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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나스
작품등록일 :
2017.06.2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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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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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3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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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카이란스 왕국Ⅰ

DUMMY

스르르르-

일행이 공간이동으로 도착한 장소는 푸른 초목이 우거진 산길이었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모양인지 산길은 어지간한 등산로보다도 잘 닦인 상태였다.

“여기는······.”

“은룡신의 레어로 가는 길이에요.”

“뭔가 상상하던 것과 많이 다른데?”

아쿠아는 마차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산길을 보며 볼을 긁적였다. 그야 보통 드래곤의 레어라고 하면 험준한 산의 인간은 접근도 못할 마경을 떠올리는 것이 당연지사.

“은룡신의 레어는 반쯤 관광지니까요.”

하지만 은룡신의 레어는 다르다. 은룡신은 왕국의 수호룡. 사람에게 섬겨지는 존재이며, 따라서 그 레어는 섬기는 존재들이 접근할 수 있는 장소에 존재한다.

마치 신전처럼. 아니, 실제로도 신전과 같으리라.

“흐응.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거리가 가까운 모양이지? 과연··· 신은 신이라 이건가.”

“예. 틀림없는 신이시죠.”

비록 아직 지상을 벗어나 신계에 들지 않은 하급신이라곤 해도 은룡신은 틀림없이 한 명의 신이니까. 레아트리스는 아쿠아의 읊조림에 답하며 품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서 내밀었다.

“아까 잠시 시간이 있을 때 써둔 소개장이에요. 아마 제 소개장만으로 통과시켜줄 것 같진 않지만··· 도움은 되겠지요.”

“소개장이라. 고마워. 근데 그리 공개된 장소라면 그냥 찾아가면 되는 거 아냐?”

“반쯤 관광지라곤 해도 공개된 장소는 입구뿐이에요. 찾아온 참배객들은 입구에서 기원을 마치고 돌아가죠. 상식적으로 신이 잠든 모습까지 구경거리로 삼을 리는 없잖아요?”

“그것도 그렇군.”

아쿠아는 레아트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소개장을 받아들었다. 바람의 마탑까진 끌어들이지 못한대도 레아트리스는 그랑 클래스의 일원인 그랑 위저드.

그녀의 소개장은 일행의 신용에 확실히 큰 도움이 되리라. 설령 은룡신과의 접견이 되지 않는데도 일단 떠돌이인 일행의 신분은 보증되는 셈이니까.

“그런데 은룡신을 보기가 그리 까다로워? 그랑 클래스의 소개로도 안 될 만큼?”

“카이란스 왕국에게 잠든 신은 무엇보다 중요한 존재니까요. 자국의 그랑 클래스라면 모를까, 외부의 그랑 클래스는 직접 접견하는 것도 어렵답니다.”

“흐응. 안 되면 이 나라의 그랑 클래스를 찾아봐야하나······. 카이란스 왕국 소속이면 둘이던가?”

“네. 그랑 레이피어와 그랑 레인저죠. 다만 지금은 둘 다 자리를 비운 상태일 거예요. 그랑 레이피어는 소식이 끊긴지 꽤 됐고, 그랑 레인저는 다시 나타난 사혼의 마녀를 쫓고 있을 테니까요.”

“으음. 따로 신용을 얻어야 한다는 거군. 귀찮게 되겠는걸······. 어쨌든 고마워. 레아트리스. 덕분에 시간도 단축했고, 소개장도 얻었고. 이 도움은 잊지 않을게.”

“아니오. 더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비록 지금은 여기서 물러가지만··· 언젠가 당신께 진실로 제 힘이라도 절실히 필요한 날이 온다면, 이 입장을 버리고서라도 힘이 되겠습니다.”

레아트리스는 슬슬 마탑으로 돌아가기 위한 공간이동을 펼치면서 결의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아쿠아는 미묘한 미소를 머금으며 읊조렸다.

“딱히 거기까진 바라지 않으니까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

“···당신들은, 항상 같은 말만 하시는군요. 그리 말씀하셔도 도울 테니, 다들 다음에 뵙겠습니다.”

류신을 비롯한 영웅들에게도 같은 말을 들었던 걸까. 레아트리스는 씁쓸한 목소리를 남긴 채 사라졌다.

“으음. 받아먹은 입장에서 말하긴 뭐하지만, 왜 저렇게까지 해주는 걸까.”

“그만큼 떠나가신 분들께 감사한 거겠지요.”

“흐응. 부채의식인가?”

나직이 읊조리는 아쿠아를 향해 비올라가 이해할 수 있다는 듯 답했다. 아쿠아는 흥미 없다는 듯 콧소리를 흘리면서 산길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뭐, 공짜라면 받아먹는 게 내 주의니까, 준다면 넙죽 받을 뿐이지. 일단 레어로 가자. 소개장이 어디까지 통할는지 확인이나 해보게.”

“네.”

레아트리스와 작별한 일행은 그대로 산을 올랐다. 길이 잘 닦인데다 경사도 그리 급하지 않았기에 산을 오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헉. 헉. 시작부터 등산이라니.”

“시크, 너는 체력을 좀 길러야 해. 너무 마력에 의존하잖아.”

물론 갑작스런 등산에 불만을 표하는 이도 있긴 있었다. 마력의 힘으로 몇 시간이고 싸울 수 있지만, 정작 육체적인 체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은 시크였다.

“으음. 이런 점은 다르군요.”

“어쨌든 쟤는 인간이니까. 아무래도 처음부터 다 타고난 너처럼 능력의 균형이 맞춰져 있을 리는 없지. 뭐, 떠들면서 잘 따라오는 걸 보면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만.”

인간이 아니라 여유로운 원래의 일행들은 그런 인간조를 느긋하게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격차가 확연한 모습을 바라보며 레이트가 없는 혀를 차며 읊조렸다.

[쯧쯧. 참으로 불공평한 광경이로고.]

“제일 편한 네가 그런 소리 하지 마.”

레이트까지 머릿수로 치면 무려 8명. 일행은 제법 떠들썩한 모습으로 산길을 계속 올라갔다.


산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한지 약 10여 분. 일행은 은룡신의 레어 입구에 도착했다. 커다란 동굴 입구를 두고 수많은 참배객과 관광객들이 웅성대는 모습을 보며 아쿠아가 혀를 내둘렀다.

“진짜 말 그대로 관광지로군.”

“그러게요. 예전에도 들은 적은 있지만, 직접 와본 건 처음이에요.”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드래곤의 레어’와는 완전히 딴판인 모습. 하지만 대전쟁을 거치면서 드래곤을 비롯하여 레어를 만드는 강대한 종족들이 대부분 사라져버린 지금의 대륙에선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기도 하다.

“일단 관광은 나중에 생각하든지 하고 우선은··· 소개장부터 써봐야겠지.”

아쿠아는 느긋이 중얼대며 레어의 입구로 시선을 향했다. 마법적인 결계로 엄중히 봉인된 동굴 입구엔 몇 개나 되는 초소가 설치되어 있고, 무장한 기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실패하면 강제로 뚫기는··· 어려우려나.’

반쯤 본능적으로 견적을 낸 아쿠아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기사들의 수준은 그리 위협적이지 않지만, 문제는 저 결계다.

은룡신이 직접 설치했는지 비올라는커녕 아쿠아가 직접 나서도 통과하기 어려울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어떻게 결계를 뚫고 들어간대도 은룡신이 침입자를 좋게 봐줄지도 의문이다.

‘우리는 신과 싸울 준비가 안 되어있으니까.’

하급신이라도 신. 반신이라 불리는 옥좌보유자를 월등히 상회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물론 게임에서 무수한 경험을 지닌 아쿠아는 친구들과 함께 그런 신과 싸워 이긴 적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전력부터가 다르다. 다수의 강력한 옥좌보유자들이 협력하던 그때와 제대로 된 옥좌보유자 하나 없는 지금의 일행은 격차가 커도 너무 컸다.

“소개장이 안 되면 삥 둘러가는 수밖에 없겠네.”

“무슨 일이시오?”

레아트리스가 있을 때 했던 말과 비슷한 내용을 읊조리는 아쿠아를 향해 기사 한 명이 다가왔다. 레어 입구로 다가가는 일행의 모습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실례지만 은룡신과의 접견을······.”

“접견? 접견이라고? 허허허허.”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하는 아쿠아의 말을 끊으며 기사가 어이없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놈들, 외지인인 모양이군?”

“그걸 어떻게······.”

“은룡신을 뵙고 싶다고 하는 무리는 둘 밖에 없거든. 정말 신의 은총이 간절한 이들이나··· 사정을 잘 모르는 외지인들.”

그리 말하는 기사의 곁으로 다른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일행을 경계하면서도 초소 쪽엔 일부가 남아 양동을 경계하는 모습은 이런 상황에 꽤나 익숙한 모습이었다.

“사정을 잘 모른다······?”

“잠드신 은룡신께선 좀처럼 깨어나지 않으시지. 종종 깨어나실 때에도 오래 깨어계시진 않아. 하물며 이쪽에서 접견을 청하여 깨어나시게 하는 일은 더욱 힘든 일. 결코 뵙고 싶다고 해서 뵐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얘기야.”

아쿠아는 그 말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예상치 못한 이야기는 아니다. 잠든 신을 깨우는 일이 그렇게 쉬울 리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그는 만나야만 한다. 뒤늦게 대륙에 도착한 몸으로서 반드시. 그건 간절함이나 소원이라기보다 책임감에 가까운 마음이다.

아마도 그렇기에 기사는 아쿠아의 말에서 간절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외지인이라 단정했으리라. 그쯤에서 아쿠아는 입씨름하길 멈추고 품속에서 소개장을 꺼내들었다.

“그랑 위저드의 소개장입니다.”

“소개장? 그랑 위저드의?”

기사는 아쿠아의 말에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소개장을 받았다. 아무래도 난데없이 나타난 수상한 인물들이 유명인의 소개장을 들이대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으리라.

“본국에 확인을 해봐야겠군. 잠시 따라오게.”

하지만 이런 일이 흔한 모양인지 기사는 익숙한 태도로 말하고는 일행을 이끌고서 초소로 향했다. 아마 초소에 왕국 수뇌부와 통신이 가능한 마도구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건 좀 기분 나쁜걸.’

아쿠아는 기사들에 반쯤 포위되어 연행되듯 끌려가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일행들도 별달리 말은 안하지만 불만스러운 기색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누구 하나 섣부르게 나서는 이가 없었다는 점이리라. 다소 불만스럽더라도 카이란스 왕국과 척을 질 순 없는 입장에서 누가 섣불리 싸움이라도 걸었다간 돌이킬 수 없게 될 테니까.

“불편하겠지만 조금만 기다리게.”

그런 심경을 알긴 하는 모양인지 기사는 아까보단 친절해진 말을 남기고는 초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 분 후, 조금 전에 들어간 기사와 그 상급자로 보이는 기사가 초소 밖으로 나왔다.

“이자들인가?”

“예! 그렇습니다.”

“모두 해산해라. 이들의 신용은 확인됐다.”

무슨 수를 썼는지 그 몇 분 만에 소개장의 진위여부는 확인이 끝난 모양이었다. 포위하고 있던 기사들이 우르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아쿠아는 조금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소개장의 진위는 확인이 끝났소. 부하들이 다소 무례했을 수 있다는 점은 사죄하지. 다만······.”

“다만?”

“아무리 그랑 위저드의 소개가 있었대도 은룡신께 함부로 접견을 부탁할 수는 없소. 그것이 본국의 방침이오.”

상황은 레아트리스가 예견했던 대로 돌아갔다. 그녀의 소개장은 일행의 신용을 증명할 순 있었지만, 은룡신과의 접견까지 이끌어내진 못한 것이다.

“···안타깝군요. 그렇다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접견할 수 있겠습니까?”

아까 전에 강행돌파를 포기한 아쿠아는 체념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기사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은룡신께선 용사를 좋아하시지. 자네들이 대륙의 평화에 기여한다면 은룡신께서 깨어나셨을 때, 자네들을 보고자 하실지도 모르겠군.”

“으음. 그렇습니까.”

기사로부터 그리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은 대답을 들은 아쿠아는 일단 물러서길 택하고 손짓했다. 그에 일행은 적당한 인사를 남기고 레어를 벗어났다.


작가의말

잠시 쉬어가는 화..


보통 도움이 될 거 같지 않은 말이 가장 도움이 되는게 소설의 현실이긴 하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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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19. 그랑 레인저와 사혼의 마녀Ⅰ +4 19.01.25 90 1 11쪽
86 18. 신전운영과 치솟는 명성Ⅲ +6 19.01.23 84 1 12쪽
85 18. 신전운영과 치솟는 명성Ⅱ +1 19.01.21 74 1 12쪽
84 18. 신전운영과 치솟는 명성Ⅰ +4 19.01.18 92 1 13쪽
83 17. 순조로운 나날Ⅳ +1 19.01.16 103 1 13쪽
82 17. 순조로운 나날Ⅲ +3 19.01.14 98 1 12쪽
81 17. 순조로운 나날Ⅱ +4 19.01.11 74 0 13쪽
80 17. 순조로운 나날Ⅰ +4 19.01.09 90 1 13쪽
79 16. 카이란스 왕국Ⅳ +4 19.01.07 78 1 13쪽
78 16. 카이란스 왕국Ⅲ +3 19.01.04 97 1 12쪽
77 16. 카이란스 왕국Ⅱ +2 19.01.02 80 1 12쪽
» 16. 카이란스 왕국Ⅰ +2 18.12.31 92 1 12쪽
75 15. 바람이 머물렀던 곳Ⅴ +2 18.12.28 95 2 12쪽
74 15. 바람이 머물렀던 곳Ⅳ +3 18.12.26 104 2 12쪽
73 15. 바람이 머물렀던 곳Ⅲ +2 18.12.24 94 3 12쪽
72 15. 바람이 머물렀던 곳Ⅱ +5 18.12.21 114 2 13쪽
71 15. 바람이 머물렀던 곳Ⅰ +5 18.12.19 115 0 13쪽
70 14. 재를 찢고Ⅳ +2 18.12.17 115 1 14쪽
69 14. 재를 찢고Ⅲ +4 18.12.14 131 2 12쪽
68 14. 재를 찢고Ⅱ +2 18.12.12 107 2 12쪽
67 14. 재를 찢고Ⅰ +2 18.12.10 115 1 12쪽
66 13. 마나의 그릇Ⅴ +4 18.12.07 116 1 12쪽
65 13. 마나의 그릇Ⅳ +2 18.12.05 156 1 12쪽
64 13. 마나의 그릇Ⅲ +4 18.12.03 110 1 12쪽
63 13. 마나의 그릇Ⅱ +1 18.11.30 143 1 12쪽
62 13. 마나의 그릇Ⅰ 18.11.23 125 0 12쪽
61 12. 기어오는 혼돈Ⅳ +1 18.11.16 110 0 11쪽
60 12. 기어오는 혼돈Ⅲ +1 18.11.09 133 0 12쪽
59 12. 기어오는 혼돈Ⅱ 18.11.02 12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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