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이 이루어지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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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teck
그림/삽화
아라가야
작품등록일 :
2017.07.03 00:40
최근연재일 :
2017.11.2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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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2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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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소원 일곱, "한 폭에 담을 수 있을 때를 소중하게" (5)

DUMMY

첫날은 그럭저럭 보람찬 하루였다.

다 같이 모여서 저녁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들 기대 이상으로 즐거워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를 제외하고-.


후우, 어리다고 얕봤다가 인생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될 줄이야.

물론 생각해보면 내 삶이 평범하지 않았던 건 인정한다. 그래도 가소롭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그렇게 우울한 마음으로 맞이한 둘째날.

오늘은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일어나자마자 공터의 천막 공간을 조금 더 넓혀야 했는데, 그런 단순 노동이 마음이 편한 구석이 있었다.


이렇게 비가 굵어지면, 데미안이 검술을 가르쳐달라고 떼를 쓰는 일이 없을 테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천막만 넓히면 문제가 없다. 글을 가르치든, 음식을 나눠주든, 그림을 그리는 거든 다 천막 안에서 할 수 있으니까. 결국 비가 문제가 되는 건 나와 데네브 뿐이었으니, 둘이서 오늘 할 일을 생각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이 봐."


데미안이다.


쏴아아-.


빗소리의 시원한 만큼이나 등골이 서늘해진다.

설마 이런 날씨에 검술을 배우겠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밖에서 설쳐대는 대신 천막 안에서 말로만 가르칠 수 있다면 더없이 편하겠지만, 그런 재주 따윈 내게 없다.


"설마 이 날씨에 덤벼들려고?"


여전히 불만에 가득한 얼굴인 이 녀석의 손에는 우산대신 목검이 들려있었다.

때문에 온 몸이 젖어 있었건만, 녀석은 물기를 씻을 시간 조차 아깝다는 듯 말했다.


"바로 시작하자."



......



"차아앗-!"


데미안 녀석은 고함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가, 내가 슬쩍 피하자 또다시 진흙탕을 구른다.

어제 그렇게 힘을 뺀 걸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뻗어버리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는데, 이 녀석은 화를 참지 못하고 땅을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하, 이거야 원...

마음만 먹으면 한 방에 보낼 수 있는데 차마 그러진 못하겠고, 그렇다고 두 눈에 불을 키고 덤벼드는걸 무시할 수도 없고.


도망치던 케레스가 나에게 붙들렸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임마, 몇 번을 말해야 알겠냐? 검은 세게 휘두르는 게 아니라 날카롭게 휘두르는 거라니까?"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니, 대체 뭐가 문제일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성실하게 가르친다고 생각한다.


어깨에 힘을 빼라, 검이 빗나갈 것도 생각해서 몸의 균형을 유지해라.

이런 쉬운 것들을 이야기하는데 말이다. 아니, 내가 애초에 동작 중에 눈속임 동작을 섞어야 한다든지 똑같은 동작도 속도를 다르게 한다든지 하는, 어려운 주문을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바보도 아니고, 대체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게 만드는 거야?"


"무슨 소린지 모르는 걸 반복한다고 되냐?!"


"그만큼 반복하면 말 안 해도 알겠다!"


"그걸 모르겠으니 가르쳐달라고 한 거 아냐!"


그리고 나는 이 녀석과 소리를 지르며 대거리를 하게 됐다.

나는 너 같이 생각할 줄 모르는 놈은 처음이라고 화를 내고, 녀석은 내가 가르치는 재주가 없어서 그런 거라고 화를 내고...


하아... 진정하자고.

이 미운 녀석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고, 애초에 내가 검술을 가르쳐주겠다고 시작한 거였으니까, 차분하게 방법을 생각해 봐야지.


"후우..."


깊은 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힌 나는, 손을 들어 녀석을 멈춰 세웠다.


"일단 검을 휘두르는 요령을 보여줄 테니, 잘 봐."


이어 남아 있던 목검을 들어, 가볍게 위에서 아래로 휘두른다.

이어 내려쳐진 검의 방향을 바꾸어 대각선 위로, 그 다음은 검끝을 내려서 횡으로...


쉬익, 쉬이익-.


자랑이라면 자랑이지만, 내 솜씨는 꽤 괜찮다.

내가 목검을 휘두를 때면 곧은 직선이 허공에 그려졌는데, 그 선에 있던 빗방울이 맑은 소리를 내며 터져나가는 것이었다.


검이 춤을 출 때마다 물방울이 터지는 모습이, 마치 곡예를 부리는 거 같았달까.


촤착- 촤촤착!


그 곡예에 관심을 가졌던 건 데미안이 아닌 메그였다.

이때까진 얌전히 천막 안에 앉아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 주위로 물방울이 터지는 걸 보자 갑자기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게 아닌가.


음... 아무리 꼬마의 박수라고 하더라도, 살짝 우쭐해지는 건 괜찮겠지?

어린 관람객의 박수에 잠시 흥이 오른 나는 좀 더 신나게 검을 휘둘러 댔는데, 곧 묘한 것을 발견했다. 정작 내 움직임을 보고 있어야 할 데미안 녀석이 힐끗힐끗 자꾸 다른 곳을 쳐다 보는 게 아닌가.


"야, 내가 하는 걸 보니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겠어?"


"으... 으응..."


누가 봐도 성의 없는 대답.

내 쪽을 보고 있지도 않고 내 말도 듣고 있지 않는 태도에, 목검으로 녀석의 머리통을 가볍게 때렸다.


따악!


"아야야! 갑자기 왜 때려?!"


"임마, 집중 안 해?"


"이건 어쩔 수 없었단 말이야!"


"허어, 시범을 보여 주는데 뭐가 어쩔 수 없어?"


되도 않는 변명에 슬쩍 화가 치밀어 오르려고 하는데, 이 녀석은 오히려 당당하게 손을 들더니 내 등 뒤쪽을 가리킨다.


"아까부터 저기 서있는 빨강머리 여자 때문이야!"


"임마, 비가 오는 덕분에 잠시 쉬는 사람 핑계대지 말고..."


"얇은 옷을 걸쳐놓고 비를 철철 맞고 있으니, 옷이 온몸에 딱 달라붙었단 말이야! 거기에 자꾸 눈이 가는 걸 어쩌라고-!!!"


엉?!


"뭐라고-?!"


이건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고 이해하자.

이 녀석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렸으니까.


그렇게 데네브 쪽을 보자, 과연 첫날 입고 있던 차림새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등 뒤에서 애송이 녀석의 기운찬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차아앗-!!!"


빠각!!!


강렬한 일격.

뒤통수가 뻐근해 짐과 동시에 의식이 멀어졌다.



.......



"꼴 좋다. 한 눈 팔지 말라고 했던 게 누구더라?"


눈을 뜨자마자 날아온 데네브의 비아냥.

하지만 그 얼굴엔 웃음기가 가득했다.


"내 모습이 그렇게 보고 싶었어?"


"야, 누구든지 등 뒤를 보면서 소리를 지르면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게 되는 거 아냐?"


"그러게, 아주 눈이 주먹만해져서 날 돌아보더라?"


내 몸은 진흙탕 위에 대자로 뻗어있고, 머리는 데네브가 무릎베게로 받쳐주고 있다.

하지만 왠지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난감했다. 비가 오는 날이니, 물 속에 들어가도 괜찮은 차림새를 한 건 좋은데, 데미안 녀석의 말대로 자꾸 시선이 다른 쪽으로 끌려들어가는 거 같았으니.


머리 속이 아직도 빙글빙글 돌고 있었지만,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고마워. 이제 괜찮아."


"쿡쿡, 얼굴이 빨개져서 그렇게 말하니 설득력이 없는데?"


"아, 몰라. 일단 좀 안 보이는 곳에 가있어."


"왜? 간만에 검 휘두르는 걸 보고 싶었는데."


"네가 있으면, 저 녀석을 가르치는 데 방해되니까."


그러자 데네브는 키득거리며 핵심을 찔렀다.


"저 녀석이 한눈을 팔 거 같아서? 아니면 네가 그럴 거 같아서?"


"당연히 나지."


"하긴, 뻗기 직전에는 아주 황홀한 얼굴을 하고 있더라?"


큭... 왠지 모르겠지만, 최근에는 이 빨강머리가 여자라는 게 실감이 난다.

예전에는 이 녀석이 그런 도발을 해도 별로 감흥이 없었는데, 이제는 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져서는 대체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 지를 모르겠더란 말이다.


아니, 사실 다른 여자들에게도 그렇다...


"아~. 나도 부끄러우니 너무 괴롭히지 마라."


솔직하게 털어놓은 나는 데네브를 피해서 천막 안의 데미안에게로 다가갔다.


내 뒤통수를 후려갈긴 것이 그렇게 통쾌했던 걸까.

녀석은 아주 거만한 포즈로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나도 한 대 맞았잖아. 그 빚을 갚아준 거 뿐이야."


우와. 이 녀석, 내가 로저 영감에게 했던 말과 똑같이 하네.


그렇게 생각하니 화가 아닌 웃음이 튀어 나왔다.


"큭큭, 꽤 하던데?"


이 녀석은 내가 화를 낼 거라 예상했었나 보다.

내가 웃어 보이자 녀석은 눈을 가늘게 뜨며 눈치를 봤는데, 나는 녀석을 향해 척하고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봐, 머리를 쓰니까 한 방 때리게 되잖아."


이런 식으로 머리를 쓰란 건 아니었지만.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아, 알았어."


내가 바깥으로 나오라는 손짓을 하자, 녀석은 머뭇거리는 발걸음으로 천막에서 나온다.

아마 다음 단계란 말을 한 것에 살짝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내가 앙심을 먹고 두들겨 패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는 녀석이 더 잘 알테니까.


데미안 녀석이 우물쭈물 하는 걸 보자, 데네브가 키득거리며 놀렸다.


"야야, 너무 겁먹지마. 신이 널 잡아먹거나 하진 않아요~."


"시끄러. 넌 좀 빠져있으라니까?"


그러자 데네브는 나를 향해 메롱하고 혀를 내밀더니, 이그레인이 있는 천막 안 쪽으로 도망갔다.

보아하니 이그레인의 그림을 보는 척 하면서 이쪽을 보려는 거겠지.


휴우, 저걸 누가 말리겠어.


"일단, 시작하기 전에 나와 약속을 하나 하지."


"약속?"


"오늘 돌아가면, 아네트와 이야기를 해."


"뭐...? 왜 갑자기 아네트가 나와?"


고개를 갸우뚱하던 녀석이 금새 눈을 부라린다.

하지만 나는 잽싸게 그럴 싸한 이유를 갖다 붙였다.


"네 마음 속에 화만 가득하니까 자꾸 생각 없이 악을 쓰는 거 아냐. 일단 그거부터 해결하자고."


"윽."


"내가 장담하는데, 너는 화를 가라앉히고 조금만 집중해도 실력이 쭉쭉 늘어날 걸?"


사실이 그렇기도 했다.

검을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하는 놈이, 목검만 잡았다 하면 한풀이 하듯 검을 휘둘러대니 실력이 늘 수가 있겠나. 그러니 먼저 마음을 가라앉히고 몸에 긴장을 푸는 게 우선이었다.


"실제로, 내가 검을 처음 잡았던 건 백인대장 영감과 붙었을 때였어."


크, 정말 옛날에 먼지가 나도록 얻어터지던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영감이 슈리를 때리는 바람에 열이 확 올라서 덤벼들었는데, 단 한 대도 때리지 못하고 얻어맞기만 했지. 처음에는 그저 실력차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영감을 때려눕힐 생각만 했기 때문에 제대로 검을 휘두르지 못한 거였더라고."


"그, 그런 거야?"


"물론 실력차도 있었지만, 내가 실력이 늘기 시작한 건 마음을 가라앉히고 제대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면서부터야. 그러니 너도 그러는 게 좋을 거란 이야기고."


그러자 데미안은 약간 차분해진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게 할 게."


"좋아!"


후훗. 참 잘도 속아넘어가는 순진한 녀석이다.

물론 이런 순진함이 이렇게 올곧은 성격을 만든 거겠지만.


나는 수풀 쪽으로 가서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찾아 들었다.

이어 녀석에게서 세 걸음 정도의 거리에 쪼그리고 앉아, 그 끝을 녀석의 배꼽 높이로 올렸다.


"자, 이제 검을 휘둘러서 이 나뭇가지의 끝을 때리는 거야."


"알았어."


"네 힘을 10이라고 하면, 이제는..."


쉬이익!


"으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굴렀다.

이 녀석,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또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만약 내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물러나지 않았다면 머리통이 박살이 났을 거다.


"왜 놀라고 그래? 나뭇가지 끝을 때리라며."


"아... 아니,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


"그럼 진작 이야기를 하지. 갑자기 나자빠지니까 나까지 놀랬잖아."


바보다. 바보야, 이 놈은...


하지만 이 태연스러운 얼굴을 보니, 맥이 탁 풀렸다.


"네 힘을 10이라고 하면, 3이나 4정도만 써서 휘두르는 거야."


나는 한숨과 함께 나뭇가지를 올렸는데, 녀석은 또다시 양손을 쳐든다.


"그거면 돼?"


"잠깐-!!!"


"또 왜?"


허억, 허억.

이 자식이 사람 겁주고 있어.


"세게 휘두르는 것도 아니고, 빠르게 휘두르는 게 아니야. 그냥 팔을 올렸다가 팔의 무게를 이용해서 내린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알겠지?"


"무슨 소린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볼게."


휘적-.


힘을 빼랬더니, 병자마냥 비실비실 검을 휘두른다.

검 끝의 궤적이 똑바르질 않으니 나뭇가지에 스치지 않는 게 당연했다.


"어...?"


"너무 힘을 뺐어. 손에 힘을 더 주고, 쉬익~하는 느낌으로 팔을 내리는 거야."


녀석은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다시 한 번 검을 올렸다가 휘두른다.

그렇게 두어 번을 휘두르고 나서야 간신히 나뭇가지를 쳐냈다. 조금은 검을 휘두르는 모양새로.


후우, 이렇게 간단한 걸 대체 몇 번 만에 성공을 하는 건지-.


하지만 그렇게 몇 번을 성공하고 나더니, 자신도 조금은 깨달은 게 있었던 모양이다.

녀석은 아하!하고 감탄사를 내뱉더니 신이 나서 검을 휘둘러댔다. 나는 적당히 기분도 맞춰줄 겸, 나뭇가지의 위치를 바꿔가면서 녀석이 자연스럽게 검의 방향을 바꾸는 연습까지 하게 해줬다.


겨우 나뭇가지 끝을 쳐낸 거 뿐인데, 성공했다는 게 그렇게 좋았던 걸까?

신이 난 이 녀석은 메그를 데려오더니, 자기가 나뭇가지를 들고 메그에게 목검을 쥐어주며 그 끝을 맞춰보라고 한다. 그러고는 서로 역할을 바꾸어가며 웃고 떠들면서 노는 게 아닌가.


음...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걸 보고 싶었다.


검술 따위 아무려면 어떤가.

언제 어디서, 또한 어떤 모습이면 어떤가. 그저 이렇게 서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다면, 그게 제일 행복한 모습이 아닐까 한다.


그저 '지금이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만 있으면 되는 거다-.


이제 내가 없어도 잘 놀기 시작한 두 사람을 보자, 시선이 슈리에게로 옮겨갔다.

슈리는 쭉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나 보다. 손을 멈추고 멍해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내리고 다시 음식을 준비하는 게 아닌가.


이 두 사람은 당분간 내가 없어도 될 거 같으니, 슈리 일이나 도와줘야 겠군.


"어때 보여? 사이 좋은 오누이지 않아?"


"응, 좋아 보여."


내가 천막 안으로 들어가자, 슈리는 얼굴이 발개져서 대답한다.

말투는 느릿느릿하지만 음식을 준비하는 손은 더 빨라지는 게 우스웠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뭔가 죄지은 사람마냥 허둥지둥하다니.


나는 손을 씻고 슈리 옆에 나란히 섰다.

잠시 한가해진 틈에 일이나 도와주려는 생각이었다. 그러자 에오스 님 옆에서 무표정하게 음식을 준비하고 있던 아네트가 시비를 건다.


"저렇게 내버려둬도 되는 거에요?"


"저 정도는 괜찮아. 둘이서 잘 놀고 있는데, 내가 있어봐야 방해만 될 걸?"


"저 둘에겐, 애초에 오빠는 도움이 안됐죠."


"너는 도움이 될 것처럼 말하진 마시지?"


쿡쿡쿡-.

에오스 님의 웃음에 아네트는 얼굴이 발개져서 반발했다.

"웃지 마세요, 에오스 님! 지금 제가 무시당하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미안해요, 아네트. 하지만 지금은 신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런 말을 그렇게 우아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다니.

나는 그냥 풋하고 웃는 정도였는데, 슈리는 웃음을 참느라 눈물을 흘릴 지경이다. 때문에 아네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불이 붙을 지경이 되었는데, 그 화가 폭발하는 것을 막은 건 의외의 인물이었다.


"저기... 아네트."


데미안이다.

녀석은 천막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비를 철철 맞으며 밖에 서있다. 그 얼굴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보였지만, 메그가 눈치를 주며 손을 잡아 당겨도 우물쭈물 입을 열지를 못한다.


"저기 말이야..."


하하, 그 동안 아네트 탓을 하며 화를 냈던 거에 대한 사과라도 하려나?

나는 살짝 기대를 했다. 과연 이 솔직하지 못한 녀석이 무슨 말로 서먹서먹해졌던 사이를 풀어나가려고 할 지 궁금했던 거다.


하지만 이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말 재미가 없었다.

대뜸 나뭇가지와 목검을 들어 보이며 한다는 말이...


"너도 같이 할래?"


하아, 정말 나 따위가 할 법한 말이나 하는 구나.

그런 말을 해봤자, 이 아가씨에겐 가소롭다는 말이나 들을 텐데.


하지만 이게 웬일인지 모르겠다.

한동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데미안을 바라보던 아네트는,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닌가.


"좋아."


그러고선, 언제 서먹한 사이였냐는 듯 밖으로 나가버리는 아네트.

그녀에겐 퍼붓듯 쏟아지는 장대비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좋아 보인다."


슈리가 짧게 말할 때까지, 나는 멍하니 세 사람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노는 걸 멍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래, 그건 확실한데..."


"뭐가 이상해?"


"이상하지. 어제까진 서로 쳐다보는 것도 싫어하는 거 같았는데, '같이 할래?'라는 밑도 끝도 없는 말 한마디에 다 풀려버릴 수가 있나?"


나는 데미안의 목소리 흉내까지 내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내 기준으로는 도저히 아네트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슈리는 느릿느릿한 말과 함께 미소를 띄웠다.


"생각 안 나? 우리도 그랬었잖아."


"아하. 잠깐 잊고 있었네."


생각해 보면, 우리 두 사람도 그랬던 거 같다.

별다른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그냥 황금도시에 오자마자 서먹서먹해졌다가, 별 의미도 없는 웃음에 마음이 풀려버렸었지.


"하하, 이제는 조금 무서워진다."


"무서워 진다고?"


슈리는 영문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순진무구한 검은색의 눈동자를 마주하자, 쑥스러움에 머리를 긁적였다.


"우리와 비슷한 게 정말 하나 둘이 아니네, 저 녀석들은..."


"우리와 비슷해?"


"응, 의외로 많은 점에서 그렇더라고."


나이가 많은 쪽이 동생을 위해서 황금도시로 가겠다고 결심한 게 비슷하고,

동생 쪽은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는 게 비슷하지.

그리고 그걸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도 비슷해.


머리 속에서는 그런 말이 맴돌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이미 황금도시에서의 삶에 익숙해져버린 우리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굳이 필요하진 않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슈리를 향해서 씨익 웃어보였다.


"남자 쪽이 철없는 게, 완전 똑같지 않아?"



******


작가의말

남자는 변하지 않는 거 같습니다.

나이가 먹어도, 어느 직업을 가져도, 어떤 직위에 올라도,

늘 똑같더라구요.


다만, 좋은 걸로 똑같아야 하는데 말이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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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소원 일곱, "한 폭에 담을 수 있을 때를 소중하게" (2) +2 17.10.13 85 1 27쪽
52 소원 일곱, "한 폭에 담을 수 있을 때를 소중하게" (1) 17.10.08 55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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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소원 여섯, "은하수,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 (7) +2 17.09.26 71 2 22쪽
48 소원 여섯, "은하수,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 (6) +4 17.09.23 49 2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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