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색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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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나스
작품등록일 :
2017.06.2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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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27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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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가 사제인 이유Ⅳ

DUMMY

아쿠아의 선교행위(아쿠아에게 딱히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교리에 따른 행동은 모두 선교활동으로 친다.)는 2~3시간동안이나 이어졌다.

석양조차 모습을 감추기 시작할 동안 그의 손이 닿은 부랑자의 수는 50여 명. 아무리 가볍게 보살피는 수준이래도 지금의 아쿠아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수였지만, 어떻게든 해냈다.

“정말 대단하더라. 내가 봤던 어중이떠중이들은 모두 두세 명도 벅차서 헉헉대던 녀석들뿐이었는데. 예전에 봤던 주교보다도 대단한 것 같던걸?”

그리고 지금 현재. 아쿠아는 이데아를 죄다 소모하는 바람에 반쯤 탈진한 상태로 카리나가 추천한 여관, 붉은 여울의 1층에 위치한 식당에 앉아있었다.

눈앞의 큼지막한 식탁에선 갓 튀겨낸 감자와 버섯이 드문드문 엿보이는 스튜, 그리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깃덩이가 식욕을 자극하는 향기를 내뿜는다.

진수성찬···이라기보다 이세계로 온 이후 처음으로 마주한 제대로 된 식탁. 그 앞에서 자연스럽게 아쿠아를 보호하듯 옆에 앉은 라피는 식사에 여념이 없었고, 아쿠아는 무슨 고기인지 모를(아마도 몬스터로 짐작되는) 고깃덩이를 들고 맞은편에 앉은 카리나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럴 리가요. 제 신성력은 주교급에 한참 미치지 못해요. 그저 저희 교단이 다수의 환자를 돌보는데 효과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을 뿐이지요.”

“특성이라. 그 물말이야? 신성력을 띠고 있던 것 같긴 했는데 뭐였던 거지?”

아쿠아의 대답에 카리나가 흐응, 하고 콧소리를 흘리면서 물어왔다. 그 액체가 성수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생각이 닿지 못했다는 쪽이 옳으리라.

본디 성수란 단순히 물에 신성력을 부어넣은 수준의 물질이 아니다. 새벽녘의 맑은 기운을 머금은 물을 떠서 해가 질 때까지 일정시간마다 축복을 내려야만 만들어지는, 그야말로 신의 은총이 담긴 결정체다.

어지간한 신전에선 재고를 구비해두는 것조차 힘들만큼 귀한 물질을 단 한 명의 사제가 가볍게 발현한 성술로 잔뜩 만들어낸다니. 그 난이도를 알기에 오히려 생각하기 어려운 가능성이 아니겠는가.

아쿠아는 지극히 상식적인 과정을 거쳐 정답을 배제한 카리나의 물음에 자긍심어린 투로 답을 선고했다.

“성수에요. 아쿠라미드님은 물을 관장하시는 분. 그렇기에 저희는 다른 교단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간단하게 성수를 만들어낼 수 있지요.”

“······흐응?”

뜸을 들이는 기색조차 없이 돌아온 대답에 카리나는 눈을 살짝 치켜떴다. 순간적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며, 그 이후로는 놀라움이 그녀를 휘감았기 때문이다.

“엄청난··· 권능이네.”

성수는 다양한 효능을 보유하고 있다. 질병을 치유하고, 언데드와 마족을 몰아내며, 저주를 물리치고, 부상을 회복시키며, 공복을 줄여주고, 오염을 정화하는 등 만능이라 부름에 모자람이 없을 정도다.

그 성수를 간단하게 대량으로 만들어낸다. 그 특성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카리나는 고기를 물어뜯는 아쿠아를 보며 반짝이는 눈으로 말을 이었다.

“섭외하고 싶을 정도로.”

“그리 만능은 아닙니다. 저처럼 부족한 능력으론 성수의 품질도 떨어지고, 즉석에서 생성한 만큼 시간이 지나면 효력을 잃거든요. 거기다 특화된 특성으로 인해서 다른 신관들에 비해 잃는 부분들도 생기고요.”

그에 아쿠아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자신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들을 태연히 밝히면서 고기를 물어뜯었다. 지구에서 먹던 고기와는 전혀 다른, 누릿하면서도 독특한 풍미가 혀끝을 타고 올라왔다.

“흠. 무조건 장점만 있진 않다는 건가. 그래도 그것들을 다 감안해도 훌륭한데. 섭외하고 싶다는 말은 빈말이 아냐. 우리랑 일해보지 않을래?”

겸손한 건지, 진심으로 대수롭잖게 여기는 건지 모를 아쿠아의 태도에 카리나는 깃털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진지하게 제안했다.

그리고 아쿠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즉답했다.

“아니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으음. 너무 단호한 거 아니니? 혹시 용병이 싫은 거야? 이것도 나름 해보면 괜찮은 직업인데.”

칼날처럼 날카로울 뿐만이 아니라, 서늘함까지 느껴지는 대답에 카리나가 무안한 투로 흘겨본다. 그에 아쿠아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을 덧대었다.

“그런 문제는 아닙니다. 단지··· 저희에겐 가야 할 곳이 있기 때문이지요. 급박한 일이거든요. 돈을 벌기위해 낭비할 시간이 없어요.”

“아하하. 낭비할 시간이 없다니. 그런 오지랖을 부린 녀석이 할 소리니?”

북동쪽. 하스의 존재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아쿠아의 말에 카리나가 재미있다는 듯, 그러나 비아냥댄다고 느껴지지 않도록 음성을 조절하며 웃는다.

뭐, 사실 비아냥댔어도 할 말이 없긴 하다. 그렇게나 시간이 모자란데 신성력을 다 써가며 2시간이 넘도록 부랑자들에게 의료봉사나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종교란 원래 효율로 잣대를 댈 수 없는 법이지요.”

“성직자가 할 대사는 아닌 것 같은데?”

의외로 대답이 난감한 물음을 아쿠아는 장난스런 어조로 넘겨버렸다. 물론 카리나도 따지려는 의도는 없었기에 장단을 맞추듯 장난기를 담아 맞대응하며 주문한 맥주잔을 들었다.

“어쨌든 아쉽네.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는데.”

그리고 호쾌하게 두어 모금의 맥주를 들이키고는 아쉬운 투로 읊조린다. 아쿠아는 나름대로 이래저래 신세를 진 여인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흐음. 실험적인 행위는 불경에 해당되지만··· 이쪽에서는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볼 필요도 있으니. 한 번 해보도록 할까?’

고민하는 내용은 게임이던 시절에 일상적으로 행했던 한 가지의 행위. 찰나의 순간을 통해 결정을 내린 아쿠아의 왼손이 슬며시 탁자 아래로 내려갔다.

“경전편찬.”

그리고 아쿠아는 청각이 예민한 조인족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자그마한 목소리로 읊조린다. 한계까지 사용했다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던 이데아가 다시금 짜내지며 팔을 타고 흘러내렸다.

푸른 신성력으로 화한 이데아가 자아내는 것은 세상에서 오직 아쿠라미드교를 창설한 아쿠아만이 사용할 수 있는 스킬, 경전편찬이다.

그 효과는 스킬의 이름대로 신성력을 사용하여 경전을 만들어내는 것. 아쿠아는 자신의 왼손에 형성된 경전의 감촉이 느껴지자마자 숨겼던 손을 꺼내들면서 제안했다.

“그럼 혹시 이런 건 어떻겠습니까?”

“······?”

물론 뜬금없이 푸른 표지의 책자 하나를 꺼내들면서 두루뭉술하게 내뱉은 그의 제안을 카리나가 곧장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저희 교단의 경전입니다. 이를 통하여 아쿠라미드님의 뜻에 닿는다면······. 그분의 은총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설명을 요구하는 카리나의 눈빛에 아쿠아는 불확실한 어조로 말했다. 카리나는 그제야 그가 무슨 제안을 하는지 이해하고는 조금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필요하다면 직접 키우라는 거니?”

“하하······.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렇게 될까요.”

어색한 투로 대답하는 아쿠아를 카리나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바라본다. 뭐, 그러면서도 경전은 받아드는 모습을 보니 어이없어하면서도 시도해보기는 할 모양이다.

아쿠아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게임에서는 받아들이기만 하면 곧장 전직되는 전직아이템이었지. 과연 이쪽에선 어떻게 되려나.’

이 실험의 결과에 따라서 이 세상에서 아쿠아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상당히 달라지리라. 안타까운 점이라면 그는 떠나야하는 관계로 경과를 지켜보지 못한다는 점이랄까.

그래도 일단 씨앗을 뿌려둔다는 점이 중요하겠지. 아쿠아는 그리 합리화하듯 중얼거리면서 슬슬 대화보다는 식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식사가 끝난 후, 카리나와 헤어진 아쿠아는 라피와 함께 여관에 잡아둔 방으로 올라왔다. 과연 수십 년을 떠돈 용병이 추천한 여관답게 2인실로 잡은 방은 면적도 괜찮았고, 예상보다 깔끔했다.

“끙. 오랜만에 사람다운 음식을 먹으니 좋긴 했는데, 음료수라곤 맥주밖에 없는 게 흠이었네. 라피는 맛있게 먹었어?”

“네.”

방에 놓인 2개의 침대 중 하나에 풀썩 주저앉으면서 푸념하는 아쿠아의 물음에 카리나가 있을 때는 쭉 입을 다물고 있던 라피가 상냥하게 답해왔다.

“다행이네. 솔직히 그리 맛있는 음식은 아니었는데.”

그에 아쿠아는 아까 먹은 음식들의 맛을 떠올리면서 쓴웃음을 머금었다. 염장고기에 지친지라 정신없이 먹어치우긴 했지만, 아쿠아의 시점에서 붉은 여울의 요리는 높이 평가해주기 어려웠다.

그야 당연한 노릇이랄까. 아쿠아가 떠올리는 비교대상은 현대지구의 요리. 솜씨야 둘째치더라도 재료부터가 다르다. 설령 같은 이름을 지녔을지라도 기나긴 품종개량의 역사까지 같지는 못하니 말이다.

“비교대상이 잘못된 것 아닐까요?”

“음. 그러려나?”

정확하게 그 부분을 짚는 라피의 말에 아쿠아가 볼을 긁으며 읊조렸다. 그리고는 이내 침대의 푹신함을 점검하듯 드러누우면서 말했다.

“하기야 문명의 뿌리부터가 다른 지구랑 비교하는 게 이상하겠지. 후우. 그래. 음식투정이나 하고 있을 때도 아니고.”

라피에게 말한 걸까, 아니면 그저 혼잣말일까. 구분이 잘 가지 않는 투로 말을 마친 아쿠아는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일정을 떠올렸다.

지체할 시간이 없는 관계로 레븐갈에서 떠나는 것은 바로 내일. 카리나로부터 정보도 충분히 얻어두었고, 켄팔의 뿔을 팔아 번 돈이 생각보다 목돈이었던 관계로 여비도 한동안은 괜찮을 듯하다.

‘아니. 이게 목돈인 게 아닌가? 한쪽은 정령에다 한쪽은 상위종족이니 말이야.’

문득 아쿠아는 자신이 떠올렸던 생각을 부정했다. 생각해보면 아쿠아와 라피는 그리 많은 돈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아니다.

정령인 라피야 말할 것도 없고, 아쿠아 역시 마찬가지다. 딱히 마을에서 마을로 이동하는 동안 섭취할 보존식량을 준비할 필요도 없고, 좋지 못한 환경에서의 야영으로도 체력의 보존이 가능한데다 사제로서 질병이나 부상에도 스스로 대처가 가능한 몸이니 말이다.

여행에서 돈을 잡아먹는 요소들을 죄다 타파하고 있으니 돈이 많이 들 리가 있나. 장비라도 맞춘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겠지만, 그럴 계획도 없었다.

‘평범한 도시에서 구할 수 있는 수준이야 뻔하니. 라피의 위장용 검 정도라면 모를까··· 굳이 눈에 차지도 않을 템을 맞추긴 그렇지?’

게임의 세계에서 정점에 올랐던 몸. 장비를 보는 눈이 높다 못해 하늘을 뚫을 지경인 그의 마음에 들 장비가 이 도시에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맞다. 생각난 김에 화장실이나 가둬야겠네. 이쪽으로 떨어진 후엔 한 번도 볼일을 본 적이 없었으니.’

돈 생각으로 머리를 굴리던 아쿠아는 문득 떠올랐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의아한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스스로 독백한 대로 이쪽 세상에 떨어진 후 단 한 번도 용변을 본 적이 없었다.

이래저래 환경이 좋지 않았다고나 할까. 물론 변의란 상황이 나쁘다고 참을 수 있는 개념이 아니지만, 상위종족쯤 되면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

상위종족의 반열에 이른 존재는 엿새의 굶주림도 ‘다소 부담스러운’ 수준으로 견뎌냈듯이 다른 생리현상도 얼마간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정대에서는 겨를이 없었고, 그 후로는 죄다 뻥 뚫린 평야였지. 참을 능력이 없었으면 라피 앞에서 얼마나 창피했을까.’

아쿠아는 실없이 읊조리며 라피에게 잠시 다녀오겠다고 손짓하고는 여관의 화장실로 향했다. 위생의 중요성을 모를 정도로 이세계의 문명이 뒤떨어지진 않았는지 화장실은 제법 위생적인 형태였다.

‘그래봤자 지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음. 시골의 화장실이랑은 조금 비슷한 듯도 하고.’

물론 현대지구를 살던 아쿠아를 만족시키기엔 모자람이 있었지만. 내심 투덜대며 참아두었던 용변을 보기 위해 앉아서 바지를 내렸다.

그리고······.

“···어? 어엉? 에에에엥?”

바로 그 다음 순간, 당혹과 불신이 마구잡이로 뒤엉킨 아쿠아의 경악성이 화장실을 뒤흔들었다.


작가의말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정말.. 페이스가 돌아오질 않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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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5. 노을의 기사Ⅶ +1 17.11.16 148 1 12쪽
23 5. 노을의 기사Ⅵ +1 17.10.31 202 2 12쪽
22 5. 노을의 기사Ⅴ +2 17.10.18 201 1 12쪽
21 5. 노을의 기사Ⅳ +2 17.08.29 211 3 12쪽
20 5. 노을의 기사Ⅲ 17.08.19 384 3 12쪽
19 5. 노을의 기사Ⅱ 17.08.12 209 3 12쪽
18 5. 노을의 기사Ⅰ 17.08.05 152 3 11쪽
17 4. 그가 사제인 이유Ⅴ +1 17.08.01 342 3 11쪽
» 4. 그가 사제인 이유Ⅳ 17.07.27 176 3 13쪽
15 4. 그가 사제인 이유Ⅲ 17.07.22 234 3 11쪽
14 4. 그가 사제인 이유Ⅱ +2 17.07.13 197 3 12쪽
13 4. 그가 사제인 이유Ⅰ 17.07.10 190 3 11쪽
12 3. 여행의 시작Ⅳ 17.07.07 525 3 11쪽
11 3. 여행의 시작Ⅲ 17.07.03 213 3 11쪽
10 3. 여행의 시작Ⅱ 17.06.30 204 3 12쪽
9 3. 여행의 시작Ⅰ 17.06.29 284 3 11쪽
8 2. 크리프란 평야 원정대Ⅳ 17.06.29 248 4 13쪽
7 2. 크리프란 평야 원정대Ⅲ +1 17.06.28 238 4 11쪽
6 2. 크리프란 평야 원정대Ⅱ +1 17.06.28 239 5 11쪽
5 2. 크리프란 평야 원정대Ⅰ +1 17.06.27 302 5 11쪽
4 1. 표류자Ⅲ +2 17.06.27 367 5 12쪽
3 1. 표류자Ⅱ +1 17.06.27 382 5 12쪽
2 1. 표류자Ⅰ +1 17.06.27 440 5 15쪽
1 初章 +1 17.06.27 828 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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