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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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Nu.T
작품등록일 :
2017.08.31 23:24
최근연재일 :
2019.07.2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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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08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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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116. 질문하지 마십시오

DUMMY

황궁에서 날아오른 전서구들은 언제나의 훈련대로 북동쪽을 향해 날아갔다.


단, 그 수가 평소에는 딱 세 마리로 한정되던 것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황궁에서 대규모 비둘기 양식장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양!


하지만 구름처럼 떠오른 비둘기떼는 제도를 벗어나기 전에 수십 수백 갈래로 쪼개지면서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 모두의 진로방향은 모두 북동쪽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이틀 뒤 반데스트 제국 국경을 넘어간 비둘기들은 본격적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진행방향에 있는 세 국가인 폴가, 친첸, 모스카 왕국 내에 들어서는 순간 황궁을 출발한 비둘기들이 정확히 3분의 1씩 목적지에 착지했다.


그들 중 특히 목에 제국 황실의 전서구임을 증명하는 표식을 달고 있는 세 마리는 각 왕국의 수도에 위치한 제국 대사관으로 날아들었다.


무사히 도착한 전서구들은 담당자에게 배달한 서신을 내주는 대가로 맛있는 먹이를 얻어먹으며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그들이 실고 온 내용은 결코 평온함을 가져오는 내용이 아니었다.


대사관으로 향한 전서구들이 전달한 서신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대사관에 있는 인원들에게 전하는 내용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각 대사관이 설치된 왕국의 왕실에게 보내는 답장이었다.


하지만 그 서신은 바로 전달되지 못했다.


원래부터 전서구의 특성상 빠르긴 하지만 중간에 가로채거나 바꿔치기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기에 검수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다행히 전해진 서신들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무사히 왕궁에 전달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머리는 장식?=


너무나도 선명한 빨간색으로 찍힌 제국의 국새와 함께 적힌 내용은 그게 다였다.


그야말로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격언을 그대로 실천한 막말이었다.


덕분에 친첸 왕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의 국왕은 물론이고 귀족들도 격노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하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즉시 자국의 기사단을 움직였다.


기사라고 해도 자세한 내막을 모두 알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주군인 국왕의 분노를 접한 그들은 수도임에도 말을 채찍질하여 대사관을 급습했다.


그러나 도착한 텅 빈 대사관에서 그들을 맞이한 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독한 술냄새였다.


*


사건의 전말은 사흘 전.


그러니까 대사관에 전서구들이 도착한 날로 돌아간다.


제국 황실의 표식을 달고 국경을 넘은 세 마리와 달리 어떤 표식도 갖고 있지 않은 비둘기들도 자신들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지만 대사관처럼 화려한 건물이나 국가적인 기관은 아니었다.


흔히 비둘기를 볼 수 있는 장소 혹은 비둘기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일부 전서구들은 마치 이곳이 제 영역인양 원래 있던 비둘기 무리 속에 섞여들어가기도 했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참으로 다양했다.


대로변에 있는 유명한 의상실이기도 하고,


분수가 있는 광장이기도 했으며,


뒷골목에 차리한 술집과 도박장이거나,


대형 상단의 지부나 아카데미 안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비둘기 중 한 마리가 향한 곳은 친첸 왕국 수도에서 약간 외곽에 위치한 정육점 뒷골목이었다.


폐기를 위해 쌓아둔 부산물들이 들어있는 통 위를 기웃거리던 녀석은 정육점 주인인 마크를 발견하는 순간 쪼르르 달려와 오른발에 매달린 통을 내밀었다.


조금 전까지 옆집 할망구랑 언쟁을 벌이다가 가게문을 열기 위해 온 마크는 비둘기 주제에 도도하게 다리를 내미는 녀석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빠르게 비둘기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선 마크는 수도에 정육점 고기팜을 연 이후 한 번도 사용한 적없는 물건을 쓰게 되었다.


바로... 휴업팻말!


“드디어 써보는 구나. 후후후후.”


친첸 왕국 수도에 잠입한 10년 동안 텃세에도 꿋꿋이 버티며 나름 인기 정육점이 되기 위해 한 번도 쉬지 않던 그에게는 감격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슬슬 자신의 본업이 세작인지 정육점 사장인지 헤깔리는 시점이었기에 더더욱 기뻤다.


“후우~, 후우~. 좋아!”


그래도 헛물 들이키다 실망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일단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비둘기에네 고기 부산물을 수고비로 주면서 발에 감겨있던 통을 빼냈다.


마치 마블링이 완벽한 최상급 고기를 손질할 때처럼 조심스러우면서 신속하게 통을 개봉한 마크는 기억을 더듬어 암호를 해독했다.


=다음 접선지에서 요인을 경호하며 본국으로 귀환, 흔적은 전부 지울 것.=


“옛쓰!”


비록 10년 동안 텃세를 이기며 이룩한 모든 것을 지워야한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그보다 본국으로의 귀환이라는 말은 더없이 행복함을 선사했다.


제국 내에서도 타향살이가 어렵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국가와 기후부터가 완전히 다른 상황은 오죽하랴.


비록 마크도 훈련소를 이수한 졸업생이지만 사회에 녹아드는 역할이었기에 감정차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덕분에 더 고생스러웠지만 드디어 고생이 보답 받는 느낌이었다.


“아차차, 이럴 때가 아니지!”


지령에 따르면 호위대상과의 접촉은 오늘 저녁이었다.


그 전에 모든 흔적을 지우고 준비를 갖추려면 굉장히 서둘러야했다.


“기름통이 어디있더라~. 옷은 불쏘시개로 쓰면 되고. 장비를 어디뒀더라?”


이곳에 온 뒤로 제대로 쓸 일이 없던 암기류를 찾기 위해 온 가게 안을 뒤져야했다.


다행히 어디 간 게 아니라서 금방 찾을 수는 있었지만 제대로 손질을 하지 않아서 실전에서 쓰기에는 무리였다.


“쩝! 있다가 대장간도 들러야겠네.”


바쁜 임무인데 무슨 태평한 소리인가 싶겠지만 마크는 진심이었다.


평소 도축할 때 사용해서 익숙한 도축용 칼, 원래는 암살용 단검은 꾸준히 관리하고 사용해서 괜찮지만 아무래도 다른 암기를 사용하는 감은 영 아니었다.


차라리 이건 대장간에 넘기고 단검을 몇 개 더 사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짐을 챙기기를 끝냈다.


“흐으~음. 완벽해.”


마지막으로 나서기 전 내부를 쭉 둘러본 마크는 고마운 비둘기를 먼저 내보내고 부싯돌을 들었다.


딱! 딱!


푸시... 치지이이익!


몇 번 부딪히자 돌과 돌 사이에서 튄 불똥이 도화선에 옮겨 붙으면서 서서히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계산상 10분 정도 타다가 기름먹인 옷가지에 닿으면 흔적 지우기도 끝이었다.


잘 타들어가는 불꽃을 확인한 마크는 서둘러 뒷문으로 빠져나와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막 중앙광장을 넘어가고 있을 때 저 멀리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볼 수 있었다.


비록 10년에 걸쳐서 버티고 자리를 잡은 가게지만 조금의 미련은커녕 가슴 한켠이 시원한 후련함만이 자리잡았다.


잠시 하늘 위로 치솟는 검은 연기를 바라보던 마크는 대로를 벗어나 뒷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행선지인 건물 앞에 도착했다.


똑! 또독, 똑똑!


끼이익~.


암호화된 일정한 박자로 문을 두드리자 빛 한 점 없는 실내로 들어설 수 있는 문이 열렸다.


보통이라면 살짝 겁을 먹을 법하지만 마크는 익숙하게 안으로 들어섰다.


끼이이이, 쿵!


바람 한 점 없는데 스스로 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양 옆구리로 서늘한 기척이 느껴졌다.


“아! 아!”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예기에도 전혀 긴장하지 않은 마크는 가볍게 목을 풀었다.


[내가 어둠을 바라볼 때 어둠도 나를 바라본다.]


[통과.]


상대에게만 들리도록 조정한 발성으로 암호문을 대자 옆구리에 다가왔던 이물의 기척이 조용히 사라졌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던 어둠 속에 빛으로 이루어진 선이 나타나더니 문이 되어 스르르 열렸다.


그새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빛을 낯설어했지만 금방 적응하여 다음 장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뒷골목에 있는 집의 벽을 개조하여 만든 출입구의 도착지는 대로변에 위치한 의상실이었다.


화려한 드레스부터 어떻게 쓰는지 모를 장신구, 남자들의 양복과 평민들도 부담없는 헌옷까지 충실한 곳이었다.


인테리어도 다소 화려하고 밝아서 과연 비밀 회동을 하기에 적합할까 싶겠지만 오히려 그런 허점을 파고든 결과였다.


거기다 이곳이라면 변장을 위한 도구들이 구비되어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화려한 드레스로 가득한 곳이지만 반대로 화려하지 않은 공간도 많이 있으며 시착실처럼 은밀한 공간도 마련할 수 있었다.


“아, 마크 씨. 대략 20분쯤 기다리세요.”


드레스 장벽을 너머에는 꽤나 그럴싸한 작업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평소라면 주문이 들어온 드레스를 제작 혹은 수선하겠지만 오늘은 마크보다 먼저 온 손님(?)이 차지하고 있었다.


거기다 새벽이 조금 지난 이른 시간임에도 대기 순번이 길다는 말에 난색을 표했다.


“뭐야, 다들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연기 피어오른 건 나뿐이던데?”


“저희는 마크 씨랑 달리 무보증 임대라서 물건만 빼면 괜찮아요.”


마크의 불평에 먼저 온 쌍둥이 야채가게 청년들이 응해주었다.


“너희 물건도 많은데 그걸 다 뺐다고? 벌써?”


“별로 어려울 거 없죠. 어차피 복귀하는 게 하루 이틀로 끝나는 일이 아닌데 수레에 실어서 식량으로 넘겼죠. 마크 씨는 고기 안 챙겨오셨어요? 과일만 먹으면 별로 안 좋은데.”


야채가게 하는 놈의 말치고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차피 순서가 될 때까지 할 일도 없기에 마크도 대화에 계속 응했다.


“난 당일 들어온 거 오전에 도축하잖냐. 가공을 못했으니까 못 챙겼지.”


“아쉽네요. 마크 씨네 고기 우리 가게 채소보다 맛있었는데...”


“그거 여러 모로 이상한 말인 건 아냐?”


장사하는 사람이 자신이 파는 물건을 폄하하는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쌍둥이는 전혀 개의치 않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전혀요. 야채가게는 저희가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닌데요, 뭘. 애착이 1도 없어요.”


“차라리 마구간 담당이 더 좋았을 텐데.”


“너네, 그 말 가스폴 앞에서 하지 마라.”


철없이 구는 후배들에게 충고를 하며 순서를 기다리는데 그 중 한 명 창밖을 바라봤다.


“저기, 마크 씨. 저쪽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마크 씨네 가게에요?”


“그런데 왜? 벌써 꺼졌냐?”


나름 기름도 많이 쓰고 세심하게 불쏘시개도 마련했는데 활활 타기 시작한지 15분도 안 되서 진화되었나 싶었다.


그러나 쌍둥이의 대답은 정반대였다.


“대~박, 완전 큰 불인데요? 저거 어떻게 질렀어요?”


“옆에 있던 집들도 홀라당 다 타겠는데요?”


“응? 그렇게까지 크게 불이 나지는... 아! 옆집 할망구가 또 내 가게 옆에 쓰레기 쌓았나 보네. 좀 전에도 한 바탕 했으면서 또 그러네. 쯧쯧쯧.”


“맨날 말하던 그 할멈이요? 이야~, 업보 대박이네.”


“대단하다면 대단하네, 크크크.”


남의 집이 홀라당 타고 있다는데 동정하는 기색은커녕 즐거워하는 쌍둥이도 절대 정상은 아니었다.


뭐, 이 일을 하는 사람 중에 정상이 어디 있겠냐마는...


“네, 네. 마크 씨 차례에요. 어떤 식으로 해드릴까요?”


“당연히 임무에 적합하게 꾸며줘.”


“알겠습니다.”


드디어 돌아온 차례에 자리에 앉은 마크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문가의 빠른 손놀림!


약간의 보형물로 전체적인 인상을 고치고 조금 진한 색의 분가루로 피부톤을 바꿨다.


그 뒤로 몇 번의 붓질이 이어졌지만 다해도 20분도 걸리지 않고 작업이 끝났다.


“다 됐습니다. 가서 적당한 옷으로 갈아입으세요.”


“생각보다 빨리... 이거 10년은 더 늙었는데?”


빠른 작업속도에 놀라며 거울로 결과물을 살피던 마크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봐도 거울 속에서 자신과 눈이 마주친 인물은 아직 30대인 자신과는 다른 중년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불만은 애초에 예상이라도 했는지 분장사는 묵직한 팩트로 명치를 후려쳤다.


“그건 마크 씨가 노안이라서 그래요. 저도 최선을 다했으니까 비키세요.”


이미 본인도 알고는 있었지만 스스로 인식하는 것과 남이 지적하는 건 엄연히 사정이 달랐다.


때문에 괜히 반발 심리가 작용한 마크는 반론을 펼쳤다.


“야, 나 정도면 노안은 아니야. 단지 흰 머리가 많을 뿐이라고!”


“흰 머리도 노안의 원인 중 하나죠. 빨리 비키세요. 오늘 중으로 20명은 더 해야 한단 말이에요.”


“쩝!”


뭐라고 더 반박하고 싶었지만 확실히 대기하고 있는 인원을 봤을 때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안 될 것 같았다.


불평불만이 가득했지만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마크는 구석에 쌓여있는 옷들 중 그나마 사이즈가 맞는 걸 찾아서 걸쳤다.


그러자 이방인이 아닌 제국민과 친첸 왕국 사람의 혼혈 정도로 느껴졌다.


일단 이곳에서의 볼일은 끝났기에 마크는 바로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하나는 조금 전 들리려고 했던 대장간.


똑같이 암호를 두 번 거쳐서 들어선 마크는 낡은 암기들을 넘기고 단검 다섯 자루를 추가로 받았다.


다음으로는 수도에 있는 아카데미의 쪽문으로 숨어들어가 식당에 급사가 준비한 보존식을 챙겼다.


그 외에도 도서관에서 필사한 지도를 받거나 뒷골목 양아치에게서 여비를 얻었다.


현지 지원자들의 도움으로 빠르게 준비를 갖춘 마크는 혹시나 있을지 모를 미행까지 꼼꼼히 체크하며 접선장소로 향했다.


접선지인 낡은 판자촌에 들어설 때쯤 마크의 감각은 상당히 예민하게 다듬어졌고 전성기 시절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목적지인 판잣집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끼이익~.


“누, 누구요!”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상대가 아내와 아이들을 뒤로 숨기여 떨리는 두 손으로 조잡한 날붙이를 겨눴다.


누가 봐도 완벽한 초보자의 모습에 자신의 옛날이 떠올라 실소가 나올 뻔했지만 꾹 참고 목적을 밝혔다.


“폐하의 명을 받고 마중 온 자입니다. 카스테르 공과 그 가족분들이 맞으십니까?”


“마, 맞소.”


나름 위엄있어 보이고 싶은 걸까?


괜히 목소리에 힘을 줘서 말하는 카스테르라는 인물을 조심스레 관찰하던 마크는 이내 관심을 버렸다.


어차피 이번 임무가 끝나면 볼 일도 없는 사이이니 너무 관심을 두고 정 붙지는 건 독이었다.


“그럼, 저를 따라오시지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다, 당신이 누구인 줄 알고 따라간단 말이오! 폐하의 명을 받았다면, 그그그, 증거를 보이시오!”


“쉿! 목소리가 크십니다. 그리고 증거라면... 이것은 어떻습니까?”


잔뜩 긴장했는지 지금 자신들이 숨어있다는 것도 망각한 카스테르의 언성에 미간을 찌푸리며 경고한 마크는 품에서 조심스럽게 증거를 꺼내보였다.


별로 대단한 건 아니고 손안에 딱 들어오는 엠블럼이었다.


대단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으나 한 번에 알아본 그는 서둘러 자신의 품을 뒤졌다.


그리고 작은 메모지를 꺼내서 엠블럼과 그림을 비교했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으나 특징이 거의 일치하는 그림과 엠블럼을 확인한 카스테르는 조금 안심이 되었는지 눈에 띄게 동요가 잦아들었다.


그가 꺼낸 메모지의 그림은 오늘 대사관으로 날아든 서신에 들어있던 그림의 필사본이었다.


안에는 오늘 내로 접선지에 가족들과 모여 조력자와 함께 귀국하라는 것, 그리고 그림 속 물건을 갖고 있는 자가 조력자라는 내용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철수하는 건지 설명이 전혀 없었으나 심각한 일이라는 걸 느끼고 대사관의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애초에 국새가 찍힌 황제의 명령서인데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지만...


“...이제 어떻게 하면 되오?”


“총인원은 몇 분입니까?”


“나와 아내, 그리고 세 아이들이 있소.”


총 5명으로 구성된 가족들을 빠르게 살펴본 마크는 머릿속에 있는 탈출 루트 중 가능한 곳을 선별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저희는 오늘내로 수도를 벗어날 겁니다. 그 뒤에는 인근 마을에 준비될 마차를 통해 친첸을 빠져나갈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저의 말을 잘 들어주셔야 합니다. 그러실 수 있겠습니까?”


마크의 질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던 카스테르 일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이동하죠.”


“저기,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 거죠? 황궁에선 갑자기 왜 은밀히 퇴거하라는 명령을 내리거나 당신들은 도대체...”


바로 이동하자는 말에 준비를 시작한 카스테르 공과 달리 여전히 불안감에 젖은 눈빛으로 아이들을 안고 있던 그의 아내가 조심스레 이유를 물어왔다.


“저희는 폐하의 명을 따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모릅니다.”


사실은 대략적인 사건의 전모는 파악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온 명령서의 내용은 이들의 탈출을 도우며 복귀지만 현지에서 도움을 주는 이들에게는 조금 다른 정보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갖고 있는 정보를 취합하면 대략적인 상황은 알 수 있었다.


조만간 동맹은 깨진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북부의 연합을 막는 방파제의 역할 이외에는 전혀 쓸모가 없는 동맹인데 이제 연합은 제국과 끈끈한 사이니까.


모인 정보에 따르면 다른 문제도 끼어있는 것 같지만 그 이상은 마크도 모른다.


설령 단편적인 정보가 없다고 해도 이런 비밀스러운 야반도주에, 황명을 받은 자신과 같은 조력자가 있으면 뭔가 정치적인 문제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카스테르 공의 아내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틀에 박힌 생각만 한다니.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어째 이들을 데리고 복귀하는 일도 생각만큼 순탄한 임무가 아닐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도 임무는 임무!


충실히 카스테르 일가를 이끌고 탈출경로를 따라 이동하였다.


다행히 가장 걱정이 되었던 아이들이 착실하게 따라온 덕분에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또다시 카스테르 공의 아내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 수도를 나가신다고 했는데 이쪽은 관문의 방향이 아닌데요?”


“저희는 관문을 통하지 않습니다.”


“네? 하지만...”


“더 이상 질문하지 마십시오.”


“흡!”


정신이 산만해지는 질문이 계속될 것을 우려한 마크의 일침에 그녀는 깜짝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약간 눈을 사납게 뜨긴 했지만 살기도 적의도 없었는데 숨 쉬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겁먹는 모습에 오히려 마크의 마음이 입은 상처가 더 컸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은 계속되었다.


기척을 죽이고 관문에서 떨어진 성벽 인근에 몸을 숨긴 일행은 잠시 후 성벽의 순찰을 돌던 경비병들을 목격했다.


그들은 별다른 탐색 없이 그냥 성벽을 따라 설렁설렁 걸어갔다.


이내 그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벗어나는 순간 마크는 총알같이 달려가 성벽의 벽돌을 빼내기 시작했다.


너무나 쉽게 빠지는 벽돌들에 카스테르 일가가 놀라는 와중에 마크는 성인이 수그리고 지나갈 수 있는 통로를 확보했다.


“이건...”


“어서 이쪽으로 곧 순찰이 돌아올 겁니다.”


또다시 질문을 하려는 아내를 독촉하며 개구멍으로 밀어넣은 마크는 빠르게 나머지 일행도 통과시켰다.


“머리 조심하십시오.”


마지막으로 본인도 통과하면서 빠르게 벽돌을 되돌리며 성벽을 보수(?)했다.


그러자 너무나도 깔끔한 본연의 모습을 되찾은 외관은 다음 순서로 지나가는 경비병들에게는 어떠한 이질감도 주지 못했다.


작가의말

Silferia 님 댓글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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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57 Silferia
    작성일
    18.10.08 06:50
    No. 1

    확실히 재밌는데요 ㅎㅎ. 마크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구하기 위해 그림자들이 갔겠네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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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153. 할 거라면 철저하게 19.02.15 300 2 17쪽
152 152. 니가 더 더러운데? 19.02.11 285 2 17쪽
151 151. 왜 막 밟고 난리야 19.02.08 277 2 19쪽
150 150. 적응 안 되게 19.02.04 289 2 18쪽
149 149. 왜 될 것 같지? 19.02.01 294 2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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