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독점 공이(firing pin)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연재 주기
클랭지
작품등록일 :
2017.07.07 18:21
최근연재일 :
2017.10.20 03:09
연재수 :
31 회
조회수 :
4,596
추천수 :
55
글자수 :
131,840

작성
17.10.09 01:13
조회
31
추천
0
글자
9쪽

9-3. 새로운 여행

DUMMY

9-3



정현은 크디큰 양손으로 무전기처럼 생긴 것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그것은 마치 옛날 무선전화기처럼 컸는데, 물리버튼은 <.>과 <->, 그리고 발신, 출력버튼만 있었다. 상단에 약 4인치 정도의 액정이 달려 있었고, 그것은 ‘그날’ 이전까지 사용하던 스마트폰과 달리 예전 폴더폰 시절의 녹색화면이었다. 상단 맨 위에 달려있던 녹색램프가 깜빡이며 액정에 수많은 점과 선들이 출력되었다. 정현은 화색이 되어 신기한 듯 손에 든 것을 머리위로 들어 올려 이리저리 둘러봤다. 옆에 있던 진웅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출력은 잘 되죠? 신호는 거의 공짜로 쓰는 셈이니까 그렇다 치고, 번역모듈은 못 심어서 일일이 해석해서 봐야 할 겁니다. 그래도 외벽이 특별히 두껍고 밀폐된 곳이거나, 지하만 아니라면 어디서든지 모스부호를 송수신 할 수 있을 거예요.”


“아니, 이정도도 사실 굉장한 거지. 여기저기 쓰레기 같은 부품 모아서 이런 거 만드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정현은 이번에는 송신하기 위해 열심히 점과 선으로 문장을 작성했다.


옆에서는 영우가 몇 개월간 넉넉하게 사용할 휴대용 배터리들을 챙기고 있었다. 훨씬 성능이 좋은 휴대용 중화기를 강원도에서 가져와 막 개조를 끝낸 기계들을 하나씩 켜보고 잔량을 확인했다. 아영과 지수는 반대편 책상에서 식량과 그 외, 여행에 필요한 물품들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냉랭하긴 해도 며칠 전처럼 지수가 아영에게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일중과 민준은 지도를 보며 경로와 중간 거점지를 찍고 있었다. 비행수단도 없고, 오로지 자동차로만 가야한다. 게다가 엄청난 거리 때문에 중간에 차를 버리고, 걸어서라도 반드시 도착해야 하는 길이다.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이 파괴된 이상 표지판은커녕 안내인도 바랄 수 없고, 두 달 안에 집결지에 도착해야 한다. 둘 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연구하고 있는 와중에 미묘한 기류마저 흐른다.


5인승 SUV차량에 누가 탈 것인가. 아영, 영우는 물론이고 지수를 영우로부터 떼놓기는 힘들었다. 정현은 덩치도 좋고 기계나 살인음파에 대한 지식도 해박해서 쉽지 않은 여정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모두를 이끌고 갈 선임자로 민준은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중이 같이 가고 싶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차량은 일중이 끌고 온 것이라서 빌려달라고 해야 할 판에 더욱 눈치가 보인다.


“...좀 더 위쪽으로 돌아서 가도록 하죠.”


상념을 일중이 깼다. 도로라고 부를 만한 것이 남아 있을지 의문이지만, 일중이 체크한 곳은 되도록 큰 도시를 관통하는 길이었다. 민준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머그잔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대부분 상태는 비슷할 테니, 방향을 크게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문제없을 것 같군요.”


일중은 엄지로 콧기름을 한번 쓱 훔치고 일어서서 뒷벽에 등을 기댔다. 민준은 한 모금을 더 들이켰다.


“이번 길에...”


“제가 빠진다면, 차도 없습니다.”


단호한 말에 ‘쯧’ 하고 민준은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찼다. 일중은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려 득의에 차 웃었다. 민준은 모두 달려들어 저놈의 차 시동키를 뺏어낼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전 그 발신지라는 곳이 굉장히 궁금합니다. 꼭 보고 싶네요.”


민준은 숨을 깊게 내쉬며 자기가 들고 있는 컵 안의 물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차 한 대만 더 있었더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고 더욱 안전한 길이 될 것 같은데...


멀찍이서 휴대용 단말기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정현이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땠다.


“제가 하는 역할이 크진 않으니까, 저 대신 일중씨가 가는 게 어떨까요?”


일중이 어깨를 쭉 폈다.


“자리가 났군요.”


민준이 두 쪽 눈을 모두 감고 피곤 때문에 아릿한 눈알 위 눈꺼풀을 손가락으로 비비적댔다.


“길이 매우 험합니다. 모두 파괴되어 폐허가 되어버렸다지만,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요.”


“정현씨 몫은 제가 하겠습니다.”


“푸훗! 뭐라구?”


가만히 옷을 개던 지수가 폭소했다. 정현을 일행으로 삼으려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몸을 쓰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 하물며 일중은 몇 개월간 여행에서 그런 일들을 전부 영우와 여자인 지수에게 맡기다시피 했었다. ‘퍽이나’라는 말이, 하도 웃겨 입 밖에 나오진 않았지만, 지수는 몇 분을 배를 잡고 킥킥거렸다. 일중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육체적인 일에 제가 별 재주가 없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우린 이능력자가 두 명이나 있고 듬직한 아마조네스 같은 분도 같이 가니까 크게 문제 될 건 없는 것 같은데요?”


지수는 ‘아마조네스’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본 터라 무슨 뜻인지 몰라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마디 쏘아주려는데 민준이 앞서 말을 꺼냈다.


“그럽시다.”


“네?”


“생각해보니 일중씨 말도 맞습니다. 같이 가도록 하죠. 내일 오전에 바로 출발 할 테니 정현씨가 맡은 일들 잘 인계받으시고요.”


시원하게 결정하고는 정현에게 눈짓했다. 정현은 단말기를 들고 입술을 쭉 빼는 일중에게 다가갔다. 지수는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흘겨보고는 그대로 아영이 하는 일을 트집 잡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영우는 마지막 배터리 잔량을 확인하고 전부 배낭에 우르르 쏟아 넣었다. 준비는 대충 끝났다. 뒤로 눕듯이 의자에 푹 눌러앉아 습관처럼 작은 돌조각을 띄워 왼손바닥 안에서 핑그르르 돌렸다.


지난 6년간의 생활이 새삼 꿈처럼 여겨진다. 몇 달 뒤엔, 정말로 모든 것이 끝이 날까?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초등학교도 마저 끝마치지 못했는데, 학교가 다시 세워질까?


온갖 상상들이 머릿속에서 부풀어 올랐다. 달콤한 바람은 입안에 맴돌아 침과 함께 삼켜진다. 눈이 감기고 옆에서 하는 말들이 자장가처럼 들렸다.


“...연료가 충분치 않아요. 식량은 좀 더 많이 챙겨야 합니다. 대부분의 생활을 캠프로 보내게 될걸요.”


“‘시안’? 차로 여기까지가 한계일까요?”


“아마 그럴 겁니다. 사실 이곳도 가는 도중 별일이 없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거죠. 걷고 노숙하는데 필요한 물품이 중요합니다.”


“그건 걱정 마세요. 물자는 충분 할 겁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이...”


민준과 일중은 끊임없이 크로스체크를 하며 앞으로의 험난한 여행에 있어 허술한 부분을 채워나갔다. 영우는 잠에 빠져들었다.








덜컹거리는 차 밖으로 어두컴컴한 밤이 보인다. 양 옆에 앉아있는 지수와 아영은 각자 자기 쪽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졸고 있었다. 카오디오 스피커에서는 탐 존스의 ‘Green green grass of home’이 잔잔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앞좌석 운전대를 잡고 있는 일중은 자그마하게 노래를 같이 흥얼거리고 있었고, 조수석의 민준은 한쪽 다리를 앞 대시보드에 올리고 한손을 그 다리위에 얹어 음악의 유순한 비트에 맞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아직 덜 부숴 진 건물의 잔해 근처에서 차를 멈춘 일중은 영우들을 깨웠다.


“몇 시간만 눈 좀 붙이고 갑시다.”


그러더니 차문을 열고 바깥에 나와 기지개를 크게 켰다. 나머지 일행도 밖에 나와 저린 근육들을 스트레칭으로 풀었다. 일중이 대뜸 일행들을 향해 키득거리며 허리를 숙였다.


“남조선 동무 여러분, 반갑습네다. 평양에 오신 것을 환영합네다.”


“어? 여기 북한?”


일중과 민준을 제외한 사람들은 잠이 팍 깨는 것을 느끼며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봤다.


대한민국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어차피 모두 산산조각 나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TV에서만 보고, 말로만 듣던 그런 곳에 왔다고 하니까 신비한 느낌이 든다. 일중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몇 시간을 꼬박 북을 향해 달렸는데, 딱히 막히는 곳도 없고 도로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서 말이지.”


이곳 사람들은 얼마나 살아남았을까.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민준이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참 시간 내 가기 만만치 않겠구만, 이제 겨우 여기까지 왔다니. 생각보다 빡빡한 일정이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공이(firing pin)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1 10-2. The Messiah Will Come 17.10.20 22 0 11쪽
30 10-1. The Messiah Will Come 17.10.13 31 0 10쪽
» 9-3. 새로운 여행 17.10.09 32 0 9쪽
28 9-2. 새로운 여행 17.10.04 44 1 13쪽
27 9-1. 새로운 여행 17.09.23 62 1 9쪽
26 8-8. Take me home +2 17.09.15 67 2 11쪽
25 8-7. Take me home 17.09.09 78 1 10쪽
24 8-6. Take me home 17.09.04 77 0 9쪽
23 8-5. Take me home 17.09.03 89 1 10쪽
22 8-4. Take me home 17.09.02 85 1 8쪽
21 8-3. Take me home 17.08.30 94 1 9쪽
20 8-2. Take me home 17.08.27 93 1 9쪽
19 8-1. Take me home 17.08.26 97 1 11쪽
18 7-3. Made in heaven 17.08.25 106 1 8쪽
17 7-2. Made in heaven 17.08.16 109 1 9쪽
16 7-1. Made in Heaven 17.08.15 109 2 10쪽
15 6-4. Crossroad +1 17.08.11 108 3 15쪽
14 6-3. Crossroad 17.08.07 116 4 13쪽
13 6-2. Crossroad 17.08.07 118 2 8쪽
12 6-1. Crossroad 17.08.04 121 2 9쪽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클랭지'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