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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공이(firing 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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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클랭지
작품등록일 :
2017.07.07 18:21
최근연재일 :
2017.10.20 03:09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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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글자수 :
13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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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30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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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8-3. Take me home

DUMMY

8-3



그들의 근거지는 1킬로미터 남짓,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단순히 정찰하다 영우들의 차를 발견했다는 말은 사실인 듯 했다. 날은 다른 때에 비해 청명한 편이라 꽤 먼 거리임에도 시야에 폐허에 가까운 건물이 보였다. 웬만한 학교 크기에 반 이상은 허물어져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었는데, 근처를 허술하게 만든 철조망을 둘러쳐놔서 제법 규모가 있어보였다.


철조망 안, 건물 밖에는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영우는 바깥에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을 본 것이 지난 6년간 처음 있는 일이라 굉장히 신선했다. 사람들은 각자 뾰족하거나 단단한 무기들을 들고 영우들이 타고 있는 차가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지켜봤다.


하나같이 굳은 표정에 무기의 끝을 이쪽으로 향하며 경계하고 있었다. 복장은 모두 비슷했다. 청바지와 곤색 남방에, 어디서 구했는지 육군 야전상의를 걸치고 있었다. 아마도 강원도 군부대의 보급창고가 무사한 곳이 있었던 것 같다. 얼굴 한쪽은 모두 위장크림을 바른 듯 검은색으로 분칠이 되어있다. 지난 밤 지수에게 야멸차게 얻어맞은 남자. 성진도 피를 닦아내며 지워졌겠지만 무리를 보고 추측컨대, 분명 비슷한 몰골이었을 것이다. 일중은 십몇 년 전의 썩 좋지 않았던 군 시절이 떠올라 굳이 저런 것을 입었어야 했나 싶었다. 철조망 문을 반쯤 걸치고, 차를 세워 성진이 내려서 가장 앞에 나와 있던 사람에게 다가가 일중일행에 대한 말을 했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그 사람은 미심쩍은 눈으로 여기저기 상해있는 성진과 조금 떨어져있는 일행을 번갈아 보다 다가왔다.


"전부 차에서 내리쇼."


여전히 간격은 조금 벌려둔 채였다.


일중과 지수, 영우는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허리춤에 곤봉을 하나씩 차고 있었는데, 남자는 그것을 트집 잡았다.


"잠깐! 무기는 전부 놔두고 내려야지!"


일중과 영우는 순순히 그 말에 따라 곤봉을 차 안으로 던져 넣었는데, 지수가 곤봉을 꺼내 가볍게 쥐고 으르렁댔다.


"어이가 없네, 니네 몇 명이야? 누가 시발 총 들고 있냐? 쪽수도 많아가지고 뭘 쫄아서 그래?"


눈매는 사나워도 귀엽게 생긴 아가씨 입에서 갑자기 험한 말이 나오자 남자는 잠깐 입을 떡 벌리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도지사님 뵙고 싶다며? 우리는 외부에서 누가 오건, 무조건 비무장으로 들어와야 해. 이건 절대규칙이야."


"도지사?"


"도지사가 아직 살아 있었나 봐요?"


일행이 뜻밖이라는 듯이 쳐다보자, 성진은 얼굴을 조금 붉히고 답했다.


"그게 아니라... 얼마 전부터 단체장님을 도지사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 말에 지수가 배를 잡고 폭소했다.


"와하하하! 뭐야, 그냥 지 멋대로 그렇게 불러 달라는 거야? 대단하네. 크크큭."


일중은 웃지는 않았지만, 특이하다고는 생각했다. 나라 자체가 기능을 못하고 있는 마당에 도지사가 다 무언가. 그 부분은 여기 경계를 서고 있는 사람들도 같은 생각인지 민망한 표정이었다. 앞장서 대화하던 남자는 지수가 너무 웃어버리자 이젠 조금 화가 나서 들고 있던 막대기로 땅을 세차게 내리쳤다. 위협에 꿈쩍도 안하고 지수가 웃어대자 이젠 영우가 지수를 말렸다.


"만나기 싫으면 그냥 가!"


그 말에 지수는 웃음을 꾹 눌러 참는다. 억지로 여기까지 따라온 일을 망치긴 싫었다. 일중이 '자자' 하면서 부드러운 미소로 남자를 달래고, 영우는 지수의 손에서 곤봉을 빼서 차 안으로 던졌다. 남자는 개운찮은 표정으로 계속 일행을 노려보다 차를 철조망 바깥에 놔두게 하고, 안쪽으로 이끌었다.


건물 안에 들어서 계단을 올라가는데, 군데군데 무너져 내려 바깥이 휑하니 보였다. 겉만 보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어 일중이 떨리는 마음에 물었다.


"명색이 도지사인데, 관사가 조금 초라하네요."


"여기가 그나마 나아, 다른 곳은 전부 가루가 됐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3층에 다다르자 복도 끝에서 두 번째(끝의 방은 허물어져 사용할 수도 없었다)방으로 안내했다. 문을 세 번 두드리자 안에서 근엄하게 깔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지?"


"도지사님, 다른 지역에서 도시사님과 면회하려고 누가 찾아왔습니다."


문 안쪽에서 잠깐 덜그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약 1분여가 흐르고, 다시 목소리가 나왔다. 아까보다 좀 더 위엄 있는 목소리였다.


"들어오도록."


문이 열리자마자, 햇빛이 반들반들한 대머리를 스치고 일행의 눈을 찔러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의도한 연출이라면 그 나름으로 인상적이다. 잠깐 주춤해 있으려니 도지사라 불러달라는 사람이 점잖게 채근했다.


"뭐해? 멀리서 오신 반가운 손님들인데 자리로 안내하지 않고?"


안내한 남자는 고분고분 그 말에 따라 앞에 있는 테이블을 둘러싼 의자에 각각 앉혔다. 그러고는 도지사의 뒤에 시립해 섰다. 도지사는 50대 중후반쯤 되어 보였다. 풍채가 좋고, 눈 밑이 두툼한 것이 제법 도지사 이미지가 보인다. 도지사가 움직일 때마다 살짝 햇빛이 비쳐서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누추하지만 편하게 있어요. 처음 뵙겠습니다. 강원도지사 박문규 입니다."


자리에 일어서서 일행에게 다가와 무언가를 꺼내 허리를 살짝 숙이며 건넸다. 일중이 엉거주춤 일어서서 받아보니 손글씨로 직접 정성스럽게 만든 명함이었다. 일중은 기가 찼다. 적어도 이 박문규라는 사람은 진심으로 자신을 도지사로 여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수가 '누추하긴 하네' 하고 중얼거리다 영우가 옆구리를 툭 쳤다. 도지사는 숙인 자세에서 계속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다. 일중이 '아' 하고 손사래를 쳤다.


"죄송합니다. 제가 명함이 없어서..."


그 말에 문규는 약간 억지웃음을 짓더니, 허리를 피고 자리로 돌아갔다. 영우는 요즘 같은 때에도 명함 따위를 찾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수는 그저 상황자체가 관심이 없는 듯 의자에 푹 눌러 앉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래, 무슨 일로 여길 오셨습니까?"


일중은 일단 자신이 어디 소속이며, 무엇을 위해 이곳을 찾아왔는지 설명했다. 영우와 지수는 단순한 조수로 소개했는데, 영우의 능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문규는 미소를 머금고 가만히 이야기를 듣더니 무작정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 오시는 길에 혹시 저희와 차림새가 다른 분들 못 보셨나요?"


"네? 특별히 보지는 못했습니다. 여러분들과 불미스런 일이 잠깐 있었는데, 그때 뵌 분들이 여기 강원도에 와서 처음으로 만난 겁니다."


'그런가요?' 하며 양쪽 입꼬리를 좀 더 길게 찢는 것이 꼭 대룡과 닮았다고 영우는 생각했다. 대게 장이라는 사람들은 전부 이렇게 생긴 건가? 문규는 일어서더니 뒤쪽에 있는 책장에서 커피믹스 네 봉지를 꺼내 옆에 서있는 남자에게 줬다. 남자는 들고 나가 1분정도 뒤에 플라스틱 컵에 커피를 담아 얇은 책을 쟁반삼아 들고 왔다. 일행에게 한잔씩 돌리는데 지수가 '난 남이 주는 거 안 먹어' 하고 손을 내저었다.


잠깐의 정적 속에 커피를 후룩하고 마시는 소리가 다발적으로 들렸다. 일중은 시간을 길게 끌고 싶지 않아, 커피가 대충 식을 때쯤 한입에 마셔버리고 테이블에 '탁' 소리 나게 놓았다.


"말씀드렸지만, 용건은 간단합니다. 여기에 제가 가지고 있는 수신기를 설치할 수 있을까요? 가동되는 컴퓨터나 옛날식 단말기도 상관없습니다."


"음... 통신이라... 조오치요..."


문규가 한 모금 마시며 나긋하게 얘기한다. 흥미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하는 행동은 관심 없어 보였다. 일중은 그만 일어서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른쪽 팔걸이를 짚고 일어서는데, 바로 옆에 앉아있던 영우가 그대로 앞으로 엎어졌다.


"뭐야, 이런 씨..."


발작하던 지수에게 커피를 나눠주고 옆에 서있던 남자가 '지직' 소리를 내는 무언가로 갖다 대자, 파르르 떨더니 기절해 의자로 축 늘어졌다. 전기충격기였다.


일중은 입술을 뿌득 씹었다. 아릿하면서도 시원한 피가 흘러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흔들거리는 눈으로 문규를 보는데, 처음으로 사람이 참 재수 없게 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들립니까?' 하고 말하는 것 같은데, 대답을 할 수가 없다. 풀리는 의식을 억지로 모아 입모양으로 '개새끼' 하고 말하고는, 뒤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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