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가진 자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일반소설

완결

아이텐스
작품등록일 :
2017.07.01 20:35
최근연재일 :
2019.05.23 23:55
연재수 :
344 회
조회수 :
82,150
추천수 :
849
글자수 :
1,733,223

작성
18.03.26 19:14
조회
153
추천
2
글자
10쪽

제3장 초능력자 - 왕국력 1008년 8월 태풍절 (2)

리루비안 연대기 제1부 - 모든 것을 가진 자




DUMMY

폭풍우 치는 밤. 병동의 사람들은 폭풍에 건물이 무너지지 않길 바라며 서로의 체온에 의지한 채 불안을 지우고 있었다. 간호사들은 환자들의 상태를 살폈고, 의사들은 환자들이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질 것을 대비해 잔뜩 긴장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지루함과 싸우며 보내야 하는 태풍절은 보이지 않는 적에 의해 유래 없는 긴장을 맞이하고 있었다.

“묘하게 조용한데?”

군의관은 담배를 물기만 한 채 밖을 유심히 내다보았다. 밖은 폭풍으로 난리법석이었지만, 군의관이 그걸 모르고 한 말이 아니라는 건 에릭도 알고 있었다.

“묘하게 조용하군요.”

그 묘하게 조용하다는 말의 울림이 둘은 마음에 걸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둘을 감싸고 있었다. 마법사인 에릭은 이런 막연한 느낌을 별로 신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확고한 느낌에 고려사항에 넣지 않을 수 없었다.

에릭은 긴장한 채로 방어마법 술식을 만들었다 풀기를 반복했다.

“오늘 분명 뭔가 일어나.”

반면 마법사가 아닌 군의관은 조금 더 이 느낌에 확신을 가졌다. 군의관도 여기 있는 여느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경험 없는 풋내기에 불과했지만, 군인으로서 가져야 하는 감각은 있었다. 오늘은 습격이 오기에 절호의 때였다.

“불안한 소리 하지 마세요. 여기 병원이에요.”

야전병원이라면 어디든 있을 응급환자는 이곳엔 존재하지 않았다. 이곳 임시병동엔 나름대로 공습대비도 되어 있어서 어지간하면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적어도 충격으로 환자들이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만으로 병동으로서는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군의관은 불안을 느꼈다.

“고향에 좋아하는 여자가 하나 있는데 말이야. 고백이라도 하고 올걸 그랬어.”

계속해서 불길한 소리를 하는 군의관에게서 에릭이 떨어지려는 순간에 창 밖으로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하루 종일 폭풍우가 몰아치는 태풍절이니 매우 자연스러운 풍경이 아닐 수 없었지만, 그 형태가 나뭇가지와 닮지 않았다는 건 자연스럽지 않았다.

“응? 교전인가?”

임시병동은 당연하게도 영지 안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통상적인 교전장소와는 꽤나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교전상황을 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지금은 태풍절이었다. 시계가 극도로 좁아진 상태에서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친 에릭은 다급하게 군의관에게 외쳤다.

“공습입니다! 적습에 대비해야 해요!”

시기 적절하게 공습경보가 울려 퍼졌다. 경비인원들은 곧장 경계상태로 들어갔고, 마법사들도 마법을 준비했다. 이 병동의 책임자인 군의관도 혀를 차며 물고 있던 담배를 집어넣었다.

“이놈들은 잠도 없나 보군. 환자들 안전한데 모으고! 여차하면 대피할 준비 해!”

병동의 사람들은 군의관의 지시에 따라 환자들을 언제든지 대피할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희미하게 폭풍우 사이를 뚫고 소란이 들려왔다. 군의관은 팔짱을 낀 채 창문을 노려보았다. 그런다고 밖의 상황이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 것도 보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군의관님! 어서 대피하라는 명령입니다!”

한동안 상태를 살피고 있으니, 전령이 도착했다. 이미 준비를 마쳐두었던 군의관은 신속히 지시를 내렸다.

“여긴 준비 끝났다고 전해!”

“네!”

“전원 대피! 간호사들은 환자들 챙기고! 자원봉사자들은 기자재 챙기고! 의사들은 환자 상태 나빠지는지 살펴! 나머지는 나와 함께 저 사람들을 지킨다! 알겠나?”

“네!”

“그럼 가자!”

그냥 배 나온 중년 아저씨 같았던 군의관이 갑자기 훌륭한 지휘관으로 변모했다. 병동의 전원은 군의관의 지시에 따라 대피를 시작했다.

“에릭은 날 따라와서 다치는 사람이 있으면 부탁한다.”

대피할 준비를 하고 있던 에릭은 잠시 동작을 멈췄다. 일단 에릭은 군의관의 명령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군의관이 현장지휘관이긴 하지만, 에릭은 군인도 아니었고, 군의관에게 직접적으로 명령을 받는 위치도 아니었다.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얼마든지 거절하고 대피행렬에 참가할 수 있었다.

“강요는 하지 않아. 하지만 네가 있으면 든든할 것 같아.”

군의관도 그 점은 이해하고 있어서 그냥 민간인일 뿐인 에릭에게 과도한 부담은 주고 싶지 않았다. 에릭은 평소에 응급환자를 살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이상의 일을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에릭은 구태여 가시밭길에 발을 내밀었다. 거기엔 어떤 구원도 없었지만, 자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그걸 모른척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에릭, 어서 가자. 에릭만 오면 돼.”

그리고 자신의 희생은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되었다. 그것만 가능하다면 에릭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두 번 다신 자신의 눈 앞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았다.

“미안, 레이니. 난 할 일이 있어.”

에릭은 그렇게 말하며 군의관의 옆에 섰다. 레이니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에릭이 무슨 할 일이 있어? 에릭은 민간인이잖아? 어서 대피해야지.”

레이니는 이해해주지 못하리라고 에릭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니면 생각해낼 수 없는 이 마음은 다른 사람에게 이해 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었다. 레이니와는 나중에 대화를 하면 되었다. 그것보다 지금은 레이니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일단 살아남기만 하면 대화는 신물이 나도록 할 수 있었다. 에릭은 레이니가 그것을 이해해주길 바랐다.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야. 난 너를 지키고 싶어.”

그렇게 말하는 에릭은 빛이 났다. 마치 세기말에 강림한 구원자처럼 이 세상 누구보다도 빛이 났다.

레이니는 지금 그 빛을 훔치고자 하고 있었다. 신이 내린 이 빛을 훔쳐서 자신만의 것으로 하고 싶었다.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는 빛이 되었으면 했다. 위급한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옆에 있어주었으면 했다. 그러나 그 어렵지 않은 일을 에릭은 해주지 않았다.

“난 에릭을 원해. 에릭이 내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어. 만 명의 군인보다, 수 십 미터의 성벽보다, 에릭의 곁이 더 안정돼.”

레이니는 불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보자 에릭도 결심이 흔들렸다. 레이니를 지키기 위해서는 꼭 군인들과 동행할 필요는 없었다. 국가공인마법사로서 국가의 요청이 있으면 따를 수밖에 없긴 하지만, 군의관은 어디까지나 부탁만을 한 상황이었다. 에릭은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었다.

한편, 군의관도 마음이 흔들렸다. 자신이 무슨 권리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떼어놓으려 하는지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늙어 빠져서 짝 만나기 그른 자신과는 다르게 이 둘은 한창 열렬히 사랑할 때였다. 혹여 여기서 둘을 떨어트려 놓았다가 둘 중 하나의 신변에 큰 일이라도 발생한다면, 군의관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에릭은 자신의 삶엔 선택의 순간이 참으로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저녁을 무엇을 먹냐는 간단한 선택부터 한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관장하는 큰 선택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그러나 이따금 무엇을 골라도 지는 순간이 왔다. 어떤 선택지를 고른다고 하더라도 앞에 있는 것은 파멸밖에 없는 절망적인 순간이 반드시 찾아왔다. 이 저주받은 운명은 그것을 회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자신의 인생에 기적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절망적인 순간을 타파해주는 기적적인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언제나 모든 선택의 책임은 자신이 졌다. 시작하기도 전에 져있는 이 사기도박을 어떻게 해야 이기는 것인지 에릭은 알 수 없었다.

“뭐하십니까? 어서 대피하십시오!”

셋 모두 한발자국 더 내디딜 용기를 내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에 한 병사가 달려와 외쳤다. 모두의 시선이 그 병사 하나에 집중된 순간에 병사의 뒤, 병동의 밖, 빗줄기 너머로 소수의 무리가 있었다.

가장 먼저 에릭이 발견했고, 그 다음 군의관, 마지막으로 레이니가 눈치챘다. 그리고 레이니가 눈치챈 그 순간에 그 무리에서 뭔가가 번쩍였다. 그 자리의 모두가 그 번쩍임에 반응하지 못했지만, 단 한 사람, 에릭만은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조심해요!”

단 1초도 주어지지 않은 이 긴박한 상황에서 에릭은 침착하게 사고를 진행했다. 사고를 가속하자 줄곧 경험하곤 했던 것처럼 주위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그 사이에서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에릭의 사고밖에 없었다. 침착하게, 뭔가 빠트린 것은 없는지 차분하게 살핀 에릭은 술식을 완성시켰다.

“꺄아아!”

파열음과 함께 폭염이 병사를 덮쳤고, 놀란 레이니는 비명을 질렀다. 군의관도 비명만 지르지 않았지, 놀라서 잠시 움직이지 못했다. 병동 입구 한쪽 구석이 부서지는 충격 속에서도 침착한 것은 에릭 혼자였다.

“괜찮습니다. 맞기 전에 방어막을 쳤습니다.”

폭염이 사라지자 나타난 것은 어리둥절해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병사였다. 이내 정신을 차린 병사는 에릭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병사는 서둘러 병동 안으로 들어왔다. 에릭은 방어막을 거두어 병사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해주었다.

“우린 어차피 합류가 늦은 것 같으니 따로 행동하지. 일단 저놈들부터 따돌리자.”

마법사의 등장에 무리는 도로에서 벗어나 골목 사이로 사라졌다. 일행도 셋의 합류가 늦자 먼저 출발한 듯 보였다. 이대로라면 합류하기도 전에 격파될 가능성이 크기에 우선은 넷이 살아날 방법을 연구해야 했다.

“네. 레이니, 내 옆에서 떨어지면 안돼.”

“응.”

갑작스럽게 생겨난 선택지로 인해 상황은 잘 무마되었다. 그 결과 상황이 더 나빠지게 된 건 좋지 않았지만, 적어도 셋 모두 고민할 필요는 없어졌다.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위기의 상황에서 두 사람의 생각이 다시금 갈립니다. 

에릭은 자신이 위험을 지더라도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를, 
레이니는 군인이 아닌 에릭이 위험한 일을 하지 않기를 말이죠. 
여담으로 검은 주먹이 병동을 공격한 건 제네바 협약 위반입니다.
작중 세상은 현실과 다르기 때문에 제네바 협약이 없긴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비도덕적인 일이라는 것은 확실하지요. 
무기를 버린 전투원 및 질병부상억류기타의 사유로 전투력을 상실한 자를 포함하여 적대행위에 능동적으로 참가하지 아니하는 자는모든 경우에 있어서 인종종교 또는 신앙성별문벌이나 빈부 또는 기타의 유사한 기준에 근거한 불리한 차별 없이 인도적으로 대우 하여야 한다이 목적을 위하여 상기의 자에 대한 다음의 행위는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이를 금지한다.
육전에 있어서의 군대의 부상자 및 병자의 상태 개선에 관한 1949년 8월 12일자 제네바협약 (제1협약) 제1장 제3조 1항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모든 것을 가진 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44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34) +2 19.05.23 235 2 5쪽
343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33) 19.05.19 105 1 10쪽
342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32) 19.05.17 108 1 10쪽
341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31) 19.05.13 192 1 18쪽
340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30) 19.05.09 103 1 15쪽
339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29) 19.05.07 92 1 8쪽
338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28) 19.05.02 98 1 12쪽
337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27) 19.04.29 100 1 10쪽
336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26) 19.04.25 116 1 16쪽
335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25) 19.04.22 261 1 6쪽
334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24) 19.04.19 94 1 12쪽
333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23) 19.04.15 95 1 13쪽
332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22) 19.04.12 99 1 10쪽
331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21) 19.04.08 78 1 13쪽
330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20) 19.04.05 82 1 9쪽
329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19) 19.04.01 85 1 14쪽
328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18) 19.03.29 81 1 8쪽
327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17) 19.03.26 86 1 14쪽
326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16) 19.03.22 104 1 16쪽
325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15) 19.03.18 115 1 15쪽
324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14) 19.03.15 120 1 17쪽
323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13) 19.03.11 89 1 13쪽
322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12) 19.03.08 97 1 13쪽
321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11) 19.03.04 86 1 14쪽
320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10) 19.03.01 129 1 18쪽
319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9) 19.02.25 94 1 9쪽
318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8) 19.02.22 80 1 15쪽
317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7) 19.02.18 100 1 10쪽
316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6) 19.02.15 78 1 9쪽
315 외전 - 바보와 함께 춤을 (5) 19.02.11 92 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