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황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Nu.T
작품등록일 :
2017.08.31 23:24
최근연재일 :
2019.07.2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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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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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14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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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135. 우리 황족이다?

DUMMY

“영지... 말인가요?”


자신의 손에 들린 서류를 확인한 아렌의 첫 물음은 놀라움 반, 걱정 반이었다.


하긴 그렇겠지.


천재라고 해도 고작 13살짜리 뜸금없이 불러낸 삼촌이 내민 서류의 내용이 내용이니까.


“그래,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할 일 아직 못 정했지?”


“네...”


정곡을 찌른 지적에 아렌의 표정이 시무묵해졌다.


하지만 딱히 그가 시무룩해질 이유는 없었다.


사실 아카데미에 들어가 지금까지 이룬 성과만으로도 웬만한 귀족과 황족은커녕 베일러 형님조차 해내지 못한 일이니까.


근데 막상 13년 인생의 최대 목표가 끝나가니 허무할 것이다.


아무래도 리버티 자신을 목표로 삼은 것 같기는 하지만 막막하리라.


공식적으로 아렌이 알 수 있는 범위에선 황제가 되기 전의 행적을 알 수 없을 테니까.


그런 와중에 리버티 쪽에서 기회를 주니 놀라는 게 당연하지.


물론 다른 길도 있다.


주로 아카데미를 졸업한 학생들이 걷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가 그것이다.


하지만 아렌은 그럴 수 없다.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닌, 단지 황자라는 신분 탓이 컸다.


“관료시험을 보기엔 비리로 엮일 가능성이 크고. 내 밑에서 일하자면 직책이 무거운데 감당하기엔 경험이 부족하고 말이야. 그렇다고 황궁에서 일할 적정한 나이까지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아깝고, 그렇지?”


“...네.”


너무 정곡을 콕콕 찌르니 아렌이 약간 주눅이 들었다.


딱히 기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지.


근데 매번 느끼는 거지만 약간 억울했다.


남들 앞에서는 그렇게 당당하고 약간 카리스마 있는 리더의 모습까지 보이면서 왜 유독 자신 앞에서만 저러는지... 서운해질 지경이다.


‘역시 위치탓인가?’


사실 따지고 보면 황제인 자신은 반데스크 제국의 끝판왕!


지금까지 독대를 취하는 와중에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협박까지 하던 기존의 대치 세력 수장들이 이상한 거지 보통은 저게 일반적이다.


베일러도 어릴 적에는 선황 앞에서 저랬지만 리버티는 사정이 달랐다.


어머니의 죽음의 의혹을 밝혀달라고 청할 때 이후로 선황에게 고개를 숙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심지어 그림자일 때 조차도.


그러니 더더욱 자신감 없어보이는 아렌의 태도가 불평이었다.


나름대로 친근하게 대해주고 그렇게 편하게 대하라고 하는데 이런 태도니까.


그래서 오기 때문에 자신이 더 가벼운 사람처럼 행동하게 되는 거 아니냔 말이다.


“어차피 할 일이 없다면 노는 것보다는 해보는 게 좋잖아?”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라서 잘...”


너무 큰 이야기인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기까지 하니 아렌도 헤깔리기 시작했다.


대단한 게 아닌가?


하긴 제국 전체랑 비교하면 조금 넓은 영지 하나쯤은.... 이라고 말이다.


만약 다른 귀족들이 본다면 조금 넓다는 표현에서 이미 황족과의 스케일 차이를 실감하게 만들겠지만, 신중한 아렌은 입 밖으로 소리내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흔들린 마음을 먼저 눈치챈 리버티가 쐐기를 박았다.


“하긴 좀 갑작스럽긴 하겠지. 대뜸 불러서 한다는 소리가 그거니까. 근데 이미 국새도 찍었다?”


“...”


턱짓으로 아렌의 손에 들린 서류를 가리키자 시선이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정말로 리버티의 말처럼 진하게 찍혀있는 국새의 흔적이 너무나도 선명했다.


이젠 갑작스럽다 못해 강제적인 느낌에 놀라움은 줄어들었지만 반대로 불안과 걱정이 증폭되었다.


“혹시 오해할까봐 말하는데 내쫓는 거 아냐. 그렇다고 내가 조만간 탄핵당할 것 같아서 피신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다 너한테 필요하니까 시키는 거야.”


“필요... 해요?”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그 이상의 이유까지 설명으로 들으니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도 읽히고 다른 방향으로 튈 것까지 막혔으니까.


하지만 리버티는 상대가 누구였다고 해도 똑같이 생각을 읽을 자신이 있었다.


보통 황족이나 귀족이나 가주가 영지에 대해 언급할 때는 둘 중 하나이다.


계승하거나 쫓아내거나.


표정에 다 들어나는 것도 그렇고 예측당했다고 해도 숨길 줄을 모르다니.


물론 스케일에 차이가 크지만 대부분 그렇다.


그리고 딱 지금 아렌의 경우에는 제국 전체가 아닌 영지 하나이니 생각이 더 안 좋은 쪽으로 향하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제안은 절대 그런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라는 이유가 컸다.


“그래, 필요하단다. 지금 네 입지는 매우 애매하고 위태로워.”


“...”


아렌도 어렴풋이 느끼는 바가 있는지 침묵을 지켜나갔다.


특히 아렌이 선택한 역사학부라면 반데스크 황실의 황위 계승에 대한 것도 달달 외웠을 테니까.


그리고 대부분의 결과에서 변수로 작용하는 요소의 존재도 알 것이다.


“넌 현재 유일한 황자야. 그런데 내 후계자, 그러니까 황태자는 아지. 원래는 내가 즉위하고 자리 잡으면 바로 임명을 하려고 했는데 솔직히 나도 예상 못한 변수가 있었잖아?”


“...엘리 말인가요?”


혹시나 하는 어투였지만 정답이었다.


“정확히는 그 사슴고기 때문이지. 고작 혼자 놀기 싫다는 어린애한테 낚여서는... 그것만 아니면 됐는데... 아무래도 반데스크 황실의 근간이 그놈의 신수 소환이니까 말이야. 전적도 없는데 암암리에 지지자가 생기더라고.”


아마 엘리 본인에게 물어보면 진저리를 칠 것이다.


한창 놀고 싶은 10살 말괄량이 소녀이기도 하고 리버티가 일하는 모습을 쭉 봤기 때문이다.


애초에 본인이 공부랑 벽을 쌓고 있으니 되고 싶다고 해도 문제였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역사를 보면 본인의 의사는 개무시하고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명분으로 내세운 꼭두각시들이 꽤 많으니까.


또한 멀리 볼 것도 없이 리버티도 그렇게 될 뻔한 상대였다.


통제할 수 있는 늑대라고 여겼다가 자신들의 목을 물어뜯는 괴물이라는 걸 늦게 알아서 문제였지.


덕분에 황권이 비약적으로 강화되었다.


그래봤자 황권이 실질적으로 강해진 것보다는 귀족세력이 극도로 약해진 부분이 컸지만.


어쨌든 결론은 엘리는 신수가 있고 아렌은 신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아렌 또한 과거 리버티나 엘리처럼 물빛 머리카락을 이은 직계!


신수와의 소환은 충분히 가능했다.


“그럼, 제가 신수를 부른다면...”


그래서 나온 가장 확실한 제안이었으나 리버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실히 그 방법이 편하고 확실하다.


괜히 실패할 수도 있는 일에 돈과 시간을 허비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신수가 둘이나 있는 상황에서 셋이라고 안 되겠는가.


파온은 나름 발도 넓은 것 같으니 중매를 시켜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리버티는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이 삼촌은 네가 신수를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


아니.


진심은 엘리의 계약까지 가능하면 파기시키고 싶었다.


단지 유일한 파기 방법이 죽음이라서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그러니 가능한 아렌을 신수와 계약시키지 않고 엘리에겐 파온의 힘을 직접적으로 쓰지 않도록 하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나중에는 너도 알거야. 그니까 신수를 부르겠다는 생각은 버리렴. 그리고 계약한 황제라는 타이틀로 가리기에는 네가 너무 뛰어나잖아? 차라리 모두가 널 인정하게 됐으면 하는 게 삼촌의 바램이야.”


“!?”


갑작스런 고백에 아렌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리버티의 눈동자를 마주하자 가슴 안쪽에서 뭔가 벅차는 감정이 올라왔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인정해줄 때와는 다른, 비교가 불가능한 환희와 기쁨이.


“거기다 슬슬 황실도 저놈들한테서 벗어나야지. 도대체 언제까지 인외의 힘에 집착하면서 명맥을 이을 건데? 이제 사술에서 벗어날 때도 됐잖아? 뭐, 나는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지만... 아렌 넌 가능할 거야.”


“확답할 수는 없지만... 노력할... 아니, 할게요. 꼭 그렇게 되도록 만들게요!”


가슴을 가득 채운 감동 탓에 리버티가 신수 계약을 ‘사술’이라고 하는 걸 듣지 못했다.


대신 결연한 각오와 다짐으로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해왔다.


의지가 생긴 조카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리버티는 어깨를 두드리며 좀더 확고하게 마음 먹을 수 있도록 경려를 아끼지 않았다.


“좋아! 그러기 위해선 일단 네가 황태자가 되야 하는데 그럴려면 명분이 필요해. 무슨 뜻인지 알겠니?”


“그 명분이 영지라는 거군요. 아니, 영지가 아니라 영지를 통해서 제가 쌓을 실적이에요. 맞죠!”


“맞아. 엘리와 달리 지금의 네가 쌓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명분이지. 이미 네가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것도 있으니까 내가 조금만 밀어붙이면 황태자 쯤은 뭐.”


“...”


최근 알현실을 채운 대신들과 달리 알아서 생각할 줄 아는 아렌이 참으로 기특했다.


어째 황태자가 되는 게 쉽다는 부분에서 공감을 목하는 것 같지만 나중엔 공감하겠지.


물론 당사자에게는 좀 힘들 수도 있지만.


“근데 그러려면 조건도 있어.”


“조건이요?”


잘 나가다가 초를 치는 조건이라는 단어에 아렌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굳이 그 조건에 대해선 자세히 설명해줄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여기 다 적어놨으니까 꼼꼼히 살펴보면 돼. 필요한 준비도 미리 갖출 수 있도록 하겠지만, 그 뒤로는 지원이 없을 거야. 이건 시험이기도 하니까. 알았지?”


“네!”


서류와 교환된 안내서를 받아든 아렌은 참으로 씩씩하게 답해줬다.


그러다 뒤늦게 걱정이 생겼는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귀족들의 반발이 심하지 않을까요? 어리기도 하고...”


혹시나 이 일 때문에 리버티에게 민폐가 되지 않을까 싶은 걱정이 생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귀족들이라면 영지에 관한 부분은 정말 민감하게 달려드니까.


하지만 아렌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은 리버티는 환하게 웃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네가 잊어버린 것 같아서 말하는데... 우리 황족이다?”


“네?”


대뜸 황족임을 언급하자 당연히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는 리버티는 일단 첫 번째 수업을 해주기로 결심했다.


“다음 회의 때 참석해. 신하 다루는 방법 중 하나를 보여줄게.”


그렇게 리버티는 아렌이라는 새하얀 도화지에 색을 더하기로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조금 진한 회색이라는 게 걸리지만.


*


아렌도 예상하고 리버티도 예상한 것처럼 마지막 안건을 내놓자 대신들이 대동단결하여 반대에 나섰다.


“아니될 말씀이옵니다, 폐하.”


“““아니되옵니다, 폐하.”””


한 명의 대표가 나서자 나머지가 복창하기를 반복했다.


정작 반대를 당하는 안건을 내놓은 리버티는 하품까지 하며 무시했다.


참관이라는 명목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렌까지 눈을 감으며 조용해지길 기다렸다.


처음에는 어른인 대신들이 반대하거나 서로 대립하는 기세에 조금 억눌렸지만 누가 황족 아니랄까 봐 그새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물론 옆에 있는 아렌의 대응도 적응하는데 한몫했다.


솔직히 자신들 비위에 안 맞으면 타당성을 떠나서 무조건 반대하니 아무리 알현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쳐도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벌써 귀닫는 법부터 배우면 안 되는데 싶다가도 괜히 주눅 들어서 두고두고 이용당하는 무능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리버티도 굳이 교정해주지 않았다.


어차피 알게 될 거 미리 알아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렇게 두 황족이 나란히 귀를 닫아버리자 그제야 대신들도 반대의 목소리를 낮추고 대화할 자세가 갖춰졌다.


잠잠해지자 반개한 눈을 뜬 리버티는 대표로 나선 대신 한 명을 직시했다.


“왜 안 된다는 거지? 원래 짐의 외가이며 아렌 황자의 외가이기도 한 크로스 백작가의 영지였다. 그런 영지를 적통 후계자인 이리아나 황자비에게 인계하겠다는 건데 말이야.”


적통 후계자라고 내세울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르시엘을 시작으로 이미 몇몇 여성 귀족작위 수여자들이 탄생했다.


심지어 양녀인 솔레나까지 친자식인 아모르를 제치고 후계로 거론될 정도로 변화했다.


그런 상황을 근거로 하여 원래의 소유주에게 돌려주겠다는 안건이었다.


그러나 대신들의 반대에도 명분은 존재했다.


“설령 과거의 영토의 소유가 어떠하든 현재는 황실의 소유, 즉 국영지이옵니다. 그런 땅을 갑자기 사유지로 전환하고 하시다니요. 절대로 아니될 일이옵니다. 심지어 크로스 백작가는 이미 멸문한 가문이며 해당 영지의 소유권 또한 훨씬 오래 전에 박탈당했습니다. 거기다 최근까지 타귀족 가문이 운영되던 곳이니 크로스 백작가의 소유라고 주장하심은 억지이옵니다.”


꽤나 긴 설명이었지만 결론은 요약하면 ‘걔네 옛날에 망했잖아’였다.


맞는 말이다.


망했다.


그것도 더 할 나위 없이 깔끔하게.


그것도 겹사돈을 맺고 있던 선황의 자격지심에 의해.


그러니 바로잡겠다는 생각이지만 아마 귀족들은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현재 황제만이 아니라 다음 대 황위의 유력 계승자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가문이라면 더더욱!


물론 대놓고 그런 말을 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겉으로는 명분이 확실했기에 리버티가 한 발 물러났다.


“딱히 짐은 크로스 백작가를 부흥시키겠다는 게 아니네. 애당초 공식적인 후계자도 없으니까.”


“그렇다면 더욱 아니될 일입니다. 도대체 저의가 무엇이시옵니까?”


“저의라... 뭘 것 같나?”


“예?”


질문에 질문으로 응수하는 도발적인 태도에 대표로 나섰던 대신의 머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실시간으로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답을 도출할 시간을 줄 정도로 리버티는 자애롭지 않았다.


“뭘 것 같냐고.”


“그것이...”


“왜 대답을 못하겠나? ”


“...”


대답을 못하겠지.


본인이 가문의 부활이 목적이 아니라는데 그런 쪽으로만 생각하던 머리들이 갑자기 방향전환을 할 수 있을 리가.


결국 대표자가 입을 다물자 넓은 알현실을 쩌렁쩌렁 울리던 소리가 사라졌다.


대신 숨 쉬는 소리까지 거슬릴 정도의 침묵이 공기를 냉각시켰다.


수십 명이 동시에 입을 다물고 심장소리라도 들릴까 긴장하며 열심히 눈알을 굴리는 모습이 퍽 우스웠다.


가만히만 있으면 반은 간다는 말을 그대로 실천하기로 마음먹은 이들도 있는 것 같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악수였다.


오히려 리버티로 하여금 물갈이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확신을 품게 만들었다.


시기는 대충... 아렌의 졸업식이 끝난 뒤가 좋겠다.


그 뒤로는 황궁이 조금 조용해질 테니까.


지금처럼 조용한 만큼 사소한 잡음까지도 잘 잡히겠지.


의중을 알았다간 지금 당장 대신들이 귀족체면 던져버리고 고개를 숙여가며 살려달라고 빌겠지만, 그런 일은 애당초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렴 본인이 말하지 않는데 어떻게 알겠나.


그래도 계속 침묵만 지키면 진행이 안 될 테니 리버티가 나름의 절충안처럼 제안을 내놓았다.


“그렇게 반대하니 하는 수 없군. 그럼 사유화 하지 않으면 된다는 거지?”


“예?”


2라운드의 시작 신호를 제대로 듣지 못해서 머뭇거리는 사이 리버티가 빠르게 후속타를 넣었다.


“왜? 방금 자네 입으로 크로스 백작가의 소유로 하기엔 오래 되었고 이미 황실 소유라고 했잖나? 그럼 황실 내에서 관리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거지. 물론 짐이 직접 관리하면 좋겠지만, 제국의 영토를 감안하면 쉬운 일도 아니지 그러니 지금까지처럼 담당자를 정해서 관리하겠다는 거야. 그걸 위해서 새로 책임자를 앉혀서 일을 분담하겠다는 거지. 그것도 ‘황실’ 내에서 말이야.”


“...!”


일부러 황실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니 대신들도 할 말이 없어졌다.


앞서 자신들이 했던 명분을 교묘하게 비틀어서 찌르니 반론할 꺼리가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결국 할 말이 없어진 대표가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말로 하진 않았으나 가랑이 사이를 꼬리로 가린 강아지와 비슷한 의미였다.


“뭐, 더 반대할 이유가 있나? 하사하는 것도 아니고 관리만 맡기는 온전한 황실 내의 일인데 말이야.”


잠시 알현실에는 정막이 자리를 깔고 엉덩이를 눌러붙였다.


이제 마무리 지으면 된다 싶을 때 이번엔 다른 대신 하나가 정막의 엉덩이를 차버렸다.


3라운드의 시작이었다.


“분명 황실 내에서의 일이며 관리이니 많은 이들이 보좌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여기실 수 있사옵니다. 허나 이는 형평성에 문제를 야기할 것입니다.”


“형평성?”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이유로 되었다는 마냥 어처구니없는 걸 본 것처럼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새롭게 나선 대신은 계속해서 자신의 주장을 어필했다.


“그러하옵니다. 만약 이리아나 전하께서 해당 영지를 관리하게 되신다면 귀족들 중 몰락한 가문의 후손들이 자신들에게도 명문가를 이을 권한을 요구할 것입니다.”


실로 되도 않는 X소리였다.


비리와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로 무너진 가문을 다른 가문에 적을 둔 자들이 잇겠다니.


만약 처음에 저런 주장이 나왔다면 이만큼 짜증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자신이 한 번 안건을 수정해서 하사를 관리로 바꿨으니까.


근데 거기에 저런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을 당당히 하는 자가 대신의 자리에 앉아있다니.


그냥 시기를 보지 말고 다 쓸어버릴까 싶었다.


심지어 다른 대신들 몇몇도 그를 미친 놈 보듯이 바라보고 있었으나 당사자는 전혀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었다.


멍청한데 둔감하기까지 하다니.


‘내가 진짜 과대평가했구나.’


이리아나가 여성이기에 혹은 크로스 가문 출신이니 공정하지 않다는 이유 등을 들 줄 알았는데... 다른 의미로 상상을 넘어섰다.


그래도 일단 받아줬다.


덕분에 원하던 단계까지 도달했으니까.


그리고 다음부터는 이렇게 귀찮게 하지 말기로 했다.


이 짓거리도 한두 번이지 매번 하는 것도 슬슬 짜증보다 화가 날 지경이니까.


“뭐, 이리아나 황자비에게 한다면 그렇겠지.”


““““!?””””


말도 안 되는 괴변까지 수용하는 리버티의 관대한 반응에 그제서야 대신들이 이상함을 감지했다.


평소의 리버티와는 너무나도 달랐으니까.


그래도 그나마 학습이라는 걸 했는지 몇몇 귀족들이 지금 굴러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애당초 리버티가 제시하고 있던 모든 것이 진짜 목적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더 이상 참으며 쓸데없는 설전을 벌이기 싫어진 리버티는 품에 넣고 있던 서류 한 장을 꺼내들었다.


“제국의 황제, 리버티 덴 크로스 반데스크의 이름으로 명한다. 아카데미 졸업 향후 2년 간 제국령의 영지인 ‘이니티알리스’의 새로운 관리로 아렌 덴 크로스 반데스크를 입명한다.”


“황명을 받들겠습니다, 폐하.”


최대한 근엄한 목소리로 반론을 내기도 전에 선언한 리버티가 이미 승인된 서류를 아렌에게 넘겼다.


아렌 역시 황명이 적힌 교지를 한쪽 무릎을 꿇어 예의를 갖추며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


““““...””””


지금까지 한 회의가 무색할 정도로 일방적인 결과였다.


하지만 차라리 처음 제안을 수락하는 게 더 나았다는 걸 깨닫는데 며칠 더 걸리고 말았다.


황명에 따라 ‘이니티알리스’의 ‘관리자’가 된 아렌은 그야말로 황제의 대리인!


‘이니티알리스’의 관리와 관련된 아렌의 명령은 그야말로 리버티의 명령과 동등하게 되었다.


설령 그것이 인근 영지에게 불합리한 요구라고 해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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