎ 덕분에 글은 썼습니다... 아마 일요일 밤이나 월요일에 하나 더 올라갈 겁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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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Epilogue Chapter . 그 가을날의 낙일 +2 20.02.10 232 2 9쪽
196 16. 회심(回心) (10) +2 20.02.10 131 2 17쪽
195 16. 회심(回心) (9) 20.02.10 102 2 15쪽
194 16. 회심(回心) (8) +4 20.02.10 86 2 16쪽
193 16. 회심(回心) (7) +2 20.02.10 81 2 14쪽
192 16. 회심(回心) (6) +2 20.02.10 82 2 14쪽
191 16. 회심(回心) (5) +1 20.02.10 77 2 14쪽
190 16. 회심(回心) (4) +2 20.02.10 124 2 14쪽
189 16. 회심(回心) (3) +2 20.02.10 73 2 15쪽
188 16. 회심(回心) (2) +2 20.02.09 85 2 15쪽
187 16. 회심(回心) (1) +2 20.02.08 85 2 15쪽
186 15. 신의 선물(14) +2 20.02.04 92 3 15쪽
185 15. 신의 선물(13) +2 20.02.04 85 3 15쪽
184 15. 신의 선물(12) +2 20.01.29 115 3 15쪽
183 15. 신의 선물(11) +2 20.01.26 96 3 14쪽
182 15. 신의 선물(10) +2 20.01.25 93 3 15쪽
181 15. 신의 선물(9) +2 20.01.22 88 3 13쪽
180 15. 신의 선물(8) +2 20.01.18 91 3 16쪽
179 15. 신의 선물(7) +2 20.01.15 96 3 11쪽
178 15. 신의 선물(6) +2 19.12.31 140 3 18쪽
177 15. 신의 선물(5) 19.12.30 104 3 13쪽
176 15. 신의 선물(4) 19.12.22 108 3 14쪽
175 15. 신의 선물(3) +2 19.12.17 111 3 15쪽
174 15. 신의 선물(2) +2 19.12.06 105 3 14쪽
173 15. 신의 선물(1) +2 19.11.29 123 5 14쪽
172 14. 고대의 길(14) +2 19.11.24 125 5 17쪽
171 14. 고대의 길(13) +2 19.11.18 128 4 13쪽
170 14. 고대의 길(12) +4 19.11.14 130 4 14쪽
169 14. 고대의 길(11) +2 19.11.11 99 5 12쪽
168 14. 고대의 길(10) +2 19.11.05 133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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