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현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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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도령
작품등록일 :
2017.06.28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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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25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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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 세분화된 칼날의 중심에는 용이 있노니 (7)

DUMMY

일련의 사태가 벌어지는 와중 이주신의 마음은 무겁기만 할 따름이었다.

태자궁의 담당환관으로 자리한 뒤로 태자를 모신 게 어연 10년이 넘었다. 그 세월 속에서 흐르는 정치의 혹독한 현실과 그 현실을 마주하며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려는 임금의 고초도 봐왔다. 그리고 그 고초를 뒤이어 겪을 태자의 됨됨이도 봐왔다.

지금 조용히 서책을 뒤적이는 태자의 옆모습은 마치 한 편의 그림과도 같았다. 외모 역시 깔끔하고 반듯하여 뭇 여성이라면 다들 얼굴을 붉히기 어려울 정도의 외모였다. 실제로 태자의 시중을 드는 궁인들은 거의 매일 마주하고 있음에도 종종 얼굴을 붉히며 슬쩍슬쩍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한 외모를 지녔음에도 태자의 모습은 흔들리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마치 책 속에서 묘사한 성인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것처럼 여색에 초연하다는 분위기를 형성하여 책에 몰두하고 있었다. 종종 궁인이 따라놓은 차가 담긴 찻잔을 드는 것 외에는 별다른 행동이 없었다.

태자의 곁에는 만삭에 가깝게 배가 불러온 태자비가 자신의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말없이 태자의 곁에 놓인 의자에 앉아있었다. 상 위에 놓인 다과를 가끔 짚는 것 외에는 그녀의 행동은 정말로 얌전했다. 다정하면서 말수가 적은 태자비의 눈에는 약간의 불안감 외에는 담겨 있는 것이 없었다.

“괜찮으시오?”

그 불안감을 감지한 태자가 책을 읽던 걸 멈추고 태자비를 돌아보았다. 고개를 가로젓는 태자비의 뺨에 잠시 손을 갖다 댄 태자는 맑은 눈으로 그녀를 안심시키고자 했다. 태자비는 태자의 손길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참고로 이 자리는 단순히 다과를 즐기거나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자리가 아니다. 최근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그리고 이주신이 따로 모아온 정보들을 태자에게 전하는 자리였다. 물론 그 정보는 이주신이 전할 만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선별한 정보였다.

본래라면 임신 중인 태자비는 자리를 비키는 것이 더 나은 일이나 태자비이자 앞으로 일국의 국모가 될 몸이라면 이런 일들도 듣는 것이 좋다는 태자의 의견 하에 동석 중이었다.

“많이 걱정이 되는 모양이오.”

“태자전하, 어찌 걱정이 아니되겠습니까. 시국은 어수선하고 폐하께서도 위중하십니다. 태자전하께선 걱정이 아니되십니까?”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태자를 바라보는 태자비에게 태자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 역시 어찌 걱정이 되지 않겠소. 차후 이 나라의 지존이 되어 이끌어야 하는 나로선 벌써부터 너무 큰 짐을 짊어지게 되는 것 같아 걱정일 따름이오. 허나 그렇다고 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서야 되겠소? 아바마마도 병이 위중하시어 누워계시는 마당에 나까지 불안해하면 나라의 기강이 흔들리게 될 뿐이오.”

다정한 목소리, 그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태자의 모습에 이주신은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어떤 어려움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이 태자이다.

그야말로 누구나 꿈꾸던 성군(聖君)의 모습이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 감탄과 함께 감격을 하는 이주신에게 태자의 시선이 닿았다.

“그나저나 걱정은 걱정이군. 선랑이 한 명 죽다니 말이야. 아무리 뜻하는 위치가 서로 다르다고는 하나 선랑이라면 앞으로 나라를 지탱할 중요한 동량(棟梁)이 될 인재가 아닌가. 그런 인재가 하나 사라졌다고 하니 참으로 슬픈 일이야.”

“하오나 그는 전하의 뜻을 받들만한 이는 아닌 것으로 아옵니다.”

“그렇지 않네. 설령 의견이 다르고, 성품이 거칠어도 가지고 있는 재능은 분명 무시못할 것이란 말이네. 엄연히 젊은 인재가 무참히 죽었는데 함부로 말하지 말게, 이 환관.”

“예, 전하.”

진지하게 이주신의 말에 반박을 한 태자는 과자 중 맛 좋아 보이는 걸 들더니 여전히 걱정이 가득한 태자비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러면서 뱃속의 아이와 태자비를 걱정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걸 주저치 않았다.

일반적으로 황실의 혼인은 정치적인 의도가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금슬이 좋다는 건 참으로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이주신은 생각했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지켜보던 이주신에게 젊은 환관 하나가 슬쩍 다가와 귓속말로 전했다. 내용은 바로 망아에 대한 것이었다.

지난 날 간신히 자신이 속한 일당의 일원들을 해치우는데 성공했다는 그였지만 아직 살아있는 이들이 있으며, 개중에는 장락원이나 초정회의 보호를 받는 이도 있다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이는 결코 좋은 정보라 할 수 없기에 이주신은 좀 더 상세히 알아오라 시켰다. 지금 선랑 하나가 죽으면서 본격적인 충돌이 벌어질 중요한 상황인 만큼 일말의 변수가 나와선 안 된다.

귓속말을 전해들은 이주신을 자신을 보는 태자의 시선과 마주쳤다. 태자는 별다른 물음 없이 빙그레 웃으며 가보라는 말만 했다. 이주신은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리고 급하게 방을 나왔다.

급하게 걸어가는 이주신의 마음은 조급했다. 선랑 하나의 죽음으로 혼란스러워진 정국은 어쩌면 그가 원하는 대로의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아니 그런 결말을 만들고자 그는 이곳저곳을 알아보며 살피다가 적당한 인물을 골랐고 그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일련의 판도를 만들고자 역시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고 판단한 망아를 통해 대규모 일당을 조직한 것이다. 그리고 일련의 사태를 만들고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일이 꼬이려 하는 건지.”

“역시 생각대로 모든 것이 되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같이 가는 젊은 환관의 말에 이주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네. 너무 잘 풀려 와서 내가 방심하고 있었던 듯 해. 세상일이라는 게 그리 쉽게만 풀리는 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말이야. 그래도 이런 식으로 일이 꼬이면 안 되는데 말이지.”

답답한 마음을 한껏 토로하며 이주신은 젊은 환관이 안내한 방으로 들어섰다. 거기에는 무장한 몇몇 환관과 함께 망아가 있었다.

망아는 이주신을 보자마자 곧바로 고개 숙여 인사를 올렸다.

“됐다. 그보다 어떻게 되었느냐? 정말 네가 말했던 것이 확실한 것이냐? 그리고 도대체 어느 녀석들이 있는 것이냐?”

잠시 옆의 환관들의 눈치를 보던 망아가 입을 열었다.

“확실합니다. 일당 중 이소연은 분명히 장락원에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이고, 초정회에 습격하라 보내어 전멸시키고자 했던 일당도 생존자가 몇몇 있어 초정회에서 보호중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분명합니다. 제가 따로 사람들 시켜 알아보니 최근 초정회에서 의원들을 부르며 내부의 다수의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다고 합니다. 장락원에서도 처음 보는 소녀 하나가 있다는 금오위 병사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망아의 옆에서 한 뚱뚱한 환관 하나가 보충설명을 해주었다.

“누구누구가 있고, 그 수가 어느 정도 되는지는 알아보았나?”

“거기까지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워낙 녀석들의 경계가 삼엄한지라.”

사죄를 하는 망아를 보며 이주신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주신의 심기를 살피던 한 환관이 쭈뼛거리며 물었다.

“저희가 나설까요?”

“어리석은 소리! 괜히 우리가 나섰다가 우리가 이 일련의 일과 관련되어 있음을 들킬 수 있음을 왜 모르는가. 아무리 우리 환관들의 충심이 깊은들 고자라는 특징을 들키게 되네.”

더군다나 초정회도, 장락원도 함부로 손을 대기 어려운 곳이다. 초정회야 망아의 일당들을 몰살시키는 용도로 들이박게 했을 정도로 상당히 무력을 지닌 집단이다. 장락원도 언뜻 보면 일반 기방으로 보이나 실제론 거물급 대신이었던 허염과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초정회 못지않은 무력을 지닌 곳임을 조사를 통해 알고 있었다. 괜히 이런 곳들을 들쑤셨다간 본전도 못 얻는데다가 괜히 그들을 적으로 돌리거나 자신들의 존재를 다른 곳에 알리게 된다.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보다 초정회가 우리와 척을 지기로 해서 그런가도 알고 싶군. 일단 우리가 아닌 다른 이들로 그들과 접촉하여 그들의 속내를 알아보도록 해라. 장락원은 그 다음이다.”

“예!”

모두의 대답을 들은 이주신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잊지마라. 우리는 모두 태자전하를 위해 존재하는 이들이다. 태자전하를 위해, 태자전하의 평온한 치세를 위해 이를 방해할 요소들을 미리 다 제거해야 한다. 무천군도, 문하시중도 말이다.”


작가의말

지난주에 개인사정으로 올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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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제13장 : 용은 용이기에 용이라 하노니 (9) 19.05.20 35 0 9쪽
118 제13장 : 용은 용이기에 용이라 하노니 (8) 19.05.13 25 0 10쪽
117 제13장 : 용은 용이기에 용이라 하노니 (7) 19.05.05 52 0 9쪽
116 제13장 : 용은 용이기에 용이라 하노니 (6) 19.04.28 36 0 9쪽
115 제13장 : 용은 용이기에 용이라 하노니 (5) 19.04.21 44 0 10쪽
114 제13장 : 용은 용이기에 용이라 하노니 (4) 19.04.14 52 0 10쪽
113 제13장 : 용은 용이기에 용이라 하노니 (3) 19.04.01 57 0 9쪽
112 제13장 : 용은 용이기에 용이라 하노니 (2) +1 19.03.24 50 0 10쪽
111 제13장 : 용은 용이기에 용이라 하노니 (1) 19.03.18 55 0 9쪽
110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16) 19.03.11 62 0 9쪽
109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15) 19.03.03 43 0 10쪽
108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14) 19.02.25 42 0 9쪽
107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13) 19.02.18 46 0 10쪽
106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12) 19.02.11 45 0 9쪽
105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11) 19.02.04 52 0 9쪽
104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10) 19.01.28 44 1 9쪽
103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9) 19.01.21 65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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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7) 19.01.06 9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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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5) 18.12.17 48 1 10쪽
98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4) 18.12.09 70 1 9쪽
97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3) 18.11.26 78 2 9쪽
96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2) 18.11.19 81 2 9쪽
95 제12장 : 용이 될 것인지, 뱀이 될 것인지 (1) 18.11.11 75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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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제11장 : 용이 되고자 이무기는 몸부림치는구나 (5) 18.10.28 75 0 9쪽
92 제11장 : 용이 되고자 이무기는 몸부림치는구나 (4) 18.10.21 72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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