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색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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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나스
작품등록일 :
2017.06.27 14:03
최근연재일 :
2019.01.2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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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2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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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크리프란 평야 원정대Ⅲ

DUMMY

“으으··· 쿨럭! 쿨럭!”

“후우. 일단 급한 대로 상처는 막아두었네. 정양을 취하면 무리 없이 나을 게야. 끄응.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회복시켜두고 싶지만··· 다른 환자들도 돌봐야하는지라 어쩔 수가 없네. 버텨주게나.”

빛이 사그라드는 틈새로 간이병상에 누운 병사와 순백의 사제복을 입은 중년인의 모습이 들어온다. 아쿠아는 공교롭게도 사제가 부상자에게 성술을 걸어주던 순간에 막사로 들어섰던 것이다.

‘으음. 제법 괜찮은 신성력이네. 당장은 별로지만 싹수가 보여. 신앙심도 신실해보이니 잘 가르쳤으면 꽤 높은 수준까지 왔을 텐데. 어느 교단인진 몰라도 인재를 내버렸네.’

아쿠아는 신음하는 병사에게 신신당부하는 사제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 전의 신성력을 평가했다. 꽤나 놀랍게도 눈앞의 사제는 정점에 오른 아쿠아의 안목으로도 감탄이 나올 정도의 인재였다.

‘아까워라. 사용하는 성술도 조잡하고, 우리 교단이었으면 가르치기라도 했을 텐데.’

내심 저런 인재를 방치한 교단에 혀가 절로 차질 정도. 딱히 인재를 찾은 것도 아니고, 우연히 만난 인물이라곤 믿기지 않는 수준이다.

‘쯧. 별 수 없지. 아깝다고 손댈 수도 없고. 슬슬 움직이기나 해야겠다.’

그러나 안타까움은 잠시다. 아무리 대단한 인재라도 이미 다른 신을 믿고 있는 시점에서 미련을 두는 건 어리석은 짓이므로.

괜히 탐해서 개종시키려다 그쪽 신의 천벌이라도 떨어질지 모른다. 하나의 교단을 세웠던 경력 덕에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쿠아는 빠르게 마음을 접었다.

“어, 음. 자네들은 누군가?”

그리고 그 타이밍에 정확히 맞춘 듯, 살짝 당황한 기색이 묻어나는 물음이 들려온다. 부상자들을 치료하던 다른 사제가 아쿠아에게 말을 건 것이다.

“저희는······.”

“아, 레무스 사제님. 이분들은 부상자들의 치유에 손을 보태주시겠다며 찾아와주신 분들입니다. 물의 여신 아쿠라미드님을 모시는 사제님들이라더군요.”

아쿠아는 그 물음에 대답하려 했지만, 말을 꺼내기도 전에 벤갈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러자 레무스라 불린 사제는 미심쩍다는 얼굴로 아쿠아를 쳐다보더니 이내 흠칫하며 고개를 돌리고는 헛기침하며 말했다.

“흠흠. 그, 그래. 그렇군. 케론 경이 보내주었다면 가짜는 아닐 터. 조력에 감사하네.”

기묘한 반응을 보이면서 감사를 표하는 레무스를 보며 아쿠아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이내 그가 어째서 저런 모습을 보였는지 알아차리고는 속으로 이런, 이런 하고 혀를 찼다.

‘얼굴에 홀린 거였군. 한동안 비슷한 반응을 못 봐서 까먹고 있었네. 아까 기사양반이랑 병사들도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말이지.’

깨어난 후, 거울을 보는 등 직접 확인한 적은 없지만 아쿠아는 자신의 외모가 게임에서와 같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벌써 몇 년이나 사용해온 캐릭터다. 진정한 의미에서 ‘분신’이나 다름없는 육신을 알아보는 일이야 꼬리털의 결만 봐도 간단하게 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아쿠아에겐 너무도 익숙한 분신의 미모는 비할 바 없이 빼어났다. 보는 이가 자칫 숨이 멎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정도로.

오죽하면 아쿠아의 친구에게 마음이 있던 여성유저가 그를 견제(!)했겠는가. 심지어 현실의 아쿠아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면서도 그랬을 정도다.

굳은 심지를 지닌 기사나 그런 기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병사들은 그 가련한 미모를 앞두고도 티를 내지 않았다. 아니, 생각해보면 캐묻는 말에 예상보다 수월하고 자세히 읊어대던 벤갈은 조금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그런 이들이 아니라, 뜬금없이 아쿠아와 마주한 사제로선 흔들리는 쪽이 정상이다. 게임이던 때도 무수한 NPC들에게서 그런 반응을 봐왔던 아쿠아의 판단이니 의심의 여지는 없다.

‘귀찮아지겠는걸.’

참고로 게임에서 그런 반응은 아쿠아를 모르는 NPC가 없어진 시점에서 점점 둔화됐다. 아무리 빼어난 미모라도 몇 번이고 보다보면 감탄은 이어질지언정 리액션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낯선 세계에서 다시금 그런 영역에 도달하려거든 얼마나 시간을 소비해야할까? 아쿠아는 그런 일이 가능한지의 여부는 제쳐두고, 그 시간동안 받을 취급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나는 치유의 여신 레이니아님을 모시는 몸인 레무스일세. 부족한 능력이나마 위험지대의 탐사를 돕기 위하여 원정대에 지원했지.”

물론 그런 아쿠아의 심경을 레무스가 알 턱이 없다. 그는 아쿠아의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채 정식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병사님이 앞서 소개해주신 대로 물의 여신 아쿠라미드님을 모시는 아쿠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라피 저를 호위해주는 동료입니다. 병사님은 사제라고 하셨지만, 그녀는 사제가 아니지요.”

‘레이니아. 분명 시리우스에서도 존재하던 신이었는데······. 다른 신인가? 아니면 내 신성력이 정상적인 것도 그렇고, 이거 설마 존재하는 신은 게임때랑 똑같은 건가?’

그 소개에 아쿠아는 부드러이 화답하면서도 속으로 살짝 당황했다. 레무스가 모신다는 치유의 여신 레이니아, 그녀의 이름은 아쿠아에게도 익숙한 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군. 흠흠. 이거 조금 더 인사를 나누고 싶네만··· 아무래도 그럴 여유는 없을 것 같네. 상황이 그리 좋지가 않아서 말이야. 자네도 곧장 진료를 도와주겠는가?”

공교로운 사태에 아쿠아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려 했지만, 상황이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곧바로 이어진 레무스의 말에 아쿠아는 일단 생각을 접어두면서 대답했다.

“예.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주변의 부상자들을 돌아보니 확실히 여유를 부리긴 힘든 상황임이 보였다. 조치를 잘 취했는지 당장 생명이 위급한 환자는 거의 없었으나, 대부분의 조치가 응급처치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모든 부상자를 감당하기에는 사제들의 신성력이 모자랐던 모양이다. 정황을 파악한 아쿠아는 그대로 망설임 없이 이 자리에서 가장 위급한 부상자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으윽. 으, 끄으윽······.”

강제로 재워놓은 듯, 잠들어있는 상태임에도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는 병사의 모습은 참혹했다. 몬스터에게 먹혔는지 왼쪽 다리가 있어야할 자리에는 선명한 잇자국이 섬뜩하게 번뜩인다.

옆구리는 깊게 패여서 내장이 엿보이고, 독에 중독되었는지 오른쪽 어깨가 검게 물들어있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비참한 몰골이지만, 아쿠아의 얼굴에 동요는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현실성을 위한다며 제대로 된 필터링도 구비하지 않은 시리우스 RPG의 유저에게 시체는 쉽게 마주할 수 있는 흔한 오브젝트에 불과하니까.

특히나 신의 사도로 활동하던 아쿠아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했다. 성자로서 전쟁터, 역병지대, 무법지대, 범죄자들의 소굴 등 인세의 지옥이라 할 수 있을 장소는 죄다 돌아본 몸이니 말이다.

물론 아무리 현실적이어도 게임으로 인식하던 때와 현실이라 인식하는 때의 차이는 틀림없이 거대하지만······. 그렇더라도 이정도론 아쿠아의 평정심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

‘일단 출혈과 독의 확산만 막아놓은 상태인가. 하긴. 부위결손과 몬스터의 맹독. 어느 쪽도 이들의 수준으로는 난제일 테니 당연한 거겠지. 그럼 이걸 어떻게 처리한다?’

부상자의 상세를 살핀 아쿠아는 잠시 골몰했다. 과거의 그였다면 필요하지 않았을 과정이다. 죽은 자의 소생조차 어렵지 않았던 몸인데 이런 부상을 치유하는 정도로 고민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레벨을 잃어버린 지금의 그에겐 명백한 한계가 있다. 해독은 가능하긴 할 테지만 신성력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고, 다리를 재생시키는 건 신성력을 모조리 소모하더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른 환자들까지 고려하면 절약까지 생각해야한다는 뜻인데. 으음. 살짝 호전시키는 정도로 만족해야하나? 그건 또 싫은데. 뭐라도 확실하게 할 수 있는 게······.’

무난한 방법은 다른 사제들이 그러했듯 최소한의 조치만 취하는 것이다. 이후에 상황이 안정되면 모든 사제들과 힘을 모아서 차분하게 해결하면 된다.

그러나 아쿠아는 무난한 해결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환자에게 고통을 더한다는 의미에서도 그렇고, 애당초 저런 해결책이 무난한 건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이 있을 때다.

혹여나 합병증이 생겨서 치료가 더 어려워지거나, 추가적인 습격이라도 일어나서 새로운 부상자가 생긴다면? 정말로 목숨을 부지시키는 것조차 버거운 사태가 벌어지리라.

미래에 떠넘긴 부채가 섬뜩한 이자를 짊어지고서 목을 졸라오는 셈이다. 아쿠아는 자칫 최악의 결말을 맞을지 모르는 불안요소를 알고도 빚을 질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막 떠넘겼다가 무슨 사태를 보려고. 음? 잠깐만. 떠넘긴다? 아, 그래. 독을 꼭 해독할 필요는 없잖아? 제거가 아니라 이동하는 정도면 신성력의 소비량도 미미할거고.’

그리고 아쿠아는 스스로의 지식을 더듬으며 답을 찾아냈다. ‘떠넘긴다.’는 말을 키워드삼아서 찾아낸 답은 말 그대로 독을 해독하지 않고 타인에게 떠넘기는 방법이었다.

···솔직히 그건 방책이라는 의미로 따졌을 때,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하책이다. 결국 독을 떠넘겨서 나아봤자 받은 쪽이 다시 환자가 될 텐데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물론 아쿠아도 그리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걸 좋은 생각마냥 읊조린 이유는 하나, 문제점을 해결할 답도 같이 떠올렸기 때문이다.

“라피. 한 가지 확인해줄 수 있을까?”

근처의 다른 사람에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야트막한 아쿠아의 목소리가 라피에게로 향했다. 라피는 살며시 그의 옷자락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임으로서 조용히 대답을 돌려주었다.

“나는 레벨만 초기화됐고, 직업과 종족은 유지된 상태지? 그렇단 말은 보유하고 있던 직업특성과 종족특성도 유지되고 있다는 건가?”

시리우스 RPG의 직업과 종족에는 스탯상승치와 별개로 특수한 능력들이 부여되어 있다. 불의 정령사는 화속성에 면역력을 가진다거나, 뱀파이어는 흡혈을 통한 권능을 보유한다거나 하는 말 그대로 ‘특성’이다.

그리고 당연히 아쿠아의 직업과 종족에도 특성이 존재한다. 물론 직업과 종족이 각기 최종직업과 상위종족인 관계로 그 성능은 단순한 특성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절륜하다.

“···네. 유지되고 있을 거예요. 직업 ‘아쿠라미드의 지상대행자’에 부여된 특성, ‘여신의 사도’도 말이에요.”

라피는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간파한 듯, 필요한 부분을 대답해주었다. 직업특성 여신의 사도. 당장 아쿠아가 이용하려는 특성이 발현되고 있음을 보증해준 것이다.

“그래. 고마워. 그러면 안심이네.”

파아아아아···

그 대답을 들은 아쿠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신성력을 일으켰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빠르게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듯 곧장 성술을 발현했다.


작가의말

추가로 올릴게 얼마나 있더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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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19 장미칼
    작성일
    18.12.05 16:28
    No. 1

    현대 지구의 남성의 영혼+게임 내 여신의 사도 여성 캐릭터=현재의 아쿠아라니 이 무슨 충격과 공포..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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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5. 노을의 기사Ⅶ +1 17.11.16 148 1 12쪽
23 5. 노을의 기사Ⅵ +1 17.10.31 202 2 12쪽
22 5. 노을의 기사Ⅴ +2 17.10.18 201 1 12쪽
21 5. 노을의 기사Ⅳ +2 17.08.29 211 3 12쪽
20 5. 노을의 기사Ⅲ 17.08.19 384 3 12쪽
19 5. 노을의 기사Ⅱ 17.08.12 209 3 12쪽
18 5. 노을의 기사Ⅰ 17.08.05 152 3 11쪽
17 4. 그가 사제인 이유Ⅴ +1 17.08.01 342 3 11쪽
16 4. 그가 사제인 이유Ⅳ 17.07.27 176 3 13쪽
15 4. 그가 사제인 이유Ⅲ 17.07.22 234 3 11쪽
14 4. 그가 사제인 이유Ⅱ +2 17.07.13 197 3 12쪽
13 4. 그가 사제인 이유Ⅰ 17.07.10 190 3 11쪽
12 3. 여행의 시작Ⅳ 17.07.07 525 3 11쪽
11 3. 여행의 시작Ⅲ 17.07.03 213 3 11쪽
10 3. 여행의 시작Ⅱ 17.06.30 204 3 12쪽
9 3. 여행의 시작Ⅰ 17.06.29 284 3 11쪽
8 2. 크리프란 평야 원정대Ⅳ 17.06.29 248 4 13쪽
» 2. 크리프란 평야 원정대Ⅲ +1 17.06.28 239 4 11쪽
6 2. 크리프란 평야 원정대Ⅱ +1 17.06.28 239 5 11쪽
5 2. 크리프란 평야 원정대Ⅰ +1 17.06.27 302 5 11쪽
4 1. 표류자Ⅲ +2 17.06.27 367 5 12쪽
3 1. 표류자Ⅱ +1 17.06.27 382 5 12쪽
2 1. 표류자Ⅰ +1 17.06.27 440 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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