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이 이루어지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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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teck
그림/삽화
아라가야
작품등록일 :
2017.07.03 00:40
최근연재일 :
2017.11.26 18:42
연재수 :
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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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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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22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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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막간, "검의 제련사" (중)

DUMMY

이 몸이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이유는 도장에서 검을 휘두르는 연습을 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소원으로 잠재능력의 최대치까지 끌어올렸으니 이 몸의 근력이 더 이상 붙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매일매일 단련을 반복함으로서 마음 속의 조급함을 없애고 다짐했던 바를 새롭게 하는 것에는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그 노력을 인정받았기에 사범님으로부터 딸도 받고 부사범으로 인정도 받는 게 아니겠나-.


그런데 데미안 이 녀석은 무슨 일로 일찍부터 깬 것일까.

어제 도착을 했으니 오늘은 피곤 때문에 늦잠을 잘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꽤나 부지런한 녀석인가 보다. 어차피 양손이 부러졌으니 할 수 있는 일도 없겠다, 잠시 이 녀석을 지켜보기로 했다.


몸을 움직이면서 단련을 하려나?

아니면 도장에서 쓸만한 검을 찾아 연습이라도 하려나?


검술을 배우러 왔다고 했으니 응당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나의 기대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데미안은 두리번 거리며 장작더미가 있는 도장 뒤편으로 가더니, 도끼를 들고 장작을 패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성실한 건 좋은데, 이건 그냥 좋은 식객의 모습이잖아.


"데미안, 이런 일은 누가 시켰나?"


내 물음에 데미안은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다만 같이 살게 됐으면 뭔가 보탬이 되어야 하는 일을 해야 하잖아? 올가 아주머니도 그렇게 말했고... 마침 장작을 패는 일은 럼버빌에서도 매일 하던 거였으니 이 일이 좋을 것 같아서."


"허어, 네가 올 때 충분한 지참금을 가져왔으니, 따로 일을 하진 않아도 될 텐데."


그러자 이 녀석은 한심스럽다는 눈으로 이 몸을 쏘아보는 게 아닌가.


분명, 찬란한 미래로 인도하여 줄 이 몸을 숭배해도 모자랄 터인데-.


"돈으로 뭐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한심하게."


꿈틀.


이 녀석에게는 다른 것보다 스승을 대하는 태도부터 먼저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내가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동안 꼬마 녀석은 도끼를 들어 장작을 찍으면서 말을 이었다.


"딱히 아줌마가 시켜서 하는 게 아냐. 아버지께 그렇게 배웠을 뿐이지."


콰직-.


"좋은 아버지를 둔 것은 인정하는데..."


일단 이 건방진 녀석에게 부사범의 권위를 세워야만 하겠지.


"올가는 아줌마가 아니다. 어제까지는 사범대리였고, 오늘부터는 부사범대리야. 앞으로는 제대로 부르도록."


"사범대리에서 부사범대리가 됐다고? 왜 직책이 내려갔어?"


"앞으로는 부사범이신 이 몸을 도와서, 너를 가르치게 될 테니까."


"당신이 부사범이야?"


"그래."


이 몸은 한껏 뽐내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녀석은 풋하고 입가를 치켜들었다.


"하긴, 그렇게 약해빠졌으니 대리가 필요하겠지."


"약해서가 아니라 양팔을 쓰기 힘들어서 그런 거야."


"도장 이름이 '알트아이젠'이라더니, 부사범부터가 그 이름대로 '고철'이네."


이 녀석은 이 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장작 패는 일을 계속한다.


콰직-.


흠, 정말 경쾌하게 도끼를 휘두르는 군.

게다가 예외없이 한 방에 장작을 두 쪽으로 쪼개는 걸 보면, 힘도 대단해 보이는데.


어제, 실력을 보겠다고 했다가 내 머리통이 두 쪽 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아쉽게도 내 근력은 평범해. 진짜인 건 이 두 눈이지."


"그래?"


나는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천하제일의 두 눈을 가리켰지만, 녀석은 여전히 시큰둥한 태도였다.


"어쩐지... 한 방에 뻗어버리길래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평범했던 거군. 내가 휘두른 검에 맞는 사람은 처음 봤거든."


말을 마친 녀석은 다시 태연스레 도끼질을 반복했다.


"여하튼, 앞으로 잘 부탁해."


"야, 데미안 너..."


"왜?"


"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나? 네 눈에는, 너를 검성이 되도록 이끌어 줄 이 몸의 존재가 보이지를 않는 게냐."


"검성? 검을 쓰는 성인이란 뜻이야?"


"그런 거지."


"그런 거엔 별로 관심없어."


녀석의 대답에 내 마음 속에 거대한 바위가 쿵하는 소리를 울리며 떨어졌다.


"분명, 검술을 배우고 싶어서 온 걸로 들었다만?"


약이 올라 던진 질문이었는데, 이 녀석은 또다시 태연스레 대답을 한다.


"그야 그렇지."


"그렇다면 당연히 검의 극치를..."


"검사가 될 생각은 없어. 다만 몸도 마음도 단련하면서, 동생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검을 쓸 수 있으면 충분해. 그 후엔 본격적으로 가족을 부양할 기술을 배워보려고 하는데. 빵을 굽는 거라던가, 목재로 가구를 만드는 거나 집을 짓는 기술도 재미있을 거 같은데..."


아아. 신이시여, 어찌하여 제게 이런 고난을 내리시나이까.


"이 꼬마 녀석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절규하듯 소리를 지를 수 밖에 없었다.


"그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하늘을 덮고도 남을 텐데, 바라는 건 고작 도적이나 무뢰배들에게서 한 몸 지키는 거라니, 네 몸에 충만한 근육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느냐!"


나는 피눈물을 쏟아내는 심정으로, 녀석의 팔을 움켜 잡았다.


"아아-. 이 근육들이 눈물을 흘리는 구나. 너에겐 이들의 흐느낌이 들리지 않는 거냐!"


"내 몸에 뭔 관심이 그렇게 많아? 근육이 많다는 게 별 자랑할 것도 아니거든?"


"평생 그것을 가질 수 없는 사람에겐, 그 강철같은 근육이 얼마나 부러운 것일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겠지! 오오, 슬프도다!"


"대체 뭐라는 거야? 그리고 제발 이상한 말투 좀 쓰지 말아줘."


크흡-!


결국 나는 참다 못한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사실 어젯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꾸만 이 녀석의 늠름한 몸이 눈 앞에 어른거렸기 때문에.


이 몸의 눈과 이 녀석의 육체를 합치면 완벽한 작품이 나온다.


그런 기대로 인하여, 가슴이 벅차고 흥분이 가시질 않았단 말이다.

그런데 이 녀석에겐 검성의 기본 중의 기본 조건인, 야망이 결여되어 있었다니.


"아, 좀... 갑자기 울면 내가 뭘 잘못한 거 같잖아."


"시끄러! 넌 범죄자야! 너는 자신의 재능에 대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크흑- 치명적이야. 이 녀석은 포기해야 하나.

하지만 동생 쪽은 애당초 검사로서 전혀 기대할 것이 없어 보이던데...


"제발 다 큰 어른이 애 앞에서 울지 좀 마.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는데?"


흠칫.


"잠깐, 너 나이가 몇이지?"


"열 여섯."


열 여섯? 신이여!


"네 소원이 뭐야? 아니, 혹시 벌써 소원을 빈 건 아니겠지?!"


나는 저도 모르게 녀석의 왼쪽 어깨를 붙잡았고, 이 녀석은 반사적으로 내 손을 뿌리지면서 얼굴을 붉힌다.


"아직 안 빌었어. 여자친구와 천천히 상의해서 결정하기로 약속했단 말이야."


아직 안 빌었구나!

나는 넘쳐흐르는 안도감에 땅에 두 무릎을 대고 하늘을 향해 경배를 올렸다.


"크흑,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그래, 아직 희망이 있다.

어떻게든 이 녀석의 마음을 잡게 한 뒤에 소원을 빌게 해서 저 육체 안에 잠들어 있는 능력을 완전 해방시킨다면!


"대체가..."


"좋아, 데미안! 너는 검성이 되는 거다!"


"어휴~. 그런 거엔 관심없다니까."


녀석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두 눈에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보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알았다고. 일단 가르쳐주는 대로 열심히 해볼게."


"정말?"


"정말이야. 처음부터 검술은 배워둘 생각이었으니까."


"정말 정말???"


그러자 내 운명의 이마에서 핏줄이 삐직 올라오는 게 보였다.

음, 이쯤해서 멈추지 않으면 안되겠군.


나는 얼른 눈을 감고 뒷짐을 지며 첫 당부를 내렸다.


"좋아. 앞으로 매일 아침 장작 패는 것부터 시작하지."


"이건 매일 습관적으로 해오던 거라니까?"


훗, 그런 걸 굳이 당부라고 시키겠냐.

나는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단, 도끼가 아니라 검으로 장작을 패는 거야."


그래, 도끼가 아니라 검으로.

이 녀석이 장작 패는 걸 보면서 느낀 게 있는데, 데미안의 도끼질은 아주 힘차다.


그것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아주 중요한 점이었다.


만약, 도끼가 아니라 검을 이렇게 호쾌하게 휘두른다면?

훗.훗.훗. 내 장담하건데, 설령 상대가 기사라고 해도 갑옷째로 날아갈 거다.


"검으로 장작을 팬다고? 그게 가능해?"


녀석은 상상도 못한 일이라는 듯 눈이 동그랗게 된다.


"당연하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라면 가능해!"


꿀먹은 벙어리가 된 녀석을 향해, 나는 끓어오르는 피로 외쳤다.


"알트아이젠의 검은 일격필살! 말 그대로 네 모든 것을 담은 혼신의 일격으로 모든 것을 분쇄하는 거야. 간격? 속도? 그런 것 따위 다 잊어버려!"


"그런 게 가능해...?"


내 말에 데미안은 아주 얼이 빠진 얼굴이 됐지.

그래서 더더욱 힘을 주어서, 녀석이 도달해야 할 경지를 알기 쉽게 정리해줬다.


"그냥 지금이다 싶을 때, 한방에 다 때려부숴버려-!!!"



......



그냥 힘으로 일격필살.

참 알기 쉽지 않은가? 거기엔 이 몸이 가진 간파력도 필요 없고, 로디스 놈이 가진 검의 속도도 필요 없다. 그저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는 한 방. 그거면 된다. 그리고 이 녀석이라면 그걸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게 오산이었다는 걸 깨닫기엔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데미안 녀석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몸치였던 거다.

아니, 그 근력에 어울리는 길고 무거운 대검을 만들어 주었으니, 그걸 휘두르기만 하면 장작이나 나무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도장도 한 방에 쪼개야 할 터인데, 이 놈은 쪼개기는커녕 갖다 맞추는 것도 어려워 하는 게 아닌가.


이 녀석이 건성이거나 농땡이를 부려서 그런 거라면 이해라도 간다.

이 눈으로 봐도 정말 진지하고 열심인 거 같은데, 실력이 늘지를 않다니...?


열정은 있는데 기본이 없다-.


그 뿐이라면 참 다행이지.

이 녀석에겐 재능적인 면 외에 또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속이 좁쌀만큼 좁다는 것이었다. 걸핏하면 자기 성질을 못 이겨 화를 내거나 사나워지는데, 그나마 검이 마음 먹은 대로 안 휘둘러진다고 검을 집어 던지는 건 봐줄 수 있다. 하지만 이웃 마을에 심부름을 갔다가 또래 녀석들이 조금 놀려댔다고 쌈박질을 하는 건 봐줄 수가 없었다.


검성이 될 자가 길거리 시정잡배 마냥 싸움이나 하고 다닌다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처음에는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 나아지겠거니 했는데, 이게 한 두 번도 아니고 습관적으로 반복이 되자 결국 이 몸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오고 말았다.


이 녀석에게 정말로 검술을 배우겠다는 진심이 있는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하루는 데미안 놈과 마주 앉아 대화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늘도 싸웠나. 어린애도 아니고, 이제 질릴 때도 되지 않았냐?"


그러자 이 녀석은 고함이라도 칠 것처럼 크게 입을 벌렸다가는, 무서운 나의 마나님의 교육 덕분인지, 화를 가라앉히며 나직하게 대답했다.


"메그에게 돌과 나뭇가지를 던지면서 히히덕 대는 걸 내버려두란 말입니까?"


"그 녀석들이 심하게 한 건 사실이군. 하지만 그만두게 하는 것으로 충분했잖아? 네가 폭력을 휘두를 것 까진 없었어."


"겁이 날 정도로 돌려주지 않으면, 다음에 또 그럴 겁니다. 저는 그런 것을 많이 봐왔어요."


허허, 네 놈이 지금 이 몸에게 인생경험을 이야기하는 게냐.

못 말릴 녀석, 내 근력이 눈의 반의 반만 따라갔어도 이 녀석을 흠씬 두들겨 패줬을 텐데.


후우-.

나는 깊은 심호흡을 하며 내 안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히며 점잖게 말했다.


"데미안, 나 역시 한 때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마음에 품고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걸 주체하지 못하고 내 마음 가는 대로 발산하고 다녔지."


들으라.

나의 이 거룩한 복음을.


"그러다보니, 내 앞에 있던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 그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어. 그저 세상의 중심이 나라고 생각했던 거야. 하지만 지금 되돌아 보면, 그래서 좋았던 건 아무 것도 없더군."


"......."


"그래, 좋았던 건 아무것도 없었어."


한 방에 뻗어놓고도 내가 이긴 줄 알았다거나, 술집에서 행패나 부리다가 또다시 한 방에 뻗어버린 기억 밖에 없지.


"결국, 내가 평범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평범해지고 나니까 무엇이 정말 위대한 것인지를 알 게 되었지."


"제 근육이 그렇게 위대한 것인가요? 이건 열심히 일하면 누구에게나 생기는 거라구요."


지금은 그냥 부러워서 그런다 임마.

네 놈의 근육을 내 몸에 두를 수만 있다면, 세계정복도 꿈은 아닐 텐데.


"크흠! 어쨌거나, 나도 더 이상 네게 검성이 되란 억지는 부리지 않겠다."


"... 네?"


늘 시큰둥한 얼굴을 했으면서 막상 검성이 되란 소릴 안하겠다니, 왜 또 당황하는 건지.

혹시 내가 기대를 접겠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나 보군. 훗, 단순한 녀석.


"열 달 정도 후에, 이웃 나라의 수도에서 검술 대회가 열린다. 이때까지 해왔던 것처럼, 열 달 정도 준비해서 그 대회에 나가보자꾸나."


"... 열 달 만에 제 실력이 우승할 정도가 될 거 같진 않은데요?"


차아식, 우승 같은 소리하네.


"결과는 아무래도 좋다. 그냥 나가서 한 번이라도 좋으니 힘껏 검을 휘두르고 돌아오면 돼."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해가 안 가는데요..."


"나와 약속을 하나 하자는 이야기다. 그 대회를 마치고서, 네가 정말 진지하게 검의 길을 가볼 생각이 드는지, 아니면 그 쯤 해서 배우는 걸 그만 둘 지를 결정했으면 하는 구나."


"아... 열 달 후면 제가 온 지 딱 일년이 되니까, 그 때에는 마음을 정하는 게 좋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최근에 네가 자꾸 화를 내고 조급해 하는 이유가, 네게 확신이 없어서 그러는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그런 것 같습니다...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내가 이 짓을 왜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나더라고요."


훗, 내 그럴 줄 알았지.


나는 분위기도 잘 잡혔겠다, 두 손으로 녀석의 손을 덥썩 잡고 마지막 당부의 말을 남겼다.


"알고 있나? 네 이 손에는 생각보다 굉장한 힘이 잠들어 있다는 걸. 다만 너의 끓어오르는 분노가 그 힘을 제어하지 못하게 하고 있을 뿐이야."


"......"


"그러니 이후에는 대회만을 생각하며, 네 안에서 날뛰는 그 짐승을 잘 억제하도록 해라."


후우, 완벽한 연설이었다.

차아식, 내 말을 새겨들었다면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하겠지?


"부사범님, 마지막 말만 안 했어도 참 좋았을 텐데. 갑자기 끓어오르는 분노니, 내 안의 짐승이니... 갑자기 의욕이 팍 꺾이는데요?"


"......"


"그리고 그 이상한 말투도 제발 좀..."


흠, 이 분위기가 아닌데.

내가 평범하지 않은 것은 이 눈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혹시 내 정신세계도 평범하진 않은 걸까?


"그, 그렇게 이상했나?"


"이상한 게 아니라, 듣자니 온몸에 닭살이 돋아서요."



......



그 후로 열 달이 지났다.

나는 데미안과 둘이 약속한 대로 이웃 국가에서 열리는 검술 대회에 참가 신청을 했고, 그 시합일에 맞추어 올가와 데미안 남매를 데리고 짧은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매년 약 천 명 정도의 검사가 참여하는 작은 대회.

하지만 데미안이 좋은 성적을 낼 것이란 기대는 눈꼽만치도 안 했다. 아무리 규모가 크지는 않다 해도, 한 국가의 수도에서 열리는 대회라면 나름 이름과 실력이 있는 검사들이 많이 출전을 하니까.


"여보, 정말 괜찮겠어요?"


짐을 챙기던 올가의 말이었다.


"아, 우리끼리 있을 때는 존댓말 쓰지 말라니까."


"당신 제자 앞에서 어떻게 그러겠어요."


이 강직한 부인은 데미안과 메그를 돌아보며 말했지만, 나는 되려 녀석들도 들으란 듯 큰 소리로 대답했다.


"데미안은 내 제자가 아냐."


"네?"


내 말에 다들 놀라서 손을 멈추었지만, 나는 손을 내저었다.


"데미안과 메그, 두 사람은 우리 가족이니 타인 취급하지마."


"저 둘을 향한 당신의 애정은 알겠어요."


아... 이 오지랖 넓은 여자는 불안이 가득한 얼굴이구만.


"하지만, 아직 저 아이에게 대회 출전은 무리 아닌가요? 오히려 자신감만 떨어지지는 않을런지 걱정이네요."


듣는 앞에서 무리라고 대놓고 말하는 당신이 더 자신감을 떨어뜨릴 거 같은데.

나는 툭 쏘아 붙이려다가는 점잖게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약속은 지켜야지."


"약속이라니요?"


당황한 올가가 묻자, 나는 데미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데미안, 이전에 분명히 약속했지? 이 대회에 출전을 하겠다고."


"네... 그 말씀대로입니다."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데미안.

풋, 언제 들어도 이 녀석의 존댓말은 익숙하지가 않다. 아니, 이 녀석에겐 어울리지가 않는다고 해야 할까? 대체 올가가 어떻게 때려잡았길래 이 야생마 같은 녀석이 존댓말을 쓰게 된 건지.


나는 풋하고 웃음이 새어져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부사범대리님, 이번 대회를 마치고, 제가 검술을 계속 배울 건지 아니면 그만 둘 지 결정을 하기로 부사범님과 약속을 드렸습니다."


"그래...?"


"뭐, 저 녀석은 워낙 의욕도 야망도 없었으니까. 이쯤에서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서로 피곤하기만 하다고."


그러자 올가는 슬쩍 내 옆구리를 찌르며 나직하게 말한다.


'그만두겠다고 해도 정말 괜찮아? 검성으로 키운다고 온갖 난리를 피우더니.'


나는 가볍게 웃어 넘겼다.


이 몸은 안다.

그저 몸 단련이나 하겠다는 녀석이, 일년 내내 쉼 없이 훈련을 반복하진 않는다는 걸.


"데미안, 이기는 것도 좋지만 굳이 이기려고 하진 마라. 네 실력으론, 요행으로 한두 번 이길 순 있어도, 그 이상은 무리니까."


"하아... 부사범님, 이제와서 무슨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말씀이신지."


"너는 돌멩이야, 들판에 버려진 돌멩이. 그러니까 남들이 너를 툭 걷어차고 지나가게 내버려둬."


또다시 온갖 불만 가득한 얼굴이 되는 데미안.

하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올가의 짐을 그 두터운 어깨에 올려놓았다.


"그것이 반복돼서 더 떨어져나갈 구석도 없고 더 모가 나지도 않은 짱돌이 될 즈음에는, 너보다 강하고 단단한 사람은 없게 될 거다."


나름 감동적인 말 아닌가?

이 몸의 자서전에 한 줄 써야 할 말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녀석은 여전히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해맑은 미소는 좋은데, 왜 제가 짐을 다 들어야 하는 거죠?"


"단련이야 단련. 시합하러 가는 중에도 몸 단련은 멈추지 않는 법!"



......



그렇게 치루어진 데미안 녀석의 첫 데뷔전.

나는 관중석에 앉아서 데미안이 우리 도장 특유의 자세를 잡고 상대를 마주한 모습을 지켜보았다.


음, 그래도 일년 동안 자세를 고쳐줬더니, 이제 그럴싸하게 됐군-.


자, 늘 말하지만 이 몸의 눈은 대단하다.

저 로디스가 인정하고, 사범님이 극찬을 할 정도로. 그 눈으로 냉정하게 분석을 해 봤을 때, 저 제자 놈의 탈락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 것임에 틀림없었다.


애초에 눈썰미도 없겠다, 검의 속도가 있나, 정확도가 있나...

가진 건 단단한 몸 하나 밖에 없는데, 그런 걸로 이길 수 있을 정도로 검의 세계는 녹록하지가 않다.


그렇게 믿었는데-.


미쳤다.

완전히 미쳤어.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자세를 잡은 상태로 상대가 한 방 때리게 놔둔 다음 그대로 옆구리를 후려치는데...


뻐어어어어억-!!!


이건 뭐 폭탄이 터진 거 같은 굉음이 울리는 게 아닌가.

대회 초반이라 텅 빈 관중석은 물론이고 온 경기장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타격음이다.


"허... 허허허."


내 입에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으니, 상대가 어떻게 됐겠나.

한참 동안 데미안을 친 자세 그대로 얼어붙어 있더니, 하반신이 잘려나간 것처럼 애처롭게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분명히 날이 없는 시합용 검으로 맞은 건데-.


"승자, 데미안-!!!"


"......"


처음이라 그런 줄 알았더니, 똑같은 것을 두 번째, 세 번째 시합에도 반복한다.


그냥 한 방 때리게 한 후에, 무자비한 한 방을...


퍼어어억-!!! 뻐어어억-!!!


데미안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차마 저 참혹한 장면을 눈 뜨고 볼 수가 없어서.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마음 속에 동정심이란 것을 품게 되었다.



******


작가의말

일격필살.

그것이 꼭 맞지 않고 때린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유쾌한 그들의 이야기가 이어지기를 기원하면서...

다음 연재 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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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소원 일곱, "한 폭에 담을 수 있을 때를 소중하게" (7) 17.10.29 68 1 16쪽
57 소원 일곱, "한 폭에 담을 수 있을 때를 소중하게" (6) 17.10.25 96 1 18쪽
56 소원 일곱, "한 폭에 담을 수 있을 때를 소중하게" (5) 17.10.21 83 1 19쪽
55 소원 일곱, "한 폭에 담을 수 있을 때를 소중하게" (4) +2 17.10.18 53 2 26쪽
54 소원 일곱, "한 폭에 담을 수 있을 때를 소중하게" (3) 17.10.16 78 1 17쪽
53 소원 일곱, "한 폭에 담을 수 있을 때를 소중하게" (2) +2 17.10.13 85 1 27쪽
52 소원 일곱, "한 폭에 담을 수 있을 때를 소중하게" (1) 17.10.08 55 1 14쪽
51 막간, "우리가 함께 있을 때에." +4 17.10.01 76 2 16쪽
50 소원 여섯, "은하수,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 (마침) +2 17.09.28 65 2 16쪽
49 소원 여섯, "은하수,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 (7) +2 17.09.26 71 2 22쪽
48 소원 여섯, "은하수,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 (6) +4 17.09.23 49 2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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