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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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닛
그림/삽화
휘닛
작품등록일 :
2017.06.29 01:04
최근연재일 :
2019.07.16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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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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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6,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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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14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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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두번째 이야기 - 진상

DUMMY

새하얀 빛이 유리창을 통하여 비춰왔다.


나는 푸석해진 머리를 쓸어내리며 화장실로 들어섰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여과 없이 나를 보여주고 있었다.


붉게 충혈 되어 퀭한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는 저 초췌한 몸뚱어리


나는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가 고작 5살 먹은 딸내미에게 뭘 더 바라서 이러는 것인가?


사흘 남짓 남은 목숨을 나는 후회 없이 또 정의롭게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


부모로서 이런 판단을 하는 나는 제정신인가?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가?


이런 중대사를 나 혼자 짊어지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따위의 답 없는 문제를 나 스스로에게 또 내고 또 내고 되풀이만 했었다.


아이 엄마라든지 다은이에게 이 일을 말해준다면 믿을 것 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설령 믿는다면 밤새 질질 짜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수가 없을 것이 뻔했다.


오히려 금쪽같은 시간만 계속 흘려보낼 바에는 나라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시간을 잘 사용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느새 체념하고 딸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서글프고 비참해졌다.


내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하고 부끄러웠다.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라는 것쯤은...


그러나 이건 너무나도 일찍 이었다.


제어 할 수 없는 상대의 피할 수 없는 절망적인 선고...


나는 순간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참을 수 없는 울분을 삭이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차가운 물줄기에 달아올랐던 몸이 어느 정도 식혀져 이성을 되찾았을 때 나는 방을 나왔다.


아직 자고 있는 다은이를 보고 있으니 금새 눈망울이 촉촉해져 금방이라도 왈칵하며 굵은 눈물방울을 터뜨릴 것 같았다.


새어나오는 신음을 꿀꺽 삼킨 채 아이의 부드러운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뒤돌아 집을 나섰다.


딱히 나설 곳을 정하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


단지 과열된 머릿속을 잠시라도 맑게 지워내고자 근처 공원으로 나왔다.


나무 벤치에 걸터앉아 자연스레 호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멍하니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가 제마다 지저귀며 날아가는 소리, 자동차의 뭉툭한 배기음,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 어느 것 하나도 내게 간섭하지 못했다.



백색소음을 들으며 나만의 시간을 태우다 짤막해진 꽁초를 내려다보았다.


“너도 너만의 목숨만 태우지 않는구나.”


짧은 탄식을 내뱉으며 발뒤꿈치로 불씨를 비벼 끈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말의 이른 아침 이었지만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LED불빛을 따라 줄줄이 늘어진 오징어들은 연신 검은 매연을 쏘아대며 달리고 있었고 그 먹물 사이로 마스크 낀 꼴뚜기들은 하얀 그물을 건너고 있었다.


아침도 못 먹고 나올 만큼 뭐가 그리 바쁜지 자기보다 훨씬 무게가 많이 나가 보이는 책가방을 매고서 한손에는 토스트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지나치는 학생도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시간이 아쉽고 바쁘게 움직여야 할 사람은 나인데 모두가 각박했다.


내 앞에만 봐도 아직 채 자라나지 않은 어린 가지를 쳐내는 공원 관리인이 바쁘게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가 한발자국 움직일 때 마다 어린 가지는 맥없이 떨어졌다.


그때 한 소녀가 떨어진 어린 가지를 불쑥 집어 들고는 환하게 웃었다.


비단 환한 웃음만은 아니었지만 소녀에게서 광채가 나서 쳐다볼 수 없었다.


아이의 해맑고도 생기발랄한 웃음은 속부터 썩어 문드러져 죽어가던 좀비의 부패를 막아낼 뿐 아니라 정처 없던 발걸음에 뚜렷한 목적지를 인도하였다.


“지혜야 사진 찍어야지”


저 멀리서 아이 엄마가 소녀를 불렀고 아이는 고개를 돌렸다.


“헤에”


소녀는 대답대신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뛰어갔다.


소녀의 새하얀 구두가 지면에 닿을 때 마다 리듬에 맞춰 나풀거리는 순백의 공주님 드레스 그리고 뽀얀 얼굴을 반쯤 가렸다가 떨어지는 면사포...


나는 먼발치에서 넋 놓고 바라만 보았다.


소녀가 꼭 자신의 키만 한 해바라기 사이에 서자 그 옆을 또래의 남자아이가 섰다.


그렇게 한참을 서서 꼬마 부부의 촬영이 끝날 때 까지 지켜보았다.


사진 기사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모든 촬영은 끝이 났고 나는 지체 없이 달려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뭡니까?”


안경을 치켜 올리며 눈썹을 치켜뜬 뱁새눈으로 그가 물었다.


“이 사진 우리 아이도 찍어주세요.”


“네? 아 고객님이시구나. 하하 그럼요 찍어드려야죠. 예약하시려면 언제가 빠를까나”


금세 표정을 감추고는 영업용 미소를 띠며 그는 가슴팍에서 수첩을 꺼내어 스케줄을 확인했다.


“아뇨. 오늘! 지금 찍어야합니다. 제가 시간이 없습니다. 오늘 찍으시죠.”


나는 그의 말을 급히 잘랐다.


“그죠. 고객님 바쁘신 건 잘 알지만 예약도 꽤나 밀려있고요. 오늘은 힘드실 것 같은데... 뭐 보시다시피 제가 좀 바빠서요. 하하”


그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유감을 표명함과 동시에 자신의 옷깃을 양손으로 튕기며 거드름을 피웠다.


여전히 그가 영업용 응대를 하고 있었지만 분명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가 거절한다고 해도 나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내게 지금의 1분1초가 너무나도 소중하고 지금이 아닌 나중 그 언젠가 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큰 실망감에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여기서 화를 내어선 상황만 더욱 악화될 것이 뻔했다.


“제게는 너무나도 급하고 소중한 시간입니다. 선생님께서 바쁘시다면 옷과 장비만이라도 좀 빌려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화를 누그러뜨리고 최대한 공손하게 또 간절하게 부탁했다.


“죄송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겠네요... 의상도 그렇고... 모두 고가여서... 아무튼 예약을 안 하고는 어렵겠습니다. 그럼 이만”


그는 나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내비치고는 나를 지나쳐갔다.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곱씹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시간은 되돌릴 수도 없으며 살 수도 없었다.


애꿎은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시간은 살 수 없지만 줄일 수는 있어. 그 무엇도 지금 내게 아깝지 않아. 우리 다은이에게 남아있는 시간만이 아까울 뿐이지. 그래 결심했어. 다 지르는 거야.’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소녀의 모습에 다은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의 앞에는 앞치마를 맨 아내가 서있었다.


“뭐야? 당연히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꼭두새벽부터 어딜 갔다 오는 거야?”


“아 요 앞에 공원을 좀 걸었어. 그보다 우리 밖으로 나가자! 오늘 보니깐 날씨도 좋아서 사진 찍기 아주 괜찮을 것 같아. 그래 피크닉 다은이랑 같이 피크닉 나가자!”


“뭐? 지금? 아직 밥도 안됐어. 다은이도 꿈나라고... 아 왜이래.”


나는 아내의 한가로운 투정을 잠자코 듣고 있지만은 안았다.


아내의 볼멘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아내의 팔을 잡아끌고는 다은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 공주님 아직 코 자고 있어요? 어서어서 일어나요. 아침이 밝았답니다.”


다은이가 침대에 쭈그려 누워 동글동글하게 몸을 말고 새근새근 자는 모습을 보니 절로 콧노래와 함께 리듬이 타졌다.


평소 절대 내뱉지 않던 낯간지럽게 간드러진 애교석인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뒤에서 아내가 해괴망측한 것이라도 본 것 마냥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내게 일어난 작은 변화는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으음 싫어. 5분만 더 잘래.”


다은이는 전혀 개의치 않으며 그저 잠결에 퉁명스레 말을 뱉고는 고개를 돌린 채 이불을 끌어당겨 그 속으로 숨어버렸다.


나는 다은이의 다리를 거꾸로 잡고 들어 올렸다.


놀래서 깰 법도 하지만 다은이는 작정을 한 듯 애써 눈을 꼭 감고 뜨지 않았다.


“지금 백화점 갈건 데 다은이가 갖고 싶은 게 있었다지?”


나는 담담하게 미끼를 내 던졌고 입질이 오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사줄 거야?”


다은이는 얇게 실눈을 뜬 채 물었고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진짜지!”


미끼를 문 피라미가 꼬리를 파닥이며 흔들어댔고 베테랑 낚시꾼은 원하는 결과를 취한 뒤 침대 위로 풀어주었다.


“차 시동걸어놓고 있을 테니까 준비 되는대로 나와”


“피크닉 간다며 김밥이라도 싸야하지 않아? 나 아직 씻지도 않았고 화장도 해야 하는데...”


“백화점에서 간단하게 살 거니까 자기도 간단히 씻고만 나와 알았지?”


나는 카메라만 챙겨서 그대로 나왔다.


차에 시동을 걸어두고는 보닛에 기대어 카메라를 이리저리 만지며 세팅하는데 몰두했다.


카메라 렌즈 너머로 새파랗게 산란된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 한편 에서는 일종의 사명감이 솟아났지만 그 끝은 허무하고 바닷물을 마구 퍼마신 듯 한 갈증이 밀려왔다.


공허한 하늘 속에 허상을 채워 넣었다가 다시 지우기에 여념이 없던 중 어서 빨리 사달라며 조르고 있는 진상이 다가왔다.


“그럼 이제 출발해 볼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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