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색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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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나스
작품등록일 :
2017.06.27 14:03
최근연재일 :
2019.01.2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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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1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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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해일이 끝난 뒤에Ⅲ

DUMMY

샤아아아아아아-

자그마한 소녀의 몸을 타고 반투명한 서리가 흘러내린다. 마치 날개처럼 하스의 뒤로 펼쳐진 서리는 이내 서로 뭉치면서 하나의 형태를 자아냈다.

그것은 반투명한 한 마리의 개. 본디 하스가 갖고 있던 원래의 형상을 빼닮은 모습이다. 흡사 사람과 짐승의 형체를 동시에 취한 듯한 자태로 하스는 주먹을 들어올렸다.

“비올라. 미안한데 한 방만 더 견뎌줘.”

“···네.”

무언가 심상찮다. 하지만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런 감각의 사이에서 비올라는 아쿠아의 부탁에 방패를 들었다.

그의 의도가 아군에게 이 힘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기 위함임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스는 비올라의 방어가 단단히 굳혀진 것을 보며 푸른 냉기가 서린 눈으로 말했다.

“하스, 가는 거야!”

“오세요!”

쿠르르르릉-

조금 전과는 대지를 짓밟는 소리가 다르다. 재해라도 일으킨 듯 천지가 흔들리며 꼬리처럼 서리로 이루어진 잔영을 길게 늘인 하스가 비올라에게로 달려들었다.

‘···어? 타점이······?’

그 순간, 비올라는 스스로의 감각이 어긋남을 느꼈다. 하스가 내민 주먹은 아직 충분히 멀리 있건만 그 일격이 바로 코앞까지 온 듯한 오싹함이 밀려든 것이다.

비올라는 스스로의 감을 믿고 곧장 방패에 힘을 집중했다. 그러자 하스의 주먹이 닿기도 전에 서리로 이뤄진 개의 앞발이 치고나와 먼저 방패를 후려쳤다.

터어어엉-! 주르르르륵-

“으윽?!”

아슬아슬하게 하스의 일격을 받아낸 비올라의 입에서 경악성이 흘러나왔다. 그 일격에 담긴 힘이 바로 직전에 맞상대했던 하스의 일격보다 월등히 강대하여 버텨내지 못하고 짓눌릴 뻔했기 때문이다.

‘아까 힘을 아꼈나? 아니, 아냐.’

순간 조금 전에 하스가 힘을 아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렸던 비올라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사실 하스가 힘을 아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의 일격은 ‘그런 것’이 아니다.

으드드득-

“이건, 무거워졌어?”

완력이 강해진 것과도, 속도가 빨라진 것과도 다르다. 단지 아까보다 월등히 무겁다. 10살 남짓한 소녀의 체구에선 결코 나올 수 없는 압도적인 중량이 주먹에 깃들어있었다.

물론 원래 숙련된 전사들은 자신의 기운을 운용해 체구의 한계를 넘어선 중량을 다룬다. 대형 몬스터에 비해 월등히 체급이 낮은 전사들이 그런 존재들과 육탄전으로 맞설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허나 비올라가 아는 가장 강력한 전사조차 하스와 같은 중량의 증폭률을 보이진 못했다. 아니, 애당초 비교한 것부터가 무의미한 일이리라. 왜냐하면···

“기초가 되는 체중 그 자체를 늘렸다고······?”

“비올라, 눈치가 빠른 거야. 하스의 서리여신의 잔영. 원래 모습과 사람 모습을 이어주는 거야. 하스는 지금 두 가지 형태가 동시에 혼재하는 거야.”

하스의 능력은 이미 그와 같은 범주를 넘어선 것이었으니까. 서리여신의 잔영. 이 권능이 자아낸 환영은 말 그대로 실체이면서 허상이다.

권능이 발현되고 있는 동안 그 허상은 현실의 하스와 겹쳐진다. 자그마한 소녀의 육신과 거대한 개의 육신. 둘이 동시에 혼재함으로서 하스는 모든 이치와 섭리의 한계를 넘어 이중적인 현상을 일으키게 된다.

그것이 비올라가 겪은 일이었다. 소녀의 주먹과 개의 앞발이 혼재하면서 타점을 어그러뜨리고, 사람의 형상으로 날린 무예에 괴수의 체중이 담긴다.

사실상 개의 형상과 사람의 형상이 지닌 장점만을 취합하는 권능. 육탄전에 있어서 가히 무적에 가까운 이점을 주는 능력이 바로 하스가 지닌 비장의 패로서 그 스킬이 갖는 위력이었다.

슈우우우우-

“하아··· 무시무시하네요.”

실험을 끝마친 하스가 잔영을 거두는 모습을 보며 비올라는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고작 일격을 받아냈을 뿐이건만, 방패를 쥐었던 손이 마비될 정도로 저려왔다.

“으음. 수고했어, 비올라. 많이 놀랐지? 저게 좀 많이 사기적인 스킬이긴 해서. 나야 육체파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다들 미치고 팔딱 뛰겠다더라고.”

“저게 옥좌라고 하셨지요.”

지친 그녀를 격려하듯이 다가온 아쿠아에게 비올라는 질문으로 화답했다. 그 물음에 아쿠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는 사라진 하스의 옥좌를 더듬듯 손을 흔들며 읊조렸다.

“응. 옥좌현현. 우리들이 가진 비장의 패야.”

“···우리들, 이라 하심은. 아쿠아님도 갖고 계신가요?”

“그렇지. 다만 지금은 못 꺼내. 거의 패시브나 다름없는 하스의 것이랑 다르게 내 건 발동을 위해서 상당한 신성력이 필요하거든. 대충 청하를 소환할 때의 2배는 있어야 쓸 수 있어.”

그의 대답에 비올라는 궁극소환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에 아쿠아가 불러낸 신성력은 그녀가 깨어나기 이전에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막대한 양이었다.

헌데 그 2배가 있어야 발동이 가능하다라. 도대체 얼마나 강력한 능력일까. 자기도 모르게 몸을 살짝 떠는 비올라를 보며 아쿠아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냐, 아냐. 내 건 일종의 보조기술이라 저런 사기적인 것들이랑 비교하긴 좀 그래. 진짜 사기였던 건, 그래. 미스틸테인이 있지.”

“미스틸테인이요?”

“친구가 쓰던 창인데 현현하면 찌른 상대에게 무조건 상태이상··· 저주라고 부르는 편이 이해하기 쉬우려나? 하여튼 그런 걸 잠시 걸어. 종류는 무작위지만, 찌르면 방어를 하든 맞받아치든 걸리니 엄청나게 위험하지.”

잠시 비올라는 아쿠아가 말하는 종류의 병기를 심상에 그려보았다. 지속시간이 짧고, 저주의 종류가 무작위라고는 하나 그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굳이 비올라의 수준까지 오지 않아도, 초인의 반열에 다다른 창술가는 한 호흡에 창을 수십 번은 내지른다.

헌데 그 하나하나를 막거나 쳐낼 때마다 저주에 걸린다면? 그것은 이미 지속시간이고 뭐고 감당할 수 없는 저주의 해일이 된다.

“···무서운 병기군요.”

비올라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그런 병기를 든 자가 상대라면 자신보다 한참 격이 낮은 상대라도 확실히 이긴다고 자신할 수 없다.

“엄청 까다로웠지. 설마 소환수와의 연결까지 더듬어서 디버프를 걸 줄이야. 어우. 음··· 생각하다 보니 그것도 있었네. 하스야!”

“으웅?”

옛 추억을 되새기듯 읊조리던 아쿠아가 이내 뭔가 생각났는지 하스를 불렀다. 잔영을 거둔 후로 딱히 부르는 말이 없어 혼자 날벌레들을 이리저리 시선으로 쫓고 있던 하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브레스는 쏠 수 있어?”

“쏠 수 있는 거야. 브레스도 쏴보는 거야?”

“아니. 그건 좀 위험하니 관두자.”

“···브레스는 또 무엇이오?”

둘의 대화에서 또 언급되는 새로운 능력에 슬슬 질려버린 듯한 얼굴로 웨스페르가 끼어들었다. 능력이 무슨 양파도 아니고, 까면 깔수록 뭐가 계속 튀어나오니 질릴 법도 하다.

“아, 하스는 드래곤처럼 브레스를 쏠 수 있거든. 이것도 보는 쪽이 빠르긴 할 텐데··· 하스가 아무리 약해졌대도 지금의 우리가 브레스까진 감당하기 어려워서 말이야.”

실험하긴 다소 부담이 크다, 라고 말을 마무리하면서 아쿠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하스의 전투력 측정도 끝마쳤으니 이제 움직일 시간이 됐다.

“슬슬 출발하자. 하스. 근처에 도시나 마을이 있어?”

“도시가 가까이 있는 거야. 조금 더 가까워지면 아쿠아 오빠도 맡을 수 있는 거야.”

하스가 합류한 지금 일행은 주변의 지리를 알기 위해 정찰을 하는 등의 행동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아쿠아를 아득히 능가하는 그녀의 후각은 그 자체로 거의 인공위성에 가까운 탐지력을 발하기 때문이다.

“도시라. 괜찮을까요?”

“아직 사건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어. 여기가 어디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빨리 움직이고 있어도 수배령 따위가 벌써 도착했을 리는 없겠지.”

청하가 어디까지 일행을 전이시켰는지는 몰라도 그리 가까이 보내지는 않았을 터. 아쿠아는 아직 소식이 닿기 전에 도시로 향해서 정보를 얻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 어서 출발하죠. 아직 수배가 내리기 전이라면 아쿠아가 쉴 곳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니 조금이라도 쉬어둬야 해요.”

“하스는 배가 고픈 거야~”

아쿠아는 자신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찬 라피와 배를 만지며 칭얼대는 하스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자신을 받쳐주는 라피에게 몸을 기댄 채, 선두를 자처하는 비올라를 앞세우고서 도시로 향했다.


* * *


근방에 있다던 도시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상태가 영 좋지 않은 아쿠아 탓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걸었음에도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일단은 정보부터 수집을······.”

“여관이 먼저에요. 아쿠아.”

오늘도 늘 하던 대로 사제임을 드러냄으로서 도시 안에 들어온 아쿠아의 읊조림을 라피가 날카롭게 끊어냈다. 그에 비올라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라지만 또 신성력을 끌어내셨잖아요. 우선은 휴식이 먼저에요.”

“알았어, 알았어.”

아쿠아는 걱정으로 가득 찬 두 여인의 태도에 쓴웃음을 지은 채 하스를 돌아보았다. 아까부터 배가 고프다고 칭얼대던 하스는 허공에 대고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어때, 하스. 괜찮은 곳 있어?”

“이 도시에선 저기가 제일 좋은 것 같은 거야.”

바로 들어갈 가게를 찾는 작업이었다. 아쿠아는 하스가 가리킨 제법 호화로운 여관을 보며 잠시 주머니 속을 헤아렸다.

‘돈이 얼마나 남았더라?’

라피와 여행하며 딱히 많은 돈을 쓴 적은 없지만, 애당초 보유한 돈이 그리 넉넉지가 않았다. 그럭저럭 여행을 하는 거라면 모를까, 호화로운 가게를 앞두면 걱정이 들지 않을 수가 없는 정도다.

“잡은 놈들한테서 재료를 좀 캐둘걸 그랬나.”

돈 걱정을 하게 될 줄 알았으면 미리 대비를 해둘 것을. 당시에는 하스에게 빨리 가야한다는 생각만이 머리에 가득해서 전혀 그를 고려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하스도 찾았으니 조금 더 여행다운 여행을 생각해야 하리라. 돈도 좀 넉넉하게 벌어놓고. 다행히 수배의 문제만 해결하면 일행의 능력은 돈을 벌기에 문제가 없었으니, 어려운 일은 아닐 터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저기, 실례합니다. 조금 전에 푸른 털의 견인족이 입성했다 들었는데, 혹시 보신 분이 계십니까?”

“음? 아까 그 아가씨 말인가? 저쪽으로 갔는데.”

“감사합니다.”

아쿠아의 청각이 멀리서 들려온 소리를 잡아챘다. 순간 귀와 꼬리를 바짝 세운 아쿠아는 어이없다는 듯 읊조리며 소리의 진원지를 후각으로 더듬어 올라갔다.

“말도 안 돼. 이렇게 빨리? 아니면··· 우연?”

세 모퉁이정도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 푸른 털의 견인족을 수소문하고 있었다. 원체 눈에 띄는 일행이라 시민들의 제보는 빠르게 이루어졌고, 벌려져있던 거리는 순식간에 줄어들어갔다.


작가의말

근접전에선 대충 최강의 능력..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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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19. 그랑 레인저와 사혼의 마녀Ⅰ +4 19.01.25 90 1 11쪽
86 18. 신전운영과 치솟는 명성Ⅲ +6 19.01.23 84 1 12쪽
85 18. 신전운영과 치솟는 명성Ⅱ +1 19.01.21 74 1 12쪽
84 18. 신전운영과 치솟는 명성Ⅰ +4 19.01.18 92 1 13쪽
83 17. 순조로운 나날Ⅳ +1 19.01.16 102 1 13쪽
82 17. 순조로운 나날Ⅲ +3 19.01.14 98 1 12쪽
81 17. 순조로운 나날Ⅱ +4 19.01.11 74 0 13쪽
80 17. 순조로운 나날Ⅰ +4 19.01.09 90 1 13쪽
79 16. 카이란스 왕국Ⅳ +4 19.01.07 78 1 13쪽
78 16. 카이란스 왕국Ⅲ +3 19.01.04 97 1 12쪽
77 16. 카이란스 왕국Ⅱ +2 19.01.02 80 1 12쪽
76 16. 카이란스 왕국Ⅰ +2 18.12.31 91 1 12쪽
75 15. 바람이 머물렀던 곳Ⅴ +2 18.12.28 95 2 12쪽
74 15. 바람이 머물렀던 곳Ⅳ +3 18.12.26 104 2 12쪽
73 15. 바람이 머물렀던 곳Ⅲ +2 18.12.24 94 3 12쪽
72 15. 바람이 머물렀던 곳Ⅱ +5 18.12.21 113 2 13쪽
71 15. 바람이 머물렀던 곳Ⅰ +5 18.12.19 115 0 13쪽
70 14. 재를 찢고Ⅳ +2 18.12.17 115 1 14쪽
69 14. 재를 찢고Ⅲ +4 18.12.14 131 2 12쪽
68 14. 재를 찢고Ⅱ +2 18.12.12 107 2 12쪽
67 14. 재를 찢고Ⅰ +2 18.12.10 115 1 12쪽
66 13. 마나의 그릇Ⅴ +4 18.12.07 116 1 12쪽
65 13. 마나의 그릇Ⅳ +2 18.12.05 156 1 12쪽
64 13. 마나의 그릇Ⅲ +4 18.12.03 110 1 12쪽
63 13. 마나의 그릇Ⅱ +1 18.11.30 143 1 12쪽
62 13. 마나의 그릇Ⅰ 18.11.23 125 0 12쪽
61 12. 기어오는 혼돈Ⅳ +1 18.11.16 110 0 11쪽
60 12. 기어오는 혼돈Ⅲ +1 18.11.09 133 0 12쪽
59 12. 기어오는 혼돈Ⅱ 18.11.02 12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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