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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색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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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나스
작품등록일 :
2017.06.2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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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23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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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마나의 그릇Ⅰ

DUMMY

시크는 성벽 위에 오른 채 말없이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높은 성벽으로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도시를 바라보는 것은 그의 오랜 습관이었다.

5년 전, 살고 있던 마을이 흑마법사들의 손에 멸망하던 날부터 쭉. 그것은 평화로운 이들에 대한 질투였으며, 동시에 과거를 떠올리는 회고였다.


“부, 불이야!”

“꺄아아아악!”

언제나 떠오르는 과거의 시작은 그 순간이었다. 마을에 갑자기 떨어진 불벼락. 뜨거운 마법의 불길이 평화롭던 시골의 집채들을 산산이 불사르며 그들은 모습을 드러냈다.

“둘은 목표물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감시해라. 나머지는 저 시끄러운 것들을 잡고.”

“예.”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10여 명의 흑마법사들. 수장의 명령에 따라 기민하게 움직이는 마법사들의 손에 혼란스러워하던 주민들이 손쉽게 붙잡혔다.

“너희, 너희가 불을 질렀나?!”

“무슨 짓이냐! 놔라!”

“시끄럽군. 홀드.”

몇몇 장정들이 반항해보기도 했지만, 그 저항은 헛된 것이었다. 별달리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닌 평범한 마을사람들이 마법을 다루는 흑마법사에게 맞설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시크도 그렇게 붙잡힌 주민 중 하나였다. 당시 13살의 소년이었던 그는 친구들과 뛰놀다가 변변한 반항도 못한 채 흑마법사의 마법에 붙들리고 말았다.

‘엄마. 엄마!’

마법에 의해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릴 수 있는 상황에서 그는 어머니를 찾았다. 아버지가 없는 것도 있지만, 전직 마법사였던 어머니는 시크의 안에서 최강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네 이놈들. 이게 무슨 짓이냐!”

그리고 그 기대대로 지팡이를 든 시크의 어머니가 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러자 흑마법사들의 수장이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호오. 목표물이 이렇게 당당히 나타날 줄이야. 예상치 못한 상황인데. 마탑에서 떨어져 사니까 슬슬 천지분간이 안 되나보지?”

“목표물?”

“후후후후. 보인다, 보여. 네 몸을 감싸고 있는 그 방대한 마나가. 너는 우리가 거대한 힘을 얻기 위한 제물이 되어줘야겠어.”

“하. 마력만 많다고 마법이 네 뜻대로 될 것 같아?”

놀랍게도 흑마법사들의 목표물은 처음부터 시크의 어머니였다.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마나를 타고난 그녀의 특이체질을 원해서 이런 시골마을에 쳐들어온 것이다.

“지금보다는 내 뜻대로 될 것 같군!”

쿠르릉! 콰앙! 콰과과광!

진실이 밝혀짐과 동시에 피할 수 없는 마법사들의 투쟁이 시작됐다. ···라고 말하지만 시크가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없었다. 불꽃과 벼락, 투명한 바람과 마력덩어리가 오가는 마법사의 전투를 일반인이 온전히 관측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단지 알 수 있었던 것은 섬광과 폭음이 멈추고, 최후에 쓰러진 쪽이 그의 어머니였다는 것. 그리고 흑마법사들의 수장이 분노에 찬 욕설을 토했다는 것이었다.

“제기랄. 죽어버렸잖아!”

‘죽었어. 누가? 엄마가? 그 강한 엄마가?’

시크는 넋을 놓은 채 멍하니 미동도 하지 않는 어머니의 주검을 바라보았다. 천하무적인 어머니였다. 기가 세서 시골의 장정들을 상대로 밀리던 적이 없었고, 신비로운 마법의 힘을 모두가 존경했다.

“뭣 때문에 이런 오지까지 왔는데! 젠장. 이제 이것들은 필요 없다. 전부 죽여서 제물로 써버려!”

‘말도 안 돼.’

현실을 부정하는 시크의 옆에서 흑마법사들이 분풀이하듯 학살을 시작했다. 허나 시크의 눈은 마법으로, 그리고 감정으로 어머니의 사체에 고정됐기에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푹- 푸슉-

그저 자신처럼 굳어버린 채 죽어가는 생명의 소리만을 들을 뿐. 13살의 소년이 견디기엔 너무나도 가혹한 세계에서 시크는 그저 속으로 소리쳤다.

‘안 돼. 안 돼. 안 돼!’

두근, 두근, 두근······.

···만일 그가 평범한 어린아이였다면 무력하게 마을사람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났으리라. 허나 그는 그의 어머니가 그러했듯,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

“안 돼에에에에에!”

콰아아아아-!

절규가 마법을 뚫고 뛰쳐나오는 것과 동시에 그의 어머니처럼 막대한 양의 마나가 시크의 주변에서 치솟았다. 마치 어머니의 유산을 계승받기라도 한 듯이.

“읏. 마법이······?”

“아니, 이 마나는···! 그렇군. 그년에게 자식이 있었구나! 하하하하하! 저 꼬맹이를 붙잡아라! 이번에는 실수하지 말고! 얼른!”

흑마법사의 수장은 갑작스런 사태에 당황하면서도 금세 상황을 파악하고서 웃음을 터뜨렸다. 시크의 어머니가 죽으면서 사라졌다고 생각한 힘의 단서가 알아서 나타났으니 그들로선 행운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흑마법사들에게 위기감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한 노릇이다. 설령 시크가 어머니만큼, 혹은 그 이상의 마나를 손에 넣었더라도 힘만 있어서는 어머니와 같은 결말을 맞을 뿐이다.

마법을 다루던 어머니조차 그들에게 쓰러졌거늘 마법도 모를 소년의 손에 힘이 쥐어진다고 뭐가 달라질까? 시크는 그저 맛있는 먹잇감에 불과하다. 만약에 ‘그것’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는 진실이 되었으리라.

우우우우웅-

하지만 그것은 나타났다. 시크가 내뿜은 막대한 마력에 호응해서 데페리온 영지의 지저에 오랫동안 봉인되어있던 존재가 깨어난 것이다.

[놈들을 죽이고 싶나?]

시크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한 자루의 검을 바라보았다. 흉흉한 사념파와 달리 눈처럼 새하얗고 깨끗한 검. 성스럽게까지 느껴지는 검의 앞에서 소년은 이내 증오로 물든 눈을 번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잠시 그 몸을 내게 맡겨라.]

···그 목소리에 다시금 고개를 끄덕인 뒤의 기억은 시크도 희미하다. 그저 다시 정신이 또렷해졌을 때 흑마법사들은 모두 죽어있었고, 그의 손에는 한 자루의 검이 쥐어져있었다.


[왜. 후회라도 하는 거냐?]

“···아, 하나 더 있었군. 그 검이 말을 한다는 거.”

과거를 회상하던 시크는 문득 물어오는 검의 목소리에 깜빡했다는 듯 읊조렸다. 그러자 검이 부르르 떨리면서 무덤덤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나름 장난이라고 친 모양인데, 별로 재미는 없다.]

“그런가? 역시 나는 농담하곤 안 맞는 모양이네.”

검의 대답에 어깨를 으쓱인 시크는 잠시 도시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후회하는 건 아냐. 단지, 단지 그래. 복수의 순간을 제대로 보지 못한 건··· 불편하네.”

흑마법사들을 죽인 것은 시크이되 시크가 아니다. 그는 그저 몸을 빌려주었을 뿐, 실제로 흑마법사들을 처리한 건 검에 봉인된 존재였으니까.

하물며 기억조차 흐릿하니, 복수를 했다는 실감이 없다. 그 점은 아쉬웠다. 갈 곳 잃은 증오가 그의 마나를 일그러뜨려 만들어낸 살기의 크기만큼이나.

[그때 네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지. 그 흑마법사들은 나름대로 강한 녀석들이었다. 통제되지 않는 마나, 지배하지 못한 살기, 미숙한 검술 따위로 이길 상대가 아니었지.]

“정말로? 나는 성의 기사들보다도 강한데?”

신랄하게도 말해오는 검의 목소리에 시크는 치기어린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다. 본디 막대한 마나를 보유한 시크의 힘은 아무것도 배운 게 없다곤 믿기지 않을 만큼 막강하기 때문이다.

마나가 뒤틀려서 만들어진 살기는 산전수전 다 겪은 기사들도 질릴 정도로 강렬하고, 마력을 방출하며 휘두르는 검은 바위도 깨부수며 기사들조차 감히 맞부딪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검으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부정적이었다. 검은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

[거야 그 기사들이 별거 없는 놈들이라 그런 거고. 하기야 말로 해서 뭣하겠나. 언제 진정한 강자를 한 번 만나보면 알게 될 게다. 지금 이렇게 검술 수업도 땡땡이치며 시간을 보낸 게 얼마나 오만한 짓이었는지.]

“아, 시크 이 녀석! 또 여기 있었구나!”

마치 떼쟁이 손자를 바라보듯이 끌끌 혀를 차는 검의 목소리에 뭐라 시크가 말하려던 찰나 성벽 너머로부터 한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크와 형제 같은 사이로 지내는 영주의 아들, 카이의 목소리였다.

‘오만한 짓이라.’

시크는 카이를 향해 몸을 돌리며 검이 해준 말을 떠올렸다. 오만이라. 자신은 오만한 걸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욕이 안 나.’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 검술을 배운다는 건 그럼에도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리 생각하며 재촉하는 카이의 뒤를 따르는 시크가 있던 성벽의 저편에서 불길한 잿빛의 불꽃이 살며시 맺혔다 사라졌다.


* * *


결론적으로 말해서 아쿠아는 자신의 감을 믿었다. 성벽 앞에 차려진 수천 명의 먹잇감을 제쳐두고, 영주를 지키기 위해서 이동을 개시한 것이다.

“저기가 페르니아인가?”

“러셀 경이 준 지도대로라면 그런 것 같아요.”

이 이동에 러셀이나 다른 요새의 병력은 따라오지 않았다. 요새를 지키는 일도 만만찮게 중요한 일이고, 정보의 출처가 출처다보니 쉽게 대규모 병력을 움직이기가 어려운 탓이었다.

대신에 러셀은 영주를 구하러가는 일행에게 최대한의 지원을 해주었다. 전략물자인 정교한 지도를 복제해준데다 전령용의 말을 중간에 갈아가며 탈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 덕에 아쿠아 일행은 하스의 본체나 비올라의 사역마 등 이쪽의 패를 쓰지 않으면서도 꽤나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었다. 아쿠아는 눈에 보이기 시작한 도시, 영주가 머무는 페르니아의 성벽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후. 아직 일이 터지거나 하진 않은 모양이네.”

적어도 눈으로 보기에 사건이 터진 듯한 기미는 없었다. 일행이 달리면서 가장 걱정한 것이 도착하기 전에 일이 터지는 것이었음을 생각하면 다행인 노릇이다.

“푸릉? 푸히히히힝!”

“으음? 이건 또 뭐야.”

그리고 그리 안심하던 순간이었다. 일행의 눈살이 찌푸려지고, 말들이 앞발을 크게 치켜들고 울부짖으면서 걸음을 멈췄다.

“살기···군요. 그것도 도시 쪽에서. 저쪽에 뭔가 일이 터진 걸까요?”

“아니. 그거랑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난데없이 도시로부터 살기가 쏟아지는 희한한 사태에 냄새를 맡아보던 아쿠아가 고개를 기울였다. 아쿠아의 반응에 하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다른 거야. 도시는 평화로운 거야. 살기는 어느 인간 하나가 그냥 숨 쉬듯이 뿜고 있는 거야. 다들 적응하고 있는지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인 거야.”

“으음? 잠깐만요. 인간 하나가 저 도시에서 여기까지 살기를 뿌리고 있는 거라고요?”

하스의 해설에 비올라의 고개도 아쿠아처럼 기울어졌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다. 보통 어지간히 살기가 강하더라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범위까지 날아다닐 일은 없다.

거창하게 말하지만 살기는 살심에서 비롯되는 분위기의 일종에 불과하니까. 그런 분위기를 보이지도 않는 곳까지 날리려면 마나를 의도적으로 가공해 보이지 않는 힘으로서 기운을 따로 만들어내야만 한다.

마치 드래곤이나 강력한 몬스터들이 자신들의 포효에 마나를 담아서 공포를 일으키는 것처럼. 물론 그게 쉽지 않음은 당연하다. 일단 마나를 가공하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만, 필요한 마나의 양이 막대한 것이다.

그래. 인간의 몸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적어도 어지간한 상위종족이나 대형 몬스터보다도 방대한 힘이 필요하다.

“흐음. 그러고 보니 특별한 힘을 가진 아이라고 했었지? 이거야 원. 이게 그 ‘특별한 힘’이면 꽤나 골칫덩이인 모양일세.”

아쿠아는 살기에 반응한 말들을 다독이며 느긋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솔직히 베르크교에만 관심이 있었지, 그들이 노리는 목표물에게는 별다른 관심이 없던 일행의 인식이 약간이나마 바뀌는 순간이었다.


작가의말

새로운 등장인물이 벌써..!


슬슬 다 채워지겠군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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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19. 그랑 레인저와 사혼의 마녀Ⅰ +4 19.01.25 48 1 11쪽
86 18. 신전운영과 치솟는 명성Ⅲ +6 19.01.23 45 1 12쪽
85 18. 신전운영과 치솟는 명성Ⅱ +1 19.01.21 52 1 12쪽
84 18. 신전운영과 치솟는 명성Ⅰ +4 19.01.18 52 1 13쪽
83 17. 순조로운 나날Ⅳ +1 19.01.16 62 1 13쪽
82 17. 순조로운 나날Ⅲ +3 19.01.14 62 1 12쪽
81 17. 순조로운 나날Ⅱ +4 19.01.11 46 0 13쪽
80 17. 순조로운 나날Ⅰ +4 19.01.09 61 1 13쪽
79 16. 카이란스 왕국Ⅳ +4 19.01.07 48 1 13쪽
78 16. 카이란스 왕국Ⅲ +3 19.01.04 67 1 12쪽
77 16. 카이란스 왕국Ⅱ +2 19.01.02 56 1 12쪽
76 16. 카이란스 왕국Ⅰ +2 18.12.31 59 1 12쪽
75 15. 바람이 머물렀던 곳Ⅴ +2 18.12.28 60 2 12쪽
74 15. 바람이 머물렀던 곳Ⅳ +3 18.12.26 71 2 12쪽
73 15. 바람이 머물렀던 곳Ⅲ +2 18.12.24 58 3 12쪽
72 15. 바람이 머물렀던 곳Ⅱ +5 18.12.21 85 2 13쪽
71 15. 바람이 머물렀던 곳Ⅰ +5 18.12.19 91 0 13쪽
70 14. 재를 찢고Ⅳ +2 18.12.17 77 1 14쪽
69 14. 재를 찢고Ⅲ +4 18.12.14 96 2 12쪽
68 14. 재를 찢고Ⅱ +2 18.12.12 79 2 12쪽
67 14. 재를 찢고Ⅰ +2 18.12.10 91 1 12쪽
66 13. 마나의 그릇Ⅴ +4 18.12.07 97 1 12쪽
65 13. 마나의 그릇Ⅳ +2 18.12.05 83 1 12쪽
64 13. 마나의 그릇Ⅲ +4 18.12.03 83 1 12쪽
63 13. 마나의 그릇Ⅱ +1 18.11.30 110 1 12쪽
» 13. 마나의 그릇Ⅰ 18.11.23 93 0 12쪽
61 12. 기어오는 혼돈Ⅳ +1 18.11.16 87 0 11쪽
60 12. 기어오는 혼돈Ⅲ +1 18.11.09 97 0 12쪽
59 12. 기어오는 혼돈Ⅱ 18.11.02 9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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