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독점 공이(firing pin)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연재 주기
클랭지
작품등록일 :
2017.07.07 18:21
최근연재일 :
2017.10.20 03:09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4,595
추천수 :
55
글자수 :
131,840

작성
17.08.07 22:49
조회
115
추천
4
글자
13쪽

6-3. Crossroad

DUMMY

6-3



"그래서 영우가 뭐, 어디 빠져 죽기라도 할 것 같아요?"


지수가 툭 내뱉었다.. 민준은 대수롭지 않게 주변에 있는 돌 부스러기들을 골라냈다.


"단순히 겁주려고 한 얘기가 아니야. 내말은, 알 수 없는 일에 결과적으로 영우와 비슷한 증상이 있는 사람이 말려들었다는 거지."


"어떤 꼬락서니로 어떻게 죽었건, 그게 영우랑 무슨 상관이람? 그저 의지박약으로 자살한 인간을 억지로 갖다 붙이지 마요."


민준이 살짝 미소했다.


"너무 예민하게 그러지 마라. 나도 영우가 걱정돼서 한 말이야. 나 같은 사람들은 자그마한 실마리라도 있으면 어떻게든 엮어보려고 하거든."


지수가 입을 삐쭉 내밀고, 괜히 주변을 거닐었다. 영우는 민준의 얘기에 처음에는 약간 오싹했지만,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닌 우연일 뿐이라 괘념치 않았다. 민준은 손바닥 반만 한 돌 조각을 집어 사이드백에 넣고 다시 앞을 향해 손짓했다. 평소 챙기는 예비배터리의 3배 분량을 들고 온 터라, 꽤 멀리까지 나갈 모양인 듯 했다.


3시간 쯤 걸었을까, 민준이 처음 와보는 곳인 듯. 배낭에서 기다란 쇠못과 망치, 빨간색 노끈을 꺼냈다. 걸어온 방향을 눈으로 재고 화살표를 만들어 못을 박더니, 노끈으로 못과 못 사이를 둘러 묶었다. 그러고는 얇은 접이식 막대를 꺼내 빨간색 삼각천을 매달아 깃발을 만들고, 화살표 옆에 깊게 박았다.


"음... 여기가 그러니까."


수첩을 꺼내 한참 뒤적거린다.


"찾았다. B방향에 130번째 깃발이니까, 여긴 이제 B-130지역이다."


짧은 몽당연필로 대충 적어내고, 수첩을 다시 안주머니에 넣었다. 배터리 잔량을 체크하니 주황불빛이 깜빡인다.


"잠깐 여기서 배터리도 교체할 겸, 쉬었다 가자."


민준의 말에, 두 명은 그 자리에 풀썩 앉았다. 영우가 꺼내주는 물병을 받아 한 모금씩 마시고, 각자 예비배터리를 꺼냈다. 배낭 우측에 달려있는 두 개의 배터리 소켓 중 비어있는 곳에 꺼내든 예비배터리를 끼웠다. '찰칵' 하고 결합되는 소리와 함께 주황불빛이 초록색으로 변했다. 다 사용한 배터리는 분리해서 다시 배낭에 넣었다. 이곳은 돌 부스러기 뿐 아니라, 나무 조각이나 자연석의 조각 등이 부분적으로 보였다. 높은 건물이 있었던 지역은 아닌 것 같다. 민준은 한 발씩 다리를 펴고 일어섰다.


"참, 잔인한 일이 일어났어."


'그날'에 대한 얘기일 것이다.


민준은 천천히 걸음을 내딛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비산하게 흩어진 콘크리트 조각, 유리알맹이들, 나무 조각이 어우러져 마치 잡탕처럼 어지럽게 섞여있다. 붉은 구체들이 퍼져가며 생겨난 결과물들이다. 전 세계로 퍼진 붉은 구체들은 각각 지금 위치한 곳까지 움직이며 강력한 음파를 뿜어내 주변의 것들을 파괴해나갔다. 불과 인간이 걷는 속도보다 조금 빠른 정도로 이동하는 구체를, 움직일 수 없는 것들은 피할 수 없어 그대로 바스라 졌다.


애잔한 눈빛으로 걷고 있는데, 멀찌감치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 같은 광경이 보였다. 새까만 것이 보통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민준이 급하게 뛰어나가자, 영우와 지수도 뒤를 따라 붙었다. 배낭만 20kg 가까이 되는지라, 빠르게는 뛸 수는 없었다. '헉헉' 하고 숨찬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들린다. 멀리 있던 까만 점이 가까이 가면서 점점 커졌다. 생김새가 비슷한 다른 것들도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사람들의 달음박질이 조금씩 느려졌다. 민준 뿐 아니라, 영우와 지수도 마찬가지였다. 뛰는 듯 걷다가, 어느새 신중하게 다가가고 있었다. 다급한 표정은 경계심으로 굳어져 긴장감마저 느껴졌다. 민준이 쓰러져있는 것을 발로 툭 건드렸다. 팔 모양의 그것은 부셔지듯 떨어져 나갔다. '바스락'거리는 것이 마치 바싹 타버린 장작 같았다.


"다 타버린 것 같은데요. 사람... 맞죠?"


영우의 말처럼 그것은 타버린 시체처럼 보였다. 총 세 구였는데, 누군가는 얼굴을 감싸고 있었고, 누군가는 팔을 앞으로 내저은 채 그대로 타버린 모양이었다. 민준은 침중하게 주변 상황을 살폈다. 시체 주변을 발로 살짝 파보기도 하고, 쓰러진 방향, 죽어간 순서 등을 추측해 보았다.


"둘 다, 이 주변 좀 조사해줄래? 뭐든 좋으니까 특이한 게 보이면 말해줘."


그 말에 영우와 지수도 여러 부스러기들을 헤집으며 탐색하기 시작했다. 반경을 30미터 정도로 넓혀서 다시 조사할 쯤, 영우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 이건 좀 특이한데요? 쇠파이프가 이렇게 멀쩡한 상태일리는 없고."


"여기 부엌칼도 있어요."


지수도 쇠파이프가 발견된 곳 근방에서 칼을 찾았다. 영우가 곧바로 뭔가를 찾아냈는데, 단순히 나무막대를 깎아 만든 창이었다. 모두 시체와는 거리가 있지만, 한 방향에서 발견되었다. 무기로 보이는 것들과, 검게 타버린 시체. 민준은 코를 긁적거리며 영우와 지수를 뒤에 두고, 무기가 발견된 쪽으로 경계하며 걸어갔다.


또 한 구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민준은 슬금슬금 시체 옆방향으로 돌아갔다. 지수는 곰처럼 통통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이 왠지 우스꽝스러웠으나 긴장된 분위기에 굳이 말로 꺼내진 않았다. 시체는 멀찍이 떨어져있는 것들과 상태가 비슷했다. 민준은 쪼그려 앉아 시체를 자세히 관찰했다. 이번 시체는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그 말은 거꾸로 덜 탔다는 말이 되기에 끔찍하기로는 아까의 그것들은 비교도 되지 않았다. 잔뜩 일그러진 피부, 검게 그을린 부위 사이로 퍼렇게 죽은 살색이 조금씩 보인다. 시체는 엎드려 있었고, 한쪽 팔을 쭉 뻗은 것이 꼭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 듯 보였다. 시체의 등에는 잔뜩 무언가에 찔리거나 베인 흔적이 있었다. 민준은 시체를 밀어 뒤집었다. 경악한 표정. 꽉 다문 입. 민준은 시체를 보다 자기도 모르게 '어?' 하는 소리를 내었다. 영우가 슬쩍 곁눈질로 시체를 보며 다가왔다.


"뭔가 아실 것 같아요?"


"아니, 음..."


민준이 시체의 몸, 얼굴, 팔을 차례대로 눌러봤다.


"역시... 이쪽 팔은 타지 않았어."


"네?"


"덜 타 죽었나보죠. 그만 보고 다른데 가요."


지수는 못 참겠다는 듯이 헛구역질 하며 멀찍이 떨어졌다.


"아니, 이거 봐. 오른팔은 완전히 타버렸어."


민준이 오른팔 부위를 누르자, 타버린 살점이 떨어져 나왔다. 지수가 괜히 보다가 '우욱' 하고 다시 멀리 떨어졌다. 다시 민준이 시체의 쭉 뻗은 왼팔을 눌렀는데, 그을리긴 했어도 살점의 조직이 타지 않고 남아있어 쑥 들어갔다.


"왼팔만 너무 멀쩡해, 그리고..."


민준의 손가락이 시체의 왼팔을 따라 쭉 올라갔다.


"이건 뭐지, 대체?"


왼손바닥은 쫙 펴있었고, 그 근처가 유독 하얀 재가 많이 뿌려져 있었다. 재와 그 주변을 손가락으로 찍어 휘저어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일어섰다.


"이 부분만 이렇게 타버리다니... 믿기지가 않네."


"좀 이해가 안 되는데, 뭐가 그렇게 특이한 거예요?"


"더 앞으로 가보자."


민준은 묵묵부답으로 시체가 손을 뻗은 방향으로 다시 걸었다. 지수는 멀리 떨어져 있다가, 바로 따라붙었다. 불과 20미터 쯤 걸어갔을 때 맨홀 뚜껑이 하나 보였다. 민준은 영우와 지수에게 잠깐 대기하라고 말하고, 혼자 조심히 걸어가 뚜껑을 열어 재꼈다. 손전등을 켜서 아래쪽을 잠시 살펴보더니, 사다리를 통해 내려갔다.


"뭐야 대체, 왜 저렇게 무게 잡는 거야?"


"글쎄..."


민준이 다시 올라오는 소리가 '통통' 하고 들렸다. 갑자기 민준의 몸이 쑤욱 올라오더니 그대로 엎어졌다. 팔을 허우적거리는 게 보통상태가 아니라 영우와 지수가 달려가 끌어올렸다. 민준의 얼굴이 잔뜩 굳어있었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고, 바둥거리면서도 영우의 팔을 붙들고 겨우 구멍에서 나와 앉았다. '후우후우' 하고 숨을 계속 몰아쉬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옆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봤다.


"뭐예요? 뭘 봤길레 잔뜩 쫄아서는..."


"장난 아니야... 미친놈들. 우웩."


지수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구역질을 했다. 지수가 '에이 씨' 하며 재빨리 물러섰다. 민준은 지수를 기대려다 헛손질 하고 그대로 엎어지고, 뻘쭘하게 '흠흠' 헛기침 하며 다시 일어났다.


"영우야 여기 뚜껑 좀 같이 닫자."


맨홀뚜껑을 같이 밀어 닫자 그제야 긴장을 풀고, 뒤로 젖혀 앉는다. 그리고 자신이 본 것과 생각한 것을 차근차근 얘기하기 시작했다.


"일단, 아까 봤던 시체들. 네 사람은 전부 이 맨홀뚜껑 아래 살던 사람이 분명해. 게다가 수십 명이 아래 있었어."


영우와 지수는 '아' 하고 받아들이다, 곧 경악했다. 아래는 뻔하다. 사람이 살만한 곳도 아니며, 지하철역과는 달리 식량을 구할 만한 곳도 없다. 6년간 저런 곳에서 살았다고? 믿기지 않는다.


"우왕좌왕하다 숨어들어갈 곳이 없어 급한 김에 이곳으로 들어갔을 걸."


평정을 찾은 듯, 이젠 제법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아래는... 완전히 지옥 같은 곳이더군. 피 썩은 냄새,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사람의 뼈, 서로를 잡아먹고, 죽이고 죽이다보니 살아남은 사람이 없어보였어. 상태가 가장 괜찮은 사람은 뚜껑 바로 아래쪽에 죽어있던 사람이었어. 그냥 굶어죽은 것 같더라."


"6년간 서로를 잡아먹으면서 살아왔다는 거예요?"


"상태를 보니까,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어보이진 않아. 아마도 최대한 식량을 챙겨 내려갔겠지. 역과 같은 좀 더 안전한 곳은 여기서 가기엔 길이 막혀 수가 없었을 거야. 그리고 아까도 그렇고, 내려간 곳에서도 시체들을 보니까 비교적 최근에 죽었어."


목이 갑자기 잠겨 '켁켁' 거리자 영우가 물통을 꺼내 건넸다. 한 모금 들이킨 민준은 지나온 곳을 돌아봤다.


"아래 시체들중 최근 것들은 아까 것들과 마찬가지로 전부 타죽은 상태야. 아까 말했던 굶어죽은 사람만 멀쩡하더라."


콧속이 근질근질해, 손등으로 한번 쓱 훔친다.


"대충 상황을 생각해봤는데...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어서, 말하기가 좀 그랬어. 덕분에 저런데 까지 내려갔다 왔는데."


맨홀뚜껑을 보고 새삼 아래쪽의 광경이 떠오르는지 또 '우웩' 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그러고는 짐을 챙겨 영우와 지수에게 따라오라고 지시했다. 다시 연구소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일단 식량이 떨어지고, 대충 눈치가 맞는 사람들이 작당해서 한명씩 습격해 잡아먹은 것 같아."


영우와 지수는 예전 자신들이 지내던 곳이 생각나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렸다. 민준은 생각하던 것을 스스로 정리하는 듯 이리저리 손짓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던 중, 몇 주 전 한명이 찍혔어. 그 사람은 몸에 칼을 맞으면서도 저항을 했지. 그리고 어떻게든 저항을 해서 바깥에 나왔어. 아마, 잡혀 먹히느니 바깥에 나와 펄스에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나봐. 그래서 안에 있는 사람들을 뭔가로 불태우고, 뚜껑을 열고 나와 버린 거야. 여긴 영향력이 그래도 낮은 곳이니까 몇 십 초 정도는 죽지 않고 버틸 만 했어. 그런데, 안에서 세 명이 따라서 쫓아 나왔어. 더 이상 식량도 없으니, 말 그대로 목숨을 건 사냥이었을 거야. 그런데, 무기를 든 세 사람이 쫓던 사람에게 갑자기 뭔가로 타 죽었어. 꼼짝도 못하고 당할 정도로 강한 불이 틀림없어. 무기도 버리고 달아나다가 얼마 못 가 죽었어. 펄스에 죽기도 전에."


한참 말을 쏟아내며 걷던 민준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사냥감이었던 사람은 그렇게 십 몇 명을 뭔가로 태워죽이고는, 있던 곳으로 급히 돌아갔지. 결국 돌아가진 못했지만, 갔더라도 아마 열 수 없었을 거야. 뚜껑 아래 가장 마지막에 죽었던 사람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뚜껑을 꽉 쥐고 열어주지 않았을 테니까."


배고픔과 두려움에 웅크린 채 죽어있는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극한의 공포. 잔뜩 질린 표정이 죽기 직전까지 그 사람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일행은 어느새, 아까 왼손을 뻗은 채 죽어있는 시체까지 돌아왔다. 민준이 잠깐 멈춰서 다시 시체를 내려다 봤다.


"이 사람은 여기까지 돌아왔을 쯤, 이미 펄스에 장기가 상해 일어설 수 없었어. 죽기 싫어 몸부림 쳐도 어쩔 수 없었겠지. 숨이 끊어진 순간. 이 사람이 가지고 있던 것은 이 사람을 그대로 불태웠어. 한 손만 남기고..."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다시 타지 않은 왼손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아까부터 이해가 안가. 이사람 주변에는. 이를테면 화염방사기같은 것도 없고, 심지어 발열체가 될 만한 그 어떤 것도 없어."


손을 털고 다시 일어섰다. 영우와 지수는 민준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묵묵히 뒤따랐다.


"어떻게... 불을 만들었을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공이(firing pin)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1 10-2. The Messiah Will Come 17.10.20 22 0 11쪽
30 10-1. The Messiah Will Come 17.10.13 31 0 10쪽
29 9-3. 새로운 여행 17.10.09 31 0 9쪽
28 9-2. 새로운 여행 17.10.04 44 1 13쪽
27 9-1. 새로운 여행 17.09.23 62 1 9쪽
26 8-8. Take me home +2 17.09.15 67 2 11쪽
25 8-7. Take me home 17.09.09 78 1 10쪽
24 8-6. Take me home 17.09.04 77 0 9쪽
23 8-5. Take me home 17.09.03 89 1 10쪽
22 8-4. Take me home 17.09.02 85 1 8쪽
21 8-3. Take me home 17.08.30 94 1 9쪽
20 8-2. Take me home 17.08.27 93 1 9쪽
19 8-1. Take me home 17.08.26 97 1 11쪽
18 7-3. Made in heaven 17.08.25 106 1 8쪽
17 7-2. Made in heaven 17.08.16 109 1 9쪽
16 7-1. Made in Heaven 17.08.15 109 2 10쪽
15 6-4. Crossroad +1 17.08.11 108 3 15쪽
» 6-3. Crossroad 17.08.07 116 4 13쪽
13 6-2. Crossroad 17.08.07 118 2 8쪽
12 6-1. Crossroad 17.08.04 121 2 9쪽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클랭지'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