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의 시작 (3)
“네?”
“말했잖아. 어제에 비해서 너무 형편없어.”
그렇게 말하는 사이 르위릴의 세검이 재차 팟! 하고 찔러들어왔다.
그에 당황하여 그것을 옆으로 쳐낸 나였지만, 막히기 직전 거짓말처럼 뒤로 물러난 세검은 역으로 휘둘러지며 내 칼을 크게 쳐내버렸다.
그 모든 게 한 가지 동작인 것처럼 한 치의 막힘없이 부드러운 공격이었다.
온몸에 힘을 꽉 주며 버텼기에 칼을 놓쳐 버리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 이미 나와 르위릴의 수준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들통나는 데에는 충분했다.
“이상한데? 혹시 무슨 부정 행위라도 저지른 거 아냐?”
그렇게 말하며 눈초리가 가늘어지는 르위릴이었다.
그에 나는 솔직히 억울한 심정이었다.
수준이 낮아진 게 아니라 난 원래 처음부터 이 수준이었다.
물론 르위릴이 저런 말을 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그러나 어제 그나마 르위릴과 엎치락뒷치락할 수 있었던 이유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합을 미리 짜 뒀기 때문이었다.
복습과 경험과 계획.
그 세 가지 요소가 정확히 들어맞았기에 겨우겨우 그녀의 수준에 맞출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순수하게 실력으로 상대해 보라고 한다면 상대하고 뭐고 없이 그녀의 진심 찌르기 한 방에 나가떨어져서 명치를 부여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일이 그런 사실들을 다 늘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나는 ‘몸이 아직 덜 풀려서······.’ 하는 구차한 변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르위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물론 그런 내 궁색한 변명을 믿어 주는 기색은 결코 아니었지만, 다행히 그 이상 파고들며 캐묻진 않았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몸이나 풀 겸 운동이라도 해 볼까?”
그렇게 말하며 르위릴은 세검을 들고 있던 손목을 털어 보였다.
그에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르위릴 프렌디아와 칼싸움을 벌일 바에는 차라리 힘든 운동을 하는 것이 나았다.
게다가 운동이라면 그동안 나름 빡세게 해 왔던 나였기에 꽤 자신도 있었다.
“그럼, 그렇게 하죠.”
그렇게 말하는 나에게 르위릴은 슬쩍 웃음을 지었다.
“좋아. 대신 오러 수련에 필요한 일이니 절대로 대충 하면 안 돼.”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미소에서 슬쩍 미소가 드리워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솔직히 얼마나 힘들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르위릴이 말하는 ‘운동’의 시작은 칼을 휘두르는 것이었다.
이왕 몸을 써서 운동을 하는 것이니, 내가 검을 잡는 자세까지 잡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에서였다.
나야 환영이었기에 옳다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동년배의 여자애한테 검술 지적을 받는다니, 원래라면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을 일이다.
하지만 전에 말했듯 내 자존심은 나보다 약한 놈을 상대로만 발동되기 때문에, 서로의 실력 차이를 알고 있는 지금은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다.
“흠, 많이 심각하네.”
그리고 내가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본 르위릴의 첫마디가 이것이었다.
잠시 동안 내 모습을 지켜보던 르위릴은 이내 천천히 내 팔다리의 위치를 짚어 주기 시작했다.
그에 상당히 엉거주춤한 자세가 나왔지만, 그래도 일단 좋다고 하니 최대한 그 자세를 유지해 보려 하며 검을 휘둘러 댔다.
그러나 조금 더 내 모습을 바라보던 르위릴은 슬쩍 인상을 찌푸리더니,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음, 내가 잘못 생각했네. 그냥 자세 다시 잡고 편한 대로 휘두르는 게 좋겠다.”
“갑자기 또 왜요?”
어지간하면 순순히 따르기로 했던 나였지만, 이렇게 금방금방 말을 바꿔 버리는 것에는 참지 못하고 그런 말을 던졌다.
그에 르위릴은 슬쩍 내 팔을 만져 보더니 말했다.
“이건 자세의 문제가 아니니까. 그냥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제대로 모르고 있어.”
“그건 또 뭔······.”
개소리야, 라고 나오려던 뒷말을 꾹 참았다.
그러나 르위릴의 말은 거기서 끊겼다.
그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하긴, 원래 이런 성격이긴 했다. 듣는 사람이 알아듣건 알아듣지 못하건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뱉고서 등 돌리는 스타일, 그게 바로 르위릴의 대화법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떠오른 그런 사실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차차 알게 될 테니, 일단 휘두르던 거나 계속하는 게 좋겠다.”
그 말에 나는 씁, 하고 입술을 말아 넣었다.
하지만 차마 그런 불만을 입 밖에 낼 자신은 없었기에, 나는 다시 말없이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칼을 휘두르던 나였다.
정확히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지도 알지 못했다.
한 가지 자세로만 칼을 휘둘러 댔기에 팔다리 할 것 없이 온몸이 후들거리고 있었다.
그 고통스러운 시간 동안 들려오는 소리는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헐떡이는 소리뿐이었다.
처음엔 좀 민망한 기분이 들어서 그런 것들을 참아 보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무거워져 가는 팔의 무게에 어느 순간 그런 것들은 신경 쓰지도 않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 끝나는 것인지 힐끔힐끔 르위릴의 얼굴을 훔쳐보며 필사적인 눈빛을 보내고 있을 때, 드디어 기다리던 르위릴의 입이 열렸다.
그러나 그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내가 기다리던 말이 아니었다.
“1분 쉬자.”
미친년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꺼낼 틈도 없이 나는 곧바로 칼을 놓고서 바닥에 쓰러졌다.
“1분 뒤에 바로 시작할 거야.”
얼마 만의 휴식인가.
비명을 질러 대는 것도 모자라 낼 수 있는 모든 땀을 헐떡이며 쏟아 내는 몸이었다.
불평이나 대꾸 같은 것을 할 새도 없었다.
비유나 표현 같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럴 틈이 없었다.
그 거친 헐떡임이 조금이나마 가시기도 전에 르위릴은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자, 일어나. 운동 계속해야지.”
그 말에 나는 르위릴을 원망과 애원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르위릴은 전혀 미동조차 하지 않는 얼굴로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 와중에 웃긴 건, 절대 움직일 수 없는 몸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르위릴이 시키니까 또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미치겠네, 진짜······.”
힘들겠다 힘들겠다 생각만 했지, 진짜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다.
팔다리의 힘이 완전히 빠져 버려 축 늘어져 버린 몸이었다.
그것을 정말 억지로 일으켜 세운 나에게 르위릴은 작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말했다.
“많이 힘든가 보네. 그래도 오러를 익히려면 어쩔 수 없어. 이 수련법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계까지 힘을 빼 두는 것이 좋거든.”
“그게, 씹··· 뭔······.”
그러나 무슨 말을 꺼내기에는 내 몸에 남아 있는 체력이 현저히 부족했고, 그 체력으로는 헐떡이는 숨을 유지하는 데만도 벅찼다.
결국 대꾸를 포기해 버린 나는 잠자코 르위릴이 하는 말을 듣고 있기로 했다.
“여기에 대해선 조금 강제적인 방법이 필요해. 겨우 운동을 시작할 조건이 갖춰지기도 했고······. 그러니 너무 원망하지는 마.”
대체 무슨 소리인지 감도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설명은 필요 없었다.
천천히 자신의 허리춤에 달린 세검을 꺼내 들고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르위릴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설마, 하는 중얼거림을 흘렸다.
그리고 이내 그 몸에서 서서히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눈에 들어올 때 즈음.
휘익!
아무런 전조 없이 순식간에 휘둘러져오는 그녀의 검을 피해 낸 나였다.
“진짜 씨발······.”
설마설마 했지만, 그 설마가 정말이었을 줄이야······.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 가차없이 휘둘러져 오는 르위릴의 검을 피해 몸을 돌린 나는 반대쪽으로 쭉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그녀가 말했던 진정한 ‘운동’이 막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헉··· 헉······.”
그렇게 한참 동안을 달아나다가,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혓바닥 하나 꿈틀할 힘까지 모조리 뽑아낸 뒤에야 겨우 운동의 끝을 볼 수 있었다.
중간중간 너무 힘들어서 쓰러진 적도 여러 번이었지만, 어떻게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지 정말로 몸속의 모든 힘을 끄집어낼 때까지 나를 몰아붙여 댄 르위릴이었다.
정말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숨을 들이고 뱉는 그 간단한 움직임조차 낑낑댈 만큼 엄청난 강도의 운동.
“이제야 겨우 다 뺐네.”
그러나 그런 나와 똑같은 수준으로 움직였을 르위릴의 목소리는 너무도 평온했다.
마치 가벼운 운동이라도 했다는 듯이 후, 하고 가볍게 숨을 내뱉는 르위릴이었다.
오러의 힘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이렇게 움직여 놓고 땀 한 방울 안 흘리는 그 모습에 르위릴에 대한 인식이 더욱 확고해졌다.
절대로, 정말 절대로 저 여자랑 결혼 그 비슷한 일이라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뭐 생각은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인식이었지만 이젠 정말 일말의 재고도 없다.
나자빠져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사이, 세검을 허리춤에 건 르위릴이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바닥에 쓰러진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헐떡이고 있는 내 몸을 서서히 일으키기 시작했다.
지금 뭘 하는 거냐고, 차마 그렇게 말할 체력도 없어서 나는 가만히 나를 일으키는 르위릴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냥 가만히 일어서만 있으면 돼.”
그리곤 그렇게 말하는 르위릴이었지만, 내 몸은 이미 한계였다.
힘을 넣으려고 해도 어디로 힘을 넣어야 하는지, 아니 아예 넣을 힘 같은 것조차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슥, 르위릴이 손을 놓자마자 그대로 무너져 내리는 내 몸이었다.
그에 르위릴이 재빨리 내 몸을 받아들고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말했지? 넌 힘쓰는 법도 모르고 있다고.”
그렇게 말한 르위릴이 내 허리를 꽉 붙잡았다.
아니, 단순히 꽉 붙잡는 것만이 아니었다.
꽉 붙잡은 손을 따라 무언가 뜨거운 기운이 서서히 나에게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허리에 주입된 뜨거운 기운이 순식간에 움직이며 온몸으로 뻗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기이한 느낌에 내 입에서 절로 헉!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미 다 긁어내고 남아 있지 않을 기력이 갑자기 생겨난 느낌이었다.
“그게 오러라는 거야. 몸에 있는 힘이 그것밖에 없으니 좀 더 느끼기 편하지?”
그런 르위릴의 말에 나는 꼴깍, 하고 침을 삼켰다.
이게 오러라고?
한편으론 이것 때문에 그렇게 죽어라고 뛰어다녔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오러라고 하는 것에 가지고 있는 기대는 그런 회의감을 전부 덮어 버리고도 남았다.
나는 곧바로 내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그 뜨거운 기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전신으로 퍼져 나가던 그 뜨거운 기운은 어느새 다시 허리춤으로 모여들어 있었다.
“좀 강하게 넣어 줬으니 오러를 느끼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야. 이제 그걸 천천히 움직여 봐.”
그 말에 나는 재차 그 뜨거운 기운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나 아무리 움직이려 해 봐도 그 뜨거운 기운은 허리춤에 딱 달라붙어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에 나는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지도 못하는 것을 움직이려 낑낑거리고 있으니 온몸에 좀이 쑤실 지경이었다.
르위릴은 아무 말없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사용법이라든가, 설명이나 힌트라도 알려 주면 어떻게라도 해 볼 텐데 그냥 툭 던져 놓고 해 보라는 그녀가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한참을 낑낑거리다 슬슬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때였다.
그때까지도 아무런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던 르위릴이, 내 허리를 받쳐 주던 손을 빼더니 나를 툭 밀쳐 버린 것이다.
그 순간 내 입에서 헉,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마치 그 찰나의 시간이 느려진 듯한 기분이었다.
서서히 기울어지는 시야와 풍경에 내 머리가 한순간 멍해졌다.
파앗······!
그리고 기울어지는 몸에 마지 자동으로 다리가 반응하듯 본능처럼 움직이기 시작한 오러였다.
- 작가의말
제대로 된 오러 수련에 들어가기 시작했군요.
주인공이 성장하게되는 가장 기초적인 발판이 만들어지는 순간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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