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파멸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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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
작품등록일 :
2017.07.0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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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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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0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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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세게대회편 2

DUMMY

가온이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한 것은 바로 가은이었다.



"이 멍청이가!!"



가은은 얼굴이 시뻘개진 채로 고래고래 빽 소리질렀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긴장하고 있는 이유는 당연히 가온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 건 바빠서 그렇다 치자. 그래도 세계대회땐 프랑스와 연계임무가 끝날 때고 거기다 이름을 날릴 절호의 기회이니 제깍제깍 올줄 알았다. 헌데..



"여태까지 안 오다니. 늦잠을 잔 거야? 아니면 무슨 일이 생긴거야?"



전화까지 받지 않는다. 원래 가은의 전화를 잘 안 받는 편이긴 했어도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걸면 받는 편이었는데...


가은은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본가로 겨우 돌아올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게 무효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두 가문중 하나의 직계라는 것만으로도 주목받을 것인데 사람들이 이번 주최지인 한국의 커튼 사냥꾼의 유망주라고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각으로 시합에서 기권패 당한다? 엄청난 망신이다.


가은은 자신의 어머니와 이름이 같아 기억하고 있는 여자 연예인. 임이나를 원망했다.



"아오! 이 멍청이!'

[아...미안.]



소리지를 찰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끔벅끔벅하던 가은이 속사포처럼 말을 뱉었다.



"너 지금 어딨어? 왜 안 온거야? 무슨 일이라고 있어? 아무튼 별일 없으면 지금 당장..."

[늦잠잤어. 지금 갈게.]



가은은 기가 막혔다. 설마 진짜 늦잠이었단 말인가?



"너, 너...하아. 됐다. 너한테 뭘 기대하겠어."

[음...많이 늦었냐?]

"다행인 줄 알아. 2인 팀전이라 네가 나오지 않아도 이준형 선배가 시간을 끌어줄 테니까."

[아. 그 선배가? 나랑 같은 팀이야?]



그래도 랜덤으로 나오는 대회종목 정도는 숙지해뒀던 가온이 대번에 알아듣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알았어.]

"알겠지? 최대한 빨리 뛰.."



뚝.



"......이 새끼가..."



자기 볼일 다 봤다는 듯 끊어버리는 가온에게 분노와 야속함을 느끼며 가은은 전화를 품속에 집어넣었다. 이젠 이준형에게 가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달라고 부탁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내키지 않는데.'



이번일로 또 얼마나 생색을 낼지 벌써부터 걱정되었다.

왜 자기가 언니나 자신의 도움에도 별로 고마워하는 것 같지도 않은 웬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그래. 내가 조금만 더 도와준다 조금만 더.'


괘씸해서 다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이 얼핏 들었지만, 떠올라버리고 말았다.

10년전, 삼촌인 현수가 죽고 가온이 본가에서 쫒겨났을 때의 일을.


어린 나이임에도 엄숙했던 분위기를 기억한다.

가온은 마치 죄인처럼 가문의 사람들에게 끌려나갔다.

그보다도 어렸던 가은은 그때 가온에게 뭐라고 했었나?



그건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가온의 모든것을 놓아버린 듯했던 표정만은 기억난다.


그 이후로 가온은 가족을 피하기 시작했다. 가은은 바보가 아니다. 자신이 그를 싫어하는 것처럼 그도 자신을 싫어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도 일단 가족이니까 도와준다.'



한숨을 쉰 가은은 교섭하기 위해 한국의 대기실로 향했다.







"어, 어쩌죠? 선배님!"

"어쩌긴.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후배의 당황에 이준형은 묵묵히 대답했다.



"하지만 팀전이라구요? 그 녀석이 제 시간에 오지 못한다면!"

"아니야. 파트너가 다쳤거나 무슨 일을 생겼을 시를 대비해 혼자서 싸우는 것도 되기는 해. 압도적으로 불리하겠지만..."

"아니, 그 자식! 요즘 대단하다 싶었더니 또 왜...!!"



여기저기서 가온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전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건, 학교 커튼 침입은 그들의 가슴에 두려움을 불러 일으켰다.


교사들은 그런 그들의 두려움을 커튼에 대한 증오로 변하도록 부단한 노력을 했고 그 성과가 조금이나마 있어서 학생들은 이번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어 한국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럴 때...



그때까지 잠자코 듣고 있던 이준형이 입을 열었다.



"무슨 사정이 있었던 거겠지. 프랑스의 임무가 더 남아있었다거나, 그쪽의 일이 임무로선 더 중요할테니."



그의 말대로 프랑스와의 외교를 위해 중요한 일이니 그쪽에 일이 생겼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그 녀석에게 무슨 사정이 있기나 했을까요?"

"당연하다. 일부러 뭔가를 내팽개칠 남자는 아니다."



가온을 비꼬는 후배의 말에 단호하게 대답하는 이준형. 그런 그의 태도에 후배가 벙쪘다. 그때.



"이야~실례하겠습니다."




한국어가 아닌 영어가 별안간 대기실에 퍼졌다. 모두 일제히 돌아보자 어떻게 봐도 양아치처럼 보이는 서양인이 문에 통역사와 함께 와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알렉스였다.



"어디 어디...여기 이가온이라는 놈이 어디있지?"



손날을 이마에 대고 우리를 둘러보듯 구경하는 듯한 그의 태도에 한국의 학생들이 조금 발끈했다.


"누구십니까?"


안경을 쓴 학생이 나서자 옆에 있던 통역사가 한국어로 말했다.



"여기 이가온이라고 있습니까?"

"이가온이라면..."



잠깐 말꼬리를 흐리던 그는 경쟁상대인 타국에 사실대로 말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잠깐 자리를 비웠습니다."

"없다고 합니다."

"응. 번역해주지 않아도 대충 알아들었어. 그런데 없다라...형편 좋으시군."



비릿하게 웃는 알렉스를 보고 너무 무례하다 생각한 안경 남학생이 말했다.



"대체 누구신데 여기에 들어오신 건지? 애초에 현재 타국학생은 다른 나라 대기실에 들어갈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만..."



통역사가 그의 말을 통역해주자 알렉스가 한쪽 눈을 치켜뜨더니 위협적인 몸짓으로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뭐, 뭐..."

"그래서? 어쩌라고? 쥐 새끼야."



몇몇 학생이 모욕을 알아들었고 벌떡 일어나 주술을 끌어올렸다.

알렉스는 그들을 둘러보다가 헹 웃더니 마찬가지로 주술을 끌어올린다.


우웅.



"윽..."



조금만 봐도 느껴지는 웅혼한 주술. 경박한 태도와 외모와는 다르게 견실한 강자라는 것이 느껴졌다.



"에게. 이걸로 놀라면 어쩌게? 쥐새끼들..."

"나가라."

"어.."



어느새 이준형이 그의 앞에 떡하니 서 있었다.

그의 움직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알렉스가 속으로 놀라면서도 겉으로는 비웃음을 위장했다.



"뭐냐? 넌? 쥐새끼들의 대장이라도 되시나?"

"룰을 무시하고 타국의 대기실에 온 것도 모자라 모욕행위...간과할 수 없군."



이준형이 영어로 대답했다. 그러자 요놈 봐라? 하는 표정이던 알렉스가 히죽 웃었다.



"네놈 새끼가 간과할 수 없다면 뭐 어쩔건데?"

"어쩌긴? 주최측에 고발. 널 퇴장조취 시켜야겠지."



이성적이고 효과적인 대답. 내심 싸움을 걸기를 기대했던 알렉스는 상대가 걸려들지 않자 쳇 혀를차고 또 도발했다.



"한다는 게 이르는 거? 아직 엄마 젖이나 더 먹지 그..."

"뭡니까 당신."



그의 뒤에서 영어로 말하는 여성의 목소리에 알렉스는 뒤를 돌아보았고 곧 음흉하게 웃었다.



"이거 꽤 귀여우신데. 쥐새끼들만 있는 건 아니었어."



알렉스가 이준형에게서 떨어지더니 여성. 가은에게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어때? 오늘 나랑 데이트라도..."

"한 번만 경고합니다. 지금 당장 대기실로 돌아가세요."

"엉? 아가씨. 귀여운 얼굴 일그러뜨리지 마. 그리고 네가 화내봤자..."

"돌아가라고."



말끝에 가은의 기운이 마치 칼날처렴 변화하자 알렉스의 안색이 변했다. 그리고 그제야 그의 시야에 가은의 가슴에 달린 뱃지가 눈에 들어왔다. 주최측의 뱃지였다.

그리고 영어로 적힌 그녀의 이름도.




"...이가은"



평범한 이씨가 아니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다르게 부르도록 인정해주어 Lee가 아닌. 한국어 그대로 이.

한국은 무시해도 두 가문은 알고 있는 알렉스는 순순히 물러났다.



"그래. 과연...아까 그 아저씨 딸인가."



중얼대던 알렉스는 이미 자리에 앉아 등을 돌리고 있던 이준형을 힐끗 쳐다보더니 밖으로 나갔다.



"...후우. 짜증나네."



겉으로 드러내지 않다 뿐이지 세계대회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린다는 것이 배알이 꼴리는 자들은 더 있으니 알렉스같은 놈은 더 있을 것이다.


가은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흔들며 이준형에게로 다가갔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조취하겠습니다."

"아니 괜찮다. 적국의 실력도 알 수 있었고."

"아마 알렉스란 사람일겁니다. 미국에서 왔는데 상당한 실력자라고..."

"그런가?"



그 이상 관심 없다는 듯 끊어버린 이준형에게 가은은 의아함을 느꼈다.

예전에 그라면 알렉스를 이용해 어떻게든 가은에게 말을 걸려고 했을 것이다. 뭔가 말투도 짧게 바뀌었다.



"그런데 선배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만..."

"이가온이라면 걱정할 것 없다. 내가 시간을 벌지."

"...정말입니까?"

"내가 거짓을 말할 이유가 있나? 다른 방법도 없다."

"...조금만 시간을 끌어주십시오. 일이 잘 풀릴 경우. 후일 보답을..."



이준형이 고개를 저었다.



"그 녀석이 오는 게 내겐 보답이다."

"......?"

"그런데...시간을 끄는 건 괜찮다만, 이겨버리는 게 더 낫겠지?"



이준형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그가 무슨 심정인지 몰라도 확실한 변화를 느낀 가은은 놀람으로 얼굴을 물들였다.

가은은 곧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했다.













그 시각.

프랑스의 귀빈 대기실에서는 프랑스의 정부공인 순위권자 셋이 사이좋게 앉아 있었다.



"몇명 더 온다는데요..."



루카스가 힘이 없어 보이는 미헤유에게 말을 걸었다.



"칫. 와봤자 케인이랑 사이가 나빴던 놈들이잖아? 비꼬기나 해대겠지."


마음에 들지 않는드는 듯 과자를 입에 우겨넣던 헬렌의 폰이 띠리리 울렸다. 잠깐 하고 양해를 구한 헬렌이 쇼파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걸 지켜보던 루카스가 미헤유를 힐끗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미헤유 누님. 그렇게 신경쓰이면 전화를 해요."

"...시끄러운 거예요. 꼬맹이."



미헤유의 손에는 폰이, 그리고 폰에는 가온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떠올라 있었다.

통화버튼을 누르려던 엄지손가락이 멈칫하더니. 이내 폰을 닫아버렸다.


"...쳇. 우리나라가 선전하는 거나 지켜봐요. 기분전환이 될 테니."

"........."




두 명이 침묵하는 사이 .바깥에서 발랄하게 헬렌은 전화를 받았다.


"네에~헬렌입니다~"

[신이났구만. 암캐년이.]



전화너머로 들려온 매도의 말에 헬렌은 분노하기는 커녕 흥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주인님. 제가 뭘 하면 될까요?"

[오늘내로 '물품'이 도착할 거다. 다른 정부공인 순위권자놈들이 냄새를 맡지 못하게 잘 차단해.]

"네엡~"

[그리고...방금 전 말했던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

"호오? 물품보다도요?"



헬렌의 주인, 재무진이 그 물품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는 그녀로서는 의외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가온, 그 자식을 잘 감시해라.]



어리둥절해 하던 헬렌이 곧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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