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파멸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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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
작품등록일 :
2017.07.0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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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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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3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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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혼란

DUMMY

"왜 쫒아내지 않았죠? 그것 하나 처리 못하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매스컴과 같이 온 기색이 보였는지라..."


'무슨 일이야?'


전임자의 부모가 왔다고?


"쯧."


이자견은 혀를 차고 표정을 있는대로 일그러뜨렸다. 그것을 보며 가온은 깜짝 놀랐다.

그녀가 이렇게 까지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적어도 가온의 앞에서는 그랬다.


그에겐 자신의 속내를 보여주지 않으려 하던 그녀였다. 그런데......

그녀는 가온을 힐끗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직접 대응하죠. 그 매스컴이란 것은 곁에 있는 건가요?"

"아뇨. 숨어서 촬영 중인듯 합니다."

"후후. 벌써 처리했을 줄 알았는데 아주 골탕을 먹이려 드는군. 성격 고약한 늙은이."


의미 모를 말을 중얼거린 이자견. 어쩐지 누구 들으라는 듯한 말투처럼 들렸다.


'아니 저 메이드가 재무진 스파이랬으니 재무진 들으라는 말이겠지 뭐.'


심드렁히 생각한 가온이 말했다.


"전 이만 갈까요?"

"아니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별 것 아닌 일이니까요. 당신은 여기에서 이 분의 시중을 드세요."


그렇게 고하고 성큼성큼 걸어가버리는 이자견.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가온은 고민했다.


'쫒아가? 말아?'


요즘 심기가 불편한 그녀다. 괜히 쫒아갔다고 히스테리 부리면 곤란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녀가 그렇게까지 흐트러진 이유가 궁금했다.


메이드가 자신에게 차를 따르려는 것을 보던 가온이 망설이다가 물었다.


"무슨 일이죠?"

"조금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습니다. 곧 해결될테니 마음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려줄 수 없느니 닥치란 건가.'


볼을 긁적이던 가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걸었다. 메이드가 살짝 당황하며 그를 부르려 했지만 묶어둘 명분도 딱히 없을 것이므로 가온은 무시했다.


잠깐 걷다보니 창밖에 이자견이 대문쪽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대문 밖에는 어떻게 봐도 평범한. 조금 나이든 두 남녀가 진상규명이란 펫말을 목에 걸고 서 있었다.

가온은 그대로 창을 타고 넘어 지면에 사뿐히 착지했다.


이 시점에서 가온이 이자견의 말을 무시하고 왔다는 것을 눈치채고 그녀가 가온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것뿐이었고 고개를 돌리고 눈앞의 부부에게 시선을 돌렸다.

가온은 무언의 허락을 맡았다 여기고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 순간.


찌잉.


"큭."


머리에 격통이 내달려 자신도 모르게 한쪽 무릎을 꿇을 뻔 한 가온은 이자견을 노려보았다.


'저 망할년이......'


말로 하기보다 바로 행동에 나서 가온을 공격하다니. 너무 난폭하다.

가온이 어떻게 되건 말건 이자견은 부부에게 말을 걸었다.


"또 오셨네요. 참 곤란하답니다?"


한숨을 지으며 곤란하단 표정을 지은 이자견을 파르르 떨며 바라보던 남자가 이내 입을 열었다.


"딸을 돌려주십시오."

"몇번이고 말했지만 왜 댁의 따님을 제게 찾는 거죠?"


불쾌하다는 듯한 목소리엔 여름의 더위를 날려버릴 만큼 냉기가 서려있었다. 보통 사람은 물론이고 웬만한 사람들도 깜짝 놀라 물러설 기세였지만 남자에겐 오히려 분노의 방아쇠가 된 것 같았다.



"당신의 저택에서 내 딸이 사라졌으니까!! 게다가 딸이 사라지자마자 보란듯이 바로 대체자를 구하다니! 당신을 의심하지 않으면 누굴 의심하란 거지?!"

"정정할 게 두가지 있군요. 따님이 어디서 사라졌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당신 말처럼 제 집에서 사라졌는지 퇴근하다 사라졌는지는 몰라요. 그리고 고용인을 구하는 것이 뭐가 나쁘죠? 오히려 전 맡은 바 일을 인계도 하지 않고 떠난 따님의 부모인 당신들에게 퇴직금까지 제대로 지급했는데요."

"웃기지 마! 당신이 뭔가를 했어! 분명 뭔가 했다고!"

"소리만 질러서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흥. 오늘은 좀 다를테니 두고 보시라고."


남자의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 이자견이 아 그랬지요. 라며 손뼉을 치더니 손가락을 퉁겼다. 눈앞의 부부는 무슨 행동인지 몰랐겠지만 가온은 저 여자가 지금 상당한 범위를 포함하는 뭔가를 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건 아마 메이드가 언급한 매스컴을 무력화 시키는 행동일 것이다.

그리고 이 행동들도 인해 가온은 그 전임자라는 메이드의 행방물명에 이자견이 어떻게든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라면 자신의 능력을 십분 활용해 그들의 딸을 찾아 오히려 이름을 드높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건 그녀를 찾으면 곤란한 게 있다는 소리다.


"이 이후 제 집에 접근할 시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아니 그 전에 접근금지 신청을 낼테니 그렇게 아세요."

"무, 무슨."


그렇게 고하려고 떠나려는 이자견에게 손을 뻗었지만 차마 붙잡지 못하는 남자. 그는 그저 씨근덕대며 두고보자 라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순간. 이자견을 붙잡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지금껏 조용히 떨고만 있던 여자였다.


"함부로 남을 잡는게 아닙니다. 놔 주시겠어요?"

"으으으..."


이자견의 냉랭한 눈빛을 정면으로 받아 사시나무 떨듯 떠는 여자. 하지만 이자견의 소매를 두 손으로 꼭 붙든채 결코 놓으려 들지않았다.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아가씨가 그럴리 없어유...지도 알아유...우리 딸이 아가씨 칭찬만 했응께......"


훌쩍이며 말하는 여자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이자견은 말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요?"

"딸 찾는걸 도와주세요...지발 이렇게 부탁드려유...친한 사이였잖아유..."


굳은살 박힌 손으로 필사적으로 이자견의 손을 붙잡는 그녀.

잠깐 정지했던 이자견은 다음 순간 가차없이 손을 빼내버렸다. 그 반동으로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 한 여자를 부축한 남자가 이자견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웃기는 소리. 저 여자가 뭔가를 한게 틀림없어."


그들을 더 이상 돌아보지 않고 대문을 굳건히 닫은채 저택으로 돌아가는 이자견. 그런 그녀의 등 뒤에 늙은 남자의 비통한 목소리가 꽂혔다.


"천벌 받을 년! 반드시 진상규명할 거야!"


그러나 이자견은 끝까지 돌아보는 일 없이 저택에 들어가버렸다.

그리고 가온은 어느 순간 자신을 속박하던 힘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자견을 따라 저택에 들어갔다.


'위험해.'


가온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야 그럴만 하다. 지금 약점이 잡힌 상대인 이자견이 몰려있는 상황에서 괜히 신경을 건드린 것이다. 위기감을 느낄만 하다.


하지만 가온은 현재 이자견에게 위기감을 느끼고 있지 않았다.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험하다고 여겼다.


어째서일까. 이자견에 대해 알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살의가 온몸을 휘감았다.

침착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자고 마음을 추스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어떤 방해나 모욕을 받아도 잘 참아왔는데 저런 광경을 보자 도무지 진정이 되질 않았다.


'빌어먹을 년이.'


이자견의 능력이나 성격상 지금까지 암암리에 사람을 제거해 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지금까지 하지 않았다면 이상할 판이다.


'너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을 망쳐왔겠지. 네게 사람과 벌레가 뭔가 다른 점이라도 있나?'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웬만한 강자들도 항거할 수 없는 힘으로 사람들을 찍어눌러왔을 것이다. 그 전임 메이드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강대한 힘에 찍어 눌러 사라졌을 그녀와 여기까지 찾아온 그녀의 부모들을 보자 예전의 자신이 떠올라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과 겹쳐 보였다.


'삼촌을 죽였을 때도 그 잘난 정신능력을 사용했겠지. 지금처럼.'


가온은 이자견에게 바짝 따라붙었다. 그녀 또한 가온이 자신을 따라붙는 걸 알고 있는지 걸음걸이가 느릿했다. 뭔가 대화를 할 셈인가.


대화 따위는 없다. 이대로 네년의 목을 꺾어주겠다. 너를 이용하려는 생각도 주위 상황도 후에 내가 붉은 커튼에 관여되었다는 게 알려질지라도 상관없다.

이 더러운 벌레같은 년. 여기서 널 죽여주마.


사고방식이 비정상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가온은 자신을 말리지 않았다. 그렇게 점점 가까워져간다. 작은 등이 보이고 기다란 검은 생머리 사이 뽀얀 목덜미가 보였다.


저 목을 잡아채 부러뜨린다면 그걸로 끝날 것이다.

가온이 살의를 피워올리며 그녀의 바로 등 뒤까지 다가갔을 때. 그는 그제야 이자견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그와 동시에 이자견이 고개를 돌렸다. 마치 지금까지 누군가가 따라붙었다는 걸 몰랐다는 것처럼.


이빨로 아랫입술을 필사적으로 깨물었고 표정을 때때로 확 일그러졌다. 마치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는 것처럼.

아니 눈가엔 눈물이 조그맣게나마 맺혀 있었다. 가온이 생각했던 사람을 벌레처럼 여기는 무감정함이 아닌 비통한 표정이 거기에 있었다.


그 표정을 보자마자 머리가 확 식었고 살의가 씻은듯 사라졌다. 그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어, 엇."


이자견이 당황한듯 고개를 돌리고 눈가를 비비더니 다시 가온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때 이미 가온은 등을 돌리고 그녀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것도 같았지만 가온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감정이 없는, 아니 있지만 다른 사람에겐 피해만 주는 자신의 이득만 생각하는 존재라 여기고 혐오했다.

그렇기에 거리낌없이 이용하고 버릴 생각으로 어떤 기술을 연마했다.


전제조건이 흔들렸다.

그녀는 무감정한 소시오패스가 아닌 슬퍼하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상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가온은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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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 소원권 (2) 20.08.22 159 3 20쪽
368 소원권 (1) 20.08.22 160 3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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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 에메라의 이야기 20.08.20 162 2 11쪽
365 파멸? (10) 20.08.18 169 4 28쪽
364 파멸? (9) 20.08.17 158 3 20쪽
363 파멸? (8) 20.08.16 155 2 20쪽
362 파멸? (7) 20.08.15 167 2 21쪽
361 파멸? (6) 20.08.14 163 3 16쪽
360 파멸? (5) 20.08.14 165 3 21쪽
359 파멸? (4) 20.08.12 173 3 19쪽
358 파멸? (3) 20.08.11 172 3 23쪽
357 파멸? (2) 20.08.10 175 3 12쪽
356 파멸? (1) 20.08.10 167 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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